6. 우리 이제는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자? 응?
“이게 뭐야?”
다음 날, 월요일 아침이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찌감치 회사에 가서 사직서를 작성하였다.
퇴사일은 3주 후로 할 생각이지만, 당연히 연장 요청이 들어올 것을 알기에 일부러 2주 후로 하였다.
그리고, 박 이사가 출근하자마자 회의실에서 면담을 요청하였다.
박 이사는 내가 면담을 요청하는 순간 눈치를 챈 듯 표정이 굳어지더니, 내가 흰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뻔한 거지.
“생각하시는 그거 맞습니다.”
“야야! 몰라! 나 안 볼 거야!”
대체 이건 무슨 반응이냐?
생떼냐?
“이사님!”
“야! 철식아! 회사 사정 뻔히 아는 놈이 왜 그래? 뭐야? 금요일 사장에게 욕먹은 것 때문에 그래? 야! 어디 한두 번도 아닌데 왜 그래?”
이 말이 더 무섭다.
아니 그럼, 당하던 놈들은 원래 당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당해도 된다는 말이야, 뭐야?
“하아!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야! 제발 좀 부탁이다. 가뜩이나 머리 아픈데, 너까지 왜 이러냐? 응?”
“저도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제안이 들어온 곳의 조건이 너무 좋아서 말입니다.”
“뭐? 제안? 어디야? 동양은 당연히 아닐 것이고?”
“...”
제길, 연주에게 차였다는 소문이 그새 박 이사 귀에 들어간 모양이다.
하여간 이 바닥에는 비밀이 없어요, 비밀이.
“어디냐고? 해파? 아기룸? 이 자식들이 상도덕이 없어요, 상도덕이!”
“이 바닥 아닙니다.”
“엥? 이 바닥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박 이사는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제가 이사님하고 대성 영업부를 지킨 것이 벌써 6년 아닙니까?”
“내 말이!”
“저 이 바닥 떠납니다.”
“뭐 임마? 이 바닥을 떠나다니? 네가 이 바닥 경력 말고 또 뭐가 있다고?”
“왜 없어요? 있잖아요? 군대?”
“구, 군대? 군대라니? 군대가 여기서 왜 나와?”
“군대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치프 인스트럭터로 있는 선배인데, 자리가 났다고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오라고 말이죠.”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였던 군대 경력이 이런 식으로 사용될 줄은 나도 몰랐다.
아웅,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사우디? 인스트럭터라니?”
“교관입니다. 사우디가 얼마 전에 터진 예멘 내전에 개입하면서, 교관 인력이 많이 모자란 모양입니다.”
“그걸 네가 왜 가?”
“저 군대 어디 출신인지 잊으셨어요?”
“아아! 너 참!”
박 이사는 방위 출신이라서 의식적으로 군대 이야기를 피하다 보니, 내가 어디 나왔는지를 잊은 모양이다.
“야야! 그거 위험한 곳 아니야? 대체 얼마나 주길래 거기에 간다는 거야?”
“사우디에서 저개발국에서 모병한 병력을 훈련만 시켜주는 겁니다. 전혀 위험하지 않고요, 급여는 월 2만 달러! 보너스 별도! 라네요?”
“...”
이러면 할 말이 없겠지?
아니나 다를까, 침통한 표정으로 사직서를 주머니에 넣더니 담배나 피자고 한다.
이래서 영맨은 담배를 끊지 못한다.
“후우! 언제까지냐?”
“사직서에는 2주 적었는데, 3주까지는 가능합니다. 무조건 이번 달 안에는 출국해야 하거든요.”
“아이 씨, 뭐가 그리 급해?”
“전황이 심상치 않다고···.”
“...”
꼼꼼한 사람이라 이따 내려가서 검색하겠지만, 내 말이 맞을 거다.
다 보고서 주절대는 거니까.
“아오! 진짜 미치겠네! 너 나가면 나 혼자 어쩌라고?”
“왜 혼자에요? 김 대리도 있고, 강 주임도 있고···.”
“야! 그걸 말이라고 해? 걔들이 팀장 노릇을 어떻게 해? 그리고, 내가 장담하는데 너 나가면 넷 중 최소한 둘은 사직서 쓸 거다.”
“팀장급 뽑으시면···.”
“이 자식아! 나간다고 놀리는 거야? 사장 소리 지르는 거 이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 없어서, 오지도 않는 거 뻔히 알면서?”
“...”
어쩌라고?
나는 이 회사에서 할 만큼 하였다.
아니래도 1조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후우! 알았다. 하여간, 위험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전쟁터니까 몸조심하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2주는 절대 안 돼? 3주야, 3주! 얘들 좀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네”
“아우! 대체 뭐라고 보고하냐?”
“...”
사장이 출근하고 나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사장도 영업부에서 내가 차지하는 위치가 어떤지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다시 사장실로 끌려가서 별소리를 다 들었지만, 어차피 결론은 뻔한 이야기였다.
화요일에 돈이 들어왔다.
의외인 것은 내가 요청한 20만 달러가 아니라, 30만 달러라는 것.
“아니 뭘 이렇게 많이 보냈어요? 착오가 있는 거 아니에요?”
- 하하하! 아닙니다. 당첨금액이 금액이라, 통상 5주에서 7주 정도 걸리는 지급 절차가 이번에는 좀 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혹시 몰라서 10만 달러를 더 넣었습니다. 한국에서 정리할 것이 많으신 모양인데, 깔끔하게 정리하시라고요.
우와와!
이제 우리는 스케일이 달라졌구나!
10만 달러를 용돈 보내주듯이 보내다니?
어쨌든 나야 땡큐지.
“고맙습니다, 대표님. 잘 쓸게요.”
-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 제가 그쪽 사정은 잘 모르는데, 돈은 내일부터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냥 속 편하게 내일 찾아 쓰세요.
“얍!”
환전하면서 3억 3,000만 원이 약간 안 되는 거금이 들어왔는데, 용돈을 받은듯한 이 느낌은 대체 뭐지?
어쨌거나, 실제로 통장에 돈이 들어오자 내가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용돈 한번 두둑하구나!
정신없이 인수인계하면서, 미국에 갈 준비를 하였다.
미국 비자가 없이 미국에 가려면 ESTA로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90일까지 체류할 수 있다고 한다.
금천구청에서 전자여권을 5일 만에 발급받고 여권이 나오자 ESTA를 신청하였다.
살면서 범죄 따위는 저질러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패스.
비행기 표는 US 로또에서 4월 초 인천 출발로 끊어서 보내주었다.
이거 역시 당연히 퍼스트클래스다.
내가 살다가 비행기 일등석을 다 타보겠구나.
군용기가 아닌 민항기를 해외로 타본 것은 딱 한 번이다.
군대 제대하고 3개월짜리 필리핀 바기오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올 때였는데, 그때는 저가 항공을 타고서 키가 183이나 되는 장대한 몸을 좌석에 거의 끼워 맞추는 수준이었다.
물론 4시간 반이나 되는 탑승 시간 자체가 고문이었고.
한마디로 뒈지는 줄 알았으니까.
하여간, 장하다! 강철식!
일등석이다, 일등석!
그것도 1천만 원이 넘는다는 LA행이다!
2015년 3월 27일, 금요일이다.
드디어 6년간 몸담았던 대성 어패럴에서 퇴사하는 날이다.
정확히 말하면 첫 직장은 직업군인으로 부사관 생활을 했기에 두 번째지만, 형편 때문에 일반 현역으로 가는 대신에 간 것이었기에, 나는 대성을 첫 직장으로 생각하였다.
성질머리가 고약한 홍 사장 밑이어서 징그럽게 고생도 많이 했지만, 입사 시 매장 20여 개로 성장을 시작하던 회사에서 9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진 회사로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
사내를 돌면서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홍 사장에게 갔다.
“너 진짜 가는 거냐?”
“네, 사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에이! 자식! 그냥 좀 있지! 그 험한 곳은 뭐하러 간다고?”
“송구합니다.”
“에휴! 어쩔 수 없지. 하여간, 너 고생 많이 한 거 내가 알아. 내 성질 맞춰 준다고 속도 많이 상하였을 것이고”
뭐냐?
인제 와서 웬 고해?
“몸조심하고, 좀 이상하다 싶으면 의리고 나발이고 그냥 토껴! 너는 임마! 잔정에 너무 약한 것이 약점이야! 너도 알지?”
“네, 사장님”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너라면 항상 환영이니까”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요.”
“그래”
사장실을 나와서 사무실을 둘러 보았다.
참 미운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섭섭하다는 감정이 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입구로 나가는데, 사무실 직원들 태반이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뭐여? 이 분위기는?”
“잘 가시라고요.”
오래 다닌 직원이 많지 않은 회사라, 꼴랑 6년인 내가 이 회사에서 고인 물이긴 한가 보다.
이렇게까지 마중을 해줄지는 몰랐다.
직원들과 우르르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복도.
내 눈에 습기가 차기 시작했다.
잘 있어라, 대성 어패럴아!
다음 날, 은평구에 있는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불광천 변에 이어져 있는 방 두 개짜리 반지하 빌라.
이것도 자가가 아니라 전세다.
그나마도 내가 군대에서 악착같이 모은 돈이 절반 이상이다.
청해부대고 어디고 간에 죽어라고 파병도 나가서 파병 수당도 챙기었고.
“엄마! 나 왔어!”
“아들! 이놈의 자식이 같은 서울에 있으면서 왜 이렇게 집에 안 와!”
“에이, 바빠서 그렇지!”
“바쁘기는? 월급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흐흐흐, 그래도 월급 밀리는 회사는 아니잖아?”
“월급 밀리면 그게 회사니?”
하긴, 맞는 말씀이다.
“에이, 오랜만에 왔는데 잔소리는? 어디 우리 한 여사 좀 안아 봅시다.”
“이놈의 자식이 징그럽게!”
투덜대면서도 안아주는 우리 엄마다.
엄마는 작은 키는 아닌데, 내가 큰 편이라 머리 정수리가 훤히 보였다.
염색 시기를 놓쳤는지, 흰머리가 그득하다.
하아, 우리 엄마 정말 미인이었는데, 언제 이리 나이를 드셨나?
이제 우리 나이로 56세밖에 안 되었는데···.
십여 년 전의 그 일만 아니었다면, 지금도 참 잘 꾸미고 고우셨을 텐데 많이 상하셨다.
“아빠는요?”
“오전 일만 하신다고 했어. 한 시간 정도 있으면 퇴근하실 거야”
“엄마는 이제 일 안 나가지?”
“몸이 좀 좋지 않아서 이번 달에는 쉬었는데, 다음 달부터는 다시 나가야지. 소미 학원비도 대야하고”
빌어먹을!
“엄마, 이제 일 나가지 마”
“어머, 얘 좀 봐라? 내가 일하지 않으면 소미 학원비는 어떻게 대고? 부모가 되어서 겨우 싼 거 수학하나만 하는데?”
“이제부터 소미는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그리 알아요?”
“네가 돈이 어딨어서?”
“나 돈 많이 벌 거니까, 엄마는 인제 그만해”
“너 버는 족족 집에다 박았는데, 어떻게 그러니?”
“아 좀 말 좀 들어요!”
조금씩 속이 좋지 않아졌다.
이래서 내가 집에 자주 안 들리는 거였다.
“알았다. 이따 아빠 오면 같이 이야기하고, 이건 뭐니? 웬 보자기 보따리야?”
“빨리도 물어보시네. 소고긴데, 이따가 우리 식구 다 같이 먹으려고 사 왔어.”
“아니, 이게 뭐야? 이거 한우 세트 아니야? 어머머! 이를 어째? 이 비싼 것을? 너 미쳤니?”
“제정신이고, 살만해서 샀으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이거 어떻게 하지? 이거 환불 안되나?”
속에서 불길이 올라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날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냉장고에서 썩어서 버리던 것이 소고기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다.
한우란 말에 벌벌 떨면서 환불할 생각부터 하는 지경까지 말이다.
동네 대형 슈퍼에서 최저시급 5,580원을 버는 우리 엄마.
풀었던 한우 세트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다시 싸는 엄마를 뒤에서 안았다.
“엄마! 그냥 좀 먹자고! 엉? 나 이제 돈 많이 버니까!”
빚쟁이들이 몰려오고 빨간 딱지가 붙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어도, 한 번도 부모 앞에서 눈물을 비추지 않았던 나다.
그런데, 지난 십여 년의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왔다.
“철, 철식아···.”
뚜루르! 철컥!
“여보! 나 왔···.”
생각보다 일찍 들어오던 아빠는 뜻밖의 광경에 현관에서 얼어붙었다.
감정을 추스르기 위하여 밖에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들어왔다.
“엄마, 아빠, 잠시만 저랑 이야기 좀 해요.”
“그, 그러자”
아빠가 내 눈치를 보면서 엄마와 식탁에 앉았다.
제법 공부도 하던 내가, 고2 때 사업을 하던 아빠가 친구에게 보증을 잘못 서주어서 집안이 결딴이 난 이후부터 내 눈치를 보는 아빠다.
사업을 그리 오래 하였던 양반이 고지식하게 꼬부쳐둔 돈도 없었다.
뿔뿔이 흩어져 나는 고3을 마칠 때까지 친척 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었다.
그러니, 공부고 나발이고 되나?
삐뚤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지?
결국, 해결책은 하나,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먹고 자고 돈을 벌 수 있는 군대로 가는 거였다.
고생스럽더라도 가능하면 많이 벌 수 있는 곳으로.
파병 가면 돈을 많이 받는다기에, 좋은 성적으로 교육과정을 수료하기 위하여 특수전 기본과정이고 초급반이고 뭐고 간에, 개같이 뛰어다니면서 모든 교육과정을 탑으로 찍었다.
영외거주?
난 그런 거 없었다.
영내 거주 의무기간이 지나서 나가라고 하여도 배 째라고 드러누웠다.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내가 왜 나가?
밖에 나가면 얼마나 비싼데?
결국, 내 딱한 사정을 들은 대대장이 선처하여 나가는 그날까지 영내에서 개겼다.
그러고 보니, 국가에서 해준 것이 있기는 하네?
그리고, 파병기회가 생기면 중대장 똥꾸녕을 빨아서라도 악착같이 선발되었다.
월급이 거의 따블이 나오니까.
그렇게 번 돈을 우리 가족의 최소한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에 전부 꼬라박았다.
아빠야 지은 죄가 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곱게 자라서 평생 고생 한번 안 했던 엄마와 늦둥이라 나와 13살이나 차이나는 사랑스러운 여동생 소미가 눈칫밥을 먹는 꼴은 죽어도 볼 수 없었으니까.
어찌어찌 대충 수습이 되어, 아빠하고 엄마가 돈을 버니까 이제는 입에 풀칠하는 것에는 지장이 없지만, 여전히 아빠가 내 눈치를 보는 이유다.
미안하니까.
너무너무 내게 미안하니까.
“아빠, 엄마 내 말 잘 들어요.”
“응”
“엄마, 지금 폰으로 엄마 국민 통장 확인해 봐”
“내 통장을?”
“응”
엄마가 폰을 조작하여 계좌를 확인하였다.
“어머머! 이게 무슨 돈이야? 5천만 원?”
“어디 어디? 헛!”
입금자는 당연히 나다.
1억을 보낼까 하다가,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5천만 보낸 것이다.
“엄마는 이거 저축할 생각 같은 거 말고, 생활비로 넉넉히 써. 일 다시 나갈 생각하지 말고요. 알았어? 엄마?”
“대체 이게···.”
“그리고, 아빠!”
“엉?”
넋이 나가 있는 아빠에게 흰 봉투를 내밀었다.
“아빠는 아직 통장을 못 쓰니까, 현금으로 넣었어요. 천만 원인데, 어설프게 돈 갚는다고 하지 말고, 그냥 아빠 용돈 써요. 아빠 빚은 내가 다 몇 달 후에 갚을 거니까”
“...”
“...”
잠시 말이 없던 아빠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철식아”
“네”
“이 아빠가 너에게는 정말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아빠는 아빠야”
“누가 뭐라고 했어요?”
“너, 이 돈 어디서 났어?”
고지식한 우리 아빠가 이렇게 물을 것을 100% 예상하였다.
그래서, 답변도 만들어 놓았고.
“아빠!”
“왜?”
“내가 누구 자식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아빠 자식인데, 아빠의 그 법 없이도 사는 성격을 내가 안 닮았을 거 같아? 그렇게나 아빠의 정직한 성격을 죽도록 원망했는데, 씨도독질은 못한다고 나도 아빠 닮았더라고?”
“...”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맹세코 완전! 100% 정직한 돈이니까, 염려 놓으셔요.”
정말 이렇게 정직한 돈이 있을 수 있을까?
로또다, 로또.
“험험, 미안하다. 의심해서. 그럼 이 돈이 전부 어디서 난 거냐? 너 박봉이라며?”
“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제일 친했던 영식이 알죠? 1학년만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 간?”
“영식이? 그 엄청나게 똑똑한 애? 걔 하버드 MBA 나와서 지금은 골드먼 뭐시긴가 다닌다면서?”
“응, 그놈이 미국에서 대학 다닐 때부터 주식 투자를 했는데, 엄청 귀재래”
“근데?”
“그놈이 나 군대에 있을 때, 너 그렇게 살다가는 평생 거지꼴 못 면한다고 대신 투자를 해줄 테니까, 돈이 얼마라도 모이는 대로 보내라고 하더라. 그래서, 훈련 수당 나오는 거 모일 때마다 보냈어. 그게 제대할 때까지 2천만 원 정도 되고”
“너 집에다 그렇게 돈을 보내고도 모았어? 군대에서 돈을 그렇게나 주냐?”
그렇게 줄 리가 있나?
있던 수당도 없애서 내로라하는 선배들이 전부 다 해외 PMC(민간군사기업)로 뜨고 난리도 아니더만?
“아빠 군대 있을 때와는 달라요. 세상이 달라졌다고요.”
“그, 그렇구나”
“하여간 그래서, 내가 제대할 때쯤에는 우리 집이 밥은 먹고 살았으니까, 그거 빼지 않고 영식이가 계속 불렸어. 나도 물어보지도 않고 꾹 참고 있었고. 그러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IT 쪽으로 대박이 났나 봐요. 이제는 좀 빼도 될 것 같다고 해서 연락이 온 것이고.”
“어머나! 세상에!”
“그, 그래서 얼마나 벌었는데?”
“아빠”
“응?”
“아무리 아빠라도, 장성한 아들 잔고를 물어보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응? 그, 그렇군. 미안하다.”
어깨가 축 늘어지는 아빠다.
죄송하기는 한데, 나도 뭐라고 대답할 수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다만, 엄마의 쌍심지가 올라갔다.
“이놈의 새끼가! 돈 좀 벌었다고 아빠에게 무슨 버릇이야!”
“아니, 여보 괜찮···.”
“죄송해요. 다만, 나도 대답하기가 좀 애매해서 그래요. 하여간, 우리 아파트 한 채 번듯한 거 사고, 아빠 지인들에게 못 갚은 빚 전부 갚고, 그리고 우리 식구들 풍족하게 살 정도는 될 거야. 일부만 빼고 나머지는 영식이가 계속 불려주기로 했으니까”
“어머나! 진짜?”
올라갔던 엄마의 쌍심지가 다시 내려갔다.
하아! 힘들다, 힘들어.
“어쨌든 간에 100% 정직한 돈이라는 말이지. 나도 그래서 미국에 다녀올 예정이고. 그러니까, 우리 이제는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자? 응?”
“...”
“...”
정말 우리 예전에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말에, 엄마가 우시기 시작했다.
아빠도 눈알이 벌게져서 말을 잇지 못하였고.
그날 저녁.
우리 집은 한우 파티를 하였다.
학원에 돌아온 소미에게는 애플폰을 주었고.
“호호호!”
“하하하!”
“오라방! 최고!”
행복하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인지 모르겠다.
잠시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왔을 때, 아빠가 따라 나왔다.
“나도 한 대만 주라”
“응? 아빠 끊은 지 오래됐잖아?”
“줘 임마! 오늘은 딱 한 대만 피워야겠다.”
“여기요.”
그렇게 담배를 빨면서 말없이 있었다.
“철식아”
“응, 아빠”
“미안하다.”
“...”
“그리고, 고맙고”
“...”
에이, 심란하게.
“아빠”
“응?”
“나도 고마워”
“뭐가?”
“그 지옥 같은 난리 속에서도 아빠는 노력했잖아? 어떻게든 우리 가족을 모으려고 애썼고? 내가 사회 생활해보니까, 아빠가 그때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이 가더라. 그래도 아빠는 포기하지 않았어.”
“내가 아빠니까···.”
“고마워 아빠, 포기하지 않아서”
아빠가 내 어깨 위에 팔을 얹었고, 나도 아빠의 어깨 위로 팔을 얹었다.
그렇게 우리 부자는 담배를 빨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부자가 맞담배질한다고, 쌍놈의 집안 놈들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냐?
우리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그다음 주.
나는 코리안 항공 A380 퍼스트클래스에 앉아 있었다.
아! 존나 좋다!
이래서 부자가 되려고 그 난리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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