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제가 왜 비싼 변호사인지 아십니까?
비행기 안에 거의 내방이 차려진 것 같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오는 고오급 음식들.
뭘 자꾸 어떻게 해드릴까라고 왜 묻는지 모르겠다.
나중에는 그냥 일등석 처음 타보니 알아서 해달라고 하였더니, 이쁘게 생긴 승무원이 이쁘게 웃었다.
그리고, 잠옷을 내어주면서 갈아입으란다.
이건 뭐, 집이구나 집.
아니, 집보다 훨씬 낫잖아?
잠옷을 갈아입고 오니, 내 좌석을 일자로 펴서 침대로 만들고 시트까지 씌워 놓았다.
누워서 잠을 청하였는데, 낯설어서 그런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미국에는 난생처음으로 가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낯선 곳.
하나도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만약에 US 로또 측에서 불순한 생각을 가지고 이상한 짓을 하면 어떻게 하지?
이거저거 다 떼어도 10억 달러나 되는 엄청난 돈이다.
사람인 이상, 탐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나름 대비는 하였다.
미국에 도착하여 24시간 이내에 미리 작성해서 예약해 놓은 메일을 취소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발송되게 해놓았다.
그 메일에는 물론 지금까지의 모든 일과 US 로또에서 보낸 복권 스캔본, 권리 인정서, 그리고 그들과 통화한 모든 음성 파일 등을 첨부하였고, 메일을 받는 즉시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하였다.
받는 사람은 아버지, 친구 정훈이, 내 재산을 불려준 적은 없지만 진짜로 미국에서 잘나가고 있는 영식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재하 부장이다.
어느새 잠이 들어 깨어보니, 9시간이 지났다.
샤워하시라는 승무원의 말에 샤워실로 들어갔다.
세상에!
비행기 안에서 샤워를 하다니!
이거 정말 탈 만하네?
이코노미 탔으면 지금쯤 빈사 상태에 빠졌을 텐데?
11시간 반 정도가 되어 LA 국제공항 상공 같은데, 계속 빙빙 돌았다.
기내 방송으로 혼잡해서 대기 중이라고.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LA 국제공항은 이런 일이 다반사란다.
3, 40분은 기본이라나?
이윽고, 육중한 비행기답지 않게 A380 비행기가 사뿐히 활주로 내려앉았다.
자! 시작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 아메리카! 천조국!
기다려라! 내가 왔다!
“이게 뭐꼬?”
퍼스트클래스 승객 우선으로 제일 먼저 LA 국제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
나는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이, 이거 뭐냐? 제주 공항이냐?”
아니, 제주 공항도 작지만 이거보다는 훨씬 낫다.
한마디로 도떼기시장!
이거보다 더 적절한 수사는 없을 것 같았다.
인산인해에 시끄럽고 더럽고···.
“나의 아메리카가 이럴 리가···.”
초장부터 홀딱 깨버렸다.
잠시 나갔던 정신줄을 다시 잡고, 어찌어찌 입국심사대 줄에 섰는데, 뒤에서 보니 심사가 아니라 무슨 심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입국 심사관들이 인상들은 왜 그리 써대고 있는지.
워낙 불법 입국이 많은 나라인 점을 참작하더라도 좀 지나쳐 보였고, 나도 슬슬 긴장되었다.
이거 대답 잘못하면 세컨더리룸인가 어디로 끌려간다는데,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
그리고, 그 긴장감은 내 앞의 중국인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어버버하다가 끌려가는 순간 절정에 달했다.
“코리아?”
“응, 코리아”
“미국엔 왜 왔어?”
“관광(Tour)!”
사전에 인터넷 검색에서 본대로, 최대한 간결하게 대답하였다.
“호텔이 리츠칼튼이야?”
“응, 여기 바우처”
“좋은 곳에서 자는구나. 미국에 온 것을 환영해!”
“끝이야?”
“응”
“...”
내 우려와는 달리 딱 15초 걸렸다.
호텔과 왕복 비행기 표를 보더니, 그냥 패스다.
비싼 비행기에 비싼 호텔에 묵는다니까, 미국에 돈 쓰러 온 관광객임을 확신한 거다.
역시, 돈은 좋은 것이었다.
출국장 게이트가 열리자, 도떼기시장의 열 배쯤 되는 혼란의 도가니가 보였다.
“정말 여기가 미국이야? 세계 유일 초강대국?”
어처구니가 없구먼.
그때, 내 이름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 사람들이다.
“혹시 이만훈 대표님?”
“오오! 강철식 씨?”
“네, 제가 강철식입니다.”
“하하하! 드디어 보는군요. 세계 최고 행운의 사나이를!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여기는 동업자인 지미 최 입니다.”
“반갑습니다.”
“하하! 반갑습니다.”
인사를 하고 서둘러 그들이 가져온 차로 갔다.
흑인 기사가 딸린 리무진이다.
“어떻게, 비행은 즐거우셨습니까?”
“솔직히 우리 집보다도 낫더군요.”
“하하! 일등석이니 그럴 겁니다.”
“그런데, LA 공항이 왜 저 모양이지요?”
“푸하하! 그 말 하실 줄 알았습니다. 다들 처음 LA 공항에 오면 정신적 공황이 오죠. 너무 뜻밖이어서 말입니다. 로스앤젤레스라는 거대 도시를 끼고 있는 공항인 데다가 아시아와 태평양의 모든 비행기가 오는 곳인데, 너무 좁고 혼잡합니다. 조만간 공사한다고는 하는데,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 미국은 대형 공사 한 번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그렇군요.”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내가 공항에서 살 것도 아니고.
“어떻게 식사는?”
“비행기에서 편히 쉬었는데도 시차 때문인지 좀 피곤하네요, 오늘은 호텔에서 쉬었으면 합니다.”
“하하! 그러시지요.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시지요. 호텔로 바로 가겠습니다.”
“네”
“호텔이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지만, 젊으신 분이라 일부러 다운타운 내의 리츠칼튼으로 하였습니다.”
“아유! 상관없습니다.”
“하하! 호텔은 괜찮을 겁니다. 전망도 좋고 LA 다저스의 주형진 선수도 위의 레지던스에 살고 있거든요?”
“아! 그래요?”
“네, 오래 계시니까 잘하면 한두 번은 마주칠 수 있을 겁니다.”
주형진이 살든 박찬호가 살든 상관없는 일이다.
그리고, 주형진은 팬서비스가 좀 나쁘다고 소문이 많던데?
게다가, 주형진은 작년에 14승을 올리면서 주가가 폭등하다가, 올해는 시작하면서 부상 명단에 올라서 어찌 될지도 모르겠다.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권하는 음료수도 먹지 않고 살짝 긴장하였는데, ‘무사히!’ 리츠칼튼 호텔에 도착하였다.
내가 무사히라고 말한 이유는?
혹시나 총을 겨누며 어디 사막으로 끌고 가서 파묻어 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돈이 어디 웬만큼 어마어마해야지?
그래서, 위탁 수하물로 삼단봉을 넣었다가 짐을 찾자마자 꺼내서 허리춤 벨트에 꽂아 넣은 상태였다.
제발 이것을 쓰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오오!”
“어떻습니까? 방이?”
어떻긴?
겁나게 좋지?
나 6평짜리 원룸에 사는 놈이라니까?
22층 호텔 방으로 들어오자 펼쳐진 LA의 전경은 죽여줬다.
물론 방도 끝내주고.
“좋네요! 전경도 끝내주고!”
“하하! LA가 높은 빌딩이 많지 않아서 전망은 좋을 겁니다. 밤에는 더 좋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더 좋은 방으로 하려고 했는데, 예약이 어려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여기도 스위트는 스위트라면서요?”
“네, 주니어 스위트입니다.”
“이런 곳은 얼마에요? 하루에?”
“1박에 160만 원 정도 하는데, 장기로 예약하면서 100만 원으로 할인해 주었습니다.”
“월 3천만 원?”
“네”
허! 한 달 방값이 하필 딱 내 연봉이냐?
“이거 부담스러운데요?”
“이제는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1조에 2% 이자만 받으셔도 연간 200억을 받는 부자라는 것을 자각하셔야지요?”
“...”
할 말이 없네.
“자! 쉬시지요. 저희가 다 부담하는 것이니, 룸서비스는 아끼지 말고 시키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 10시에 찾아뵙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오실 때는 복권 실물을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다음날 10시가 되기 10분 전쯤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 이 대표님”
- 네, 접니다. 잘 자셨습니까?
“네, 정말 편히 쉬었습니다.”
- 지금 로비인데, 올라가 될까요?
“그럼요.”
똑똑!
문을 열어주자, 지미와 이만훈 대표, 그리고 한국계로 보이는 중년인 두 명이 들어왔다.
얼핏 문밖을 보니 덩치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보안업체 직원들로 보였다.
“여기는 제프리 장 캘리포니아주 변호사입니다. 1.5세인데, LA에서는 손꼽는 유능한 변호사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CPA(공인회계사)인 에릭 김이고요.”
자리를 잡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미가 철제 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은행 안전금고에 보관되었던 복권 실물입니다. 확인하시지요.”
내가 이게 파워볼 복권 실물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제 저들이 간 다음에 룸서비스를 불러서 100달러를 주고 파워볼 한 장을 사 오게 시켰다.
2달러가 파워볼 복권 가격이니, 98달러가 팁이려나?
내가 지갑에서 복권을 꺼내어 양쪽을 대조하였다.
손으로도 만져서 재질을 확인하였고.
“호오? 복권은 언제?”
“어제 룸서비스를 시켰습니다. 미안합니다만, 이런 것은 철저하게 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하하! 맞습니다. 직장을 어디 다니셨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배우셨군요?”
“...”
응, 개 쌍욕을 먹어가면서 홍 사장에게 배운 거니까.
엑셀 자료 프린트해서 올리면, 중요한 것은 직접 계산기를 두들겨서 맞춰보더라.
“네, 맞습니다. 회차, 번호, 재질 등 정확히 파워볼 1등 복권이네요.”
“그럼 다시 은행에 넣고 보관하려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건 좋은데, 다음에 꺼낼 때는 저와 같이 가야 꺼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이따가 은행에 갈 때 같이 가시지요.”
“감사합니다.”
내 통장에 돈이 꽂힐 때까지는 절대로 방심하지 말자.
확인, 또 확인이다.
“자, 다음은 제프리가 설명할 겁니다.”
“미스터 강이 요청하신 신원을 비밀로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로 제가 주 복권국 치프와 직접 사전에 상담하였습니다.”
“아, 그래요? 결론은?”
“처음에는 난색을 보이었으나, 제가 절충안을 내놓았습니다.”
“어떻게요?”
“복권 실물을 제출한 때에는 미스터 강도 함께 가서 복권국의 인증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에 공개할 때는 US 로또가 5% 지분을 가지고서 대표로 수령하는 것이지요. US 로또 대표자 이만훈 외 1인 이런 식으로요. 아, 그리고 US 로또는 사이트 이름이고 회사 이름은 클로버 컴퍼니입니다.”
“그렇게 하면 좋기는 한데, 나중이라도 복권국 쪽에서 비밀이 새는 일이 없을까요?”
미국 기자들도 만만치 않게 극성스러운 것으로 아는데?
“절대로! 네버! 없습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합니까? 기자들이 돈 몇백 달러나 몇천 달러 찔러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복권국 치프가 비밀 보장각서를 써주기로 하였습니다. 누설되면 제가 껍데기까지 홀랑 벗겨버릴 겁니다.”
“네? 복권국 치프가 그걸 왜 써줍니까? 캘리포니아는 원칙이 공개가 원칙이라면서요?”
“제가 왜 비싼 변호사인지 아십니까?”
“모르겠는데요?”
“이런 일이 생길 때는 적절한 곳에 기름칠을 잘하기 때문이지요.”
“기름칠? 혹시 불법적인?”
“노우! 노우! 저는 법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유능한 변호사일 뿐입니다.”
“그럼요?”
“우연히! 아주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복권국 치프의 딸이 대단히 비싼 사립학교를 다니더라고요?”
“응?”
“그런데, 정말 우연히! 내년부터 클로버 컴퍼니가 그동안 지역사회로부터 받은 성원을 보답하고자, 장학금을 지원할 예정이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정말 우연히! 복권국 치프의 딸이 다니는 사립학교가 마침 장학금 지원대상이지 뭡니까?”
“아!”
“이 얼마나 좋습니까? 100% 합법적으로 이윤을 지역사회에 환원도 하고, 비밀도 보장받고?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도 줍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크하하하!”
어이가 없구나.
“혹시 진짜 1.5세 맞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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