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람이 사는 세상에 예외가 없는 곳은 없지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기름칠’이 통하는 것 같으니까.
하기야, 비싼 변호사를 선임하면 사람을 죽여도 무죄로 풀려나는 것이 미국이다.
옛날의 OJ 심슨이던가?
누가 봐도 아내를 살해한 살인자였지만, 일명 드림팀으로 불리던 형사 전문 변호사들로 팀을 꾸려서 무죄로 풀려났었지.
웃기는 것은 민사는 반대로 판결하여 심슨이 패소하였지만, 그렇다고 그를 다시 재판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영미법 체계니까.
“하여간, 제 신원이 노출 안 된다는 말씀이네요?”
“맞습니다. 이번 파워볼 당첨자는 영원히 클로버 컴퍼니 외 1인이 될 겁니다.”
“다행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 제 밥값을 한 겁니다. 저는 비싸거든요? 하하하!”
대체 얼마나 비싼지 나중에 이 대표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요. 확실히 제가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하여 외국에서 복권을 구매한 것은 문제가 안 되는 겁니까?”
“그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복권국에도 확인하였고, 이미 사례도 있습니다.”
“사례가 있었어요?”
금시초문인데?
“한국은 아니고, 2년 전인 2013년에 이라크인이 이라크 현지에서 미국인이 운영하는 해외 로또 구매대행 사이트를 이용하여 1등에 당첨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 그래요? 어떻게 이상 없이 당첨금을 찾았나요?”
“물론! 캘리포니아주는 아니고,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기반을 둔 구매대행 회사였는데, 전혀 문제없이 1등 당첨금을 수령하였습니다. 그러니, 그 점에 대하여는 더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마지막까지 남은 최후의 의심도 사라졌다.
더는 구매대행으로 인하여 당첨금을 못 받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럼 남은 것은 세금 문제뿐인데, 그거야 얼마를 더 받고 덜 받고의 문제이니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그 일이 왜 알려지지 않았죠?”
“오리건주는 캘리포니아주와는 다르게 복권 당첨금의 익명 수령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언론에는 자세한 사항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당첨자가 당연히 익명을 요구하여서요. 게다가, 1등 당첨금이 이번과 같이 천문학적인 수준이 아니어서, 그리 이슈도 되지 못하였고요.”
“호오? 익명으로 수령이 가능한 주라? 그건 부럽군요?”
“대신에 오리건주는 복권에 붙는 주세가 만만치 않습니다만?”
“그건 전혀 안 부럽네요.”
“...”
둘 다 갖춘 곳은 없냐?
“이제는 제 차례이군요. 이미 아시다시피, 미스터 강은 국적이 대한민국인 외국인으로서 미국에는 30%의 연방 세금만 내시면 미국에서의 모든 세금 문제에서 해방됩니다. 거기다가 캘리포니아주는 복권에 주세를 때리지 않으니 걱정할 것이 없구요.”
미국 공인회계사인 에릭 김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미스터 강의 한국에서의 세금이지요. 한국과 미국의 이중과세 방지 협정에 따라서 한국에서 내야 하는 소득세에서 미국에서 납부한 세금을 제외한 차액을 내셔야 하니까요.”
“그렇지요.”
“그럼, 미스터 강이 이번 파워볼 1등 당첨금으로 한국에서 대체 얼마의 소득세를 내야 하는가? 인데, 관건은 딱 하나입니다.”
“한국 로또 복권처럼 33% 기타소득세를 적용받는가, 아니면 종합소득 합산 대상이 되느냐이지요?”
“검색 좀 하신 모양입니다?”
“걸린 돈이 한두 푼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렇지요. 하여간 제임스 리가 의뢰하여 면밀하게 검토하였습니다.”
“제임스 리는 또 누구예요?”
“아! US 로또 이만훈 대표 말입니다.”
제임스 리가 이만훈 대표의 영어 이름인가 보다.
“그래서요?”
“한국의 로또처럼 기타소득세 적용을 받으려면, 한국의 복권 및 복권 기금법 제2조에 의한 복권 당첨금이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일단은 미국의 복권에 의한 1등 당첨금은 대한민국 소득세법 제3조에 따라 국내 다른 소득과 합산하여 종합소득 신고를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5억 이상의 최고 구간 적용을 받아서 40% 소득세를 부과받습니다.”
“...”
알던 이야기 아닌가?
그럼 뭐하러 비싸 보이는 당신을 고용했지?
“그나마 다행이란 것은 해외 복권에 의한 소득은 주민세 같은 지방세 대상은 아닙니다.”
“하아, 그럼 역시 내년 5월에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고 1,000억이 넘는 돈을 뜯겨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돈도 돈이지만, 한국에 개인 소득세 1,000억을 넘게 내면 어떻게든지 신원이 알려질 것 같아서 그게 짜증이 났다.
가끔 언론에 개인 소득세 납부 순위 같은 것이 뜨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평온한 리치 라이프는 물 건너간다.
궁궐 같은 대저택을 짓고 경호원을 잔뜩 고용하여 지키게 하면 뭐하냐?
사돈의 팔촌까지 친인척은 물론, 나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던 사람들의 상당수는 나를 돈으로만 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해서 자식들을 낳으면 평생 아비가 로또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당첨된 더럽게 운이 좋은 인간으로 인식될 것이고.
정말 그런 일은 피하고 싶었다.
“정말 신원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시는군요?”
“아시잖아요? 한국이 얼마나 좁은 사회인지? 그리고, 앞에서는 굽신거려도 뒤에서는 얼마나 손가락질할지도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추가로 한국에 내야 하는 세금은 차후 문제에요. 세금을 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원 노출이 문제지요.”
“일단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시지요.”
“네, 말씀하세요.”
끝까지 들어보나 마나 게임 끝인 것 같았지만, 계속 말해 보라고 하였다.
“지금 말씀드린 것은 원론적인 이야기고, 과연 미국 복권 당첨금을 종합소득세로 합산할 것인가는 100% 명확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선례가 있잖습니까? 삼지창인가 사지 창인가 하는 탤런트 장모의?”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서 조사를 해봤는데, 그것도 명확하지가 않았습니다. 워낙 오래전의 일이 카더라처럼 들려오는 이야기더군요. 어떤 말로는 기타소득세 적용을 받았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래요?”
“네,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국세청에 있는 제 후배에게 연락하여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물어봤습니다.”
“음? 회계사님 후배가 국세청에 있어요?”
교포가 국세청에 웬 후배?
“하하! 전 한국 CPA 자격도 있습니다. 신촌 양서대 출신이고 한국 CPA를 재학 중에 패스하고 회계 장교로 복무하면서 USCPA에 합격하여 기회가 되어 이민 온 것이죠.”
“아! 그래서, 한국의 세법에도 밝았던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하여간 후배의 답변은?”
“뭐라 그래요?”
“종합소득세로 합산하여 적용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라고 하였습니다.”
맞으면 맞는 것이지, 맞는 것 같다는 또 뭐여?
“어째 말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네, 맞습니다. 명확하지 않은 것이 핵심입니다.”
“어째서요?”
“규정도 선례도 애매하다 보니,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확실하게 그런 사례가 나와서, 공식적으로 논의를 거쳐야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좀 간단하게 말씀해 주실래요? 제가 세무로 밥 먹고 살 일은 없습니다만?”
“결론적으로 크지는 않지만,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까지 불사하면은 기타소득세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헐···.”
뭐가 이래?
그럼 더 소란스러워지기만 하잖아?
괜히 머릿속만 복잡해진 것 같았다.
그냥 그쪽은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에휴! 그럼 되었어요. 시끄러워지는 것은 사양하렵니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있습니다.”
“있어요? 아이, 그럼 진작 말씀하시지?”
“고객에게 모든 가능성을 말씀드리는 것이 제 의무거든요?”
잘났다.
“그런 다른 방법은?”
“영주권을 따시는 겁니다. 영주권을 따시면 미국 시민에 준하여 똑같이 세금을 내고, 한국에 세금을 납부하는 의무는 면제됩니다.”
“아니, 영주권을 어느 세월에 따요?”
“그건 장 변호사가 말씀드릴 겁니다.”
“응?”
뭐야? 또 기름칠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으하하! 사람이 사는 곳에 예외가 없는 곳은 없지요?”
역시 시작부터가 범상치 않구나.
“또 기름칠?”
“어허! 제가 무슨 칠장이도 아니고, 무슨 말씀을?”
“그럼 뭡니까?”
“일단, 영주권을 따는 방향으로 정하면, 미스터 강은 EB-5 비자라는 투자이민제도를 이용할 겁니다.”
“EB-5?”
“네, 공식적으로는 취업 기반 투자 이민(employment-based fifth preference category)이라 하는데, 1990년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외국 자본 투자를 통하여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호오?”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조건으로 50만 달러나 100만 달러를 투자하여 미국 시민을 고용하는 것이지요. 다만, 50만 달러는 정말 경제가 폭삭 망한 지역을 선정하기에, 사실상 100만 달러라고 보시면 됩니다. 투자 이후에 2년간 10명 이상을 고용해야 하고, 조건이 충족되면 10년짜리 비자를 내줍니다. 비자와 함께 영주권(Green Card)이 발급되기 때문에 돈질로 영주권을 취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요.”
“아니, 100만 달러가 아니라, 1,000만 달러, 1억 달러도 투자할 수 있습니다만, 일의 선후가 그게 아니잖아요? 당첨금을 받아야 투자를 하든 뭐든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당첨금을 수령하면 영주권이 없는 상태에서 수령하는 것이고?”
“으하하! 그럴 때 저같이 비싸고 유능한 변호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뭐야? 결론은 역시 기름칠 아닌가?
아니긴 뭐가 아니야?
“우연히! 아주 우연히! 마침 캘리포니아 부주지사 개빈 뉴섬이 제가 후원하는 친구가 아니겠습니까? 주지사 제리 브라운은 선거 모금 파티에서 자주 보는 사이고?”
“...”
우연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게다가, 비싸다고 하더니 연줄도 엄청난 모양이었고.
“이미 며칠 전에 운을 떼어 놓았습니다. 캘리포니아에 5,000만 달러를 투자할 외국인이 있는데, 초특급으로 영주권 발급이 가능하냐고 말이지요?”
“초특급이라면 어느 정도의 기간을 말하는 거지요?”
“5일! 딱 5일을 말하는 겁니다.”
“그, 그게 가능해요?”
“미국에서 주지사를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주에서는 대통령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예요. 그것도 미국의 50개 주에서도 가장 크고 인구와 경제력이 최고인 캘리포니아주라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막말로, 이민국의 상위기관인 국토안보부에 전화 한 통이면 그냥 끝입니다. 사실 5일도 넉넉히 잡은 것이고요.”
“아!”
미국에서 비싸고 유능한 변호사의 존재.
가히 전지전능하여 보였다.
“게다가, 지금 캘리포니아 경제가 무척이나 안 좋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니 뭐니 하는 사태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전임 주지사 터미네이터가 무분별한 감세 정책을 시행하여, 글자 그대로 캘리포니아 경제를 끝장내버렸거든요.”
“터미네이터라니요?”
“전임 주지사 아놀드를 말하는 겁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아하!”
“그래서, 사실 5,000만 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개빈이나 주지사 제리에게는 상당한 실적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네, 이해했습니다.”
“그럼 정리하겠습니다. 일단 미스터 강이 오케이 하면은 저는 바로 작업에 들어갑니다. 개빈과 간단하게 투자협약서에 사인하면, 늦어도 5일 이내에 미스터 강의 영주권이 나올 것이구요. 오케이?”
“네, 오케이!”
“영주권이 나오는 즉시, US 로또 회사인 클로버 컴퍼니 제임스 리와 미스터 강이 함께 주 복권국이 있는 새크라멘토로 가서 복권국에 공동으로 1등 당첨자임을 알립니다. 물론, 미스터 강은 간단한 인증을 받으셔야 하고요.”
“네”
“그러면 끝입니다. 언론 공개 행사는 제임스가 알아서 얼굴을 팔 것이고, 당첨금이 나올 때까지 5주에서 7주 정도를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물어?
두말하면 잔소리지?
그런데, 에릭 김 공인회계사가 끼어들었다.
“결정하시기 전에, 한가지는 더 아셔야 합니다.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로서 1등 당첨금을 받아도 절세 효과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만?”
“네?”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는 먼저 25%를 원천징수하고, 다음 해인 미국 소득세 신고 기한 4월 15일까지 신고를 해야 하는데, 추가로 12% 더 내야 합니다. 합하면 37%로 한국의 40%와 그리 많은 차이로 볼 수는 없습니다.”
“허! 미국도 많이 뜯어가네요?”
“미국 도가 아니라, 세금에 관하여는 무자비한 것이 미국입니다.”
잠시 생각하였다.
별 차이는 아니라고 하지만, 무려 3% 차이다.
금액으로는 일시금 수령액인 15억 2, 400만 달러의 3%이니 4,500만 달러가 넘는 돈이고 최종 세후로 봐도 2,880만 달러 300억이다.
무엇보다 한국에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여 손해 보는 것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국적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영주권이니까.
우리나라에서 방귀 좀 뀐다는 놈들은 필수적으로 소지한다는 것이 미국 영주권이 아닌가?
도덕적으로 나라를 배신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대한민국하고는 일도 상관없는 돈이다.
“좋습니다! 영주권으로 진행하시지요!”
“오우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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