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우리는 브라더였으니까.
이제는 영주권이 나올 때까지 일주일을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US로또 대표 이만훈, 제임스가 은행에 같이 들려서 복권을 다시 안전금고에 넣은 후 술이나 한잔하자고 하였는데 복권국에 복권을 제시한 이후로 미루었다.
이 정도면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었지만, 1,000분의 1, 10,000분의 1의 위험 요소도 가지고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권국에 95%의 권리자로 복권 실물을 내밀기 전까지는 술은 외부에서 입에도 대지 않을 생각이다.
호텔에서 맥주나 홀짝여야지.
“참, 제가 한국에서부터 부탁한 것은 어떻게 되었지요?”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개인 경호원 말입니다.”
미국에서 두 달을 넘게 있을 것 같은데, 호텔에만 처박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친구처럼 지낼 개인 경호원을 미리 부탁했었다.
가이드도 겸하고 영어도 늘릴 생각이어서, 가능하면 LA 지리에 능한 사람으로.
혼자서도 장정 몇 정도 때려눕히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여긴 민간인 총기 보유 수량이 2억 7,000만 정이라는 미국이다.
혹시라도 1조라는 돈을 써보기도 전에 뒈지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아! 내 정신 좀 봐. 제가 요즘 정신이 없습니다, 하하하! 내일 저와 같이 오전에 갈 겁니다.”
“어떻게, 괜찮은 사람인가요?”
“그쪽 계통은 제가 잘 몰라서, 그냥 경호 회사에서 소수 정예로 소문난 보안회사를 소개받았습니다. LA 지리를 잘 아는 제일 비싼 등급의 경호원을 요구하였고요. 보시고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바로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미안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우리 능력이 닿는 내에서는 무엇이든 해드리겠습니다.”
“아,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저 제프리 장 변호사 말이에요.”
“네? 제프리가 왜요?”
왜긴 왜야?
하도 궁금해서 그렇지.
“대단히 유능해 보이던데, 어떤 분이세요?”
“하하! 잘 보신 겁니다. 대단히 유능하고 비싸기로 소문난 양반입니다. 한인 교포 중에서는 거의 최고지요.”
“그래요?”
“하버드 로스쿨을 나와서 뉴욕주 변호사와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 모두를 획득하였는데, 최근 10여 년간 LA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변호사 중에서 탑텐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어요.”
“호오?”
“민사는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해서 독보적인데, 형사는 절대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왜요?”
“원래 미국은 형사면 형사, 민사면 민사, 그리고 그중에서도 자신의 전문 분야로 분화되지만, 제프리가 형사를 안 맡는 이유는 그래서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천재라 소문난 양반이라 못할 리도 없구요. 게다가, 미국은 형사가 돈이 되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왜요?”
“자기가 형사 사건에 손을 대면, 진짜 나쁜 놈들이 전부 풀려난다나요?”
“우와! 자신감 하나 쩌는데요?”
“하하하! 그게 자신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그 말에 공감합니다.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니까요.”
그럼, 그렇게 대단한 사람에게 대체 얼마나 주고 선임한 거야?
“얼마나 주고 선임하셨어요?”
“100만 달러입니다.”
“100만? 이런 일에?”
“이런 일은 원래 맡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후배 할인도 받은 것이고요.”
“후배 할인이요? 선후배 관계에요?”
“네, 같은 초등학교 5년 선배입니다. 하하하! 어쨌든 돈값을 충분히 하지 않았습니까?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다이렉트로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어떻게 보면 100만 달러가 그의 몸값으로 그리 비싸 보이지는 않았다.
그만큼 적재적소에 ‘기름칠’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으니까.
호텔로 일찍 돌아가서 할 일도 없기에, 호텔 피트니스 클럽에 가서 쇠질을 하고 러닝머신 위를 숨이 차도록 달렸다.
“헉! 헉!”
지난 몇 년간 배때기에 기름이 너무 꼈다.
한때는 정자세로 턱걸이를 40개 넘게 하고, 10Km 정도는 가뿐히 뛰던 몸이었는데 이 모양이라니.
몸을 만들자.
돈 많은 돼지 새끼 소릴 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다음 날 오전 10시 10분 전.
조식을 먹고 수영 한판을 때리고 와서 샤워를 마치는 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띠리리! 띠리리리!
“여보세요?”
- 저, 제임스입니다. 로비인데 올라갈까요?
“아유! 그냥 바로 올라오시지?”
- 하하! 혹시나 누구랑 같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누구랑?
혹시 콜걸이라도 불렀을까 봐서 이러는 건가?
똑! 똑!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주었다.
“편한 밤 되었습니까? 미스터 강?”
“뭐 똑같지요.”
“하하! 아! 들어오세요, 미스터 패튼!”
패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성씨인데?
제임스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건장한 백인 남성.
나보다 살짝 작지만, 걸음걸이에서부터 군붕이 냄새가 진하게 났다.
이놈 제대로 훈련받은 놈인데?
“인사하시지요, 이쪽은 이지스 컴퍼니에서 나온 조지 패튼, 그리고 여기는···.”
“아, 알렉스?”
얼마 만에 듣는 내 영어 이름이지?
그런데, 저놈!
세숫대야가 매우 익숙하다.
“엉? 설마 조, 조지?”
너무 황당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있던 부대는 동맹국, 특히 미군과 합동 훈련을 굉장히 자주 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미 해군의 네이비씰(United States Navy SEALs)과는 거의 정기적으로 교류한다.
그래서, 내 눈앞에 이 백인 놈, 조지 패튼 하사와는 과거에 지나치게(?) 자주 얽혀서 같이 굴렀었다.
그런데, 이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군대에 있을 놈이?
“조지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알렉스, 이 자식아! 그건 내가 할 소리잖아? 한국놈이 여긴 왜 있는 거야?”
“그, 그런가?”
아, 저 새끼 고향이 LA라고 했었지?
“두 분이 아시는 겁니까?”
제임스가 뜻밖의 사태에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조지나 나나 대답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너무 반가웠으니까.
“하여간, 반갑다! 브라더! 하하하!”
“별일을 다 보는구나! 브라더! 하하하!”
우리는 반갑게 얼싸안았다.
우리는 브라더였으니까.
“제임스, 군대 친구예요.”
“군대요? 아니, 미스터 강은 한국 군대였을 거고, 미스터 패튼은 네이비씰 출신이라고 하던데요?”
“제가 우당탕이라고 하는 곳에서 있었거든요.”
“우당탕?”
“해군 특수전전단 UDT/SEAL이요.”
“아하! 그래서?”
“네, 맞습니다.”
제임스를 쫓듯이 보내버리고, 위스키를 꺼내어 조지와 마주 앉았다.
“일단 마시자, 건배!”
“건배!”
탁! 탁!
“하하하!”
“하하하!”
위스키 몇 잔을 연거푸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나서야 조지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조지? 너 3년 전인가? 나와 메일로 연락할 때까지만 해도 군대에 있었잖아?”
“그랬지”
“그런데?”
“1년 반 전에 나왔다.”
“왜? 넌 군대에서 연금 따먹을 때까지 있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알렉스”
“왜?”
“후안이 죽었다.”
“후, 후안이?”
후안 카를로스.
나와 조지와 함께 셋이 제일 친했던 놈인데···.
그놈이 죽다니.
특히, 조지와는 한동네에서 자라서 같이 입대한 친형제와도 같은 사이였다.
조지가 군대를 나온 이유를 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이 위스키 잔을 넘치도록 채웠다.
“후안을 위하여!”
“후안을 위하여!”
탁! 탁!
“그래, 그런데 네가 왜 경호 일을 하는 거지? 경호를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네 커리어가 이런 일을 할 사이즈는 아니잖아?”
“우리 회사는 경호 회사가 아니야”
“그럼?”
“정확하게는 PMC(민간군사기업)이지”
“그런데 여긴 왜 왔어?”
“그게···.”
조지가 잠시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회사 형편이 좀 어려워서···.”
“...”
어이가 없었다.
조지의 말은 이랬다.
후안이 죽고 전역한 후, 6개월 정도는 그냥 놀았단다.
그러고 나서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것이 총 쏘고 사람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소개로 간 것이 지금의 이지스 컴퍼니.
그런데, 평판을 따지면서 가다 보니 끼리끼리 모였다고 한다.
사장이 직원들이 위험하거나 좀 더러운 일 같으면 아예 보내질 않았다나?
그러니, 최대 고객인 미군의 눈 밖에 나는 것은 당연하였다.
결국, 지원 요원까지 100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PMC에서 일거리를 찾는 것은 30~40명이고, 나머지는 팔자에 없는 경호 일을 뛴다고.
“사장은 어디 출신인데? 네이비씰?”
“아니, 델타 출신이야.”
“델타?”
“응,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SOCOM(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에서 미래의 사령관으로 불렸다고 하더라고. 웨스트포인트 출신이고”
“그런데?”
“작전 하나가 틀어져서 부하들 몇이 죽었는데, 거기에 CIA가 책임이 있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CIA 담당관 아구창을 날렸는데, 그거 때문에 옷을 벗었대”“멋진 사람인데?”
“그렇지? 흐흐흐! 그래서, 직원들이 모두 사장을 좋아하지”
“그럼 출신들이 다양하겠네?”
“델타가 임원진에 많고, 직원들은 그린베레와 데브그루, 그리고 우리 네이비씰이 많지. 간혹 75레인저나 해병대 레이더 출신들도 있고”
“아니, 그런 인력을 가지고 장사가 안된다는 것이 말이 되냐?”
“사장이 일을 가리니까. 야! 솔직히 말해서 군대에서 왜 우릴 고용하겠냐? 더럽고 까다롭고 힘든 일에 쓸려고 PMC를 쓰는 거잖아? 위험해도 현역이 죽는 것에 비하면 파장도 적고?”“그렇지?”
“근데 우리 사장은 안 그래. 그래서, 점점 일이 줄었고, 남는 인력을 놀릴 수는 없으니까 부자들 경호 일까지 맡게 된 거야”
“경호 일은 좀 낫냐?”
“야! 말도 마라! 나도 얼마 전에 할리우드 스타 경호를 나갔는데, 죽이려다가 참았어. 약 처먹고 어린 여자애를···. 그만하자”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야! 알렉스! 나야 그렇고, 너는 어떻게 된 일이야? 네가 어떻게 비싼 우리 경호 대상이 된 거지?”
“얼마나 비싼데?”
“내가 알기로는 한 달에 3만 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아는데?”
비싸긴 비쌌다.
제임스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소리기는 하지만.
“이야기 들은 것은 전혀 없어?”
“없어. 코리안 경호라고 해서, 어디 한국 재벌 2세인지 알았지. 그래도 내가 너한테 한국말 좀 배웠잖아?”
“‘빨리빨리’, ‘시발’, ‘좆도’ 이런 거?”
“응”
“푸하하하!”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게 무슨 우연인가 싶었다.
하필이면 내 전우나 다름없는 조지가 나를 경호하러 오다니?
이것도 염주의 뜻인가?
“시끄럽고, 너 당분간 나랑 있자”
“나야 그럼 좋은데, 대체 무슨 일이야?”
“차차 알려줄 테니까, 회사에는 아무 말 안 하기다?”
“원래 경호에서 있었던 일은 회사에 말 못 해”
“됐어, 그럼. 너도 배에 기름이 낀 거 같은데, 운동이나 하자고”
“지랄! 너만큼이나 하겠냐? 그 날렵하던 알렉스는 대체 어디 간 거야?”
“이 자식아! 너도 한국에서 영업 몇 년만 뛰어봐! 너는 더 심했을걸?”
조지와 함께 몸을 다시 만드는 것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4일 정도 지나서 내 영주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주권이 나온 다음 날, 제임스와 제프리, 그리고 에릭과 함께 캘리포니아 주도 새크라멘토로 갔다.
복권국으로 가니, 이야기되었는지 담당자와 복권국 치프만 나와서 복권과 수령자들의 인증 과정을 진행하였다.
나는 내가 US 로또에서 결제한 신용카드 결제 영수증, 여권 등을 내밀어 내가 파워볼을 산 것을 입증하였고, 그밖에 US 로또와의 지분 계약서도 제출하였다.
이제 한 달 반 정도 만 기다리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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