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다녀 왔습니다!
주 복권국이 있는 새크라멘토로 다시 가는 길이다.
제임스, 지미, 제프리, 에릭, 그리고 이번에는 한 명이 더 늘었다.
바로 내 친구 조지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조지에게는 파워볼 1등에 당첨된 사실을 털어놓았다.
대한민국 부사관 출신에, 몇 년 전에 메일로 서로 안부를 물을 때까지만 하여도 박봉에 스트레스받아서 죽을 것 같다고 하였던 내가, 이제는 LA 리츠칼튼 호텔 스위트룸에 장기로 숙박하면서 한 달에 3만 달러짜리 경호를 받는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미국에 있을 때는 조지와 함께 있을 생각인데 계속 비밀로 덮고 가기에는 내가 너무 불편하였다.
물론, 조지가 미국인이라 심리적인 격리감도 있었고 말이다.
내가 파워볼 1등에 당첨된 주인공이라고 하니, 조지는 방방 뛰고 난리를 치면서 자기 일같이 기뻐해 주었다.
뭐 조금만 자기를 주면 안 되겠냐는 등의 개소리도 하지 않았고.
물론 비밀을 지키라고 신신당부하였고, 알았다고 하였다.
“미스터 강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스미스”
대머리에 배가 어마어마하게 나온 복권국 치프가 나에게 축하한다고 하면서 봉투를 내밀었다.
“정산서는 같이 동봉되어 있으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봉투를 뜯어 열어보니, 수표 한 장과 정산서가 들어 있었다.
수표의 금액을 확인해 보았다.
11억 2,492만 달러!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어 오늘, 2015년 6월 10일 현재 매매 기준 환율을 알아보니 1,110.45다.
1,110.45를 11억 2,492만 달러에 곱하면?
무려 1조 2,491억!!
오! 하느님! 부처님!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이 종이 쪼가리 한 장이 1조가 넘는다니?
한동안 말을 못 하였다.
그리고,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내가 슈퍼리치가 되었다는 것을.
“하하! 감동을 즐기시는데 미안합니다만, 잠시 내역을 설명해 드려야 해서요.”
감동을 깨고 뚱땡이 복권국 치프가 말을 걸었다.
조금만 더 즐기게 기다려 주지 않고.
“아, 아닙니다. 설명하시지요.”
“먼저, 미스터 강의 지분은 95%로 1등 당첨금 25억 4,650만 달러로 계산하면 24억 1,918만 달러입니다.”
“네, 계속하시지요.”
“여기서 30년 분할지급이 아닌 일시불 지급을 신청하셨기에, 현재 일시불 지급률인 62%를 적용하여 14억 9,989만 달러가 우리 복권국이 지급하는 당첨금이 됩니다.”
“62%요? 60% 정도로 알았는데?”
“아, 편의상 보통 60%로 잡고 계산하는데, 이게 고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금리에 따라 변동이 되지요. 뭐, 싫으시다면 2%를 도로 뗄 수도 있습니다만?”
“아닙니다! 아니에요! 큰일 날 말씀을?”
당연히 농담이겠지만, 큰일 날 농담을 하고 있네?
“하하하! 아직 하나가 더 남았습니다. 우리가 떼는 것은 아니지만, 연방 세금을 원천징수합니다. 그래서, 25%를 원천징수하였습니다. 아!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내년 4월 15까지 소득세 신고를 하고 12%를 추가로 내셔야 하는 것을 아시지요?”
“네, 이야기 들었습니다.”
“자! 그래서 세금 25%를 원천징수하여 최종 지급액이 되었습니다. 무려 11억 2,492만 달러!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에릭이 정산 내역서를 들고 잠시 꼼꼼히 살펴보더니 내게 대답하였다.
“알렉스, 정확합니다.”
“확인하였습니다. 정확합니다.”
“그럼, 여기에 사인하여 주시겠습니까?”
복권국 치프 스미스가 종이 한 장을 내밀자, 제프리가 가로채서 꼼꼼하게 체크하였다.
“오케이! 이상 없으니 사인해라”
“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면서 사인하였다.
“하하하! 이제 모든 지급 절차가 끝났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하하하하!!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일주일이요? 아니, 뭐 이런 거지 같은 시스템이 다 있어요?”
“아니, 그게 미스터 강, 우리 미국은 원래 이렇습니다.”
여기는 다시 LA로 돌아와서 들린 씨티은행 지점장실.
수표를 다시 은행에 제시해야 돈이 입금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래서, 사전에 어디 은행으로 할 것이냐 물어서, 내가 선택한 은행은 한국에서도 곳곳에 지점이 있는 씨티은행이다.
다른 미국 은행은 내가 알지도 못하고.
제임스 일행은 자기들 거래 은행이 있다 하여 헤어져서 따로 온 곳이다.
물론, 제프리와 에릭이 미리 손을 써서 은행 앞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직원이 곧장 지점장실로 안내하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내 통장에 돈이 입금되려면 수표를 제시한 후에 5일에서 7일 정도가 걸린단다.
아니 이게 말이나 되냐고?
당연히 내가 펄쩍 뛰면서 발작을 해대자, 지점장은 난처한지 식은땀만 줄줄 흘리면서 미국은 원래 그렇다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제프리!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한국처럼 다른 은행 발행수표 하루면 몰라도, 일주일이 뭐에요? 일주일이?”
“너 몰랐구나? 미국은 5,000달러만 넘어도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어디까지나 원칙이지만?”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아! 미안! 다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니 너에게 미처 말을 못 한 거 같아. 잠시만 기다려봐. 내가 해결할게”
“응?”
설마 은행에다가도 기름칠을?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지점장님!”
제프리가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정색하며 지점장을 불렀다.
“네, 미스터 장. 말씀하세요.”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무려 11억 달러가 넘는 돈입니다. 일반적인 경우와 동일하게 처리하시려고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만?”
“아니, 미스터 장.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절차가 있다는 것을요?”
“아니 잘 모릅니다만?”
“네?”
제프리의 눈이 좀 더 가늘어지면서 내뱉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니···.”
“오늘이 6월 10일 수요일이네요. 내일은 내가 생각해도 확실히 무리고, 6월 12일 정오 12시까지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아니 미스터···.”
“안되면 지금 말씀하세요. 다른 은행으로 가면서 직접 본사 수퍼바이저에게 내 고객들의 계좌를 모두 빼버리겠다고 할 테니까”
“아닙니다! 됩니다! 되고 말고요!”
이야! 미국이라는 나라, 내 생각보다 더 역동적이네?
그리고, 제프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거물 같았다.
“진작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서로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송구합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가겠습니다. 금요일 12시까지 리츠칼튼으로 직접 오셔서 미스터 강에게 설명해 드리세요. 오케이?”
“네, 알겠습니다.”
제프리는 다시 나를 향하여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금요일이면 되지?”
“그 정도면 훌륭하지요?”
“오케이! 그럼 가자!”
“얍!”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
“아니 미국은 대체 뭐가 이렇게 느리고 복잡해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수표로 당첨금을 주질 않나? 수표 제시 후 일주일이 넘어야 통장에 입금이 되질 않나?”
“알렉스”
“네, 제프리”
“말은 바로 하자꾸나. 미국이 느린 것이 아니라, 한국이 유독 빠른 거야”
“그런 겁니까?”
“응. 하지만, 저 지점장 놈도 문제가 있어.”
“어째서요? 저 사람은 원칙대로 하는 거라면서?”
“원칙은 글자 그대로 원칙이야. 원칙이 있으면 예외도 있다는 말이고.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비윤리적인 것을 요구한 것도 아니야. VVIP에 대한 정당한 대접을 요구한 거라고.”
말이 그렇게 되나?
“돈이 무려 11억 달러가 넘는 돈이다. 1억 달러만 되어도 원칙 따위는 씹어버릴 수 있는데, 무려 11억 달러! 그런데, 지점장 놈은 계속 원칙 타령을 하였지. 저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놈이야.”
“예? 어쩌시려고요?”
“어쩌기는? 수퍼바이저에게 말해서 자르든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든 해야지”
“에이, 뭘 이런 걸 가지고? 저는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은데?”
“네?”
“사실 내가 더 불쾌했어. 감히 이 제프리 장의 얼굴에 먹칠한 셈이니까. 처음부터 그랬어. 직접 나오지 않고 직원 나부랭이를 내려보내?”
“...”
“저 지점장 놈, 두 달 전에 새로 온 놈이야. 전 지점장 같았으면 태풍이 불더라도 미리 밖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을 거다. 절차? 솔직히 이건 내 실수인데, 내가 전 지점장 생각하고 당연히 특급으로 처리할 줄 알았어. 저거 내버려 두면, 내 고객들이 이탈해. 하는 짓을 보니까, 오늘만 그러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거군요”
“응, 그런 거다.”
제프리가 화를 내니 꽤 무서웠다.
더욱이 본인이 화를 내면서 뱉은 말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더.
금요일 오전에 제프리가 일찍 와서 노닥거리고 있다 보니, 씨티은행 지점장이 왔다.
그리고, 드디어 내 계좌에 1등 당첨금이 입금되었다.
한도가 무제한인 신용카드는 부록으로 딸려 왔고.
“조지”
“왜? 알렉스?”
“나 다음 주에 한국 가면 넌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복귀해야지?”
“복귀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월급 주면서 놀릴 수는 없잖아? 일해야지?”
“또 경호?”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네 덕분에 한동안 편하게 지냈으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해야지? 다만, 경호 일을 많이 해서, 이번에는 전쟁터로 갈지도 모르겠다. 나도 차라리 그게 속 편하고. 경호 일도 일종의 감정 노동이거든.”
“흐음···.”
1등 당첨금을 받았으니, 한국에 가서 가족들도 챙기고 해야 한다.
물론, 가능한 한 빨리 미국으로 다시 들어올 생각이지만.
그런데, 조지가 걸린다.
두어 달 정도 있다 미국으로 돌아오면, 다시 파견을 요청하든가 아니면 아예 퇴사시키고 내 옆에 둘 생각인데, 그 사이에 전쟁터라도 나가버리면 곤란하지 않은가?
게다가, 용병 일은 기본이 최소한 6개월이다.
또, 재수 없으면 눈먼 총알이나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 폭발물) 따위에 당할 수도 있다.
마치 후안이 그랬던 것처럼.
뭘 하든지 한동안은 미국 생활을 할 생각이었기에, 조지가 필요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래도 제일 믿을 수 있었으니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생전 처음 보는 놈에게 내 뒤를 맡기기는 싫었다.
처음부터 조지 존재를 몰랐으면 모를까.
“너, 퇴사하고 나한테 와. 대우는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정말?”
“그럼 거짓말이냐?”
“정말 내가 필요한 거야, 뭐야? 너 떼돈 벌었다고 군식구가 될 생각은 없어”
“이 자식아! 나도 미국에 믿을 놈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렇다면야 뭐, 나야 땡큐지. 흐흐흐!”
“제프리에게 말해놓을 테니까, 집이나 좀 구해 놔. 계속 호텔에 있을 수는 없잖아?”
“알았어”
“너무 거창하게는 말고, 네가 LA 잘 아니까, 풍광 좋고 안전한 곳으로 선택해. 예산은 2,000만 달러 내로 정하고”
“응”
“그리고, 나 돌아오면 경호는 너의 회사에 맡길 거니까, 그린베레 출신들로 팀을 짜달라고 요청해 놓고?”
“왜? 네이비씰은 싫냐?”
“솔직히 말해서, 네놈들은 쳐들어가서 박살 내고 나오는 것이 주특기잖아? 경호는 그린베레가 몇 수 위고?”
“흐흐흐, 그것도 인정!”
“지랄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전날.
호텔 바에서 제프리를 만났다.
“언제 다시 오냐?”
“가능하면 두 달 내로 오려고 하는데, 좀 길어질 수도 있겠죠. 내가 뭐 여기다 일을 벌여 놓은 것도 아니고요.”
“하긴, 하여간 이젠 슈퍼리치니까, 잘 놀다가 와. 아, 그리고 내가 사무실 나오면서 메일 하나 보냈으니까, 그거 보고”
“뭔데요?”
“한국에서 너에게 도움이 될 사람들 연락처 몇 개 넣었어. 제프리가 소개한 알렉스라고 하면 돼. 이미 말은 다 해놓았어.”
“오! 한국에도 인맥이 있어요?”
“내 고객의 20% 정도는 한국 부자들이야. 그래서, 1년에 두어 번은 한국 꼭 다녀오고”
“히야? 하여간 능력 있는 남자라니까?”
“미친놈!”
“흐흐흐!”
“흐흐!”
음흉하게 같이 웃다가, 나는 자그마한 상자 하나를 내놓았다.
“이건 뭐여? 설마 커플 반지는 아닐 것이고?”
“에이, 진짜? 열어 봐요.”
딸깍!
“음? 시계? 파텍 필립 아쿠아넛?”
“맘에 들어요?”
“제임스에게 들었냐? 내가 시계 모으는 취미 있다는 거?”
“네, 그리고 물놀이도 좋아한다면서요? 그러니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것으로 산 거죠.”
“물놀이가 뭐냐? 물놀이가? 요트하고 다이빙인데?”
“그게 그거지 뭐요?”
“흐흐, 진짜 미친놈이네. 하여간 고맙다. 이거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호텔 지배인에게 수수료 넉넉히 챙겨준다니까, 환장하고 이틀 만에 가져오던데요?”
“햐! 이놈 봐라?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슈퍼리치의 방식을 벌써 깨우쳤네?”
“푸하하하!”
“하하하!”
6월 24일.
두 달 반 만에 인천공항으로 귀국하였다.
그리고, 곧장 택시를 타고 은평구 집으로 갔다.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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