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들내미 꽤 성공했거든?
“호호호!”
“하하하!”
사람의 눈은 참 간사하다.
LA 리츠칼튼 호텔 스위트룸에서 두 달 넘게 지내다가 귀국하여 들어온 우리 집은 참으로 초라하였다.
반지하에 좁고, 엄마가 그렇게 없애려고 노력하여도 여름에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곰팡이들.
그래도 우리 가족은 내가 다시 사 온 한우 꽃등심을 구워 먹으며 행복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로 인하여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였으니까.
그럼 이제 한여름의 산타클로스가 되어 볼까?
아니, 6월 말이니 초여름의 산타클로스인가?
“소미야”
“웅, 오빠!”
“넌 이거 가져”
소미에게 박스 하나를 넘겨주었다.
“요고 모얌?”
“뭐긴? 애플 패드지?”
“우와와와! 오라방! 난 믿고 있었다고!”
“푸하하하!”
와락 달려들면서 나를 껴안는 소미다.
“야! 안 떨어져? 다 큰 계집애가 어딜?”
“아! 몰랑! 난 우리 오라방이 좋은걸?”
“호호호!”
“하하하!”
이상하다고?
현실 세계에서 남매 관계가 이럴 리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 남매는 사이가 무척이나 좋았다.
늦둥이라 나와는 13살이나 차이 나는 우리 소미.
나이 차이가 크게 나서 그런지, 원래부터 내가 무척 귀여워했다.
반쯤은 아니, 반은 오버고 삼 분의 일쯤은 내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이고.
게다가, 소미는 하필이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엄마와 외삼촌 집에서 몇 년을 눈칫밥을 먹고 살았다.
사업을 망할 때는 절대로 혼자 안 망한다.
코너에 몰리기 시작하면 친가는 물론, 외가, 처가 할 것 없이 돈을 끌어다 꼬라박는 것이 국룰.
외삼촌도 8천만 원인가를 뜯겼는데, 외숙모가 좋게 대할 리는 없지.
그런 암울한 생활에서 탈출하게 한 것이 나였다.
군대에서 돈을 악착같이 모아서 이 집 전세를 얻게 한 것도 나였고, 그나마 입에 풀칠하게 된 이후에도 매달 꼬박꼬박 용돈을 주는 것도 나였다.
이러니 사이가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는 거였다.
“엄마 선물은 이거요.”
“뭐니 이건?”
납작한 직사각형 상자를 드리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 엄마.
“열어보셔요.”
“어디?”
딸각!
“어머머!”
“엄마! 너무 이쁘다!”
엄마 선물은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다.
LA 보석상에서 12만 달러 약간 넘게 주고 산 것인데,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이뻤다.
그 많던 패물을 모두 팔아버리고 이제는 한 돈짜리 결혼 금반지가 전부인 우리 엄마.
엄마에게 꼭 주고 싶었던 선물이었다.
“이, 이거 비싸지 않아?”
“어, 비싸. 우리 전셋집보다 더 비쌀걸?”
“어머나! 그럼 나는 이거 못 받아. 내가 이걸 어떻게 받니?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잃어버리면 더 비싼 것으로 사드릴 테니까, 얼마든지 잃어버려요.”
“뭐라고?”
“한 여사”
“응, 아들”
“내가 이번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테니까, 잘 들으세요. 한 여사님 아들내미 꽤 성공했거든? 그런데, 내가 울 엄마 이런 것도 못 해줘?”
“그게 아니라···.”
“앞으로 내가 드리는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받으시면 돼, 아셨어? 안 그러면 나 화낸다?”
“응, 아들! 고마워!”
눈물을 글썽거리는 우리 엄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으니, 보석상 통째로 사달라고 하여도 사드릴 생각이다.
“그리고, 아빠”
“응? 나도 있어? 난 괜찮은데···.”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벌써 눈빛이 초롱초롱하시구먼?
“그래? 싫음 말고요.”
“야! 임마! 사양도 못 하냐?”
“하이고, 아들내미에게 사양은? 아빠는 이거”
“응? 이거 자동차 키?”
“응, 수수하게 제네시스 DH로 했어요. 옆에 공영주차장에 세워져 있으니까, 아빠가 타”
아빠가 망할 때 타던 차는 에쿠스였다.
그리고 나서는 지금까지 뚜벅이다.
“아빠 면허 살아있지?”
“그럼!”
“그럼 드라이브? 콜?”
“콜!”
온 가족이 뛰어나와 집 옆의 공영주차장으로 갔다.
2층에 세워 놓았다고 했지?
2층에 올라가서 아빠가 자동차 키의 버튼을 눌렀다.
삑삑! 반짝! 반짝!
검정 2세대 제네시스 DH가 우리 가족을 반겨주었다.
“와와와! 이거 이제 우리 차야?”
“그럼!”
“어머! 차 좋다!”
소미와 엄마는 신나서 자리 앉아보고 야단법석인데, 정작 아빠는 멍하니 바라만 보고 계셨다.
“아빠, 뭐 해? 시동 걸어보지 않고?”
“응? 그, 그래”
“차가 마음에 안 들어요? 다른 것으로 바꿔드릴까? 비엠이나 벤츠로? 난 아빠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이걸로 했는데?”
“야야! 맘에 들어! 진짜 맘에 들어!”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감격스러워서···.”
“헐···.”
하긴, 고급 차를 몰고 다니시던 분이 십 년 넘게 뚜벅이 생활을 하였다.
“아아아! 이 새 차 냄새! 죽이는구나!”
“크크큭!”
맞아, 남자들은 약간 본드 냄새틱한 새 차 냄새에 죽지.
아빠는 주차장을 빠져나와서 국방대학교 쪽으로 향하였다.
“제2 자유로 타시게?”
“응!”
제2 자유로는 차가 많이 안 다녀서 달리기 좋다.
“꺄아아악! 아빠 달려!”
“으하하하하!”
신이 난 소미가 연신 아빠 달려를 외쳤고, 아빠는 그 기대에 부응하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아빠!”
“응?”
“DMC역에서 그냥 직진해요.”
“왜? 어디 가려고?”
“그냥 내 방향 지시에 따라주셨으면 합니다만?”
“그러지 뭐”
차가 직진하자, 나는 바로 좌회전을 지시하였다.
“야! 좌회전하면 남의 아파트인데?”
“그냥 들어가셔!”
“에이, 모르겠다.”
내 지시에 따라서 들어간 곳은 가재울 뉴타운 3구역 DMC 아주 편한 세상 우미안 아파트다.
“자, 차 세우시고. 오케이! 내립시다!”
“철식아! 여긴 왜?”
“따라들 오세요? 아무 말씀 하지 마시고?”
지하주차장에서 아파트로 올라가는 입구를 찾아 알려준 번호를 눌렀다.
스르릉!
이제 대략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략 짐작하여 바짝 긴장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위로 올라갔다.
삐! 삐! 삐! 삐! 삐이!
번호 네 개와 우물 정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우와와와! 이게 현관이야?”
솔직히 나도 놀랐다.
무슨 현관이 내 원룸만 하냐?
“자, 들어가자고요!”
“이거 막 들어가도 되는 거냐?”
“그럼요? 우리 집입니다!”
“뭐?”
“어머머!”
놀래는 부모님을 데리고 중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야아!”
“우와와!”
“이게 집이야?”
“화장실이 4개야?”
분양면적 266㎡의 아파트.
진짜 넓긴 넓었다.
그것도 빈집이라 아무것도 없으니 더 넓어 보였다.
족구 한판은 충분히 때릴 수 있을 정도.
“이, 이게 우리 집이라고?”
“응, 강남으로 갈까 하다가 소미 학교도 있고, 나는 여기 위치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교통이 김포든 인천이든 공항 가기 좋지, 시내 가기도 좋고, DMC역 코 앞이지. 그래서 여기로 했는데, 좀 살아보시고 맘에 안 드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요. 대한민국 어디든지 옮겨드릴 테니까요.”
“아냐! 아냐! 여기 좋아! 복잡하게 강남으로 뭐하러 가냐? 비싸기만 하지? 그런데 왜 이리 넓냐?”
“넓은 것이 싫어요? 좁은 집이 징글징글하실 것 같아서 일부러 큰집으로 한 건데?”
“아냐! 좋아! 아주 좋아!”
진짜 좁은 집, 좁은 원룸에 살았더니 이제 좁은 곳은 징그러웠다.
“근데 이거 비싸지 않아?”
“안 비싸. 이 동네가 변두리라도 이상하게 아파트값이 싸잖아? 이거 분양면적으론 80평이고, 전용으로 60평인데 14억이야. 엄청나게 싸지?”
싸긴 정말 쌌다.
이제 입주한 지 2년 조금 더 지난 3,000세대가 넘는 대규모 단지 아파트 80평이 14억이라니?
부동산 경기가 여전히 폭망인 영향도 있기는 하지만.
“서울 시세에 비하면 싸긴 싸다만, 너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야?”
“하나도 무리 아니니, 걱정은 접어 두시란?”
“그래, 네가 어련히 알아서 했으려고···.”
“우와와와!”
소미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34층이지만, 그다지 뷰는 썩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거실 대형 창으로 비추는 야경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다.
“소미야, 좋아?”
“웅, 오빠. 지금 내 방은 지나다니는 사람들 다리만 보이거든? 또, 내가 말은 하지 않았는데, 작년에는 자려는데 어떤 술 취한 아저씨가 창에다가 오줌을 싸는 거 있지? 그때 정말 얼마나 놀라고 슬펐는데? 그런데, 여긴 너무 좋아, 오빠”
“...”
“...”
“...”
그런 일이 있었구나, 빌어먹을!
소미는 그때 서러움이 생각나는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소미야! 이리 와!”
“웅”
소미가 내 품에 뛰어 들어왔다.
“지금까지 일은 다 잊어버려! 이젠 오빠가 우리 소미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 알았지?”
“웅, 오빠”
진짜다.
우리 소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줄 거다.
다음 날부터는 집에 채울 가구와 전자제품을 사러 돌아다녔다.
“철식아, 이거 어떠니?”
“사!”
“철식아, 이거 하고 이거 중에서 어떤 것이···.”
“둘 다 사!”
“오빵, 이거···.”
“그냥 사!”
쇼핑이란 참 힘든 일이다.
고통과 인내를 수반하는.
그런데, 엄마와 소미는 그렇게 돌아다녀도 오히려 광채가 나는 것 같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아빠와 나는 전자제품 사는 것에만 관여하고, 나머지 가구나 집기는 엄마와 소미가 사고 우리는 밑에서 기다리는 것으로 합의를 하였다.
“아빠”
“응?”
“내가 숙제시킨 거 다 했어요?”
“무슨 숙제? 아!”
무슨 숙제긴?
갚을 빚 정리해서 달라고 하였는데, 미안한 지 나에게 주질 않고 있었다.
“이거, 내가 너무 미안해서···.”
“에이, 아빠. 다시는 그런 말 하지 않기다?”
“그래, 알았다. 여기 원금하고 이자하고 정리하였어.”
“그냥 원리금 합쳐서 얼마인지만 말해요.”
“남은 빚이 7억 2천만 원 정도야”
허! 그렇게 그 많았던 재산을 다 팔아서 갚았는데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았어?
이러면서도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은 대체 왜 신청 안 한 거지?
약간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더는 따지지 말자.
“아빠, 아빠 예전에 쓰던 통장 계좌번호 알려줘요.”
“응? 나 지금 쓸 수 있는 통장이 없는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시중은행 통장 아무거나 줘요.”
“알았다.”
“며칠 내로 압류 같은 거 다 풀고, 아빠 통장에 10억 넣을 테니까 그걸로 전부 해결해요.”
“10억? 야, 그건 너무 많아!”
“에이, 이젠 아빠도 예전처럼 가오 좀 잡고 사시라고? 신세 진 사람 있으면 술도 사고 그래요. 친구들도 거의 못 만났을 거 아니야?”
망하면 친구도 못 만난다.
어쩌다가 한두 번은 얻어먹겠지만, 그게 반복이 되면 서로 부담이 되어서 만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래, 고맙다.”
“대신 조건이 있어.”
“응? 조건? 뭔데?”
“앞으로 아빠는 철저하게 엄마와 소미를 위해서 사셔야 해? 알았지?”
“내가 언제는 안 그랬냐? 그놈의 보증 때문에 이렇게 되었지?”
“왜 이러셔? 나 어릴 때 아빠 여직원이랑 썸타다가 엄마한테 걸린 기억 나는데? 한 번이지만?”
“야! 임마! 그건 네 엄마가 오해한 거였어!”
“진짜?”
“이따가 엄마에게 물어봐라. 나중에 나에게 사과했었으니까”
“그럼, 내가 미안하고요.”
“아오! 내가 아들내미하고 별 이야기를 다 하네!”
“푸하하하!”
“웃지 마! 자식아!”
신축 아파트라서 크게 손을 댈 곳도 없어서, 소소하게 벽지 등만 손을 보고 다음 주에 입주하였다.
그리고, 소미가 여름방학을 하자 바로 제주도로 일주일간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에서 제일 좋다는 실라 호텔.
그곳의 스위트룸에서 일주일을 묵으면서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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