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하필 약쟁이에게?
“무슨 사람을 말하는 거야?”
“나도 투자회사 하나 만들려고”
“네가? 너 미쳤냐? 널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대에서 총 쏘고 구르다가 나와서 중소기업 영업맨을 하던 네가?”
이 자식이 기분 나쁘게.
무시하는 거 맞잖아?
원래 팩트 폭격으로 조지는 독설가 기질이 다분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투자 공부를 제대로 해봤어? 그것도 아니잖아? 네가 무슨 수로 큰돈을 벌었는지는 묻지 않을게. 아서라, 아서”
“이 자식아! 그러니까, 사람을 구해달라는 거 아니야?”
“얘가 세상을 우습게 보네? 너 사회생활 하면서 배운 거 없어? 네가 잘 모르나 본데, 아는 사람 데려다 놓고 부리면 회사가 잘 돌아갈 것 같아?”
“그걸 내가 모를 것 같냐? 야! 한국의 중소기업을 우습게 보지 마. 대기업에서 20년을 있어도 못 배우는 온갖 인간 군상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 중소기업이야. 배우는 과정이 상당히 엿 같아서 권장하지는 못하겠다만···.”
“그래?”
좋소기업 5년만 다녀 봐라.
사람 밑바닥까지 털털 털어서 알게 될 테니까.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중소기업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다녔던 대성 어패럴은 그랬다.
“사람? 세상? 야, 임마! 네가 아무리 그 천재적인 대갈통으로 성공했어도, 네가 나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 네가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험을 해봤어? 어제까지 나에게 웃으면서 용돈을 쥐여주던 친척 아줌마가, 오늘은 우리 집으로 쳐들어와서 울 엄마 머리채 잡아 뜯어가면서 돈 내놓으라고 악다구니를 써대는 걸 봤냐고?”
“...”
“내가 총 쏘고 구르는 것밖에 모른다고? 시벌! 그게 미필이 나에게 할 소리냐? 그럼 너는? 네가 132시간 동안 머리 위에 고무보트를 올려놓고 한숨도 못 자면서 굴러봤어?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저체온증에 시달리면서 벌벌 떨어봤어? 새끼야, 아무리 이민 가서 미필이라고 하지만, 할 소리가 따로 있는 거 아니야? 너 국적은 아직 한국이잖아? 그런 미필이 감히 내가 청춘을 바친 군대를 모욕해?”
“그런 뜻이 아니잖아?”
하아, 내가 왜 급발진해서 타오르는지 모르겠다.
영식이는 날 걱정해서 당연히 한 말일 텐데.
“마셔, 임마!”
“그래, 마시자”
그렇게 영식이와 나는 한동안 말없이 안주도 먹지 않으면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다.
“영식아”
“응”
“너 머리 좋은 거,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에브리바디가 아는 사실인데, 넌 진짜 못된 버릇이 있어.”
“뭐냐?”
“항상 다른 사람을 네 밑으로 깔고 보는 버릇이 있는 거 인정하냐? 그리고, 네 기준에 맞추어서 다른 사람 인생을 멋대로 평가하고 재단하려는 것도? 그거 고쳐 자식아!”
“미친 새끼! 네가 울 아빠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울 아빠가 맨날 나에게 하는 잔소리가 그거다.”
“그러냐? 그럼 아빠 말 들어, 자식아!”
“크크큭!”
“푸하하하!”
“하하하!”
둘이서 한참을 낄낄대며 처웃다가, 다시 잔을 들었다.
“미안하다, 철식아. 내가 널 걱정해서 한 소리였어”
“알아, 자식아. 아니까 내 주먹이 가만있는 거지”
“혹시 그거 아냐?”
“뭐?”
“너도 항상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나쁜 버릇이 있다는 거? 그거 고쳐 자식아!”
“푸하하!”
“하하하!”
같이 웃기는 하였지만, 뼈아픈 이야기였다.
그래, 나도 좀 고치자.
“진짜 너 어떻게 하려는 거야? 네가 투자 일은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잖아?”
“나도 지난 몇 년간 투자 공부 좀 했어. 뭐, 그런다고 네 앞에서 투자회사 차리겠다고 깝죽거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잘 아는데,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남의 자금을 끌어다 투자할 것도 아니고”
“그럼, 100% 네 돈만 운용할 생각인 거냐?”
“절대적으로 그렇게만 할 생각이야. 그리고, 누가 날 믿고 투자나 하겠냐?”
“그건 당연한 소리고”
염주의 신이 내렸으니, 투자하실래요?
이러면 어떤 미친 인간이 투자할까?
“그럼 어떤 사람을 원하는 거야?”
“투자 실적이 뛰어난 사람은 필요 없어. 그런 사람이 내게 올 리도 없을 것이고. 그냥 분야 불문하고 투자 실무에 해박하고 가능하면 경험이 많은 사람이면 돼. 투자 결정은 내가 판단하고 할 것이니까”
“네가?”
“응,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까, 또 캐묻지 말고 그런 줄만 알고 있으면 좋겠다.”
“휴우! 진짜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래도 헛소리나 하는 캐릭터는 아니라고 보는데?”
“그러니까 더 모르겠다는 거야, 자식아!”
“흐흐흐! 아! 가장 중요한 거 하나가 있어.”
“뭔데?”
“실력이 좀 떨어져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대체 이 바닥에서 뭘 바라는 거야? 여긴 월가라고 월가! 탐욕과 배신이 난무하는 곳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고?”
“야! 그러니까 너에게 부탁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사람도 최종 결정은 내가 할 테니까, 대략 부합하는 사람만 추천해 줘. 나중에 너 원망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진짜다? 솔직히 적당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인성은 내가 보장 못 해”
“너 자꾸 두 번 말하게 할래? 몇 명만 추천해 줘. 그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
아직은 나도 100% 확신은 못 하지만, 염주를 믿고 하는 소리다.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을 것이다.
“아! 몰라! 몇 사람 추려 줄 테니까, 네가 알아서 해! 이 미친놈아!”
“흐흐흐! 고맙다. 미안하지만 하나만 더”
“또 뭐?”
“난 LA에 있을 거니까, 뉴욕을 떠나서 LA로 이사가 가능한 사람이어야 해. 물론 채용하면 내가 이사비용이나 거주지는 마련해 줄 거고”
“왜? 여기에 있지?”
“아유! 난 뉴욕 싫다! 복잡해서! 그냥 기후 좋고 널널한 LA에서 살란다.”
요즘 세상에 꼭 뉴욕에 있을 필요는 없잖아?
내가 여기서 인맥을 만들 것도 아니고?
“알았다. 자산 운용 규모는 얼마나 할 건데?”
“그것도 말해줘야 하냐?”
“그럼 내가 신이냐? 네가 1,000만 달러를 가졌는지, 1억 달러를 가졌는지도 모르고 내가 어떻게 추천해? 자산 운용 규모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하긴 그러네”
뭐라고 하지?
10억 달러를 그대로 말했다가는 또 난리가 날 것이 뻔한데?
1억 달러?
그건 너무 적은 것 같았다.
그럼, 3억 달러?
적절한 것 같은데?
“3억 달러!”
“뭐? 3억 달러씩이나 된다고? 너 대체···.”
뭐라 물으려던 영식이가 입을 닫았다.
제 입으로 한 말이 있으니 더 묻지는 못할 거다.
아무리 궁금해도.
“하아, 제길! 괜히 쓸데없는 소릴 해가지고. 야! 딱 하나만 물어볼게”
“물어봐”
“깨끗한 돈이냐? 널 믿지만, 금액이 금액이니 이건 꼭 물어야겠다.”
“나도 똑같은 답변을 하지”
“무슨 소리야?”
“울 아빠도 똑같은 잔소릴 하더라! 임마! 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 100% 깨끗한 돈이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나보다 더 깨끗하게 돈을 번 놈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순도 100% 운빨로 번 돈이니까.
“그럼 다행이고. 알았어, 너 뉴욕에 언제까지 있을 거야?”
“사람 구하러 왔으니까, 사람 구할 때까지지 뭐”
“며칠만 기다려. 내가 찾아볼 테니까”
“흐흐흐! 고맙다, 친구야!”
“어휴! 이 원수 같은 새끼!”
그날 영식이와 나는 한국식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다.
하지만, 영식이는 나처럼 말술을 마시지는 못하는 체력이다.
당연히 먼저 완전 꽐라가 되어서 이놈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역시 아직 미혼이라 혼자 사는 아파트였는데, 성공한 투자 사업가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야경이 기가 막힌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끄으윽! 우어어어···.”
“야! 야! 엘리베이터야! 너 토하면 죽인다!”
“우어어어···.”
“조금만! 조금만 더!”
“우우욱!”
“야!”
“우어억!”
“개시끼···.”
결국,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토해 버린 영식이.
대충 옷을 벗기고 닦아주고 치워주고, 침대에 눕혀서 한숨을 돌리는데, 영식이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들렀다.
“처, 철식아···.”
“왜 임마!”
“사랑한다···.”
“뭐야? 2호선 개통이라도 해주랴?”
“크크큭···.”
피식!
그래 나도 사랑하다, 새끼야.
일주일이 지났을 때 영식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략 추려 놓았으니, 자기 사무실에 보자고.
“이야야! 사무실 죽이는데?”
“시끄러우니까, 소란 떨지 말고 앉아라. 여긴 월가야 월가!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잘났다, 네 팔뚝 굵다!”
“아, 아니 대체 어떻게 그런 쉰내 나는 농담을···.”
“크크큭! 어때? 재밌으면 되지?”
“재미가 없으니까 하는 소리잖아!”
“아, 됐고, 추천하는 사람은 좀 추렸냐?”
“여기 정리해 놓았으니까, 봐라”
“어키! 땡큐다.”
한눈에 봐도 상당히 두꺼운 서류철이었다.
“몇 명이나 되는데, 이렇게 두꺼워?”
“대상자들 자료까지 전부 합본 되어있어서 그래. 추천하는 사람은 전부 여섯 명이고”
“여섯 명인데 이리 두꺼워?”
“나에게 술 거하게 사야 할 거다. 혹시 몰라서 뒷조사까지 전부 다 했어.”
“헐, 뭐 그렇게까지나?”
“여긴 월가라니까? 사기 안 당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야. 물론 6명 전부 이름을 들어보거나 한두 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사람은 모르는 거니까”
하여간 나야 좋지.
“간단히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알았다.”
“이 사람은 아너 해링턴인데, 내가 제일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야. 최근 몇 년간 죽을 쒀서 폼이 많이 떨어져 있기는 한데, 그래도 클래스는 영원한 법이지”
“무슨 축구하냐?”
“말 끊지 마. 하여간, 해링턴은 영입하려면 돈이 좀 들 거야. 인센도 상당히 보장해야 할 거고”
“흐음, 일단 알았어. 다음은?”
“이 사람은 데이비드 웨버고 나이는 42살, 그리고···.”
영식이의 설명은 한참 계속되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이 사람은 존 스미스”
“존 스미스? 그거 본명이냐?”
“크크큭! 본명 맞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반응한다고 하더라. 워낙 흔해 빠진 이름이니까”
존 스미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김철수나 홍길동쯤 되는 이름이다.
워낙 흔해 빠져서 익명이나 가명으로 할 때 많이 쓰는 이름이기도 하고.
그나마, 신원불명의 변사체나 사람에게 붙이는 존 도(John Doe)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하여간 이 사람은 너에게 추천할까 말까 고민 좀 했어. 그러니까, 그냥 참고만 해라”
“왜?”
“솔직하게 말할게. 내가 잘 아는 사람이야.”
“그게 문제가 되나?”
“그건 문제가 안 되지. 다만, 과거에 심각한 하자가 있거든.”
“뭔데 그래?”
“마약”
“응? 약쟁이였어?”
“응, 지금은 끊었지만, 한동안 마약에 중독되어서 좀 심각했어.”
“끊은 것은 확실한 거고?”
“기록상으로나 본인 입으로나 끊은 지 1년 반 정도? 그래도 혹시 몰라서 특급으로 돈 많이 들여서 정밀 검사를 했는데, 깨끗해. 여기 깨끗하다는 시험결과서 첨부하였고”
약쟁이는 솔직히 나도 좀 꺼려졌다.
“그런데도 네가 추천하는 이유는?”
“이 사람, 내 대학하고 MBA 선배이기도 한데, 한때는 정말 전설이었던 사람이야. 월가의 최고 스타였고, 내 롤 모델이기도 했었지”
“아니, 그런 사람이 어쩌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는 잘 헤쳐나오는 줄 알았는데, 그거 여파로 큰 건 몇 개에서 소송을 당했어. 재수가 엄청나게 없었다고 할까? 사실 그 당시에도 월가에서 다친 사람은 많지 않았거든. 서민들만 죽어났었고”
“그런데, 왜 그 사람만?”
“본인은 입을 다무는데, 월가에서는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 정설이야.”
“누구에게?”“이 양반이 좀 뭐랄까? 요즘 한국말로 하면 십선비 스타일이었거든?”
별말을 다 아네.
“너도 그런 말을 아냐?”
“나도 한국 사이트 부지런히 들어가거든? 하여간, 입바른 소리도 잘하고 해서, 미운털이 여기저기 많이 박혔었어. 어디까지나 추정이니까, 그런가 보다 해라”
“아니, 그래서 왜 추천하냐고? 왕년이 아무리 잘나갔어도 약쟁이를?”
“개인적으로도 아는 사이라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도 싶었고, 무엇보다 이 양반이 다시 한번 빛나는 것을 보고 싶었어. 이대로 스러져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어서 말이야.”
“그럼 네가 쓰지 그러냐?”
“그러고 싶어도 우리 쪽은 안 돼. 존을 고용했다는 소문만 돌아도 투자 자본들이 빠져나갈 테니까. 하지만, 100% 네 자산만 운용하는 경우는 다르잖아?”
“그야 그렇지”
“부담은 가지지 말고,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정도만 생각해라. 내가 봐도 좀 무리니까”
“알았다. 고맙고, 며칠 생각한 다음에 다시 올게”
“그래라”
그날 밤 호텔 내방이다.
테이블 위에 약쟁이를 제외한 5명 파일을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영식이에게는 며칠 걸린다고 하였지만, 내가 이걸 왜 며칠씩이나 처보고 있나?
어차피 봐도 잘 모르는 것을?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 염주를 찬 왼손을 영식이가 제일 추천한다는 아너 해링턴 파일에 가져다 대고 집중하였다.
“이야압~~!”
한참을 지랄발광하여도 반응이 없었다.
“뭐야? 이 사람이 아닌가 봐?”
아니면 말지.
그리고 두 번째, 데이비드 웨버.
“끼요요요~!”
제길, 하도 힘을 주었더니 똥이 나오려고 하네.
이 사람도 아니다.
무슨 용각산이냐?
“아뵤오오!”
“아흐흐흥!”
“헉헉헉!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염주의 능력이 일회성?”
5명의 파일 위에 차례로 염주로 지랄을 해도 아무 반응이 없다니?
이럼 엿되는데?
가만, 그때 술을 만땅으로 취했지?
벌컥! 벌컥!
위스키를 꺼내어 병나발을 불었고, 취기가 확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하였다.
“이요요요!”
제기랄!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취한 상태에서 전부 다시 시도하였어도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는 염주라니.
허탈한 심정에 위스키 한잔을 가득 따라서 들이키고 넋을 잃고 있는데, 테이블 옆에 던져둔 존 스미스 파일이 눈에 띄었다.
“설마?”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왼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런데,
반짝! 반짝!
“허허허! 이게 무슨?”
확실한 염주의 반응.
하필 약쟁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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