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럼 투자할까요?
한동안 머리가 멍하였다.
AMD라니?
“아니, 아무리 염주라도 이거 선 넘은 거 아니야?”
경제적으로 늘 궁핍하다 보니, 전역하여 내 첫 PC는 조립 컴퓨터였다.
PC 사이트로 유명한 더나와에서 싸고 좋은 PC를 조립하기 위하여 들락거리기 시작하였고, 한번 내 PC를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립하다 보니 나름 컴퓨터 부품에 대하여는 지식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본가의 소미 컴퓨터와 아버지 컴퓨터도 내가 조립한 것이고.
그래서, AMD, 일명 암드가 어떤 회사인지는 나도 잘 알았다.
2000년대에 애슬론 64로 인텔 제국의 유일한 저항마로 선전하는 듯하다가, 인텔이 코어 2를 출시하면서 성능에 밀리면서 핀치에 몰리다가 그놈의 불도저인지 포클레인인지 하는 아키텍처로 제대로 멸망의 각을 잡고 있던 회사가 아닌가?
한국에서는 쓰면 속이 터져서 암에 걸려서 암드란다.
오죽하였으면, 인텔이 반독점법 때문에 일부러 AMD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는 농담이 아닌 농담까지 돌아다닐까?
그런데, 그런 막장 중의 개막장 같은 회사에다 투자하라니?
염주께서 드디어 미치신 건가?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고 고민해도 역시나 결론은 한가지였다.
이리도 밝게 반짝! 반짝! 하는 것을 내가 어찌 무시할 수 있을까?
“하아아! 제길! 좀 번듯한 주를 추천하면 안 되냐?”
내가 생각해도 개소리지만 말이다.
번듯한 주가 현재 저렴할 리도 없고, 대박이 날 가능성 따위는 더더욱 없을 테니까.
결국, 인터폰을 들어서 존을 호출하였다.
“부르셨습니까?”
“네, 거기 잠시 앉아요.”
“네”
“다른 것이 아니라, 혹시 AMD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네? 어디요?”
“AMD 말입니다. Advanced Micro Devices, Inc.”
“...”
존은 대답 대신에 얼굴이 파래지면서 입을 닫았다.
아마도 속으로 저 미친놈이 왜 저러는 걸까? 라고 생각한다는 것에 내 불알 한쪽을 건다.
“존?”
“하아, 생각 안 합니다.”
“엉? 생각하지 않다니요?”
“이미 망한 기업 생각해서 뭐합니까? 그래서 생각 안 합니다.”
“...”
이건 뭐, 아예 죽은 놈 취급이구나.
“그래도 아는 대로 말해 보세요.”
“대체 왜 물어보시는지요?”
“그냥 관심이 있어서요.”
“아니, 그 많은 회사 중에서 하필 AMD입니까?”
“아니, 일단 말해 보시라니까?”
“휴우! 한마디로 갈 데까지 간 회사입니다. 지속적인 개발 실패로 CPU 시장에서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그나마 비트코인 열풍으로 잠시 회생하는 듯하였으나, 그것도 끝났습니다. 14년도 4분기에 3억 6,40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하였고, 인원도 7%를 잘라내었습니다.”
“호오?”
생각 안 하는 것 치고는 줄줄이잖아?
“급기야는 올해 2015년에 들어서서는 재고 소진을 위하여 제품 출하까지 단행하였고 이제는 기대할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말로는 내년에 나올 신제품에 사활을 건다고는 하지만, 그거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생각보다 더 거지 같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에서 조만간 사형 선고를 내릴 예정입니다.”
“무디스에서 사형 선고를 내리다니요?”
“12월에 투자부적격 등급인 CAA1 등급으로 내린다는 말이 파다하고, 아마도 사실일 겁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아니, 잘 모르겠는데?”
“쓰레기! 정크! 원리금 상환이 사실상 어렵다고 보는 등급입니다! 부도 직전이라는 말입니다!”
“저기, 존”
“네, 보스”
“우리 소리는 지르지 맙시다. 남들이 보면 존이 보스 같잖아요?”
“죄송합니다.”
“험, 그럼 경영자는 어때요?”
경영자라도 좀 괜찮으려나?
“리사 수 박사가 작년 10월부터 프레지던트 겸 CEO로 임명되어서 고군분투 중입니다.”
“어떤 사람이지요?”
“MIT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IBM과 올해 네덜란드의 NXP에 인수 합병되어 사라진 프리스케일의 CTO를 거쳤습니다. 업계의 평가는 최상입니다. 그나마 AMD에 0.1%의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닥터 리사 수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나 다행이군요.”
나도 그 0.1%에 희망을 걸어야 할 판국이니까.
“아니! 왜 보스께서 그나마 다행인 겁니까!”
“아이! 깜짝이야!”
“말씀해 주십시오! 왜 보스께서 다행이라는 겁니까?”
“그야 뭐, 나도 그 0.1%에 희망을 걸 생각이니까요.”
“안 됩니다!”
“엉? 내 돈인데 왜 안 되는 거야?”
“그래도 안 됩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저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란 말입니다! 여기 망하면 갈 곳도 없단 말이에요! 제발 저 좀 살려 주십시오! 네?”
“아니 누가 죽인다고 했어요?”
“그게 그거 아닙니까? 첫 투자부터 AMD라니요?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보스!”
“...”
이거야 원.
존은 이제 아예 울려고 할 태세다.
하기야,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들어온 회사의 보스가 미친놈이라면 나도 절망스러울 것 같았다.
“저기 존”
“네, 보스”
“이번 딱 한 번만 내 말대로 합시다. 나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AMD를 찍는 거란 말이에요.”
“차라리 엔비디아는 어떻습니까? 제가 강추하는 종목인데? 네?”
“그건 그거대로 일 순위로 검토할게요. 그러니까, 둘 다 합시다. 오케이?”
“정말 하셔야겠습니까?”
“네, 투자할 이유가 있어서 그래요. 이번만 내 말을 따라 주세요.”
“하아, 얼마나 하시려고요?”
“3억 달러!”
이번 염주의 발광은 유난히 밝았던 것 같다.
모 아니면 도다.
“1억 달러만 하시지요?”
“3억 달러! 아니, 존? 원래 3억 달러만 내가 가진 줄 알고 온 거잖아요? 3억 달러 빼도 3억 5천만 달러나 더 투자하는 건데?”
“그럼 정말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시는 정크 등급에 손을 안 대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이번에 AMD가 실패하면 그럴게요.”
이거 실패하면 어차피 염주는 못 믿는다.
“알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3억 달러로 최대한 많은 주식을 확보해 주세요. 방법은 모두 존에게 일임하겠습니다. 시장에서 긁어모으든, 아니면 기존 대주주에게서 매수하든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보스”
존이 나가고 나서 한숨부터 나왔다.
대체 내돈가지고 이렇게 투자하기가 힘들어서야 원.
“염주야, 아니 염주님. 이거 빠그라지면 내 손에서 떼어버릴 거라는 거, 알지?”
느낌상 염주가 징징대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자기도 살려면 알아서 하겠지.
존은 내방에서 나가는 즉시 제니퍼와 로이에게 모든 일을 중단시키고, AMD 주식을 확보하는 것에 몰입하는 것 같았다.
어디다 그렇게 통화를 하는지 계속 전화통을 붙잡고 있었고, 불쑥불쑥 어딜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기도 하였다.
답답하였지만, 일단 존을 믿고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렇게 이틀째 되는 날 오후에 존이 내방 문을 노크하였다.
“접니다, 보스”
“들어오세요. 요즘 엄청 바쁘던데요?”
“하하하! 보스 지시를 이행하기 위하여 한참 바빴습니다.”
그렇게 AMD에 투자하지 말자고 난리 부르스를 추더니만, 막상 업무에 돌입하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생기가 넘쳐나서 보기가 좋았다.
“그래요, 어떻게 되었어요?”
“가능한 많은 주식을 확보할 방안을 마련하였습니다. 보스께서 승인하시면 내일 당장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호오? 이거 자신감이 넘치는데요?”
“하하하! 제가 누구입니까? 한때 월가의 전설이 아닙니까?”
“...”
지금까지 몰랐는데, 이 양반도 살짝 나잘난 맛에 사는 과네.
“험! 농담이구요, 예상보다 이야기가 잘 되었습니다. 우선 최대 주주로부터 그들이 가진 전 주식을 우리가 매입하기로 하였습니다.”
“어? 그게 가능해요?”
“네, 최대 주주가 아랍 에미리트 연합 자본인 무바달라 개발회사(Mubadala Development Company)입니다. 아랍 에미리트의 아부다비 정부가 전액 투자한 회사지요.”
“아, 그래요? 한국에서는 인텔이 주주라는 말도 많았는데?”
“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 진짜라니까?
진짜 그런 루머가 퍼졌는데 아니었나 보다.
“하여간, 그래서요?”
“무바달라가 AMD에서 손을 떼고 싶어 했습니다. 그놈들도 AMD가 회생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지요. 그래서 제가 손을 내미니까, 엄청나게 반가워하더군요. 하하하!”
“그래서요?”
“주당 1달러로 무바달라가 가진 모든 주식을 매입하기로 하였습니다. 1억 4,190만 주니까 1억 4,190만 달러고요, 지분으로는 15.3%입니다.”
“오오오!”
주당 1달러라니?
오늘 종가가 주당 1.72달러였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요? 오늘 종가보다도 한참 낮은데?”
“무바달라에서 디스카운트 한 거지요. 어차피 회생 가능성도 없다고 보고 있었고, 그놈들도 조만간 무디스에서 신용등급을 완전 쓰레기 수준으로 내린다는 것을 알았던 겁니다. 어차피 회사가 무너지면 휴지가 되는 주식, 임자가 나섰을 때 싸게 팔아치운 겁니다.”
“아니 시장에서 팔면 안 되나?”
“그 많은 주식을요? 내놓는 순간에 패닉이 일어나 평균 매도가가 1달러는커녕 0.5달러도 못 챙길 겁니다. 대주주들은 웬만해서는 시장에 팔지도 못합니다.”
“오! 그렇군요.”
하여간 대단하다.
나는 시장에서 찔끔찔끔 사들일 생각밖에 못 하였는데, 이걸 또 이렇게 후려쳐서 통으로 사다니?
“정말 잘 처리했어요, 존. 역시 전문가가 다르긴 다르네요, 하하하!”
“으하하! 뭐 이 정도까지고요? 하나가 또 있습니다.”
“또 뭐요?”
“리사 수 박사와 상담을 하였는데, 유상증자를 강력하게 요청하더군요.”
“유상증자를 말입니까?”
“네. 회사 사정이 굉장히 급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내년에 ZEN 아키텍처 기반의 CPU가 출시될 예정인데, 그것만 나오면 회사를 살릴 수 있다고 자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마무리할 돈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존이 보기에는 어때요? 그 ZEN인가 뭔가가 성공할 거 같습니까?”
“투자에 격렬하게 반대하였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릴지는 몰랐습니다만, 저는 리사 수를 믿습니다.”
“오오! 그 정도예요?”
“대단한 여자더군요. 그 열정과 지식! 정말 탄복하였습니다. 이거, 월가에서 한때 전설이었던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리면, 분명히 AMD는 다시 살아날 겁니다.”
“아니, 그렇게나 반대하더니만?”
“제가 괜히 전설인 것이 아닌 것이, 실수는 바로 시인하고 바로 잡거든요?”
“푸하하!”
“하하하!”
혼자서 염주만 믿고 어거지로 AMD 투자를 밀어붙였는데, 존이 이틀 만에 이렇게나 긍정적으로 나오니까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 유상증자라는 것 말이에요, 내가 알기로는 미국에서는 제삼자 배정 방식을 안 쓰던데, 괜찮은 거예요?”
“말씀대로 일반에게 공모하는 방식을 많이 쓰지만, 3자 배정이 드문 것도 아닙니다.”
“그럼, 보호예수기간은 한국은 유상증자도 있던데요?”
“미국은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IPO 때나 회사나 투자 은행에서 요구하여 보통 90일에서 180일 정도 합의하여 두는 것이고, 역시 법적인 사항은 아닙니다. 유상증자는 아예 그런 케이스도 잘 없구요. 물론 합의하면 가능합니다만”
“흐음, 그럼 걸리적거리는 것은 없네요. 그럼 투자할까요?”
“하시지요, 보스!”
“얼마나?”
“3억 달러 쓰시기로 하셨는데, 그거 가지고 되겠습니까? 기왕 하시는 거, 5,000만 달러만 더 쓰시지요?”
“아니, 이 양반이 말릴 때는 언제고?”
“하하하!”
“하하하! 오케이! 그럽시다!”
염주가 점지하셨고, 한때는 약쟁이였지만 월가의 전설이었던 사내가 추천하는 일이다.
당연히 Go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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