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그런 자리가 세상에 어딨냐?
“역시 엄마가 만든 청국장이 최고야!”
“호호! 많이 먹어”
엄마가 해주는 청국장은 정말 끝내주었다.
이게 뭐라고 어찌나 먹고 싶던지.
LA 집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제니가 음식 솜씨도 좋고, 거의 모든 한식을 할 줄 알기에 음식으로 고생한 적은 없었지만 유일하게 금단의 음식으로 먹지 못한 것이 이 청국장이다.
초기에 멋모르고 제니에게 부탁하여서 했다가 조지고 존이고 제니퍼건 간에 죄다 집 밖으로 도망쳐 버렸으니까.
조지가 말하기를 데드바디 수프(dead body soup)라나?
아니, 표현해도 그렇지, 이걸 시체국이라니?
그런데, 웃기는 것이 조지의 이 표현은 의외로 정확하였다.
해외에서는 청국장을 뭐라고 하는지 검색했더니, 대부분 dead body soup이나 corpse(시체) soup이라고 한다니까.
청국장 냄새가 시체 썩는 냄새와 비슷해서 그렇다고 한다는데 어이가 없었다.
하긴, 한국 사람들조차도 냄새 때문에 질색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뭐라고 할 일도 아니었다.
어쨌건, 그 이후로는 감히 해달라고 할 엄두도 못 내었다.
하여간 이제는 몇조를 가진 부자였지만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청국장에 이리도 행복을 느낄 줄은 정말 몰랐다.
왜 이리 맛있는 거야?
저녁에는 아빠와 조촐하게 소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캬! 좋다!”
“짜식이 소주 맛은 알아가지고? 캬! 좋긴 좋다! 아들내미하고 오랜만에 마시니까. 하하하!”
“흐흐흐!”
“그런데 미국에서 소주 잘 안 마셨냐? 미국에서도 소주 얼마든지 구할 텐데?”
물론 전세계에서 소주 안 파는 나라는 거의 없다.
특히 미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비싸서 그렇지.
“왜 없겠어요? 당연히 팔지. 집에다가 박스째로 사다 놓았어.”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먹을 일이 별로 없어요. 주변이 온통 미국인들밖에 없다 보니까, 자주는 안 마시게 되더라고요. 보통 일상에서는 맥주나 홀짝이고 정말 제대로 마시면 양주를 먹게 되지”
“하긴. 그건 그렇고 네가 하는 일은 잘 되는 거냐?”
“응, 평생 돈 걱정할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셔요.”
“흐흐흐! 그거 다행이다.”
“아빠는? 일하지 않으니까 어때?”
“네가 당분간은 무조건 쉬라고 해서 놀고 있지 뭐. 그런데, 이거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좀 지겨워”
“그래?”
아빠는 당분간 일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나는 아빠가 십여 년 전에 보증으로 말아 드시기 전까지도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였으니까.
정말 시류도 잘 탔고 아빠가 워낙 머리도 좋고 성실해서 그렇지, 그러지 않았으면 진작에 남들 퍼주다가 말아먹었을 거다.
아빠는 천성이 그런 사람이다.
이런 양반은 사업하면 안 된다.
사업은 내가 다니던 대성 어패럴의 홍 사장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그 양반은 좀 지나쳐서 문제지만.
“응, 네가 한 달에 1,000만 원씩 또박또박 꽂아주니까, 걱정 없이 친구들도 만나서 술도 사고, 골프도 다시 치러 다니고는 있는데, 아직은 놀 나이가 아닌 것 같아.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없으니까 좀 그래”
“하기야, 평생을 바쁘게 사셨으니까”
“그래서 너 이번에 오면 상의해서 어디 직장이라도 나가려고 하는 중이야.”
“며칠 있어 봐”
“며칠 있으면?”
“내가 아빠 적성에 딱 맞는 자리를 알아봐 줄 테니까, 기다려봐요.”
“응? 내 적성에 딱 맞다니? 내 적성이 뭔데?”
“남 퍼주기 좋아하잖아?”
“...”
아빠는 잠시 말을 못 하였다.
그러다가 가족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갔었으니까.
“옛날 일 들추어서 쑤시려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아빤 정말 사업하면 안 되는 사람이란 거 아빠도 알잖아?”
“알아, 임마!”
“그러니까, 남들 도와주고 퍼주고 이러는 거 좋아하시니까, 그런 일자리를 만들어 드릴게. 이 아들이 말이야.”
“그런 자리가 세상에 어딨냐?”
“기다려 보시라니깐? 능력 있는 아들내미가 만들어 드릴 테니까? 참 정말, 아빠는 좋겠어?”
“왜?”
“나같이 능력 있는 아들내미가 있어서? 나도 나 같은 아들이 있으면 좋겠다.”
“푸흐흐흐!”
“흐흐흐!”
다음날 오전에는 안양시 박달동으로 향하였다.
얼마 전에 새로 지어서 이사한 보육원으로.
“이야? 근사한데?”
새로 이사한 보육원을 본 내 느낌이다.
위치는 박달동에 대학건물 비슷한 것들이 있는 쪽으로 절묘하게 붙어 있어서 주변 주민들의 반대에 크게 시달릴 일도 없었고, 주변에 공원 같은 것들이 많아서 상당히 쾌적해 보였다.
일단 부지가 700평이나 되었는데, 이 큰 땅을 어떻게 60억에 매입하였냐고 물었더니 역시나 개발제한 구역이라고 하였다.
“아니 기동이 형? 이렇게 큰 땅이 어떻게 그렇게 사지? 아무리 개발제한 구역이라도?”
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울에서 몇 발자국 안 떨어진 곳인데?
“크크큭! 너 저 건물이 뭐 같냐?”
“저기 큰 건물들?”
“그래”
“대학교 아닌가?”
“푸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
“응?”
“저거 임마 나랑도 인연이 있던 회사 건물들이야.”
“어? 형이랑 인연이 있던 회사가 어딨어? 회사라고는 파견 나갔던···. 어? 설마?”
“크큭! 그 설마가 맞아. 서초동 대법원 근처에 있던 회사가 이전한 곳이 바로 여기야. 그래서 근처가 전부 국방부 소유 땅이고”
“아하! 그래서 개발제한구역이구나?”
“그렇지. 여기 땅이 말이 개인 소유였지, 원래부터 공병단에다가 예비군 훈련장만 2곳이라 애초에 개발을 못 하는 곳이야. 회사 이전할 때도 반대가 엄청나게 심했었어.”
“푸흐흐!”
이러면 말이 된다.
‘그 회사’가 여기 있으면 아무것도 못 짓지.
그나마 보육원 복지 시설이고 김 부장이 손을 써주어서 가능하였지만.
“그럼 건물은? 저거 아무리 봐도 형이 내게 말한 40억으로 지을 수 있는 건물이 아닌데?”
“그건 뭐 나도 힘을 조금 썼고, 각지의 온정도 좀 있었고 해서 거의 반값에 지었어.”
“형이 무슨 힘이 있어서?”
“이 자식이 사람 우습게 보네?”
“사실이잖아?”
“지랄! 험, 사실은 땅이 여긴 줄 알자마자 회사 부장님을 찾아갔지”
“그래서?”
“그래서는 뭐? 이렇게 거룩한 역사를 하려고 하니까 도와달라고 했어”
“뭘?”
“조기 옆에 가면 거긴 또 공병단이 있거든?”
“아하! 알겠다!”
“그래서 부장님과 같이 찾아가서 사정했더니, 공병단에서 웬만한 용지정리와 기반 공사는 다 해줬어. 거기서 많이 세이브하였고, 일이 되려고 하니까 별일이 다 생기더라.”
“무슨 일인데?”
“이거 시공 누가 해줬는지 아냐?”
“누구?”
“이거 박상환이가 거의 실비만 받고 해준 거다.”
“누구? 박상환? 내가 아는 그 박상환? 깡패 회장?”
“그래 임마”
우와? 이게 무슨 일이야?
그 깡패가 이걸 실비로 해주다니?
“진짜? 아니 어떻게?”
“부지 정하고 시공사 찾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놈이 보육원에 찾아왔더라고. 신호하고 나는 엄청나게 긴장하는데, 보육원 시설 모습을 보더니 혀를 차더라? 요즘도 이 모양인 보육원이 다 있냐고?”
“그래?”
“응, 그러더니 박달동으로 이사하는 새 보육원 건물 자기가 실비만 받고 해줄 테니까 맡기라고 하더라. 공짜는 부담이 커서 안 된다면서”
“웬일이래? 깡패가 개과천선도 하나?”
“개과천선까지는 아니고, 자기도 자라면서 잠시지만 보육원 신세를 졌었다고 하더라고. 어쨌든 자기 회사 때문에 나가는 것이라 사실 자기도 그리 속이 좋지는 않았다나?”
“그거 믿어도 되나?”
나는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뭐, 100% 다 믿기는 곤란한데, 약간 그런 마음도 전혀 없지는 않았나 봐. 그리고, 대신에 자기네 회사가 좋은 일도 한다고 선전도 되는 것도 있었고. 실비로 해주는 대신에 자기네 회사 이미지 홍보로 쓸 거라고 했으니까.”
“흐흐, 그 와중에 챙길 것은 다 챙기는구먼?”
“그래도 그게 어디냐? 우리야 맘껏 쓰라고 했지? 기자들 불러서 장 원장이랑 활짝 웃으면서 자세도 취해줬고? 하여간 그렇게 되었어. 나중에 현장 소장이 그러는데, 손해도 좀 봤다고 하더라”
“홍보로 사용했으면 손해는 아닐걸?”
“그야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겠지. 어쨌든 그래서 공사비는 40억만 들었다. 네가 준 돈 100억으로 딱 맞췄고, 토지 판매대금 30억은 거의 고스란히 남았지”
허, 참! 깡패에게 도움을 다 받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래도 완전히 나쁜 자식은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 혹시라도 보면 회장이라고 불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여간, 고생했어요, 기동이 형”
안에 들어가니 장 원장이 반갑게 맞아 주면서 나를 안내하였다.
“하하! 훌륭하지요? 그전에는 50명도 비좁았는데, 이제는 100명 이상을 받아도 넉넉하고 편하게 지었습니다.”
“그러네요.”
새로 지은 보육원은 정말 잘 지었다.
고등학생으로 올라가면 편하게 공부하라고 2인 1실을 원칙으로 하였고, 편의 시설도 컴퓨터실과 공부방이 따로 있을 정도로 훌륭하였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고등학교 졸업한 아이들이 바로 사회에 내쳐지지 않도록 작지만 1인 1실로 입실할 수 있게 따로 방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평생 처음으로 자기 방을 가진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원래 의무적으로 퇴소해야 했나요?”
“만 18세가 되면 정부지원금이 딱 끊어집니다. 한마디로 데리고 있지 말라는 소리지요.”
“그럼 나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살라고요?”
“지자체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500만 원 정도의 일시금과 3년간 20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의 돈이 매월 보조됩니다.”
“아니 그걸 가지고 애들이 어떻게 살라고요?”
요즘 세상에 500만 원 가지고 뭘 어떻게 살라는 거지?
고시원 몇 달 월세 내고 밥 먹고 하면 땡일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매년 2,500명 정도가 사회로 내몰리는데, 4명 중 1명이 6개월 이내에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도 많고요.”
“헐, 우리나라 정말 갈 길이 머네요?”
“누가 아니랍니까? 그래도 우리는 아이들이 제대로 준비하고 사회에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이게 다 시주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안타깝네요. 챙길 수 있는 아이들이 이거뿐이라니”
“네, 그렇습니다.”
정말 부지런히 돈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잠시 말씀 좀 나누시지요? 기동이 형하고 신호 형도 같이 말입니다.”
“네, 그러시지요.”
잠시 후 원장실에서 네 명이 모여 앉았다.
“일단 형들은 고생 많았어요.”
“에이, 고생은? 보람도 많았어.”
“하여간 이제 여기서는 손 떼고 미국으로 올 준비해요. 영어 공부들은 열심히 했지?”
“우리야 원래부터 부대에서 좀 했잖아? 그간 열심히 공부도 했고. 그런데, 여긴 어떻게 하고?”
“우리 아버지에게 맡기려고. 원래 사람들 도와주는 거 워낙 좋아하기도 하시고 하였으니까, 딱 맞을 거야. 사회 경험도 많으시고 말이야.”
“아! 그럼 되겠구나?”
아무래도 보육원에 정이 많이 들었는지 걱정하다가 우리 아버지가 맡을 거라니까 장 원장도 그렇고 다들 안심하였다.
“그리고, 이참에 제대로 보육 관련 일을 하려고 해요. 그래서 별도로 복지 재단도 세울 생각이고요.”
“별도로?”
“응, 여기 양혜원만 보육원이 있는 것이 아니잖아? 전부 챙기는 것은 무리라도 조금씩 늘려가려고. 그래서 여기 양혜원도 신설 복지 재단 산하로 둘 생각인데, 원장님 괜찮으시겠어요?”
“하하하! 아유! 그럼요! 불감청 고소원이지요!”
“고맙습니다, 원장님”
“제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겁니다. 하하!”
장 원장은 내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으면 아무래도 좋은가 보다.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기동이 형”
“어”
“여기 옆에 땅이 꽤 넓던데 그것도 국방부 땅인가?”
“응, 국방부 땅 맞아. 한 1,500평 될걸?”
“그거 어떻게 싸게 불하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 줘. 이건 형이 한국에서 하는 마지막 일이라 생각하고”
“글쎄다? 알아볼 수는 있겠지만 상당히 어려울 것 같은데?”
“하여간 알아나 봐줘. 나도 이따가 꽤 명망이 있는 양반을 만나서 도와달라고 할 거니까.”
“그래? 위에서 작업해 주면 가능성이 있을 거야. 그런데 그 땅은 왜?”
“별도 아이들 자립관을 좀 크게 만들려고. 아까 원장님 말씀을 들으니까, 제일 급한 것이 만 18세가 되어 사회로 내몰리는 아이들 같거든?”
“맞습니다!”
“네 말은 알겠어. 하지만, 땅을 싸게 불하받아도, 공사비가 만만치 않을 것인데? 운영비도 생각해야 하고? 너 괜찮겠냐?”
“돈 걱정은 하지 마. 1년 동안 또 대박으로 벌어 놓았으니까”
“하하하! 그럼 다행이다.”
“여기 딱 맞더라. 안양역에서도 가깝고, 군부대가 많아서 주변의 주민들 반발도 그리 세지는 않을 것 같고 말이야. 게다가 오면서 내비게이션으로 보니까 가까운 곳에 없는 학교가 없더라. 일반 초중고에 공고에 예술고에 심지어는 대학교까지 있더라고?”
“맞습니다. 군부대로 인해서 기가 막히게 되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이만한 땅이 없는 것 같았다.
서울은 그야말로 지척이고, 교통도 나쁘지 않고, 군부대로 인한 지역 주민들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공원이나 시민 편의 시설도 많았다.
“원장님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하여 미리 좀 생각해 두시고요. 천천히 아버지도 소개해 드릴 테니까, 같이 준비하시면 될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일단 마무릴 짓고, 재단 설립과 운영을 도와줄 한 사람을 만나러 갔다.
장영동 교수.
불과 몇 년 전까지 대법원 판사를 했던 거물이다.
역시 제프리가 소개해 줬는데, 자신에게는 오촌 당숙이고 대법관을 마치고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분이란다.
개업하면 1년에 돈 100억을 버는 것도 일도 아닐 것인데 말이다.
평소에도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에 관심이 많은 양반이니까, 내가 재단을 설립한다고 하면 도움이 될 거라면서 연락해 놓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그 양반이 있는 학교의 교수실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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