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우리 그러면서도 잘 참았잖아?
다음날에 장영동 교수와 아빠를 만나게 해주었는데, 두 분은 연배가 비슷해서 그런지, 의외로 서로 잘 맞았다.
“으허허허!”
“하하하!”
뭐가 저리도 재밌는지 모르겠지만, 같이 일할 두 분이 사이좋으면 된 거지.
저러다가 금방이라도 호형호제라도 할 것 같아서 오히려 그게 더 불안할 정도였지만.
그러는 사이에, 비행기에서 난동을 부린 놈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속속 새로운 동영상이 올라오고,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으며 급기야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보비드림 아재들의 타겟이 되고 말았다.
순식간에 털리는 신상들.
참 재주들도 좋아?
대장 물산이 인터넷 검색순위 탑을 장식하였고, 그놈의 과거 더러운 행적들이 마치 신앙 간증이라도 하듯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결국, 언론의 열화와 같은 성토에 힘입어 검찰에서는 구속영장 청구라는 칼을 빼 들었고, 변호사도 제대로 구하지 못한 놈은 이전에 비행기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기소 중인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구속되었다.
콩밥 맛있게 먹어라.
깜빵 안에서까지 성질부리지 말고.
그러다 한 방에 간다.
뒤끝이 상쾌해진 상태에서 부모님과 소미와 함께 다시 제주도를 찾았다.
원래는 가까운 동남아라도 갈 생각이었는데, 소미가 고3이라 짧게 제주도만 다녀오는 것으로 하였다.
사회복지법인의 설립과 박달동의 국방부 소유의 부지 매입은 정말 쾌속으로 진행되었는데, 이게 다 장영동 교수의 힘이었다.
평생을 누구에게 청탁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분이 가엾은 아이들을 돕겠다고 나서는데, 누가 그 뜻을 거절할까?
그야말로 전화 한 통이면 다 해결되는 것을 보고서 내가 놀랄 정도였다.
서울대 나온 대법관 출신.
직접은 물론이고, 한 다리 거치면 모르는 곳이 없고,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
중간에는 리처드 막스 아저씨와 저녁도 먹었다.
물론 열혈팬인 우리 엄마를 모시고서.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리처드는 내가 보육원 아이들을 돕는다는 말을 듣더니, 즉석에서 내년에는 아이들 돕기 자선 콘서트를 한국에서 열겠다고 하였다.
“고마워요, 릭. 근데 한국 너무 자주 오는 것 아니에요?”
“왜 자주 오면 안 되냐?”
“아니 바쁘신 톱스타라서 그렇죠?”
“나 원래 한국에 자주와. 그냥 편하게 쉴 때도 카메라 들고서 한국의 산사 같은 곳을 자주 다닌다고?”
“그래요?”
“응, 그래도 누가 번잡하게 아는 척하는 사람들도 없고 풍경도 마음에 들어서 생각을 정리할 때라든가 뭐 비슷할 경우에는 그냥 혼자서 비행기 타고 오지. 이번에도 그래서 오는 거였는데, 그 미친놈 때문에 기분이 잡칠 뻔했잖아?”
“그랬죠?”
“그런데, 알렉스 너 때문에 너무 기분이 좋아졌어. 역시 한국은 나랑 잘 맞는 거 같아. 으하하하!”
“...”
이 양반 좀 이상한데?
차라리 UFC를 보러 다니던가?
남은 시간에는 오랜만에 직장에서 내 멘토와도 같았던 대성 어패럴의 이재하 부장을 만났다.
혹시라도 직장 근처에 만나면 예전 직원들 눈에 띌까 봐 디지털단지가 아닌 부장님 댁 근처인 석수역에서.
석수역에는 ‘맛나고 깔끔한’이란 이름의 음식점이 있는데, 정말 상호 그대로 여간 맛나고 깔끔한 것이 아니었다.
밑반찬 하나하나 어찌나 맛이 있는지.
“철식아!”
“재하 형!”
“이야야! 이놈 봐라? 너 전성기 시절로 돌아갔네? 아니, 몸매야 그렇다 치더라도 때깔이 이게 뭐야? 어이구! 이거 옷 봐라? 원단 죽이네? 수피마 코튼 중에서도 최곤데? 다 명품 아니야?”
“흐흐흐! 하여간, 누가 봉제쟁이 아니랄까 봐?”
역시나 내가 아는 대한민국 최고의 의류 생산 전문가답게 내가 입은 옷들을 보고 바로 최고급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정말 너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그러자. 나도 배고프다.”
대성 어패럴 퇴근 시간은 보통 9시다.
그전에는 일이 안 끝나니까.
그나마, 나를 만나기 위해서 일찍 빠져나온 것이 8시였다.
그러니, 배가 고플 수밖에.
“캬!”
“캬! 좋구나!”
역시 맛나고 깔끔한 집이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구나.
그렇게 정신없이 먹고 마시고 하다 보니, 어느새 테이블에는 소주 빈 병이 쌓이기 시작하였다.
“너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옷뿐만 아니라 시계도 장난이 아니네?”
“와! 정말 형 패션 알아보는 눈은 기가 막히네?”
“임마! 내가 돈은 없어도 이 바닥에 몇 년을 있었는데? 진짜 뭐야? 너?”
“미국에 가서 일이 잘되었어요.”
재하 형은 내가 미국에 가는지 아는 유일한 직장 사람이다.
“아무리 일이 잘되어도 그렇지? 1년 만에 어떻게?”
“투자 천재로 있는 내 친구가 있는데, 그놈 따라서 이리저리 투자한 것 중에서 IT주 하나가 대박을 터트렸어요. 일단은 그냥 그렇게만 아셔”
“우아! 좋겠다! 부럽다, 임마!”
내가 이래서 재하 형을 좋아한다.
분명히 납득이 안 가는 것이 뻔한데도, 그저 축하할 뿐 깊게 캐묻지 않는다.
“형은 어때요? 홍 사장님 여전하시나?”
“야! 말도 마라. 나도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제기랄!”
“크크큭!”
“왜 웃어?”
“이제야 한국에 온 것이 확실하게 실감이 나서. 우리 예전에 맨날 술 먹으면서 때려치운다고 했잖아?”
“아이 씨. 진짜야 임마! 며칠 전에 한번 들이 박았어”
“진짜? 홍 사장을? 왜?”
일에 관해서는 워낙 철두철미한 프로라서, 심지어 홍 사장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고 쉽게 태클을 걸지 못하였던 사람이 대성에서는 유일하게 재하 형이었다.
그런데, 들이박았어?
“왜? 또 공임 때문에?”
“아니 애들 빤스 한 장에 800원에 꿰매라는 것이 말이나 되냐고? 대한민국에서?”
“800원? 푸하하! 그건 너무 심했다?”
대성 어패럴은 모든 옷을 직접 원사를 수입하여 전부 임가공을 주는 시스템이다.
즉, 원사를 수입하여 편직(다이마루)이나 제직(우븐)을 하고, 원단이 나오면 염공집, 즉 염색공장에서 염색한 다음에, 오토나염과 피스나염을 거쳐서 완성된 원단을 봉제만 전문으로 하는 봉제 공장에서 옷으로 완성하여 물류에 납품하는 시스템이다.
그것도 중간에서 이 모든 프로세스를 대행하여 주는 이른바 프로모션 업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말이다.
그런데, 홍 사장이 임가공비에 대하여 보통 뻑뻑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임가공업체들이 말라서 죽기 전까지 쥐어짰는데, 임가공비에서 가장 큰 포지션을 차지하고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봉제업체에 가장 심하였다.
그러다 보니 생산을 진행하는 재하 형이 중간에서 엄청나게 고생을 하였다.
그나마, 회사 재무 상태가 워낙 좋아서 돈 떼일 염려가 없고, 어음으로 결제하지 않고 현금으로 주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업체들이 따라왔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이들 빤스 한 장에 800원은 너무 심했다.
최소한 기본 스타일에 1,000원은 주어야 하거늘.
“전주 사장님들 뒤집어 졌겠네요?”
“말 마라. 어떤 양반은 나 붙잡고 울더라. 대체 우리는 어떻게 먹고사냐고?”
“에휴! 조금만 유해지면 참 좋은데···.”
“누가 아니라냐? 우리보다 더 싸게 하는 업체 있으면 나와 보라고? 아니, 먹고 살게는 해주어야 하잖아? 그러다가 엎어지면? 또 그만한 공장은 어떻게 찾아?”
“형 고생이 많네”
“그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또 의심병이 도진 것 같더라”
“또오?”
생산부는 돈을 쓰는 부서다.
그러니까 우리가 갑인 거다.
영업부야 하늘 같은 대형 백화점들을 상대하니까, 우리가 슈퍼 을이지만.
그러니, 돈을 쓰는 생산부에서 혹시라도 업체에서 뒷돈을 먹을까 봐서 심심치 않게 의심을 하였는데, 또 홍 사장의 의심병이 도진 것 같았다.
대체 그 가격에 임가공을 하면서 어떻게 돈을 받냐고?
아니 그럼 직접 생산을 하시던가?
어느새 빈 소주병은 다섯 병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이 진짜.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 이젠 나도 그만 하산하련다.”
과거에 둘이서 늘상 하던 이야긴데, 인제 나는 거부가 되어서 재하 형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때는 나도 쉬펄, 저펄하면서 더 방방 뜨고는 하였는데.
“그만두려면 그만두셔. 형 그러다가 속병 나겠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나마 너 있을 때는 둘이서 밤에 소주라도 마시고 풀었지. 이젠 소주 마실 사람도 없으니 풀 곳도 없고 그래”
“그래서 언제 그만두실려고?”
“그래도 다음 시즌 원사 소요량을 발주는 해주고 가야지. 나 지금 그만두면 원사 소요량 계산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에이! 또 그런다? 형 그냥 나가요! 대체 맨날 왜 그래? 왜 쓸데없는 책임감을 그렇게 발휘하냐고? 그러다가 또 붙잡힌다?”
“야,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야. 넌 임마 화장실 소변기 앞에 붙은 문구도 모르냐? 당신이 머문 자리는 아름답습니다?”
“아오! 내가 형 때문에 미쳐!”
이 양반의 유일한 단점.
책임감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아니, 의심까지 받으면서 왜 때려치우는 회사 다음 시즌을 걱정해주냐고?
“내버려 둬 인마. 이 나이 때까지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았는데 인제 와서 어쩌라고?”
“속이 터지네요, 내가. 그래서 언제 그만두신다는 거야?”
“그래도, 다음 시즌 봉제 업체 분배까지는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미리 사직서는 내고서”
“갈 곳은?”
“내가 갈 곳이 없냐? 해외 나가기 싫어서 여기 있는 거지? 어쩔 수 없이 베트남이나 미얀마 현지 공장 파견이라도 나가야지 뭐”
“오라는 곳은 있어요?”
“몇 군데 오퍼하는 곳은 있어. 그중에 방글라도 있는데, 방글라는 나도 죽어도 싫고”
방글라 이야기는 나도 전에 들어본 적이 있다.
정말 더럽고 놀 곳도 없고, 환장한다고.
“재하 형”
“응”
“일단 그럼 있어 봐. 내가 좀 알아볼 테니까”
“네가? 네가 이 바닥을 어떻게 안다고?”
“내가 말이요, 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성공했거든? 그러니까, 어설프게 움직이려면 움직이지 말고 일단 계셔보셔”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형, 이 시계 가격이 얼마나 되는 것 같아?”
나는 왼쪽 손목을 내밀어서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를 보여주었다.
“엉? 그걸 내게 어떻게 알아? 한 1,000만 원 하냐?”
“1,000만 원? 이거 형 들어봤을 텐데? 바쉐론 콘스탄틴이야. 그중에서도 상위 라인이라 미국에서 10만 달러 좀 넘게 주었어. 싼 거는 2천이나 3천만 원대도 많지만”
“뭐? 그렇게나 비싸?”
“내가 형에게 시계 자랑질하려고 이런 소리 하는 것 아니야. 생각을 해봐. 내가 10만 달러짜리 시계를 차려면 돈을 얼마나 벌었을까? 물론 내가 시계 푸어도 아니고 말이야?”
“...”
“그러니까, 어설프게 움직이지 말고, 일단 계셔. 내가 맘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하고, 내 옆에서 잔 일이나 돕게 하면서 지금 받는 월급에 몇 배도 줄 수 있어. 하지만 그건 아니잖아?”
“그건 나도 싫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요. 내가 형에게 딱 맞는 일자릴 알아볼게. 형 실력이야 내가 익히 아는데, 형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 아니야? 넉넉잡고 1년 정도만 참아요. 형이 어디 가서 떠들 사람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고”
“휴우! 알았다. 그런데 1년을 어떻게 참지?”
“왜? 우리 그러면서도 잘 참았잖아?”
“푸하하!”
“흐흐흐!”
재하 형은 내가 사회생활 하면서 유일하게 의지하였던 사람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나만 잘 먹고 잘살 수는 없잖아?
며칠 후.
나는 다시 미국으로 향하였다.
지난번 비행기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지, 다른 일등석 승객들을 주시하였는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이상한 인간들은 없었다.
자, 다시 미국이다.
그럼 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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