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우리에게 맞는 일이나 있어?
다음 날, 우리 복지법인의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법인의 대표이사인 장영동 교수와 이사회 이사이자 사무총장인 우리 아빠, 그리고 얼떨결에 나와의 인연으로 끌려 들어온 박홍렬 변호사, 그리고 양혜원의 장유환 원장과 기동이 형, 신호 형이다.
원래 사회복지법인의 임원은 7명의 이사와 2명의 감사를 두게 되어있는데, 그중에서 정수의 3분의 1은 시·도 사회보장위원회나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추천을 받은 사람 중에서 선임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우리 사회복지법인 정화 재단도 지자체의 추천을 받아서 선임하였는데, 그 사람들은 빼고 우리끼리만 모여서 나름 진성 이사회를 여는 것이다.
어차피 내 돈으로 모든 것이 지출되는 복지법인이라, 특별히 이상한 짓만 저지르지 않으면 지자체 추천 이사들은 태클을 걸지 않는다고.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이렇게 번듯한 건물을 준공할지는 몰랐습니다. 장 교수님, 박 변호사님, 그리고 우리 아버지···.”
“하하하!”
“푸하하!”
우리 아버지에서 다들 빵 터졌다.
그럼 뭐라 부르냐고?
강만수 이사님? 아니면 사무총장님?
정식 이사회도 아닌데, 아버지라고 불러야지 뭐.
내가 홍길동도 아닌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소 부르는 아빠는 내가 좀 부끄럽고 말이다.
“험험, 하여간 장 원장님과 형들도 고생이 많았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별말을 다 하는군. 전부 자네가 준 돈으로 한 것인데 말이야.”
장영동 교수가 손사래를 치면서 겸양을 하였다.
장 교수는 얼마 전부터 내게 말을 놓았다.
내가 하도 강권하였으니까.
스타일 자체가 쉽게 말을 놓지 않는 타입이라 처음에는 내가 낮추라고 하는데도 싫다고 하여 난처하였는데, 말을 놓지 않으면 돈줄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웃으시면서 말을 놓기 시작하였다.
가만히 보니, 아빠와는 뽕짝이 맞아 호형호제도 하는 것 같던데, 어떻게 그리 된지는 모르겠다.
“그럼, 몇 가지만 여쭈어보겠습니다. 우리 사다리 센터의 지원 현황이 어찌 됩니까?”
“그건 내가 말할게”
“아빠가? 아니 아버지가요?”
“응, 실질적으로 내가 지원은 주도하고 있으니까. 먼저 우리 정화 복지 재단의 현재 주력 목표 사업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두 알다시피 국가의 지원이 열악한 보육 종료 아동에 대한 지원입니다. 이는 그들의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사다리 센터 건립과 운영으로 그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사회에 적응하여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은근슬쩍 경어를 쓰는 아빠였다.
아무래도 사회생활을 오래 하셨고, 장영동 교수나 박홍렬 변호사도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되는 것 같다.
그럼 나도 올려야 하나?
“사무총장님, 그럼 센터 건립으로 최소한의 의식주 문제는 해결하였다고 치자고요. 문제는 운영하면서 프로그램을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우리가 그 아이들을 죽을 때까지 보살필 수는 없잖아요? 하드웨어가 되었으니, 다음 문제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제라고 보는데요?”
“그렇지, 그래서 일대일로 진로 상담을 하여서 아이들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진로를 도출해 주고, 그에 맞추어 센터에서 지원할 예정입니다. 상담 교사는 일부 확보되었고, 계속 충원 중입니다.”
“그럼 어느 정도까지 지원이 되는 겁니까? 아이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학원도 다녀야 할 것이고, 교재도 사야 하며 교통비, 중식비 등의 최소한의 용돈도 필요합니다. 또한, 열심히 노력하여 대학에 합격하였다고 치자고요. 그럼 대학 등록금은? 저는 대학을 못 다녀서 잘은 모르지만?”
“어흠···.”
아빠가 찔리는지 헛기침을 하면서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하여간 대학 등록금과 용돈 등은 어떻게 되냐는 겁니다.”
“그건 제가 말씀드리지요.”
장 원장이 구원 투수로 등판하였다.
“대학 등록금은 지자체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보통 1회에 한하여 200만 원에서, 많으면 500만 원까지 지원 지자체에 지원합니다. 그것도 광주와 경북, 경남은 아예 없고요.”
“1회? 한 번 지원해주고 말아요? 없는 지자체는 또 뭐고요?”
“뭐, 지자체 사정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대학 등록금은 그나마 좀 난 편입니다. 이런저런 장학금들을 이용하면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학자금 대출도 있고요.”
“그럼요?”
“문제는 우리나라 대학이 등록금만 해결이 된다고 끝이 아니라는 거지요. 각종 교재비에다 중식비, 교통비, 실습비 등이 필요한데, 그것이 문제지요. 그러니, 많은 아이가 중도에서 포기합니다.”
“정부에서는요?”
“3년 정도 30만 원을 지원하는 것이 전부인데, 생각해보세요. 보통 집 아이들처럼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이 부모를 통하여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것을 스스로 사서 써야 하는데, 30만 원으로 될 것 같습니까? 턱도 없어요.”
“흐음···.”
한마디로 문제가 엄청 많으며, 그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이들의 멘토가 되고 상담을 해줄 인력은 계속 충원하면 될 문제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사장님”
“네, 말씀하세요.”
어쩌다가 공식적인 자리처럼 되어 버려서 다시 존댓말을 쓰는 장 교수, 아니 장 이사장이다.
“우리 사업 속도를 좀 더 내어 보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은 사다리 센터입니다. 일단 박달동 센터는 만들었지만,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250명에 불과합니다. 좀 더 많은 아이를 품을 수 있도록 추가 센터를 신속히 건립하지요.”
“하나 더 지으시게요? 부담이 많을 텐데요?”
“아니요, 두 개를 동시에 지을 겁니다. 자금 부담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이미 올해에 500억만 지원한다는 생각은 포기하였습니다.”
“두, 두 개를 동시에요?”
“네, 은평구 외곽이나 구파발이나 삼송쪽으로 알아보고 그쪽에 하나, 상계동 위나 구리 쪽으로 하나 해서 두 개를 동시에 지을 겁니다. 수용 인원은 많으면 좋겠지만, 인원이 많아지면 또 주변에서 난리를 쳐댈 테니까 3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짓자고요.”
“박달동 사다리 센터는 운이 좋아 국방부 소유 토지를 저렴하게 불하받을 수 있어서 저렴하게 건립한 편입니다. 그 점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사장님 말씀이 맞아, 철식아.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
아빠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하나도 무리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말씀 드리기 민망하지만, 올해 1/4분기에 내가 올린 수익만 1조 원이 넘습니다.”
“1, 1조?”
“으허억! 1조?”
“...”
“...”
내 말에 아빠는 물론이고 모두 얼이 빠져버렸다.
민망하기는 하지만, 자꾸 자금 부담을 우려하니까 이런 식으로 잠재워 버리는 수밖에.
“만수 동생”
“네, 형님”
“자네 아들 대체 뭔가? 자넨 사업하다가 말아먹었다면서?”
“...”
에이, 이사장님도. 아빠가 민망하게 시리.
“험험, 하여간 그래요. 그러니 돈 걱정은 다시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사업에 영향이 전혀 없는 수준에서 돈을 빼는 것이니까요.”
“알겠습니다, 허허허!”
“센터는 그럼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시공은 대양의 박상환 회장에게 맡기면 최대한 저렴하게 계속해줄 겁니다. 어제 기본적으로 말은 해놨어요. 물론 다른 업체와 비교 견적은 내보시고요. 아직은 완전히 믿지는 못하니까요.”
“알겠습니다.”
공사비로 장난만 쳐봐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일단 우리 품 안에 들어온 아이들은 제가 책임을 지고 싶습니다. 센터에 들어온 아이들 지원을 대폭 강화해 주세요. 공부 잘하는 아이가 의대를 가고 싶다? 그럼 보내주세요. 얼마가 되든, 등록금 등의 일체 학비 제가 다 부담합니다. 이건 양혜원 장 원장님도 아이들에게 꼭 주지시켜 주세요. 공부만 열심히 하고 착하고 바르게만 지내면, 하고 싶은 모든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말이지요.”
“허···.”
“학원에 다니고 싶으면 부잣집 아이들처럼 원하는 전부를 수강하게 해줄 수는 없지만, 필요한 최소한의 과목은 다니게 해주세요. 학원 못 다녀서 공부 못했다는 소리 듣기 싫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시주님!”
“마지막으로, 아이들 용돈도 현실화하세요. 넉넉한 집 아이들처럼 풍족하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은 해주자고요. 아이들도 가끔은 맥주 한잔이라도 먹고 싶을 터이고, 크게 돈 안 드는 취미 정도는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대학을 못 가서 잘 모르지만···.”
“고만 좀 하지 않으련?”
아빠가 살짝 뿔이 난 것 같다.
그만 쑤시자.
“어흠! 하여간 대학에 가서 가는 MT니 이런 것도 다 돈을 내지 않겠습니까? 수학여행도 마찬가지고요? 최소한 내 품에 있는 아이들은 그런 거 보내주고 싶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아시겠지요?”
“허허허! 물론입니다. 아이들이 나태하거나 늘어지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용돈을 계산하여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모가 없거나 버린 아이들이다.
부모가 있는 넉넉한 아이들처럼 우리가 100%를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출발은 비슷하게라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언젠가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모든 불리함을 극복하고 훨훨 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우리 센터 이름이 사다리 아닌가?
두 번째 안건으로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 지원 건인데, 일단 서울 경기와 서울 소재 보육원의 고등학생부터 본인이 희망하는 과목, 한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학원비를 지원하고, 성적 우수자에 대하여는 대학교 학비도 일부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럼 인천과 충청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고?
내가 이 세상 모든 아이를 감당할 수는 없잖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하나씩 하는거다.
“철식아!”
“웅? 아빠?”
아빠 차를 타고서 집으로 같이 퇴근하는 길에 아빠가 운전하면서 날 불렀다.
“너, 오늘 보니까 참 잘하더라”
“뭘요?”
“대법관,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들 앞에서 회의를 주재하면서 참 잘하더라고. 아빠가 얼마나 뿌듯했는지 아냐?”
“에이, 뭘 그 정도 가지고?”
“아냐, 네가 내 새끼지만 참 장하더라고”
“흐흐흐! 그만하셔요.”
“그런데 말이야.”
“뭐요?”
“제발 그 대학 못 간 타령 좀 고만하지 않을래? 아무리 내가 잘못했어도 그렇게 아빠 가슴을 쑤셔대야 시원하냐? 응? 시원하냐고 이놈아!”
“...”
그렇게 칭찬으로 시작해서 타박으로 끝나는 하루가 되었다.
“정말? 정말 미국에 안 올 거야?”
“응, 신호하고 전부터 이야기되었어”
미국으로 가기 전날, 기동이 형하고 신호 형과 소주를 마시는데, 형들이 미국에 오지 않겠다고 한다.
사다리 센터 건립과 복지 재단 창립 등으로 바쁘다고 차일피일 미국에 오는 것을 미루더니만.
“왜? 이유가 뭐요?”
“그럼 하나만 묻자. 넌 왜 우리보고 미국에 오라고 한 건데? 우리에게 맞는 일이나 있어?”
“...”
사실 형들보고 미국에 오라고 한 것은 약간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양혜원 일로 오랜만에 봤을 때, 너무 반갑기도 하였고, 또 기동이 형과 신호 형 일이 잘 풀리지도 않고 말이다.
더군다나 그때는 내가 미국에 머무르던 초기로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여서, 막연히 믿을만한 두 사람이 미국에 와주었으면 내가 참 든든할 것 같았다.
그런데, 솔직히 미국에 적응한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형들이 오면 천천히 미국에 적응시키면서 일을 배우게 하려고 하였고, 정 적응을 못하면 원래 전공들인 이지스 업무를 보게 할 생각도 있었다.
“신호나 나나 지금 일이 너무 좋아. 어쩌다가 떠안은 일이지만, 그렇게 보람될 수가 없더라고. 게다가, 이사장님이나 너희 아버지도 너무 좋으시고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복지 재단은 우리가 처음부터 발로 뛰고 키워와서 중책을 맡은 상황이고, 우리 스스로가 여기서는 중요한 인물이란 자부심도 들어. 하지만 미국에 가면?”
“흐음···.”
“네가 그 당시에 어떤 생각인지는 아는데, 지금은 상황이 또 다르잖아? 우리도 아는 조지나 제프리와 존이란 사람이 네 옆에서 확고히 자릴 잡은 것 같고 말이지? 그런데, 우리가 굳이 미국에 갈 이유가 있을까? 여기서 일하다 보면 복지업계의 거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복지업계의 거물은 또 뭐야?”
“임마! 네가 계속 후원할 것 아니야? 그럼 우리는 거물이 되는 것이고? 너, 돈 열심히 벌어야 한다?”
“푸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그래, 이것도 형들의 선택, 나는 돈을 열심히 벌어서 후원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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