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로또로 역대급 재벌!-46화 (46/250)

46. 콩과 고기와 야채의 합창이여!

2018년 새해가 밝았지만, 직원 모두에게 1월 7일까지 휴가를 주었기에 나는 쓸쓸하게 우리 집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존이 제인과 에이미를 데리고 하와이를 간다면서 같이 가자고 하였지만, 내가 무슨 불우이웃도 아닌데 자꾸 존의 가족 행사에 꼽사리를 낄 수는 없는 거다.

조지 녀석도 여자 친구와 휴가를 간다고 가버린 다음이라 넓은 집안은 정말 적막하였다.

이거 다음부터는 나도 한국에 가든지 해야지 원.

하루 이틀 빈둥거리다가 샌 호아퀸에 있는 이지스 컴퍼니 훈련장에서 사격도 하고 하면서 혼자서 놀기도 지칠 때쯤,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전화벨 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것도 참 오랜만이네.

게다가 발신자를 확인하니 친애하는 리사 아줌마다.

- 알렉스?

“오! 리사! 해피 뉴이어!”

- 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흐흐흐! 반가워서 그렇지요?”

- 너희 회사 이번 주 그냥 내리 쉰다고 하더니만, 직원들 전부 휴가 가고 혼자 있는 거니?

“쩝! 뭐 그렇지요.”

여자를 만날 새가 있었어야지?

업무적으로 만난 여자들은 죄다 내 돈을 노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왠지 꺼려졌고.

- 으이구, 허우대는 멀쩡해 가지고 여자 친구도 못 만들었어?

“그런 말씀 하시려면 괜찮은 여자라도 소개시켜 주고서 하던가?”

- 됐네! 이 사람아! 그건 그렇고 나 LA에 왔는데, 별일 없으면 얼굴이나 보든가?

“진짜요? 나야 좋지요?”

- 알았어, 그럼. 비서가 주소 찍어 줄 테니까, 이따 저녁에 보자

“오케이!”

저녁에 리사가 찍어준 주소로 향하자, 상당히 고급 레스토랑이 나왔다.

이래서 드레스코드 신경 쓰라고 하였었군.

“안녕, 알렉스”

“리사 아줌마, 정말 반갑네?”

“지난달에도 보고 뭐가?”

“그냥요. 왠지 리사의 그 멜랑꼬리한 얼굴을 보고 싶었어요, 흐흐흐!”

리사의 표정은 언제봐도 참으로 묘하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어떻게 보면 스티븐 시걸 같은 표정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입고 다니는 옷도 바꿔 입기는 하지만, 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항상 어두운색 계열의 재킷을 걸치고 있으니까.

언젠가 내가 스티브 잡스의 흉내를 내는 것이냐고 놀렸는데, 그냥 편해서 그렇게 입고 다닌다고 하였다.

“알렉스, 인텔 소식 들었어?”

“뉴스는 봤는데, 나는 이쪽에 문외한이잖아요? 심각한 거예요?”

1월 3일에 인텔의 CPU에 중대한 버그가 있다고 시끄러웠는데, 내가 그게 뭔지 알 리가 있나.

직원들도 전부 휴가였고, 이쪽 계통에 버그가 있는 것이 크게 새로운 것도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리사가 물어보는 것을 보니 그게 아닌가 본데?

“응, 아주아주 심각한 거지. 인텔 제국이 이걸로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고 봐도 될 거야”

“그 정도예요?”

“CPU 생명이 뭐겠어? 속도? 발열? 다 좋은데, 그 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이?”

“글쎄요?”

“아이, 참! 알렉스도 좀 이쪽에 관심 좀 가져 봐! AMD 지분을 절반이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게 뭐니?”

“...”

미안하외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는 보잉에도 투자하였으니 비행기에도 해박해야 하고, 아비오메드도 투자하였으니 심장 관련 의료 기구에도 빠삭해야 한다.

나보고 어쩌라고요?

“일단 설명부터 해주시지요? 내가 투자한 종목이 몇 개인데, 그 종목에 관련된 것을 다 알 수는 없잖아요?”

“하기는 그것도 그러네. 하여간 CPU의 생명은 속도고 발열이고 따지기 전에 무조건 기본은 보안이야 보안! 좀 느리고 열이 나는 것은 불편하고 짜증이 날 뿐이지만, 보안이 무너진다는 것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사용자에게 입힌다는 것이니까. 그것이 기업이든 개인이든 간에 말이야.”

“그거야 그렇지요. 그런데요?”

“그런데요라니? 인텔의 CPU에서 그 보안이 엉망인 것이 발견된 거지? 게다가 지금은 속수무책인 상태라니까? 제로데이 공격에 완전히 무방비로 노출되어 버렸으니 말이야.”

“제로데이 공격?”

“하아, 알렉스! 너는 정말 무식하구나?”

“우리 인간적으로 너무 상처 주지는 말지요?”

반도체를 설계하는 사람하고 투자하는 사람하고 같냐고?

“제로데이 공격(Zero-day Attack)은 취약점이 발견된 후에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받는 해킹을 의미하지. 대책이 없는 상태나 미처 패치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전에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까요?”

“바로 그거야. 지금 인텔의 상황이 말이야”

“아니, 그럼 비밀로 했다가 보안대책을 세우고 나서 발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당연히 그래야지만, 이번의 경우는 인텔이 작년부터 구글에서 발견하고 경고한 무시하였고, 뒤늦게 인지하여 마이크로소프트나 리눅스 같은 대형 고객에게 먼저 경고하여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노출이 되어버려 어쩔 수 없이 발표한 거지. 그것도 구글에서 말이야.”

“허!”

인텔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한데?

“아니 그러면 조만간 패치를 배포하면 해결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게 근원적으로 해결도 되지 않을뿐더러, CPU 성능의 심각한 저하를 유발하니 문제라는 거야.”

“성능이 많이 떨어져요?”

“우리 연구소에서 테스트한 결과로는 파일 시스템 I/O 쪽은 50%, 다른 성능은 6~15% 정도?”

“후아!”

“이거 보통 사태가 아니야. 벌써부터 이 바닥에서는 ‘CPU 게이트’라고 할 정도니까”

리사 아줌마의 말을 들어보니, 100% 이해는 불가하지만 하여간 큰일이 난 것 같았다.

가만? 그럼 우리는?

“우리 AMD는 괜찮은 거예요?”

“우리는 다행히 괜찮아. 결함 유형을 나누면 멜트다운과 스펙터로 나누는데, 가장 심각한 결함인 멜트다운은 마이크로 아키텍처 설계가 인텔하고 달라서 아예 상관이 없고, 다만 스펙터만 일부 영향이 있는데 우리는 조만간 그 소소한 영향 자체도 완전히 없앨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니까”

“후우! 그거 다행이네요?”

아주 다행이다.

그리고 인텔의 불행이라면 우리에게는 행복이 아닌가?

“하여간 인텔 제국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면, 우리는 좋은 거잖아요?”

“호호호!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니?”

“흐흐흐! 난 투자가라고요? 투자가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요. 하여간, 우리는 괜찮은 거죠?”

“그럼? 이제 AMD는 본격적으로 성장 가도로 들어선다고 보면 될 거야. 작년 4분기도 6,000만 달러 이상 흑자로 전환되고 매출도 많이 늘었거든.”

“이참에 인텔을 넘어서야지요? 좋은 기회 같은데?”

“알렉스, 너무 서두르지 말고 내년을 기다려”

“내년에 뭐 있어요?”

“내년에 3세대 Zen 2가 나와”

“잘 나올 것 같아요?”

“그럼? 인텔이 14nm 공정에 머물고 있는데, 우린 7nm 공정으로 가는 거라고? 인텔 제국? 이젠 끝이야.”

“우와와와!”

대체 몇 년 사이에 이럴 수가 있나?

세상에 그 인텔을 제낀다니?

내가 투자할 때만 해도 정크 등급의 회사로 그 누구도 회생을 예상하지 못하였는데 말이다.

오죽했으면 인텔이 독점 문제로 일부러 AMD 숨통을 틔워준다는 말이 나돌았을까?

“리사”

“왜? 알렉스?”

“잘해봐요.”

“잘하면?”

“뭘 해줄까요? 연봉이야 당연히 최고로 해드리겠지만?”

“글쎄다?”

“괜찮은 와인 농장을 하나 사드릴까?”

“호호호! 그거 좋지?”

“알았어요. 내년에 그 Zen 2만 잘 나오면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좋은 와인 농장을 사드릴게”

“너, 약속했다?”

“흐흐흐! 그럼요?”

즐겁게 만찬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리사가 다시 나를 불렀다.

“아! 참! 알렉스!”

“음? 왜요?”

“너 4월에 시간 내서 나랑 중국 상하이나 같이 가자”

“중국? 상하이? 거긴 왜요?”

“4월에 상하이에서 포뮬로 원이 열리는데, 우리 AMD가 페라리 스폰서거든? 그래서 내가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고. 너 페라리 좋아하잖아? 차도 한 대 있고 말이야?”

“페라리 싫어하는 남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요”

“호호호! 하긴”

“만사를 제끼더라도 갑니다!”

“오케이!”

직원 휴가 중에 그나마 리사를 만난 것이 유일하였고, 다음날인 주말부터 월요일까지는 영락없이 다시 운동하고 수영하고 센 호아퀸에 가서 사격하고 하는 무료한 날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주방을 담당하는 제니도 오랜만에 한국의 친정 식구들을 만나러 갔기 때문에 먹는 것도 시원찮았다.

그동안은 제니가 만들어 놓은 음식으로 연명하였는데···.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해서 주방을 기웃거리는데, 제니를 도와 주방일을 하는 카밀라가 보였다.

카밀라는 연휴를 먼저 끝내고 내 수발을 들어준다고 새해 들어서 처음 출근한 거였다.

아마도 사전에 제니와 그렇게 하기로 이야기가 된 듯싶었다.

“안녕하세요, 세뇨르”

“아, 안녕 카밀라. 좀 더 쉬지 않고서?”

“호호! 제니와 사전에 약속했어요. 주말에는 먼저 나와서 정리해 놓기로요.”

“에에, 그냥 쉬지 그랬어요? 모처럼 쉬는데?”

“괜찮아요, 세뇨르. 제니가 따로 수당을 챙겨준다고 했어요.”

“그래요? 그럼 넉넉히 받아요? 내가 제니에게 말해놓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집안이 평온해야 만사가 형통하는 법이다.

나는 그래서 우리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가능하면 후하게 해줬다.

대우 안 좋다고 들락날락하는 것도 싫었고.

킁킁!

근데 이게 무슨 냄새지?

“근데 이게 무슨 냄새에요?”

“아! 제가 먹으려고 치폴레에서 타코하고 부리또 좀 사 왔는데 드셔 보실래요? 넉넉히 사 왔으니 충분하거든요?”

“치폴레? 치폴레가 뭐지?”

“어머나! 치폴레를 모르세요? 치폴레 멕시칸 그릴?”

“엉? 모르는데? 뭐에요?”

“세상에! LA에 몇 년을 사셨는데 치폴레를 모르다니!”

모를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리 놀라나?

“뭔데요?”

“뭐냐면, 멕시코 음식 전문점이에요. 타코나 부리또 같은 것을 파는···.”

“에이, 그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어머머! 무슨 말씀을? 그럼 맥도널드는 아세요?”

“세상에 맥도널드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세뇨르, 미국에서는 치폴레가 맥도널드보다 더 사랑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예에? 그 정도예요? 설마?”

“어머 진짜라니까 그러시네? 검색해보시면 알잖아요?”

“그건 그렇고 배고픈데 내 것도 되어요?”

“호호! 그럼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카밀라가 접시에 큼지막한 부리또를 가져다주었다.

“제 입맛에 맞추어 주문해서 어떨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드셔 보세요.”

“흐흐! 고마워요. 이거 냄새는 좋은데? 어디···.”

부리또를 들어서 입에 넣고 씹어봤다.

와그작!

오오오!

맛있다!

이 절묘한 콩과 고기와 야채의 합창이여!

와구! 와구! 쩝! 쩝!

너무 맛있어서 순식간에 치폴레 부리또는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

“이, 이거 맛있잖아?”

“호호호! 내 말이 맞지요?”

“진짜 맛있네요?”

“하나 더 드실래요?”

“오케이!”

와구! 와구! 짭짭!

이번엔 살짝 다른 맛인데, 이것도 맛있었다.

대체 이거 뭐지?

신기한 마음에 부리또 싼 포장지를 보는데, 엉뚱한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반짝! 반짝!

뭐, 뭐야?

설마 멕시코 음식점에 투자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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