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우리 회사 하나 만들까?
리사 아줌마와는 상하이 포뮬러 원 페라리 스폰서 일정을 마치고 난 뒤에도 같이 중국 남부지역의 반도체 산업단지를 돌면서 일주일 정도를 체류하였다.
근처에는 주로 파운드리 업체들이 많았는데, 상하이 지역의 HLMC와 SMIC의 규모가 꽤 인상적이었다.
역시 중국은 중국.
뭘 해도 규모가 어마어마하구나.
내가 반도체 공장을 처음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뒤를 이어서 우시, 허페이지역 단지들도 갔는데 이건 뭐···.
“이거 정말 엄청난데요?”
“대부분 가동 준비 중이거나 짓고 있는 것이 이 정도야. 여기 말고도 중국은 정부 차원에 엄청나게 지원해서 반도체를 밀고 있나 봐”
“뭐, 반도체 굴기라고는 하더라고요.”
“알렉스, 너 긴장 안 돼?”
“내가 왜요?”
“중국이 가동하거나 준비하는 반도체 공장들은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과 많이 겹칠걸?”
“그래요?”
“응. 파운드리야 내가 태어난 대만의 TSMC도 주력이지만, D램, 낸드플래시 등에 엄청나게 투자하나 보더라. 한국의 TK로우닉스나 사성도 중국에 공장을 가동하거나 준비 중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걸 내가 긴장해야 하나? 그럼 리사는 대만 때문에 같이 긴장해야 하게요?”
“호호! 그런가? 나는 태어나기만 대만에서 태어났지, 미국에서 자란 미국인이라서 뭐 그리 특별한 감정은 별로 없어”
“그래요? 나는 뭐 여전히 한국인이니까요. 앞으로도 한국인으로 죽을 것이고요.”
“거보라니까? 알렉스 너는 본인은 부인하면서도, 은근히 애국심 같은 것이 많더라. 그래서 농담한 것이고”
“내가? 애국심이 많다고?”
내가 그랬나?
그리 투철한 애국심을 가졌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저 보통 한국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리 보였나?
“왜 아니라고 하려고?”
“글쎄요? 난 내가 특별히 그런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하나만 물어볼까? 알렉스 너, 군대 갔다고 했지? 그것도 내가 알기로는 상당히 힘든 곳에서 있었다고 들었는데?”
“뭐, 평범한 한국 남자들보다는 조금 오래 했고, 간부로 했을 뿐이에요.”
“하여간, 그럼 아직 예비역이야?”
“윽! 아픈 곳을 찌르시네? 넵, 아직 예비역이에요.”
부사관 출신이라 하사 연령정년인 만 40살까지 예비군이다.
남들은 민방위 끝날 나이인데 말이다.
물론 동원 대상이야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럼 말이야, 만약에 북한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야?”
“예? 북한 쳐들어오면?”
그럼 당연히 참전해야지?
“당연히 참전해야지요?”
“그게 왜 당연한 거지? 한국의 법이 어떤지는 몰라도, 적어도 미국에 영주권자로 있으면 실질적으로 참전을 강제할 수는 없을 텐데? 게다가 알렉스 같은 슈퍼리치라면 더더군다나?”
“...”
그러게?
그게 왜 당연하다고 하였지?
그런데 진짜로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터지면 어떻게 하지?
5초 정도 생각하였는데,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내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들과 내가 아는 모든 것이 한국에 있었다.
미국에서 나만 맘 편하게 호의호식하면서 지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난 특별히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재산을 제외한 내 모든 것이 한국에 있어요. 그러니 참전할 겁니다.”
“부모님과 여동생이 미국에 있어도?”
“네. 그건 의무이기 전에 내 뿌리에 관한 문제에요. 리사야 미국에서 자랐지만,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군대까지 갔다 온 사람이에요. 그럴 생각도 없지만, 설사 내가 미국 국적을 따더라도 참전할 겁니다.”
“호호호! 거봐? 그게 애국심이 많은 거야. 다른 한국 부자들은 한국에 있어도 미국으로 도망 못 쳐서 난리일 텐데?”
“에이, 난 원래부터 부자가 아니었어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다고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한국이 중국에 반도체로 뒤지면 알렉스 기분이 좋겠어?”
“...”
상당히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리사 생각은 어때요? 중국이 이런 식으로 국가적으로 천문학 투자를 한다면 조만간 한국이 따라 잡힐 것 같아요?”
“흐음. 글쎄?”
“에이, 솔직하게 말해 봐요. 리사 정도면 보는 눈이 있을 거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언젠가는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올지는 몰라도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굉장히 어려움도 많을 것이고”
“중국 정부에서 돈을 저렇게나 쏟아붓는데도요?”
돈질이면 못 하는 것이 없는 것이 세상사 아닌가?
“그건 알렉스가 우리 반도체 산업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반도체는 자동차도 아니고, 일반 전자산업도 아니어서 그렇게 정부에서 돈을 지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럼?”
“한국이 일본을 추격하는 데에 걸린 시간을 15년 정도라고 보는데, 요즘은 반도체의 고집적화와 기술의 진보로 시간이 더 걸려. 아마 20년에서 25년은 생각해야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조건으로 따라잡을 수 있어. 그것도 중국이니까 거대한 시장을 배경으로 하여 가능한 것이고”
“그래요?”
“응. 게다가 반도체는 산업 특성상 라인 하나 까는 것에만 최소한 50억 달러 이상에서 고집적 라인은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러고 나면 상대는 더 도망가 있다는 거지”
“호오?”
“반도체 산업을 우습게 보지 마. 그 일본이 손을 든 산업이야. 더욱 중국이 곤란한 것은 미국이 본격적으로 칼을 들기 시작했다는 거지. 대부분의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이 작심하고 나선 이상, 쉽지 않을 거다.”
“그건 현재 미국 정부 성향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모르는 소리 하지도 마라. 민주당이 집권하면 나을 것 같아? 아마 더하면 더했지, 똑같아.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은 민주당이고 공화당이고 단결하였어. 뭐, 중국이 자충수를 많이 두었으니 할 말이 없는 거지”
리사의 말을 들으니, 은근히 안심이 되었다.
그나마 우리나라 경제를 견인하는 것이 반도체인데 말이다.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대만도 따지고 보면 중국인데, 리사 같이 대만 출신 미국인들은 서로 어떻게 지낼까?
예를 들어 엔비디아의 젠슨 황하고는?
“리사”
“응, 알렉스”
“엔비디아의 젠슨 황과는 사이가 어때요? 내가 듣기로는 리사와 젠슨 황이 가까운 친척이라는 말도 있던데?”
“어떤 자식이 그래!”
“엉? 왜 그리 발끈해요? 아니면 아닌 것이지?”
“내가 하도 그런 소릴 많이 들어서 그래. 피 한 방울 안 섞여 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래요?”
“굳이 따지면 젠슨 황 엄마의 여동생, 그러니까 작은이모가 우리 외할아버지와 ‘재혼’을 했어”
“오잉? 그럼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니까? 우리 엄마 형제들이 다 크고 나서 외할아버지가 재혼한 건데, 뭐 어쩌라고? 하여간, 난 젠슨 황 그 인간 재수 없으니까, 자꾸 이상하게 엮을 생각은 하지 마”
“푸하하! 아니 왜 그렇게 젠슨 황을 싫어하는 거예요?”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 하는 짓이 원래 그래. 우리 업계에서는 유명하다고? 사성이고 TK로우닉스고, 애플이고, 인텔이고, 리눅스고 간에 그 인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대체 웬 욕심만 그리 많아서 말이야.”
“흐흐흐!”
젠슨 황이 유난히 욕심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무래도 많이 심한 것 같았다.
나야 뭐 상관없는 이야기다.
어떻게든 회사를 잘 키워서 내게 이익을 가져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리사와는 며칠 더 중국 반도체 산업 투어를 하였는데, 리사가 워낙 이 바닥에서 신화 같은 존재이다 보니 나도 덩달아서 후한 대접을 받았다.
내가 누구냐고 물으면 리사가 나를 AMD의 최대 주주이자, 미국 투자계의 거물이라고 소개하고 다녔으니까.
심지어는 우시에 있는 우리나라 기업인 TK로우닉스 공장에 갔을 때는 로우닉스의 중국 법인장이 내가 중국계 미국인인 줄 알고서 영어로 대화를 하다가 혼자서 한국말로 궁시렁거리는 것을 알아들으니 기겁을 하더라.
어디를 가나 말조심하자.
“하나! 둘! 셋!”
짝짝짝짝!
리사와의 중국 일정을 마치고는 곧장 한국으로 입국하였다.
고양시 삼송 인근에 짓고 있던 사다리 센터 2호점(?)이 준공되었기 때문이다.
남양주 쪽에 짓는 중인 3호 사다리 센터는 아직도 몇 달 정도 더 있어야 준공된다고 하는데, 부지 구입이 늦어져서였다고 한다.
그 동네도 아파트가 다 들어차서, 보육 종료 아동들을 보호하는 센터를 짓는다고 하니 주민들 반대가 엄청났다고.
제기랄, 애들이 무슨 범죄자들이냐?
왜 같은 동네에 살지도 못하게 하는데?
특히나 젊은 부부가 많이 입주하여서 더 그렇다는 말을 듣고서 어찌나 씁쓸하던지.
“시설이 박달동보다 훨씬 좋은데? 크고 말이야?”
“당연하지. 박달동 사다리 센터를 지을 때 시행착오를 모두 반영하였으니까”
이제는 사회복지법인 정화 재단 지원실장으로 제법 포스가 풍기는 기동이 형이 나를 안내하였다.
“오오! 지하에 수영장까지?”
건물 지하에는 25미터짜리 수영장도 있었는데, 웬만한 민간 수영장보다도 시설이 좋아 보였다.
“수영장뿐만이 아니라, 피트니스 센터와 강당 겸 실내 체육관도 있어. 거기서 애들 격투기도 좀 가르칠 거야”
“호오? 격투기도?”
“응, 내가 몇 년 애들하고 부대껴 보니까, 뭐랄까? 애들이 많이 위축되어 있더라고. 그래서, 사다리 센터에는 모두 격투기 과정도 만들어서 희망하는 애들에게 가르칠 생각이다.”
“그거 생각 잘하셨네. 그럼, 누가 가르치려고요?”
“나와 신호는 바빠서 가끔 신경 쓰는 정도밖에 못 하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을 부르려고 해”
“혹시 그 아는 사람들이 나도 아는 사람들일까?”
“아마 태반은 그럴걸?”
“푸하하하!”
“하하하!”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이다.
기동이 형 말로는 외부의 인식과는 다르게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것에 익숙하여서, 오히려 평범한 부모 있는 가정 출신의 애들보다 조용하다고 한다.
하여간, 굉장히 위축된 아이들도 많고, 부모 있는 집이라면 웬만하면 한 번씩은 다녀본 그 흔한 태권도 교습도 못 받았단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일단 자신의 몸에 자신감이 생기면 아이들도 많이 밝아질 것이다.
“기동이 형”
“응?”
“격투기고 복싱이고 가르치려면 제대로 가르쳐요. 내가 모든 지원을 다 해드릴 테니까. 사범들도 원하는 사람들은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고요. 본인이 안정되어야 제대로 가르칠 것 아닌가?”
“그렇지”
“내가 장 이사장님과 아버지에게도 따로 말씀드릴게. 처우도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견기업 수준은 해주고 말이야.”
“그럼 좋지?”
격투기나 무술 하는 사람들 생활은 정말 안정이 잘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 보안업체 직원이나 도장을 차리는 것인데, 도장도 태권도 학과나 유도학과 등이 있는 유명 체대 출신들에게 밀려서 잘 안 된다고 하고.
그러니,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정식 채용하면 누이 좋고 매부께서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이들 가르치는 사범 수요는 많지가 않은데 어쩌지?
“흐음···.”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한국에도 이지스 컴퍼니 같은 것을 만들까?
유능한 경호원을 구하는 수요가 제법 될 것 같은데?
소미에게도 제대로 붙여 놓고 말이다.
인력이야 기동이 형하고 신호 형이 가지고 있는 인력풀만 동원해도 쉽게 구할 것이고 말이다.
“기동이 형”
“왜?”
“우리 회사 하나 만들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