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이건 집이 아니다.
내가 가족과 해외여행을 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 당시는 우리 집이 제법 잘 살 때여서, 아빠가 데리고 태국에 데리고 간 거였다.
소미야 어려서 기억도 나지 않을 텐지만.
그리고, 그 이후야 뭐···. 마음 편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할 때이니 여행은 그야말로 꿈도 꾸지 못하였고.
그래서, 내가 미국 파워볼에 당첨되고 나서 한 번 간다고 해놓고 이리저리 바쁘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소미의 중간고사가 끝나고 학교 축제 기간에 맞추어서 일정을 잡았는데, 축제 기간 앞뒤로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하면 열흘 이상은 뺄 수 있을 것이라 하여 12일짜리 장기 여행이 되어버렸다.
첫 번째 목적지는 필리핀의 세부이다.
필리핀의 제2의 도시이자, 한국인들이 워낙 많이 다녀서 경상남도 세부시라고 불리는 그곳이다.
하고 많은 좋은 관광지 중에서 첫 번째 여행지가 필리핀 세부가 된 것은 전적으로 엄마 때문이다.
“아니, 엄마? 대체 왜 세부가 가고 싶으신데? 하와이도 좋고, 몰디브도 있고, 아니면 12일이나 되니까 유럽도 빡빡하기는 하지만 가능한데?”
“그러게? 아니, 엄마 왜 하필이면 필리핀이야? 거기 내가 어학연수로 가봤잖아? 별로야 별로! 더럽고 위험하다고? 차라리 동남아로 갈 것이면, 인도네시아 발리나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같은 곳이 어때요? ”
소미와 내가 결사적으로 엄마를 뜯어말렸다.
대체 필리핀이 웬 말이냐고?
내가 어학연수를 한 곳은 그래도 필리핀에서 제일 시원하고 치안도 좋다는 북부 루손섬의 교육도시 바기오였는데, 거기도 개뿔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말 한마디에 소미와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게 말이지,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아빠 사업 망하기 직전에 가족여행을 가려고 했던 곳이 필리핀 세부였거든. 그래서 엄마 소원은 예전부터 우리 집이 다시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려고 했던 세부를 가는 것이었어. 물론 너희들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그냥 다른 곳으로 가지 뭐···.”
“...”
“...”
아니 그런 사연이 있으면 진작에 말씀하시던가?
왜 자식들을 못된 자식으로 만드냐고?
“아이, 그럼 진작 말씀하시지? 갑시다! 세부!”
“그래요, 엄마! 나도 원래는 세부가 가고 싶었어”
이렇게 되어서 세부로 결정이 났다.
하지만, 12일을 필리핀에서만 있는 것은 너무 아닌 것 같아서, 필리핀에서 절반을 있고 나머지는 인도네시아 발리로 가기로 하였다.
“보스! 오셨습니까!”
“하하하! 해리! 이거 은근히 오랜만이네?”
인천 국제공항에서 출발하여 거의 5시간 비행 끝에 세부 막탄 국제공항에 내려서 출국장을 나서니, 내 경호 팀장 해리가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원래도 필리핀은 위험하다고 소문난 곳이지만, 특히나 내 기억으로는 치안이 정말 막장인 곳이었다.
그나마 치안이 제일 좋다는 바기오에 있었는데도, 같은 어학원에 다니던 놈 중에서 둘이 소매치기를 당하였고 한 명은 칼침까지 맞아서 병원에 실려 갔던 꼴을 봤었으니까.
물론, 가지 말라고 경고한, 바기오에서는 몇 되지 않는 유흥가에 갔다가 그리되었지만.
그런데, 세부는 외교부에서 공항이 있는 라푸라푸시를 제외한 전 지역을 무려 여행 자제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아니, 일 년에 한국인 40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고 하는 곳이 여행 자제지역이라니?
그 소리를 듣고서 황당하였지만, 맞다고 하였다.
항상 원론적으로 하는 이야기로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고, 가지 말라는 지역은 가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하지만 그건 솔직히 현지 교민들이 하는 이야기 같았다.
그렇다고 엄마 소원인데 인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살짝 고민하다가 미국에 있는 해리팀을 부르게 되었다.
세상에는 혹시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저 안전한 것이 최고다.
경호팀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 해리 아저씨네?”
“하이! 쏘미!”
“쏘미가 아니라 소미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요?”
“하하! 미안해 쏘미!”
“...”
미국 LA의 우리 집에서 2주를 있다 갔던 소미는, 그때 친해졌는지 해리팀과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저 코쟁이들은 누구냐?”
“어? 아, 아빠, 미국에서 나를 담당하는 경호원들이에요.”
“경호원? 그런 것도 두었냐?”
“응, 나는 소중하니까”
“미친놈! 미국이 무슨 소말리아냐? 아니면 아프가니스탄이냐?”
“왜요? 미국에서 하루에 총 맞아 죽는 사람이 몇인데?”
“철식이 말이 맞아요. 안전한 것이 최고지. 잘했다, 철식아”
“응, 엄마. 흐흐흐!”
해리가 렌트해서 가져온 차량에 탑승하여 곧장 우리가 예약한 고급 리조트로 갔다.
치안이 불안한 곳에서는 리조트가 최고라고 하더라.
특히 가족들과 함께라면 사실상 리조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기에 더욱 추천한다고.
“어머나! 너무 좋다!”
“허허! 좋구나!”
“와와! 오빠 최고야!”
그럼, 이게 얼마짜리 방인데?
스위트룸 중에서도 제일 좋은 룸 2개를 예약한 거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리조트 안에서 놀기 시작하였다.
정말 누가 말하기를 밖에 나갈 일이 없을 것이라 하더니, 그 말이 맞았다.
해수욕장도 프라이빗 비치가 따로 있었고, 골프장에 별의별 것이 다 있었다.
스쿠버, 제트스키 등의 액티비티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고.
음식 또한 최고였다.
“호호호!”
“하하하!”
정말 내게는 중학교 3학년 때 이후로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온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래서 돈을 벌어야 하나 보다.
하지만, 리조트에 박혀서 즐기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2일째부터는 해리 팀의 보호를 받으면서 다운타운으로 맛집을 탐방하기도 하고 쇼핑도 즐겼다.
그렇게 5일째 되던 날 저녁.
“오빠야”
“소미야”
“응?”
“너 친구 중에 경상도 사람 있냐?”
“어? 어떻게 알았어?”
“오빠야 하니까 그렇지?”
“헤헤, 티가 나나?”
“내가 진해에서 몇 년을 있었는데?”
“하여간 오빠, 우리 쇼핑 나가자”
“또?”
“모레면 여길 떠나야 하잖아? 그전에 좀 더 보려고”
“엄마하고 아빠는?”
“좀 전에 물어보니까, 피곤하다고 그냥 산책이나 하시겠다는데?”
“알았어, 나가자”
“웅”
해리 팀을 데리고 소미와 함께 쇼핑을 나갔는데, 필리핀 최대의 쇼핑몰이라는 SM 씨사이드 몰은 몇 번 갔었기에, 이번에는 원래 최고였다는 아얄라 몰로 향하였다.
여자들의 쇼핑은 참 어렵다.
그냥 사면 될 것을 뭘 그리도 고르는지.
엄마라도 있으면 쇼핑하시라고 하고 따로 나와서 시간을 보내면 되는데, 소미와 둘만 나와서 그럴 수도 없었다.
내 인내심의 한계를 절감할 무렵. 소미의 쇼핑이 드디어 끝이 났다.
소미의 말로는 살 것이 별로 없어서 그나마 빨리 끝낸 것이라고.
드디어 지하주차장에서 나가는데, 오늘따라 차량정체가 심하여 하세월이다.
간신히 주차장에서 나왔어도 여전히 정체.
그런데, 차창 밖의 길가에 필리핀 빈민 꼬마 아이가 땅콩 봉지를 들고서 정체되어 오도 가도 못 하는 차들을 상대로 땅콩을 팔고 있었다.
참, 필리핀은 이런 나라였지.
어린애가 너무 안 되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가 필리핀 빈민 아이들까지 돌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심하게 창밖의 아이를 보는데, 이상하다 이 아이.
보통 필리핀 로컬 빈민 아이와는 뭔가 다르다.
허름한 반바지에 런닝셔츠, 그리고 못 먹어서 빠짝 마른 몸.
그냥 전형적인 빈민 아이 차림인데, 뭐지? 이 위화감은?
어? 눈이 왜 저리 찢어졌지?
피부는 다른 아이들보다 하얗고?
“오, 오빠”
“어?”
“쟤, 꼭 한국 애처럼 생기지 않았어?”
“그, 그러네?”
소미가 차 유리창 내림 버튼을 눌렀다.
“쏘미! 열지 마!”
앞에 앉은 해리가 다급하게 만류하였지만, 이미 창은 내려갔고 아이가 땅콩 봉지를 들고 다가왔다.
“영어 할 줄 아니?”
“응, 알아요.”
“땅콩 얼마야?”
“10페소”
“그거 다 줄래?”
“진짜요?”
“응, 그런데 너 필리핀 사람 같지가 않아 보이는데?”
“나, 한국 사람이야. 아빠가 한국 사람···.”
“뭐라고?”
“뭐?”
소미하고 내가 놀라서 동시에 외쳤다.
아빠가 한국 사람이라니?
그럼 코피노?
“너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엄마는 아파요. 아빠는 몰라.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어머나! 세상에!”
“이, 이런···.”
내가 바기오에서 너무나 흔하게 듣던 이야기들이다.
싼 맛에 섹스관광을 하러 와서, 혹은 어학연수 와서 즐기며 싸지르다가 필리핀 여자가 임신하면 그냥 한국으로 도망치는 개새끼들.
이 아이도 그런 아이란 말인가?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 아이, 너무나 한국 아이처럼 생겼다.
피부가 약간 까맣지만, 한국에서 봤으면 그냥 보통 한국 애로 생각할 정도로.
그래서 그런지 더 가슴이 아팠다.
한국에서라면 적어도 최소한의 생활을 하고 지냈을 아이가, 못 먹어 빠짝 골은 모습으로 관광객들 상대로 땅콩이나 팔고 있다니?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소미라고 다를까?
“오, 오빠. 이 아이 어떡해? 너무 불쌍하잖아?”
“하아···.”
아빠 놈의 유전자가 얼마나 강한지, 유난히 한국 아이처럼 생겼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한국 아이가 필리핀에서 땅콩을 팔고 있는 것 같았고.
제기랄이다.
이래서 내가 필리핀을 싫어하는 거였다.
하여간, 저 아이를 내버려 두고 가기는 글러 버린 것 같았다.
두고두고 찜찜할 것이니까.
“오빠”
“일단 태워라”
“웅!”
“보스!”
“해리, 위험한 일은 아니니까 내버려 둬요.”
“알겠습니다.”
소미가 내려서 아이에게 뭐라고 하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차에 탔다.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라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대로 씻었는지 냄새는 나지 않았다.
“너 이름이 뭐니?”
“호세요.”
“한국 이름은?”
“없어요.”
“한국 이름도 없어? 왜?”
“몰라요.”
“몇 살이지?”
“12살이요.”
“...”
“...”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지, 잘해야 10살 정도로 봤는데 12살이라니.
“엄마는 많이 아파?”
“병원에 다녀서 요즘은 조금 괜찮아졌어요.”
“그래? 너 이거 팔아서 얼마나 벌어?”
“100페소”
“...”
100페소면 우리 돈으로 2천몇백 원 정도.
기가 막히네.
“호세야, 집이 어디야?”
“여기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요.”“거기서 여기까지 땅콩 팔러 다니는 거야?”
“응”
“하아···.”
대체 이 아이를 어쩌냐?
그냥 돈을 집어주고 갈 수도 없고?
“오빠···.”
“해리!”
“네, 보스”
“이 아이가 가자는 곳으로 갑시다. 아이 집으로 말이에요.”
“네, 보스”
아이가 안내하여 아이 집으로 향하였다.
얼마쯤 가자, 허름한 판잣집들 같은 것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빈민촌이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차 못 들어가요.”
“그래? 그럼 내리자”
“보스, 그건 좀···.”
“해리하고 두어 명 같이 가면 되잖아요?”
“알겠습니다, 보스”
해리와 두 명이 같이 가고 남은 둘은 차를 지키기로 하였다.
그리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골목길.
상하수도 따위는 대충 봐도 없게 생겼고, 그래서 그런지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척 봐도 한 덩치 하는 백인들과 동북아시아인 둘, 그리고 코피노 하나.
눈길을 끌고도 남았다.
해리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할 정도로.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드디어 호세의 집에 도착했다.
“어머나! 어떻게!”
소미는 놀라서 눈에 눈물까지 그렁거렸다.
“제, 제기랄!”
이건 집이 아니다.
세상에 이딴 창고만도 못한 곳이 어떻게 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