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톰 형도 엄청난 항덕이었지?(수정)
이상철 전단장님과는 그날 거의 죽기 일보 직전까지 술을 마셨다.
대체 무슨 노인네의 체력이 그리도 좋은지, 새벽에 동이 틀 것 같은데도 끄떡없더라.
그렇게, 며칠 더 머무르면서 보안회사 관련한 일들을 상의하고 다시 미국으로 출발하였다.
“아이고! 이번에는 왜 그리 오래 한국에 있으셨습니까?”
“하하하! 존! 별일 없었지요?”
“얼굴도 잊어버릴 뻔했습니다?”
오랜만에 본 존이 왜 그리 오래 한국에 있었냐고 야단법석을 피워대었다.
호들갑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진지하게 말을 해서 약간은 당황하였는데, 이 양반 아무래도 과거에 망가졌었던 기억 때문에 내가 오래 자리를 비우면 좀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당분간은 미국에서 꼼짝하지 말아야 할 듯싶었다.
“미안해요. 전화로 말했듯이 한국에서 일이 뜻밖에 많았어요.”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대표는 누가 뭐래도 보스입니다. 대표가 자리를 오래 비우면 직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어있습니다. 앞으로는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지 말아 주세요.”
“그래요. 알았어요.”
한참을 존을 다독여 준 다음에야 업무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우리가 보유한 모든 종목이 상승 중이고요.”
“하하하! 나도 한국에서 늘 보고 있었어요.”
“다만, AMD와 엔비디아는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흐음, 조정받을 것 같아서 그러지요?”
“네, 맞습니다.”
AMD나 엔비디아나 모두 우리가 장기적으로 가져갈 전략 종목들이지만, 중기적으로 급락할 우려가 있음에도 계속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
나야 염주의 도움으로 두 종목이 얼마 후에 조정을 받을 것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존은 순전히 실력으로 예측하는 것이다.
하루하루 존과 있을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쉬었다 가는 것도 아니고?”
“암호화폐 때문이지요.”
“아!”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광풍이 수그러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GPU 수요도 하락하지요. 재고가 쌓일 겁니다. 이건 AMD에도 악재가 될 것이고요.”
“그렇군요.”
한동안 미쳐버렸던 코인 시장이 잠잠해질 것 같았다.
애초에 지금 가격 자체가 어이가 없었고.
존과 나는 코인에는 얼씬도 하지 말자는 주의였다.
대체 그게 뭐라고 그리들 열광하냐고?
나나 존의 눈에는 명백히 폭탄 돌리기로 보이는구먼?
하여간, 코인은 기본적으로 채굴하기 위하여 GPU와 전력을 먹는 괴물들인데, 가격이 내려가면 당연히 GPU 수요도 급락하고 재고가 늘어날 거다.
존은 그 점을 남들보다 먼저 예상하는 것이고.
“게다가 엔비디아는 신제품 소문이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신제품이요?”
“네, 가을에 지포스 시리즈 신제품이 출시될 예정인데, 흘러나오는 소문이 영 좋지 않습니다. 가을에 공식 발표를 하면 시장이 크게 실망할 것 같습니다.”
“대체 그런 소문은 어디서 듣는 거예요?”
“흐흐흐! 투자회사는 귀를 활짝 열고 정보 수집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들보다 앞서 나가지요.”
“하여간 대단합니다. 그러면, 미리 털어야지요? 전부는 아니더라도?”
“당연히 전부는 아니지요. 특히 AMD는 우리 지분이 워낙 많아서 털지도 못합니다.”
“그러네요.”
“가을 전까지 엔비디아는 절반을, 그리고 AMD는 3분의 1 정도를 정리하겠습니다.”
“우리 때문에 주가가 더 내려가겠네요?”
“흐흐흐! 그러면 우리야 더 좋지요?”
“...”
이럴 때 보면 존은 영락없이 악당이다.
“어느 정도나 내려갈 것 같아요?”
“지금 엔비디아는 60달러대인데, 30달러까지는 내려갈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가 내다 팔기 시작하면은 더 떨어질 것이고요.”
이거 한 20달러까지도 갈 것 같은데?
“AMD는요?”
“엔비디아 정도는 아니더라도, 40% 정도는 조정받을 것 같습니다. 현재 30달러 정도니까, 10달러대 후반 정도입니다.”
“하아! 다 좋은데, 리사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면 끔찍하네요.”
아마도 리사가 날 갈아 마시려고 할 거다.
“푸흐흐! 그거야 보스께서 알아서 하셔야지요?”
언제부터인가 리사는 내 담당이다.
“끄응! 뭐 열심히 빌어야지요.”
“그리고, 이번에 자금이 들어오면 대출금 일부를 상환하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대출받더라도 주력 종목을 이 정도로 정리하면 우선은 갚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얼마나 갚게요?”
“40억 달러는 갚겠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곳에 투자하고요.”
“그렇게 합시다.”
“아! 그리고 제프리와는 연락하셨어요?”
“제프리요? 이따가 볼 예정인데? 왜요?”
“흐흐흐! 재밌는 프로젝트를 들고 왔더군요. 아마도, 보스와는 잘 맞을 겁니다.”
“응? 재밌는 프로젝트? 뭔데요?”
“제프리를 만나면 아실 겁니다. 그럼”
뭐지?
사람 궁금하게?
저녁에 제프리를 만났다.
“알렉스 오랜만이다?”
“어, 제프리 형, 한국에서 좀 바빴어요.”
“아무 바빠도 네 주력 사업장은 미국이니까, 너무 오래 자릴 비우지는 마라”
“그러지 않아도 존에게 한 소리 들었어요.”
“아마 그랬을 거야. 존, 그 친구 너를 만나서 갱생하였고, 가족도 다시 모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네가 없으면 많이 불안해하더라고”
“그럴 거예요. 하여간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아! 제프리 형 나에게 뭐 할 말 없어요?”
“존이 말하디?”
“제프리가 무슨 재밌는 프로젝트를 가져왔다고만 하던데요? 뭐예요? 재밌는 프로젝트가?”
“너, 혹시 영화에 관심이 있냐?”
“영화? 좋아하기는 한데, 갑자기 웬 영화?”
“흐음, 오래된 영화라서 네가 아는지 모르겠는데···.”
“에이, 무슨 영환데? 내가 이래 봬도 영화광이라고요?”
“그러냐? 의외인데?”
“...”
뭐가 의외인데?
나는 뭐 영화 좋아하지 말란 법이라도 있는 거야?
집안이 폭삭 망하면서 한동안은 영화를 많이 못 봤지만, 그전까지만 하여도 한때는 영화를 업으로 삼을까도 생각했었고, 제대 후에는 그나마 내가 가질 수 있는 저렴한 취미로 혼자서라도 영화를 보고 다녔었다.
“30년도 넘은 영화인데, 너 혹시 탑건이라는 영화 알아? 톰 크루즈하고···.”
“캘리 맥길리스! 발 킬머! 토니 스콧 감독!”
“오오! 좀 아는데? 거의 네가 태어날 때쯤에 나온 영환데?”
“이거 왜 이러셔? 내 최애 영화 중의 하나인데?”
“그래?”
탑건을 모른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밀덕인 나에게는 완소 전투기 F-14 톰캣이 나오는 영화인데?
게다가, 톰 크루즈의 오도방 장면에 나오는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과 톰 형이 여주와 붕가붕가를 하면서 나오는 ‘Take My Breath Away’는 또 얼마나 기가 막혔냐?
정말 한 열 번도 더 본 영화가 탑건이다.
밀덕으로서 고증은 상당히 아쉬웠지만, 무려 80년대 영화니 그러려니 하였었다.
“그런데, 그 탑건은 왜요?”
“너 영화에 투자할 생각 없냐?”
“응? 영화에요? 무슨 영화?”
“탑건 2!”
“타, 탑건 투! 오 마이 갓!”
탑건 투라니?
탑건 투를 제작한단 말인가?
무려 30년을 넘어서?
내 마음은 이미 쿵쾅거리기 시작하였다.
“야! 왜 소릴 지르고 난리야?”
“아이, 지금 그게 중요하나? 탑건 투라니? 탑건 투를 제작한단 말이에요?”
“무슨 영화광이 뭐 이래? 임마! 올해 5월에 이미 촬영 들어갔어!”
“끄아아아악!”
이, 이럴 수가!
탑건 투가 제작되고 있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말도 안 돼!
“그런데요? 이미 촬영에 들어가 있는데 무슨 투자?”
“흥분하지 말고, 잘 들어. 중국의 텐센트 알지?”
“텐센트? 그 게임회사?”
“응, 걔들 게임뿐만이 아니라, 할리우드에다가도 엄청나게 투자해. 그런지도 좀 되었고 말이야.”
“아, 그건 나도 들었어요. 알리바바하고 엄청 투자한다고.”
“그 텐센트가 12.5%를 탑건 투 제작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는데, 아무래도 요즘 미국하고 중국 관계가 영 좋지 않잖아? 그래서 중국에서 개봉할 희망이 점점 없어지나 보더라”
“아아! 그래서?”
“너 오늘 리액션 죽인다?”
“에이, 중간에 끊지 말고 계속 말해 봐요.”
“뭐긴 뭐야? 톰이 텐센트를 대체할 투자자를 찾는 중이라는 거지?”
“오!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호들갑 떨지 말고, 한 번 만나 볼래?”
“만나다니? 누굴?”
“누군 누구야? 톰이지?”“톰 크루즈를?”
“응”
세상에!
내가 친절한 톰 아저씨를 만나다니?
이건 무조건이다, 무조건!
“무조건 만납니다, 무조건!”
“푸흐흐! 이놈 완전히 미쳤구나?”
“그럼 내가 미치지 않게 생겼수?”
“알았다, 알았어. 그럼 탑건 투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거지?”
“의향만 있나? 영화 제작비 전액이라도 내가 냅니다!”
“알았다. 그럼 내가 자릴 만들게”
“우워워워!”
다음 날, 제프리 형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이틀 후로 약속을 잡았으니 그렇게 알라고 하였다.
하느님! 염주님! 감사합니다!
더럽게도 안 가는 이틀을 다시 탑건을 정주행하면서 보면 지낸 후, 약속 시각이 되자 톰 크루즈가 머물고 있다는 호텔로 출발하였다.
이윽고, 비서가 나를 톰에게 안내하였는데, 톰은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 중이었다.
잠시 후, 톰이 전화기를 끊고서 내가 다가왔다.
“미스터 강?”
“오오! 미스터 크루즈!”
“하하하! 톰이라고 불러요.”
“나, 나도 알렉스라고 불러주세요.”
듣던 대로 키가 확실히 작아 보였지만, 워낙 비율이 좋다 보니 여전히 잘생긴 얼굴만 보였다.
톰은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유도하였다.
“한국 사람? 이야? 내가 한국에는 참 자주 갔었어요.”
“하하! 거의 열 번은 온 것으로 압니다. 아!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하하! 하여간 한국은 참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 자,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갈까?”
“네, 말씀하세요.”
“탑건 투를 제작하는데, 중국 자본이 들어오기로 하였거든. 텐센트라고 말이야.”
“아, 이야기 들었어요, 톰”
“정말 중국 돈을 받는 것이 아닌데 말이야. 결국, 같이 못 갈 것 같아. 우리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이 모양이라서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자네 카르마에서···.”
“합니다!”
“엉? 하다니? 뭘?”
“텐센트가 투자하기로 한 그 투자, 내가 무조건 한다고요, 무조건!”
진심이다.
무조건 투자할 거다, 무조건!
설사 염주께서 말린다고 하여도 말이다.
“하하하! 알렉스 너, 탑건 1을 재밌게 봤나 보다?”
“그럼요? 한 열 번은 넘게 봤어요. 크으! F-14 톰캣! 전투기 중에서도 그런 미인은 없지요!”
“으하하! 알렉스! 네가 뭘 좀 아는구나?”
“으하하하!”
맞다, 톰 형도 엄청난 항덕이었지?
“하여간, 정말 투자할 거야?”
“그럼요! 전액이라도 투자합니다!”
“하하하! 그렇게는 안 되고, 텐센트 지분에다가 일부 다른 투자자 것을 합쳐도 최대가 20%야. 어때 괜찮겠어?”
“무조건 한다니까요?”
“하하! 그럼 전체 제작비를 1억 7,000만 달러로 생각하니까···.”
“엉? 잠깐! 1억 7,000만 달러라니? 그거밖에 안 들어요?”
웬만한 블록버스터가 2억 달러를 훌쩍 넘어간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전투기에 항공모함이 나오는 영화가 고작?
“하하하! 알렉스! 진짜 스폰서가 있잖아?”
“예? 진짜 스폰서라니요?”
“미합중국 해군 말이야.”
“아하!”
맞다!
탑건 투라면 미 해군이 무조건 전폭적으로 밀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