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나도 내가 무슨 소릴 하는지 몰라요.
나는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하는 것 같았는데, 세상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런데, 내려다본 세상은 내가 아는 우리 세상이 아니었다.
“으으으···.”
“콜록! 콜록!”
지옥도, 지옥도가 펼쳐졌다.
사방에서는 사람들이 신음을 내며 죽어가고 있었고, 하얀 옷과 방독면이나 마스크를 쓴 의료진으로 보이는 이들이 그들을 구하려고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역부족.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시체가 산이 되고, 미쳐 입관도 하지 못한 시신들을 마치 암매장이라도 하는 것처럼 굴착기로 땅을 파고 묻었다.
동양인, 백인, 흑인···.
인종도 상관없었고, 지역도 상관없었다.
인류가 죽어가고 있었다.
“으어어억!”
꿈이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아니, 대체 무슨 개꿈을···.”
정말 이렇게까지 심한 악몽을 꾸어본 것은 거의 처음이다.
아빠 사업이 망하여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을 때에도 악몽이라고는 빚쟁이들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오는 꿈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어차피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
찜찜한 기분을 흩어 버리려고 머리를 흔든 다음에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아아!
일부러 냉수를 한참 맞고 있는데, 시선이 왼쪽 손목으로 갔다.
오늘따라 유난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같은 염주.
설마 꿈이 무슨 계시나 예지몽 같은 건가?
에이, 설마?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꿈의 내용은 분명히 전 인류가 무슨 병으로 고생하고 죽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럴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말이다.
“정신 차리자! 꿈이다, 꿈!”
살다, 살다가, 이젠 별의별 개꿈을 다 꾸어보네.
그렇게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서 더 빡쎄게 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출근.
“어, 보스! 좀 피곤해 보이십니다? 어제 젠슨 황과 많이 달리셨나 보네요?”
“아니, 적당히 먹었는데, 밤에 개꿈을 꿔서요.”
“아, 악몽을 꾸셨나 봅니다.”
“네, 자다가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나 보기는 생전 처음이네요.”
“하하하! 보스도 사람인가 봅니다.”
“엉?”
내가 사람이 아니면 뭐야?
“내가 사람 같지 않았어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걸요?”
“헐···.”
“그나저나 젠슨은 왜 보자고 하였답니까?”
“뭐 뻔하지요. 경영권 때문에 신경이 쓰였나 보더라고요.”
“하하하! 역시 그거였습니까?”
“네, 그거였어요. 그래서 우린 경영권에 신경 쓰지 않으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고요.”
“잘하셨습니다. 누가 뭐래도 엔비디아는 젠슨 황이 기둥인데, 그가 이런 것으로 흔들려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요. 우리 측 이사들 보고도 쓸데없는 것으로 시비 걸지 말고, 잘 협조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았는데,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지 졸음이 밀려왔다.
그리고, 어느새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잠에 빠졌다.
“으으으···. 아파! 아파!”
“병실이 없어!”
“숨을 못 쉬잖아! 산소통! 산소통이 필요해!”
“어어엉엉! 돌아가셨어!”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더 디테일한 장면들.
환자들이 넘쳐나는데, 병실이 부족하여 환자들이 복도에까지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죽어 나가는 환자들.
심지어는 의사와 간호사들 같은 의료진들도 제대로 방역복이 없어서 그대로 노출되어 환자를 돌보다가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지옥이었다.
“으어어어!”
“보스! 보스!”
누군가가 나를 흔드는 것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존이었다.
“아니 보스! 대체 무슨 악몽을 그리 꾸십니까? 아유! 이 땀 좀 봐?”
“헉헉···.”
“보스, 병원에 가보세요. 아무래도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그래야겠네요.”
존의 권유에 따라서 바로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글쎄요? 이렇게 건강한 몸은 참 오랜만에 봅니다.”
“예?”
“정밀 진단을 받으면 다른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기본적으로는 엄청난 몸을 가지고 계시네요. 부럽습니다.”
“...”
한 마디로 더럽게 건강하다는 소리다.
“찜찜하시면 정밀 검진을 받아 보시겠습니까? 금식도 해야 하고 시간도 꽤 걸리기는 합니다만···.”
“아, 아닙니다.”
“흐음, 아무리 봐도 건강에는 이상이 없어요. 악몽을 계속 꾸신다면 정신적인 문제인 것 같은데, 한 번 상담을 받아 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봐도 이건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이 시절에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면 답은 둘 중의 하나다.
그냥 심심 파적으로 본 종말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소설 영향이거나, 아니면 진짜로 예지몽일 것이다.
염주가 내게 보내는 신호이든 아니든 간에.
곧장 병원에서 나와서 집으로 퇴근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일이 손에 잡힐 리가 만무하니까.
그리고, 소주 두 병을 나발을 불다시피 하여 먹고서는 자리에 누웠다.
역시, 정신이 혼란할 때는 소주가 최고지···. 는 개뿔이다.
“으아아아아!”
다시 비슷한 악몽을 꾸었다.
이번에는 더 디테일하였는데, 전 세계가 멈추는 것을 보았다.
국경이 닫히고, 역시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으며, 방역 물자와 치료 물자 부족으로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비, 빌어먹을! 이거 무슨 나이트매어도 아니고···.”
눈만 붙이면 보이는 지옥도.
이젠 확실해 졌다.
이건 예지몽이고, 예시며, 나에게 대비하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아니 근데,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환장하겠네.
조만간 중세의 흑사병이나, 20세기 초의 스페인독감 같은 것이 유행하나 본데, 일개 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다고 나에게 이러는 거냐고?
“제기랄!”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계속 악몽을 꿀 것이 확실하니까.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염주도 그 이상을 요구하지는 않겠지”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바로 전화를 걸어 한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 편을 알아보려다가 말았다.
이젠 프라이빗 제트기, 즉 전용기를 타면 되는 거니까.
지난번에 제프리 형이 핀잔을 주며 소개해 준 곳이 있어서,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계약을 했었다.
날이 밝자, 곧장 짐을 들고 회사로 갔다.
“웬 짐입니까? 어디 가세요?”
“존, 나 한국에 잠깐 다녀올게요.”
“예? 갑자기 한국에는 무슨 일로?”
“해야 할 일이 급작스럽게 생겼어요. 이번에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딱 2주만 다녀올게요.”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시지요.”
“음? 이렇게 순순히?”
“보스, 혹시 거울 보셨어요?”
“거울이요?”
황급히 거울 앞으로 갔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하룻밤 사이에 인상이 달라져 있었다.
마치 며칠간 피죽도 못 얻어먹은 사람처럼.
“어제 병원에서 건강하다고 하였지만, 보스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보스가 한국에 갑자기 가겠다고 한다면, 그 일 때문일 것이고요. 아무쪼록 다시 뵐 때는 예전의 보스 얼굴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고마워요, 존”
전용기 안.
금발의 미녀 승무원이 짧은 스커트를 입고 아양을 떨어대는 것도 개처럼 무시하고 생각에 잠겼다.
꿈에서 벌어졌던 일은 대체 무엇이지?
무슨 전염병이 돈 것은 확실한데.
참, 나, 21세기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조차도 의문이건만.
꿈이 워낙 생생하여 생각해 내려고 힘을 쓸 필요도 없었다.
분명한 것은 호흡기로 전염되는 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바이러스 같은데, 무엇인지는 내가 알 리가 없는 것이고.
일단 전문가를 만나 보자.
“아니, 갑자기 한국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그리고 며칠 보지 못했다고 얼굴이 이게 뭡니까?”
남정원 사장이 황망한 표정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급한 일이 생겨서 급히 들어왔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자세한 것은 묻지 마시고, 남 사장님 혹시 보건복지부나 국립보건원이나···. 에이,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혹시 우리나라 방역을 담당하는 부서 간부 중에서 아시는 분이 있나요?”
“예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회장님 병에 걸리셨어요?”
“그건 절대로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런데, 왜요?”
“그것도 묻지 마시라니까?”
“...”
나도 할 말이 없는데, 어쩌라고?
악몽을 계속 꾸는데, 전염병으로 인류가 결딴났다고 할 수는 없잖은가?
“흐음, 하여간 알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시지요.”
“네, 부탁해요.”
역시 남정원 사장은 사성 그룹 기조실에서 오너의 주문이 있으면 묻지 않고 수행하는 일을 많이 하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캐묻지 않고 바로 내가 필요한 사람을 수소문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여기저기 전화하던 남정원 사장이 내게 입을 열었다.
“적당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오! 찾았어요?”
“네, 마침 대학 선배 동기가 질병관리본부에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와 미팅을 잡아주세요. 오늘 저녁이라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한 남정원 사장이 보고하였다.
“오늘 저녁입니다. 장소는 그 일식집으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아, 나온다고 합니까?”
“제가 누굽니까? 사성에서 기조실에서 이십 년을 있었는데요?”
“하하하! 고맙습니다. 그럼 저와 함께 나가시지요.”
“음···.”
잠시 고민하였다.
남 사장이랑 같이 나가?
그러면 좋은데, 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결론은 같이 가는 것으로 하였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라도 하려면 남 사장이 꼭 필요하였으니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회장님?”
같이 가는 차 안에서 남 사장이 내게 물었다.
이럴 것 같아서 그사이에 대충 핑곗거리를 만들어 두었다.
스마트폰으로 가장 최근에 가장 위험하였던 전염병이 돌았던 것을 검색하였고, 시나리오를 맞추느라 판타지 소설까지 들여다보았다.
“남 사장님”“네, 회장님”
“몇 년 전에 메르스라고 전염병이 돌아서 난리 났던 것, 기억하세요?”
“메르스요? 그 중동호흡기증후군 말씀입니까? 2015년이던가요?”
“네, 그거 맞아요.”
“그런데 갑자기 메르스는 왜 말씀하십니까? 그거 또 발생하였습니까?”
“그건 아니고요.”
“그런데요?”
“출처는 묻지 말아 주시고 아시고만 계세요.”
“네···.”
“그거보다 몇십 배 무서운 놈이 유행할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네? 대체 어디서 그런 말을?”
“출처는 묻지 말아 달라고 하였지요?”
“...”
바로 입을 다무는 남 사장이다.
하지만, 비슷하게 판타지 소설이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투자업에 있다 보면 이런저런 정보를 듣게 됩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런데, 신뢰할 수 있는 소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요.”
“대체 무슨?”
“주중국 미국 대사관이 국무부에 보고한 내용인데, 중국의 우한에 있는 BSL-4 등급(Biosafety Level. 생물안전도) 연구소의 위험이 심각하다는 겁니다.”
“예에? 그게 뭡니까?”
아웅, 나도 내가 무슨 소릴 하는지 몰라요.
좀 전에 몰래 검색한 종말을 소재로 한 판타지 소설의 내용이니까.
코로나 아포칼립스?
무슨 제목이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