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그놈들은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일식집의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반쯤 머리가 벗겨진 중년인이 먼저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고 일어났다.
“질병관리본부 권준호 과장님?”
“네, 제가 권준호입니다. 카르마 홀딩스 남정원 사장님이십니까?”
“네, 제가 남정원입니다. 급하게 지인들을 통하여 연락드렸는데,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중간에 다리를 놓아주신 분이 제가 거절할 수 없는 분이기도 하였지만, 청탁도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요즘 유명한 정화 복지 재단과 같은 계열사라고 들어서 나왔습니다.”
“아! 정화재단에 대하여 잘 아시나 보지요?”
“하하! 질병관리본부도 보건복지부 산하입니다. 뭐, 연관은 거의 없지만, 요즘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정화재단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고 볼 일이다.
공무원 신분이라 굉장히 조심하는 것 같은데, 정화 복지 재단과 같은 계열사(?)라는 말을 듣고서 흔쾌히 나와준 모양이다.
“이거, 영리사업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열심히 사업해서 부지런히 돈을 대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하!”
“하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런데, 이 젊은 분은?”
“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자리를 요청하신 분입니다. 우리 카르마 홀딩스의 오너이신 강철식 회장님이십니다.”
“예? 회장님이요?”
“그리고 정화 사회복지법인의 모든 재원을 쾌척하시는 분이시고요.”
“아아! 훌륭하십니다!”
카르마 홀딩스의 오너라는 말에도 그저 놀라기만 하던 권준호 과장은, 정화 복지 재단의 재원을 모두 내가 댔다고 하자 대번에 얼굴이 확 풀어지면서 호의 어린 말투로 연신 훌륭하다고 나를 추켜세웠다.
부끄럽다.
“부끄럽습니다. 미국에서 카르마 인베스트먼트란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철식입니다.”
“오! 그러면 카르마 홀딩스는?”
“네, 한국에도 투자하고 사업을 벌이려고 얼마 전에 만든 지주회사입니다.”
“아, 그렇군요. 어쩐지 좀 생경하다 싶었습니다.”
“바쁘신데도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전염병이나 방역에 대한 전문가나 책임자를 찾는다고 하여서 제가 나왔습니다만···.”
“먼저 식사부터···.”
“저기, 저렴한 것으로 부탁드립니다.”
“예?”
대뜸 이건 무슨 소리야?
“하하하! 제가 이래 봬도 공무원 신분입니다. 제 밥값은 제가 내야 하는데, 얼핏 봐도 여기는 엄청나게 비싸 보여서요.”
“...”
“...”
순간적으로 나도 그렇고 남정원 사장도 당황하였다.
조용하게 만나면서 이야기할 장소를 찾다 보니 이곳을 선택하였는데, 저렇게 원칙대로 나올지는 몰랐던 것이다.
“저기, 우리는 무슨 청탁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안 됩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은 청탁이나 대가성 유무를 따지지 않고 3만 원 이상의 식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네···.”
“...”
이거 본론은 꺼내 보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일이람?
“남 사장님. 여기 제일 저렴한 식사가?”
“어흠, 회장님. 이 집은 좀 과장해서 말하면, 물만 마셔도 3만 원은 넘습니다.”
“...”
결국,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하여 잠시 이야기만 하다가 갈 것이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하니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동안 팔아준 것이 꽤 되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권준호 과장에게도 이야기를 하고 나가서 3만 원 이하짜리로 밥을 먹자고 하였더니, 좋다고 하여 일단은 해결되었다.
“그래요, 투자회사를 운영하시는 분이 갑자기 전염병과 방역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아는 것이라면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메르스에 대하여 잘 아십니까?”
“메, 메르스요?”
그냥 단도직입으로 폭 치고 들어가자, 권준호 과장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네, 메르스 말입니다. 2015년도 우리나라에 유행하였던···.”
“잘 압니다. 그것도 아주 잘 압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고통스러울 정도로요.”
“...”
권준호 과장은 정말 뼈에 사무친 것처럼 말하였다.
“상당히 좋지 않은 기억인가 봅니다.”
“국가의 방역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서 대단히 뼈 아픈 사건이었으니까요. 심지어 지금 본부장님은 그 일 때문에 중징계까지 받아야 했지요. 많은 전문가가 방역 실패의 책임을 지고 공직을 떠났었고요.”
“아, 그랬군요.”
“그런데, 메르스는 갑자기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그냥 단도직입으로 묻겠습니다. 메르스 같은 집단 바이러스 감염사태가 다시 일어날까요?”
“비공식적으로 물어보시는 겁니까?”
“오늘 여기서 말씀하신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이 비싼 집으로 예약하였던 것이구요.”
“그렇다면 저도 비공식적으로 제 사견임을 전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놈들은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반드시!”
“허어···.”
“...”
권준호 과장의 너무나도 단호한 말에 남정원 사장도 나도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이건 제 사견이지만, 저만의 의견도 아닙니다. 감염병과 방역 전문가들 누구에게 묻더라도 아마 대동소이한 말씀을 드릴 겁니다.”
“그, 그렇군요.”
“그리고, 그 정도는 지금까지의 침략과는 그 궤를 달리할 정도로 인류에게 큰 타격을 줄 겁니다. 인류는 너무 자만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라니요?”
영문을 모르는 남정원 사장이 반문하였다.
“2002년의 사스! 2015년의 메르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놈들의 인류에 대한 공격은 조금씩 더 교활해지고 집요해지고 있지요. 다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반드시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대규모 범유행 전염병에 대하여 대책이 있는 겁니까?”
“휴우, 그나마 다행인 것이, 우리나라가 메르스에 중동 이외의 국가로는 제일 혹독하게 피해를 봐서, 미약하지만 열심히 대책을 세웠습니다.”
“어떤 대책인가요?”
“원인불명의 집단감염 대응 절차 매뉴얼을 만들었고, 정교한 재난대응 알고리즘에 근거하여 훈련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조차도 강력한 놈이 오면 당할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
“...”
이 사람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구나.
총과 칼을 들어야 전사가 아니다.
이들이야말로 인류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이리라.
뻑하면 공무원들을 욕하고 했었는데, 내가 부끄러워졌다.
“정말 고생이 많습니다. 이거, 가끔 뒤에서 공무원을 욕하고는 했는데 부끄럽습니다.”
“별말씀을···.”
“그럼, 행정적인 시스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대규모 신종 감염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하드웨어적인 대책은 충분한 겁니까?”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방역 물자도 부족하고 대규모 유증상자들이 발생했을 경우의 치료시설도 많이 부족합니다.”
“방역 물자라 함은?”
“일단 KF94 등급의 마스크, 레벨 C.D급 방호복이 기본일 것이고, 그 외에도 고글, 체온계 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는 급성으로 사람과 동물에 대한 광범위한 호흡계 및 소화계 감염을 일으킵니다. 급성 상기도 감염, 기관지염, 폐렴 등등 말이지요. 따라서, 병원에 음압 병동과 인공호흡기, 그리고 에크모 등이 필요한데,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특히, 폐가 공격당하여 망가지면 인공호흡기로도 안 되고 에크모가 반드시 필요한데, 에크모가 많이 부족합니다.”
“네? 에크모요?”
인공호흡기는 알겠는데, 에크모는 또 뭐냐?
“아, 잘 모르시겠군요.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란 체외막형 산화장치를 말하는 겁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인공호흡기가 자발적으로 호흡이 불가능할 때 기계적으로 호흡을 시켜주는 것이라면, 에크모는 심장과 폐가 아예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에 직접 혈액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공급해 주는 장치입니다. 한마디로 이 장치가 사람의 심장과 폐를 대신하여 준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오오! 그런 것이? 그런데, 그게 왜 부족하지요?”
“일단 비쌉니다. 한 대에 1억 정도합니다. 그리고 수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 현재로서는 그리 부족하지 않지만, 펜데믹! 그러니까 범유행 전염병이 벌어지면 부족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국내 생산이 안 되나 보지요?”
“아닙니다. 보건복지부와 유수의 병원 몇 곳이 협력하여 바로 얼마 전부터 국산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오! 그거 정말 다행이군요!”
공무원들이 일을 하는구나.
난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현재 100여 곳의 병원에 300여 대 정도가 있습니다만, 우리 판단으로는 유사시에 극심한 유증상들이 몰리게 되면 부족할 겁니다.”
“그럼 100여 대 정도 추가되면 도움이 될까요?”
“당연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코 머시기 바이러스와 싸워서 이기려면, 역시 백신과 치료제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것도 맞는 말씀인데, 불행히도 아직 우리 제약업계는 역량이 약간 부족합니다. 결국은 아마 다국적 기업에서 내놓게 되겠지요.”
“만들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백신은 사실 만들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물론 쉽다는 말씀은 아니지만요. 문제는 3기까지 임상을 거쳐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여건이 좀 어렵습니다.”
“하아, 그렇군요.”
권준호 과장의 말을 들으면서 슬슬 내 머릿속에 해야 할 일이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오늘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과장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런데, 왜 투자일을 하시는 분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흐음,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미국에서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투자를 하려면 다각도로 심층 조사를 하게 되는데, 다국적 제약회사를 서칭하는 과정에서 대단히 저명한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혹시 그분 성함이?”
“아, 그건 비밀입니다.”
“그, 그렇군요.”
나도 모르는 사람 이름을 내가 어떻게 아나?
존재하지도 않고 말이지.
“그분이 그러더군요. 우리 인류는 조만간 미증유의 펜데믹 상황에 놓일 것이라 말입니다.”
“아! 역시!”
“그래서 부랴부랴 귀국한 거였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저는 한국 사람이니까요. 내 형제와 부모가 살고 있는. 하여간 그래서 유사시에 우리나라는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가가 궁금하였던 겁니다.”
“그러셨군요.”
이게 내가 변명할 수 있는 최상이다.
누가 또 이거 가지고 뭐라고 하면, 나도 모른다.
꿈이 그런 것은 어쩌란 말이냐?
“제가 몇 가지는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싶습니다. 일단 에크모 장비도 좀 갖추게 해주고 싶고요.”
“오오! 훌륭하십니다!”
“가끔 연락드려서, 그런 부분에 대하여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좋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는 밖으로 나와서 그럭저럭한 도가니탕 집으로 갔다.
거기서 식사를 하면서 반주 1병씩을 마시니 나온 계산은 88,000원.
간신히 인당 3만 원 이하로 맞출 수 있었다.
“제가 먹은 것은 제가···.”
“하아, 그냥 놔두세요. 분명히 3만 원 넘지 않았습니다.”
“하하하! 그럼 잘 먹었습니다.”
“별말씀을···.”
허 참!
이젠 공무원하고 밥 먹기 정말 힘들어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