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나는 머스크에게 원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미스터 강?”
“미스터 머스크?”
“하하하! 반갑군! 반가워! 이봐! 알렉스! 그냥 일론이라 불러!”
“그, 그래. 일론!”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이름을 부르라고 강요하는 이 사내.
일론 머스크다.
이 인간을 대체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천재 사업가? 몽상가? 풍운아? 미래의 설계자?
아니면 개또라이? 미친놈? 사람을 그저 탄약으로 여기는 냉혹한 경영자?
1주일에 100시간에서 120시간을 일한다는 일 중독자?
게다가 쌍둥이를 연달아 낳는 쾌거를 이룩하여 아이들을 겁나 많이 가진 다둥이 아빠?
이 모든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이 장신의 사내.
나도 모르겠다.
하여간 나와는 나이가 거의 15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보자마자 바로 말을 까자고 하니 그건 편해서 좋았다.
“알렉스, 너는 동양인치고는 상당히 크군? 내가 일본인들은 많이 봤는데, 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훨씬 작았거든. 그런데 너는 몸도 훌륭하고 말이야? 상당히 오랫동안 단련한 것 같은데?”
“뭐, 그래봤자 너보다는 작잖아? 그리고 운동은 원래 어릴 적부터 좋아했었어. 군대에 있으면서 거의 완성이 된 것 같고”
“군대? 너 군대에 있었냐?”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
“너? 한국인이잖아? 아! 한국은 아직 휴전 중인 나라지?”
“맞아. 한국전쟁에는 너의 모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참전했었다고”
“하하! 그런가? 나는 몰랐어. 하여간 징병 되었다는 말이야?”
“한국 남자는 신체 검사하여 떨어지지 않으면 무조건 징병 대상인데, 나는 사정이 있어서 지원했어. 그래서 4년 넘게 군대에 있었지”
“하하하! 나도 하마터면 영락없이 군대에 끌려갈 뻔했었지!”
“일론 네가 군대를?”
이건 금시초문이다.
“응.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당시에는 백인에 한해서 징병을 하였거든. 어머니가 캐나다 시민권이 없었으면 나도 군대에 갈 뻔했는데, 아마 내가 군대에 갔으면 자살했을 거야. 나는 그런 환경에서 못 살 거든”
“흐흐흐!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인데?”
“나는 자유주의자야. 그렇게 억압받는 환경에서는 하루도 살 자신이 없어. 게다가 운동도 끔찍하게 싫어한다고?”
“그렇군”
“자! 우리 술이나 한잔하지? 한국은 술 마실 때 뭐라고 하지? 일본이 감빠이라고 하는 것은 아는데?”
이 자식이 일본 만화 오덕후 인 것은 유명하지.
“우리는 건배라고 하지”
“오! 비슷한데?”
“한자어라 한·중·일 삼국이 다 비슷해”
“하하하! 자! 그럼 건배!”
“건배!”
이 인간 술 정말 좋아한다.
식사를 하면서 같이 위스키를 마신 지 30분이 좀 넘어서 둘이 위스키 한 병을 비우고 새 병을 깠다.
“알렉스”
“왜?”
“우리 테슬라 주식은 대체 왜 그렇게 사들이는 거냐?”
드디어 술이 좀 되자, 본론이 나오는 것 같았다.
어이구, 술을 급하게 마셨더니 좀 취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왜 그렇게 사들이냐니?”
“말 그대로야. 우리 테슬라 주식을 사들이는 목적이 뭐냐는 말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투자가가 당연히 투자목적이지?”
“진짜로?”
“일론, 너 혹시 경영권 때문에 그러는 모양인데,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나는 순수하게 장기적으로 주가가 올라서 차익을 얻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진짜지?”
“내가 너에게 거짓말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래?”
“흐흐흐! 알았다.”
“그런데 왜 그리 예민하게 구냐? 테슬라는 너의 지분이 많고 기관투자가들 지분도 여기저기 쪼개져 있는 데다가 너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아는데?”
게다가 AMD가 곧 리사 수이고 리사 수가 곧 AMD인 것처럼, 테슬라는 곧 일론 머스크다.
테슬라의 경영권이 흔들릴 일은 없는 것이다.
그것만인가?
이 인간은 뻑하면 스톡옵션 수천만 주를 받게 되어 있잖아?
그런데 내가 왜 말도 되지 않는 욕심을 부리나?
“나는 경영권에 대하여 조금의 위험도 감수하고 싶지가 않으니까”
“그래?”
“응, 그리고 작년에 사우디 그 빌어먹을 기름 부자 놈들에게 당한 것도 있고 말이야.”
“아! 푸하하! 너 작년에 개망신당했지? 사우디 국부펀드 믿다가?”
“웃지 마! 지금도 생각하면 열이 나니까!”
일론 머스크는 작년에 테슬라를 비공개 회사로 전환하겠다고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었다.
그리고 상장 폐지를 추진할 수 있는 자금원으로 사우디 국부펀드 PIF(Public Investment Fund)를 지목했다.
그래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는데, 이게 웬걸?
사우디 국부펀드는 일론의 말을 부인하였다.
자신들은 돈을 대겠다는 어떤 약속도 하지 않다는 보도만 연달아 나왔고.
당시 테슬라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든든한 테슬라의 후원자로 인식되던 사우디 국부펀드는 엉뚱하게도 일론 머스크가 제일 껄끄럽게 생각하는 루시드 모터스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고 테슬라의 지분은 오히려 팔아치우기 시작한 거지.
사실, 우리가 단기간에 많은 지분을 확보한 것도 사우디 놈들이 지분을 팔아치운 덕분도 꽤 컸다.
하여간 그 일로 인해서 머스크는 망신은 망신대로 당하고, 심지어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증권사기 혐의로 피소까지 되었다.
이러니 머스크가 열을 낼 수밖에.
“크크큭! 아! 미안! 그런데, 일론. 나 하나만 물어보자. 그거 진짜였냐? 사우디 국부펀드랑 상장 폐지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는 거?”
“진짜야. 그 빌어먹을 국부펀드 총재 루마이얀이 분명히 내게 자금을 대겠다고 약속했었단 말이야! 그런데 약속을 어기는 것도 모자라서 루시드 모터스에 돈을 대? 땅에서 기름만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양이나 치고 있을 거지 같은 놈들이?”
“워워! 진정하라고, 진정해”
“야! 알렉스! 너 같으면 분통이 안 터지겠냐? 아무리 뒤통수를 쳐도 그렇지? 루시드에 투자한 것은 나보고 엿 먹으라는 소리잖아?”
“응, 그건 그래. 크크큭!”
“웃지 말라니까!”
“쏘리! 쏘리! 큭!”
“...”
머스크 녀석이 사우디 국부펀드가 루시드 그룹에 돈을 댄 것에 길길이 날뛰는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왜냐하면, 루시드 그룹의 창업자들은 머스크가 내쫓아 내거나 머스크와 싸우다가 테슬라를 나간 테슬라 창업 멤버들이니까.
모두가 알다시피, 테슬라를 창업한 것은 머스크가 아니라 마틴 에버하드다.
머스크는 그저 페이팔을 팔아서 번 떼돈으로 초기에 투자한 핵심 투자자 중의 하나였고.
그런데, 마틴 에버하드가 경영하는 것이 시원찮다고 여긴 머스크가 에버하드가 출장을 간 사이에 이사회를 열어 에버하드를 기술 담당 사장으로 좌천시켜 버리고 자신이 직접 CEO 자리에 앉은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회사를 뺏은 거다.
그래서 머스크가 경영권에 유독 예민하게 구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하여간, 그 당시에 생산 지연과 자금압박으로 예민해진 머스크가 정말 기존 멤버들에게 못되게 군 모양이다.
심심하면 직원들에게 비난과 폭언을 일삼았다고 하니까.
그래서 초기의 핵심 엔지니어들이 대거 회사를 때려치웠는데, 그중의 한 명인 버나드 체가 주동이 되어 샘 웽과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가 바로 루시드다.
당시는 Atieva라고 해서 배터리와 파워트레인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업체였는데, 버나드 체가 워낙 미국에서 최고의 배터리 기술자로 알려질 만큼 유명한 사람이라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투자도 받고 제법 잘 나간 모양이다.
문제는 루시드가 2013년부터는 직접 전기자동차도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는 테슬라의 부사장급 수석 엔지니어였던 피터 롤린슨도 스카우트하였으니, 머스크의 분노가 어떠하였을지는 쉽게 짐작이 갔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바로 사우디 국부펀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바로 전기차를 양산할 수 있는 자금을 댄 것이니까.
테슬라 상장 폐지를 위한 자금을 요청할 정도로 영원한 동반자인 줄 알았는데, 등 뒤에서 비수를 꽂은 거지.
이러니 머스크 자식이 지금도 그 이야기만 나오면 발작을 하는 것이고.
“나 그때는 정말 진심이었어. 옆에서 누가 이러고저러고 간섭하는 것이 정말 싫었거든.”
“그래?”
“그래서 하다 하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에게도 매달렸었어. 자존심까지 구겨가면서 말이지”
“허···.”
정말 어지간히 상처받았나 보다.
“하여간 안심하라고. 나는 너의 경영 능력을 전적으로 믿으니까”
“그래? 고맙다. 그런데 나도 하나만 더 물어보자. 넌 뭘 믿고서 테슬라에 그렇게 투자하는 거냐? 우리가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회의론이 있는 것은 사실이잖아?”
작년에 테슬라는 회심의 역작 모델3의 생산 지연 문제로 정말 위험했었다.
그 때문에 머스크는 작년 내내 주당 120시간씩 일을 해야만 했었고.
“작년에는 정말 힘들었지?”
“말 마라. 내 최악이 해였던 2008년보다도 더 고통스럽더라고”
“2008년에도 그렇게 힘들었어?”
“흐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차라리 자살할 거야. 내 꿈과 희망을 담은 로켓을 발사하는 족족 터져버리지, 돈이 없어서 직원 월급을 구하느라 여기저기 굽신거렸지,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개인사는 나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해에 아마 아이가 죽고 첫 아내에게 이혼도 당했을 거다.
“하여간 그 지옥을 겪고서, 이제는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바닥 밑에는 지하실이 있을 줄이야?”
“푸하하!”
“작년에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 이제 좀 살만해진 것이고”
“그렇구나. 고생했다. 하여간 나는 작년에도 너를 믿었어. 아니 항상 믿었다고나 할까?”
“뭘 믿었다는 거야?”
“너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집념과 실행력! 이것을 믿었지”
이 말은 진심이다.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것은 소수의 특권이다.
그런데, 통찰한 미래를 실현하게 하는 것은 더더욱 소수이다.
나는 머스크 이놈을 믿는다.
인성은 별로인 것 같지만.
“오오! 고맙다! 알렉스!”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열심히 차를 만들란 말이야, 알겠지?”
“응, 그럼 나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될까?”
“또 뭘?”
이 자식은 초면에 뻔뻔하게 뭘 자꾸 부탁을 하냐?
서양 애들은 보통 이러지 않던데?
하여간 특이한 놈이네.
“너희 회사가 가지는 지분 의결권을 나에게 위탁해 줄 수 있을까?”
“뭐? 의결권을? 야! 일론! 우리가 무슨 부랄 친구라도 되냐? 우린 오늘 처음 봤다고?”
“어차피 전적으로 나를 믿는다면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솔직히 말해서 오늘 만나서 즐거웠고, 친구가 되었다는 생각은 드는데, 이건 아니잖아? 내가 의결권을 전적으로 너에게 주면 넌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인데?”
“흐음, 그건 그러네···.”
“그건 그러네가 아니라, 그런 거야. 최소한 나에게 뭔가 성의를 보이고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이 순서 아니겠어?”
“그럼 너, 앞으로 지분을 얼마나 더 확보할 계획이야?”
“너희 테슬라 지분은 우리가 매수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어. 너도 짐작할 텐데? 우린 25% 정도를 한계로 보고 있어”
“흐음, 우리도 그 정도로 보고 있어. 그러면···.”
머스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알렉스”
“왜?”
“너 내게서 원하는 것이 있냐?”
“원하는 것?”
“응, 나도 성의를 보일 테니까, 너도 내게 네가 확보하는 지분 의결권을 주면 되잖아?”
“그렇게 하자고?”
“응”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나는 머스크에게 원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스페이스X 지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