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화성에는 진심인 남자
스페이스 X.
2002년도에 페이팔로 2억 달러를 벌었던 머스크는 눈을 화성으로 돌렸다.
그리고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화성으로 인류를 보낸다는 것.
당시로는 한마디로 개꿈이었고, 이전에도 있었던 몇몇 괴짜 억만장자가 또 나타났구나 하는 반응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미친놈은 불굴의 의지와 집념으로 자신의 꿈을 현실화하기 시작하였다.
2008년에 세 번째 로켓이 실패하고 전용기 탈 돈이 없어서 저가 항공사 비행기를 타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결코 자신의 꿈을 놓지 않은 것이다.
결국, 네 번째 발사가 기적적으로 성공하면서 기사회생하였고, 2015년 12월에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팰컨 9 로켓을 발사하여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킨 후, 1단 추진체 로켓을 그대로 다시 착지시키는 것에 성공하였다.
머스크의 꿈은 이제 개꿈이 아닌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의 밀덕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로켓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민간 로켓회사가 출현하여 우주여행에 성공하기까지는 내가 죽고 나서일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팰컨 9 로켓이 고스란히 얌전히 내려와 착지하는 영상을 보면서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고 바로 팰컨 9와 사랑에 빠져버렸었다.
우주여행!
이거 내가 죽기 전에 잘하면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는 이미 내가 미국 파워볼에 당첨된 후였기 때문에, 돈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고.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일을 성공시킨 스페이스 X라는 회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 봤는데, 빌어먹게도 투자는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이 망할 경영권 성애자인 머스크 놈이 가진 지분이 무려 54%!
무려 2002년에 창업한 회사가 이럴 수가 있나?
2015년까지 수십억 달러의 나사(NASA) 지원을 빼면 천문학적인 돈을 때려 박기만 하였지 변변한 매출도 없었던 회사에서?
게다가 지분도 그냥 지분이 아니었다.
차등의결권을 두었는지, 의결권으로 따지면 78%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란다.
이 정도면 그냥 개인회사라고 하여도 할 말이 없을 수준이니, 십수 년 동안 이놈이 얼마나 지분을 지키기 위하여 광적으로 집착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럼 언제쯤 상장을 하나 알아보았더니, 머스크 놈이 사람을 화성에 보내기 전에는 상장하지 않겠다고 하였단다.
이래서는 당시 사고팔고를 해서 자산을 늘려야 했던 나에게는 설사 판다고 하여도 손을 댈 수 없는 주식인 셈이었다.
결국, 나와는 인연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다니?
머스크와 양주 세 병을 나누어 마신 상태로 자꾸 정신이 흐려지려고 하였지만, 허벅지를 움켜쥐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금 스페이스 X가 성장하는 태세를 보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아마도, 스페이스 X에 발을 담글 기회는 다시는 없으리라.
정신을 차리자! 이건 진짜 기회다!
그렇다고 내가 밀리터리 오덕후요, 우주와 로켓에 자신만큼 미쳐 있는 놈이란 것을 들켜서는 안 된다.
머스크는 비정할 정도로 냉혹한 사업가이기도 하니까.
내가 스페이스 X에 원래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을 알면 설사 지분을 얻더라도 좋은 조건으로 가져올 수가 없을 것이다.
스페이스 X는 머스크가 과거에 했던 말처럼 화성에 사람을 보낼 때가 되어야 상장을 한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상장을 극도로 싫어하는 머스크의 성향상 가능한 한 늦게까지 미룰 것이 틀림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장기간 자금이 묶이게 되는 셈이므로, 제값 다 주고 거액을 박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가능한 한 저렴하게 뜯어내야 하였다.
“일론, 네가 나에게 성의를 보일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지? 넌 테슬라 지분을 빼면 가진 것이 없잖아?”
나는 가능한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일론은 바로 발작하였다.
“무슨 소리야? 내가 테슬라가 아니라도 가진 회사가 몇 개인데?”
“뭐가 있는데? 나도 테슬라에 투자를 생각할 무렵부터 너에 대하여는 다 파악했다고? OpenAI? 그거는 반쯤은 비영리 성격인 데다가, 실적을 내려면 100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고. 그리고 또 뭐지? 아! 사람 뇌에다가 컴퓨터를 때려 박는···.”
“뉴릴링크야! 그리고 컴퓨터를 때려 박는 것이 아니라, 뇌와 컴퓨터 인터페이스라고!”
“에이, 그게 그거지. 하여간 그건 네 취미생활 같은 것이잖아?”
“취미생활이라니! 그게 앞으로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넌 사이언스 픽션 영화나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것 아니냐? 솔직히 말해서 뉴릴링크가 제대로 궤도에 오르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냐? 게다가, 그건 윤리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할 텐데?”
“...”
정곡을 찔린 머스크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뉴릴링크는 너무 앞서나가는 발상으로 보였고, 특히 윤리적인 저항이 심하였으니까.
“그리고 더 보링 컴퍼니? 그건 완전 망조가 든 사업이잖아? 터널 시공하는 시간이 오래전의 도버해협 채널 터널 뚫는 것보다 10배나 더 걸렸다면서? 그럼 이제 남은 것이 뭐가 있지?”
“스페이스 X는 왜 빼는데? 스페이스 X는 현재도 시장가치로 30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고, 앞으로 미래가치를 따지면 테슬라보다도 더 회사라고?”
드디어 일론의 입으로 스페이스 X를 거론하게 만들었다.
장사는 지금부터다.
여기서 잘하면 제대로 뜯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너무 저평가를 해도 안 될 것이고, 너무 고평가해도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니, 딱 중간으로 평가하는 좋다.
“스페이스 X? 그래, 그건 그나마 회사 같은 회사지”
“회사 같은 회사 정도가 아니라, 앞날이 창창한 회사라고? 이거 왜 이러시나?”
“앞날이 창창한 회사면 뭐하냐? 몇 년 전에 폭파해서 페이스북 위성을 해 먹고 한참 발사도 못 했잖아? 그러고 보니, 그건 해결된 거냐?”
“무슨 소리야? 그게 언제적 이야긴데? 전부 수습했다고?”
“그래? 그럼 다행이다. 그래서 스페이스 X 이야기는 왜 꺼내는데? 그 회사는 네가 다 틀어쥐고 있잖아? 상장할 생각도 없다면서? 아니, 화성에 인류를 보내면 상장한다고 했던가? 이보게 일론, 그런 허황하고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냐?”
“말조심해! 알렉스!”
“어?”
머스크가 정말로 얼굴을 굳히며 화를 내어서 나는 당황하였다.
이렇게까지 감정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는데.
“허황하다니?”
“아니, 그게···.”
“나는 반드시 인류를 화성에 보낸다! 반드시!”
“흐음···.”
“우리 인류는 말이야···.”
그러면서 이글거리는 눈으로 어째서 인류는 화성에 가야 하며, 자신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머스크.
이놈, 화성에는 진심인 남자다.
어찌나 열정적으로 열변을 토하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그의 열정에 젖어 들기 시작하였다.
“대단하구나! 일론! 나 솔직히 감동 먹었다. 그리고, 좀 전의 내 말은 취소하고, 너에게 사과할게”
“괜찮아, 사과했으면 된 거지. 너만 이런 반응을 보였던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여간, 이래서 내가 스페이스 X의 지분을 악착같이 쥐고 있는 거야. 인류가 화성에 생활하는 것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스페이스 X의 절체절명 한 사명인데, 주식 상장 때문에 스페이스 X의 목적 달성 가능성이 작아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니까”
“어째서 상장하는 것이 스페이스 X의 목적 달성을 방해한다는 거냐? 더 많은 자본을 끌어들임으로써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 우리 스페이스 X의 사업 목적은 앞에도 말했다시피 초장기적이라고. 그런데, 상장 기업은 기술의 급변이나 내부사정, 또는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경제 문제로 주가가 요동을 칠 수밖에 없다고”
“그건 그렇지”
“그렇게 되면 우리가, 우리 스페이스 X의 직원들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게 너무나 싫어. 내 꿈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일말의 요소도 제거하고 싶고”
“그렇군”
“그래서 스페이스 X는 투자를 받더라도 철저하게 내가 직접 선별하여 받는 중이야. 장기적으로 우리 꿈에 합류하기를 희망하는 자본만 받고 있지. 그때그때 일희일비하는 돈은 필요 없어. 그런 돈은 다른 상장 기업에 투자하여 돈을 벌라고”
“인정한다, 일론! 그리고, 나도 항상 응원할게”
“고맙다, 알렉스”
나는 진심으로 이 로켓맨의 꿈을 응원하였고, 일론도 내 진심을 느꼈는지 다시 유쾌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런데 말이야, 일론. 스페이스 X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냐? 내가 알기로는 현재 대부분의 수입은 나사로부터 들어오고, 일부 다른 나라 위성도 궤도에 올려 주고는 있지만, 그 정도 수입으로는 감당이 안 될 텐데? 그래서 매년 찔끔찔끔 증자하여 돈을 대는 것으로 알고 있고 말이야?”
“솔직히 그래. 나사와 일부 국가의 위성을 올려 주는 장사로는 좀 버거워. 그래도 팰컨 9 로켓이 성공하면서 기업 가치가 많이 상승하여 증자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스타링크 사업도 순항 중이니까, 거기서도 몇 년 후부터는 돈이 들어올 것이고”
“스타링크? 그거 지구를 인터넷 위성으로 뒤덮어 버린다는 거 말이냐?”
“그래, 지난달에 위성 60기를 한 번에 띄우는 것에 성공하였거든? 이게 우리의 캐시 카우가 될 거다.”
“하지만, 그건 다른 경쟁자들도 많잖아? 아마존의 프로젝트 카이퍼라든가, 원앱과 에어버스의 원앱 프로젝트 같은 거 말이야”
“흐흐흐! 알렉스! 이런 신개념 위성 인터넷 사업에서는 내가 일등이야. 그놈들은 아직 위성도 못 띄었는데, 나는 띄웠거든? 이런 종류의 사업은 시장을 선도하는 놈이 이기게 되어있다고?”
“하하! 그렇군!”
“그렇지! 하하하!”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하여간 그래서, 네가 스페이스 X를 거론하는 이유는 뭐야? 내게도 투자를 권하는 거야?”
“사실, 네가 하도 내가 관여하는 테슬라 이외의 사업을 전부 엉터리로 취급하여 꺼낸 말이기는 한데, 어때? 생각이 있어? 알렉스 네가 나의 꿈에 공감하고, 테슬라 지분 의결권을 나에게 일임한다면 괜찮은 거래가 될 것 같은데?”
“글쎄다? 너의 꿈에도 공감하고 솔직히 감동도 받았어. 하지만, 투자하면서 의결권을 포기하라니? 이건 내가 너무 밑지는 장사잖아?”
“알렉스, 아까도 말했지만, 스페이스 X에는 아무나 투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지금 시장가치가 뭐 300억 달러? 두고 봐. 10년 이내로 스페이스 X의 시장가치는 50배, 100배가 될 것이니까”
“흐음, 그래서 얼마나 투자하라는 이야기야? 또 지분은 얼마나 줄 것이고?”
“5% 줄 테니까 30억 달러에 가져가”
“뭐? 지금 시장가치가 300억 달러라면서? 테슬라 의결권을 포기까지 하는데, 내게 두 배나 받겠다는 거야?”
이건 아니지.
그리고 난 5% 같은 지분은 사양이다.
“알렉스, 시장가치가 300억 달러라는 말은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정말 스페이스 X의 가격이 그거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냐? 지금 당장 상장해도 그거 몇 배는 받을 텐데?”
“그거, 네 생각이잖아? 거기다 테슬라 의결권이 그렇게 저렴해? 그건 아니지?”
“그럼 네가 생각하는 가격은 얼마인데?”
“흐음···.”
난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우리 이렇게 하자”
“어떻게?”
“너, 매년 찔끔찔끔 증자해서 돈 모으느라고 신경 쓰이지 않냐?”
“당연히 신경 쓰이지?”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
“내가 매년 50억 달러씩 3년 동안 150억 달러를 낼게”
“뭐? 그렇게나 많이?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고 지분은 얼마나 달라는 거야?”
“25%!”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 말 끝까지 듣는 것이 좋을 텐데? 너에게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니까?”
“...”
머스크가 나를 살짝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계속 말해”
“대신에 내가 확보하는 테슬라 지분의 의결권은 전적으로 네게 일임하지. 물론 내 이익을 침해는 일은 하지 않는 조건으로 말이야.”
“그게 다야? 그건 원래 조건이잖아?”
“그리고, 또 있어. 내가 확보하는 스페이스 X 지분의 의결권도 모두 네게 넘기지! 물론 몇 가지 소소한 조건은 붙지만”
“뭐? 너 진심이냐?”
“응, 진심이야. 그러면 나도 이 정도 지분은 받아야 하지 않겠냐?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은 상장할 가망이 없는 회산데? 이 말은 나도 네 꿈에 동참한다는 뜻이야.”
“흐음···.”
“잘 생각해 봐. 테슬라든 스페이스 X든 너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지분을 확보하면서, 돈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기회니까.”
“...”
머스크는 내 말을 듣고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25%는 너무 쎄! 15%로 하자!”
“너 전생에 강도였냐? 이 날강도 놈아? 그렇게는 안 되지! 23%!”
“18%!”
“21%!”
“19%!”
“20% 끝!”
“오케이! 딜!”
“하하하!”
“하하하!”
나는 머스크와 힘차게 악수를 하였다.
이렇게 뜻밖에 스페이스 X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