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미친 짓은 혼자 하라고
머스크와는 기분이 좋은 김에 한 병을 새로 시켜서 더 마셨다.
그리고는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한자리에 앉아서 둘이 양주 네 병을 깠으니, 무사하였으면 그게 웃기는 일일 거다.
“아이고, 나 죽는다···.”
“놀고 있네. 미친 인간들 아니야? 양주 네 병을 둘이서 까다니?”
제프리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째려보면서 말했다.
어제 일론과 의기투합하여 퍼마시다가 전화로 의논할 것이 있으니 오늘 사무실로 오라고 했었는데, 내가 빈사 상태로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아이, 몰라! 나 죽을 것 같아”
“죽어 버려라. 아니, 너야 그렇다고 치자. 머스크 그 미친놈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무슨 술을 그렇게 퍼마시는 거야?”
“...”
난들 아나?
“하여간 대단한 일입니다, 보스! 스페이스 X 지분 20%라니요? 하하하!”
“흐흐흐! 그렇죠?”
역시 나를 알아주는 이는 존밖에 없었다.
“그럼요? 그렇게 머스크와 돈독한 사이로 알려진 바론 캐피탈의 로널드 바론 회장도 돈을 싸 들고 쫓아다니면서 투자하겠다고 하였는데도 1%도 안 되는 소량의 지분을 얻은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그만큼 머스크가 철벽을 쌓고 있는 것이 스페이스 X 지분이고, 돈 좀 있다는 놈들은 너도나도 달려들었어도 소득이 없을 만큼 투자하기 어려운 종목입니다.”
“하하! 그래요. 테슬라 의결권과 스페이스 의결권을 묶어서 미끼로 던진 것이 유효하였던 것 같아요.”
“정말 잘하셨습니다. 보통 투자가들이 의결권에 집착하는데, 순수 투자가라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요. 특히나 테슬라나 스페이스 X같이 창업자 카리스마에 의존이 심한 종목이라면 더욱더 말입니다.”
“존, 그래도 완전히 의결권을 던져 줄 수는 없잖아?”
흥분한 존에게 제프리가 살짝 제동을 걸었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지. 그래서 보스가 자네를 오라고 한 것일 거야. 안 그렇습니까? 보스?”
“맞아요, 존. 일론하고도 그 부분은 명확히 이야기했고요. 특히 테슬라는 우리가 영구적으로 보유할 주식도 아니고 언젠가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주가가 오르면 매도해야 하는데, 무작정 일론에게 묶여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보스”
“알았다, 알았으니까 소파에 그만 좀 자빠지고 이리 와서 앉지?”
“...”
술이 원수다.
어찌 되었든 존과 제프리와 함께 머스크와 계약할 세부 조건을 논의하였고, 나와 머스크는 빠지고 존과 제프리가 나서서 머스크의 변호사와 일주일 정도를 오고 가면서 조정하다가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였다.
이런저런 세부적인 조건은 많았지만, 핵심적인 부분은 이랬다.
“테슬라 지분은 우리 지분이 15%를 넘긴 시점부터 2년 동안 매도하지 않기로 하였어. 그리고, 그 이후로도 2년 이상은 10% 이상의 지분을 유지하기로 하였으니까 총 4년인 셈이지”
“그리고요?”
“4년 이후부터는 우리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지만 우선하여 머스크와 매도 처에 대하여 협의하기로 하였다. 뭐, 이거야 흔히 있는 일이고 가격이 안 맞으면 그만이야. 그리고, 역시 4년 이후로도 우리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면 다시 협상하는 것으로 하였고”
4년 정도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2년 후부터는 10%를 넘긴 지분은 자유롭게 매도할 수 있으니까.
“스페이스 X는 올해 12월 31일까지 1차로 50억 달러씩 납부하는 것으로 하여서 3년 동안 매년 50억 달러를 매년 12월 31일에 3회에 걸쳐서 총 150억 달러를 투자하는 것으로 했다. 물론, 지분은 대금 납부와 동시에 3분의 1씩 가지는 것이고. 그리고 위약금은 우리가 강력히 주장하여 총액 150억 달러의 3배를 지급하는 것으로 하였으니 중간에 파기하는 일은 없을 거야”
“잘하셨어요.”
우리 예상대로라면 테슬라 주는 분명히 폭등할 것이다.
그렇게 되어 지금은 주식 말고는 거지나 다름없는 일론이 테슬라로 번 돈으로 없는 일로 하자고 하면 곤란하기에 강력하게 주장하여 집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추가 증자를 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면 우리의 동의가 필요하고, 하더라도 우리가 우선 인수할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행사 가격은 당연히 이번 투자의 주당 평균 가격으로 하고 말이지요.”
“흐흐흐! 잘했어요.”
150억 달러라면 스페이스 X가 추가로 돈이 필요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은 모르는 거니까 확실하게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이익을 해치는 결의는 못 하는 것으로 하였다. 꼼꼼하게 집어넣었으니까, 나중이라도 문제 될 만한 일은 없을 거야”
“하하하! 고생했어요, 제프리 형”
“하하하! 제프리가 어찌나 까다롭게 굴던지, 머스크가 뛰쳐 나와서 성질을 부리다가 나중에는 이번 계약이 끝나면 자신의 일도 봐달라고 하더군요.”
“오! 제프리 형 큰 고객 잡았네? 일론 그놈은 말이 많고 돌발 행동을 자주 하여서 소송에 자주 걸릴 텐데?”
“뭐, 너의 이익하고 배치되는 일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봐준다고 했지. 흐흐흐!”
“하하하!”
미국은 정말 변호사의 나라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별 시답지 않은 사소한 일에도 변호사가 달라붙고 온갖 웃기는 조건이 붙는 나라가 미국이니까.
특히 머스크는 설화가 너무 많았다.
내가 오죽했으면 제발 트윗질 좀 하지 말라고 헸을까?
“이봐, 일론”
“왜? 알렉스?”
“그거 트윗질 좀 하지 않으면 안 되냐? 네가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왜 그리 트윗질을 하는 거야?”
“이거 왜 이러나? 나도 다 계산하고 하는 거라고? 툭툭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것 같아도 말이지”
“헛소리!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퍼기 경의 명언도 모르냐?”
“퍼기가 누군데? 혹시 블랙 아이드 피스의 그 이쁜 언니? 한 번 꼬셔 봐?”
“미친놈···.”
할 말이 없다.
그냥 내버려 두는 수밖에.
일론이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100%는 못 믿어도, 놈이 트윗으로 세상과 소통하면서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늘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고.
“알렉스야”
“왜?”
“우리 돈 벌면 트위터나 인수할까?”
“제발 우리라고 표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친 짓은 혼자 하라고”
“크크큭! 알았다.”
너무 자주 보지는 말자.
머리가 어지럽다.
8월이 되자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였다.
내년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환란에 대비하자면 아무래도 올해는 여러 차례 한국에 드나들어야 할 것 같았다.
“남 대표와 상의하여서 화성의 정남 일반산업단지에 땅을 분양받았다.”
“화성에? 화성 어디?”
경기도 화성시는 말이 시지 엄청나게 넓은 도시다.
서울의 1.4배라는데, 간척지까지 붙이면 더 늘어난다고.
“내륙 쪽으로 동탄하고 오히려 가까워. 같은 화성시 안에 향남 제약산업단지나 바이오밸리도 있고”
“그래요? 얼마나 샀어요?”
“3만 제곱미터로 평으로 9,000평이 좀 넘어. 평당 245만 원으로 매입가는 222억 정도 들어갔다.”
“생각보다 싸네?”
“아무래도 산업단지라서 국가에서 단지 조성하고 조성비만 받게 법으로 되어있거든. 대신에 입주 업종 같은 것에 제약에 좀 있는 편이지만 우리하고는 상관없지. 보통 편법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많은데, 우리는 정남 산업단지 조성 목적 중의 하나인 의료 장비가 비슷하게 들어가고 말이야.”
“아하···.”
마스크나 보호경 같은 것이 솔직히 의료 장비는 아니지만, 뭐 비슷하니까.
“거기에 우선적으로 매입한 마스크 장비들을 집어넣을 거야. 우선 국내에서 수배한 마스크 기계 200대와 새로 주문한 300대를 모두 집어넣을 거야.”
“오오! 그거 나름 장관이겠는데? 월 생산량이 얼마나 될까?”
“KF94 마스크 기준으로 하루에 16시간 돌리면 3만 장이 나와. 그러니, 단순 계산으로 쉬는 날 없이 30일을 돌리면 기계 1대에서 월 90만 장이고, 500대로 돌리면 4억 5,000만 장이지”
“하루에 16시간 돌려서 그 정도면 비상시에는 더 생산할 수 있다는 소리네?”
“그래도 6억 장이 한계야. 기계도 잠시 쉬고 정비도 해야 하니까”
“덴탈용 마스크는?”
“그건 하루에 6만 장. 기준은 동일하고. 그것도 중고 100대와 새로 400대를 발주했어.”
“500대면 9억 장이네? 월 생산량이 말이야?”
“그렇지. 그런데, 그건 기계가 좀 늦을 거다. 내년 2월은 되어야 공장에 입고될 거야”
그 정도면 그리 늦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KF94가 우선일 것 같기도 하였고.
“기계값은?”
“KF94용이 아무래도 좀 비싸. 1억 5천만 원 정도 하는데, 대량으로 주문하면서 9,000만 원으로 후려쳤다. 덴탈용은 그거 절반이고.”
“흐흐흐! 잘하셨어”
“우리가 누구냐? 홍 사장님에게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어딘데?”
“하하! 그래도 너무 후려친 것은 아니지?”
“야, 물량이 KF94용 300대에 덴탈용이 무려 400대야. 한 곳에 소화 못 하여서 네 곳에 나누어 발주하였고. 그 친구들 지금 속으로 만세 부르고 있을 거다.”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괜찮겠냐?”
“뭐가요?”
“이거 네가 말한 것처럼 세계적인 품귀 현상이 일어나면 처음에야 난리가 나겠지만, 분명히 열 달만 지나도 우후죽순으로 여기저기서 만들고 똥값이 될 거야. 그래도 괜찮겠냐고?”
재하 형의 말은 상당히 합리적인 예측이다.
“땅값만 222억이 들어갔어. 거기에 공장 짓는데 100억이고, 마스크 기계 등의 설비가 중고와 신품 합쳐서 600억이야. 대충 계산해도 거의 1,000억을 박는 것인데 괜찮겠냐는 말이지. 공장 용지와 공장 건물이야 남는다 쳐도 말이지”
“상관없어요. 어차피 우리 역할은 초기의 부족 사태를 메우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초기에 부족할 때 정상 가격으로 팔아도 풀로 돌리면 기곗값은 빠지지 않겠어? 게다가 상황 봐서 난립할 것 같으면 팔아치우면 그만이잖아?”
“음? 그래도 돼?”
“당연하지? 우리가 무슨 마스크 장사를 평생 하려고 이러나?”
“흐흐흐! 그럼 만약 난리만 난다면 무조건 번다. 안 나면 날리는 것이고”
“전부 날려도 좋으니까, 난리가 안 났으면 좋겠어.”
“험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알아, 형. 재하 형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설마 재하 형이 난리가 나라고 빌겠냐?
워낙 많은 돈을 들이붓고 있으니,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지.
“자식이 하여간 이상한 일은 시켜서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고 있어?”
“흐흐흐!”
“하여간, 그거 외에도 정남 공장에는 보호용 고글 같은 다른 방역용품 장비들을 추가로 생산할 거다. 그리 알고 있어”
“응, 그러면 방역보호복은?”
“그건 전문으로 생산하는 소규모 업체 두 곳을 인수하였고, 나머지는 원단을 확보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어. 막말로 원단만 있으면 재봉틀이 있는 어디서도 생산이 가능하니까. 일단 인수한 업체에서 생산량을 끌어 올려서 비축 중이야”“전부 규격에 맞는 원단이지?”
“물론이지. 덕분에 업계에서는 무슨 종말론에 심취한 미친놈들이 나타났다고 난리란다.”
“뭐? 종말론? 웬 종말론?”
“그렇게 생각 안 하겠냐? 말은 하지 않지만, 난데없이 우리나라가 10년은 써도 남을 보호복을 생산하고 그것에 몇 배는 되는 원단을 확보하고 난리 치는데?”
“...”
하다 하다 이제는 종말론에 미친놈으로 몰리는구나.
착한 일 하기 정말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