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그런데 내가 왜 들어본 것 같지요?
“백신 개발은 잘 되고 있지요?”
“네, 회장님. 직접 설명을 들으시지요.”
“직접이요?”
“하하! 회장님께 인사시키려고 우리가 인수한 백신 개발사 아이바이오로직스 대표를 오라고 하였습니다.”
“아! 혹시 밖에서 민명기 부사장과 말씀 중이던 분?”
“보셨군요. 그럼 들어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잠시 후, 50대 중반의 중년 남자가 의료사업 담당 부문장인 민명기 부사장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인사드리세요. 백 사장님. 제가 말씀드린 우리 카르마 홀딩스 모회사인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강철식 회장님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백상희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백 사장님. 강철식입니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네, 감사합니다.”
잠시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민명기 부문장님, 백신 개발 현황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역시 그건 백 대표가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백 대표님”
“네, 그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회장님께서 지시하신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은 지난 5월부터 회사의 역량과 가용 가능한 역량을 총동원하여 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건 들었다.
“백신 개발의 기본적인 목표는 향후 도래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어떠한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과 변이 바이스가 발생하더라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백신을 개발하여 보급하는 것이지요.”
“네, 맞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발생하였던 사스와 메르스를 기반으로 백신 개발을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어차피 사스나 메르스나 같은 베타 코로나바이러스이고,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이나 아종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흐음···.”
“따라서, 사스와 메르스 바이러스의 백신을 개발해 놓으면, 신종으로 생기는 웬만한 코로나바이러스에 매우 신속하게 대응하여 백신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 개발하는 것도?”
“네, 맞습니다. 현재 사스와 메르스 백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개발은 서울대의 국제백신연구소와 서울대 병원과 협력하고 있고, 국립보건원과 질병관리본부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 정부에서도 도와주고 있었습니까?”
정부에서 도와주는 줄을 몰랐었다.
“대놓고 협력해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요, 권준호 과장이 자신의 인맥을 통하여 많을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덕분에 질병관리본부 정인영 본부장도 관심을 가지고 국립보건원이 보유 중이던 사스와 메르스 관련 자료와 시료들을 아낌없이 제공해 주셨고요.”
“오! 그거 정말 고마운 일이군요?”
“하하하! 여기 민명기 부사장님도 계시지만, 메르스 사태 당시에 최일선에 계시던 보건 공무원들의 트라우마가 사실 어마어마합니다. 워낙 상처가 컸었으니까요.”
“험험···.”
옆에 있던 민명기 부사장이 민망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였다.
아마도 가장 상처가 컸던 사람이 민 부사장일 것이었다.
“하여간 그래서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 이야기가 나오면 두 손을 다 들고 도와주십니다. 정 본부장님은 따로 시간을 내어서 우리 회사에 방문하여 격려도 하고 가셨고요.”
“오···.”
“현재 개발 일정표는 연말까지 사스와 메르스 백신을 개발하여 사전 임상 직전까지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생각보다 빠른데요? 그게 가능한 겁니까?”
“험험, 자꾸 예전 이야기를 꺼내서 죄송합니다만, 유독 우리나라가 메르스에 호되게 당한 경험 덕분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잘 모르시겠지만, 사스는 몰라도 메르스에 관한 연구가 제법 이루어졌습니다. 국제백신연구소에서도 계속 연구 중이었고요. 그래서 그 자료를 넘겨받고 협조를 받아서 그렇게 신속한 개발이 가능한 거였습니다.”
정말 당시 메르스가 한국에 끼친 영향이 크긴 컸나 보다.
“하여간, 백 대표님께서 수고를 해주십시오.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민 부사장님께 말씀하시고요.”
“하하하! 아닙니다. 이미 많은 것을 지원해주셔서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일단 대규모 증자를 해주셔서 돈도 넘쳐나고, 인력도 많이 충원하고 장비도 보충하였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백 대표님만 믿을 터이니, 사명감을 가지고 개발에 임하여 주세요. 좋은 결과가 있으면 백 대표님 이하 모든 임직원에게 제가 보상을 따로 할 겁니다.”
“하하하! 이거 직원들에게 알려 주어도 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기대하여도 좋다고 말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후에도 한참을 다가올 바이러스 공세에 대응하는 대책에 대하여 논의하였고, 먼저 민 부사장과 백 대표를 내보냈다.
“남 사장님, 사무실 공간이 점점 비좁아 보이는데요?”
현재 카르마 홀딩스는 원래 대성이 있던 건물 상층 전체를 임차하여 사용 중인데, 인원이 늘어가면서 비좁아지고 있었다.
“하하! 마곡의 사옥이 완성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지요. 부족한 사무 공간은 옆 빌딩을 임차해서라도 해소하는 중입니다.”
“사옥 완공 예정이 언제지요?”
“내년 4월입니다.”
“가능한 좀 더 당겨 보세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차질이 발생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부탁인데요.”
“뭡니까?”
“우리 집이 이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어디 괜찮은 곳이 없을까요? 좀 널찍한 단독 주택으로 이사하고 싶은데요?”
지금 사는 곳도 충분하였지만, 아무래도 다가오는 환란을 생각하면 좀 불안하였다.
펜데믹이 오는 세상이다.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에 가족들을 살게 하는 것은 싫다는 말이다.
물론 전 국민의 반 이상이 아파트에서 사는 나라에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돈이 있는데 이 정도는 하고 살아도 될 거였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이니까,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살기를 바라는 거니까.
“호오? 그러세요?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그렇지 않아도 회장님이 이제는 한국에 자주 오시니까, 한국에서 회장님을 모실 비서를 구하였습니다. 그 친구가 이런 쪽은 잘 압니다.”
“아, 그래요?”
“네, 사성에서 자산을 운용하던 친구입니다. 굉장히 탁월하고 입도 무거운 놈이라 예전부터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 그만둔다고 하길래 냉큼 데리고 왔지요.”
“하하! 잘하셨습니다.”
“그럼 잠시만요.”
“네”
남 사장이 인터폰으로 지시하자, 잠시 후 건장한 사내 하나가 집무실로 들어와서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조철봉이라고 합니다.”
“예? 조철봉이요?”
“네···.”
“크크큭!”
“...”
내가 이름을 듣고서 벙쩌서 반문을 하자, 옆에서 남정원 사장이 아주 자지러지고 있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체 무슨 이름이 이렇게 색스럽냐?
아니, 그보다도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이름 가지고 미안한데, 본명이에요?”
“그런 말씀 태어나서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만, 본명이 맞습니다. 조부께서 지어주셨고요.”
“아, 예···. 그런데 내가 왜 들어본 것 같지요?”
“오래전에 살색신문을 표방하는 일간지에서 연재하였던 소설의 주인공이 조철봉이었습니다.”
“아! 맞다! 강력한 남자!”
“네···.”
조철봉의 어깨가 축 내려가면서 시인하였다.
어째 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더라니.
그 강력한 남자라는 소설은 상당히 야했었다.
거의 노루표 소설의 경계 살짝 안쪽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이 친구, 이름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받으면서 살았을 것 같다.
이름은 그만 거론하자.
그래도 위로는 해주고.
“힘들었겠어요?”
“네, 조금···.”
“험험, 이름 이야기는 그만하지요. 그래, 나이가?”
“올해 34살입니다.”
“오, 나보다 한 살 아래 시네?”
“네, 저도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직장 생활은 계속 사성에서만 하셨구요?”
“네, 사성 미래전략실에 입사하였다가 해체되면서 비서실 소속이었습니다. 8년 동안 근무하면서 그룹 자산 운용 업무를 주로 담당하였습니다.”
“그럼 사성 총수 일가 자산도?”
“관여하였습니다만, 그 부분은 묻지 말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 이런! 내가 실수하였네요.”
전 직장에서 총수 일가 재산을 운용한 것은 내가 물을 일이 아니지.
이 친구의 태도가 맞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고.
게다가 나보다 비록 한 살이지만 어려서 내가 편할 것 같았다.
“그래요, 이거 반갑습니다. 우리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감사합니다.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이거 참 좋은 인재를 얻으신 겁니다. 철봉이는 입사할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던 인재였어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소속은 홀딩스 자산 운용팀 팀장으로 해서 별도로 분리할 것이니, 편하게 지시하시면 되겠습니다. 호칭은 조 팀장 정도로 하면 될 것이고요.”
“알겠습니다. 저기 조 팀장”
“네, 회장님”
“우리 부모님과 여동생이 살고 있는 본가가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한국에 오면 나도 여전히 사는 집이고”
“네”
“그런데, 좀 널찍한 단독 주택으로 이사하고 싶거든요? 번잡하지 않은 곳으로 말입니다.”
“지역은 어디 정도로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대략 생각하시는 면적은?”
“지역은 크게 상관없어요. 내가 1년에 한국에 거주하는 기간이 서너 달 정도인 데다가, 와도 회사에 오래 붙어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저 공원이 많고 번잡하지 않으며, 서울이 아니더라도 서울 접근성이 어느 정도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면적이야 크면 클수록 좋고 가능하면 신축이면 더 좋아요.”
“흐음, 알겠습니다. 이틀 안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빨리?”
“이미 제 머릿속에는 몇 군데 후보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하고 알아보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 일 잘하시네?”
“감사합니다.”
윗사람은 이렇게 즉각 대답이 나오는 사람을 총애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답답하지가 않으니까.
이틀 후, 조철봉 팀장은 나에게 보고하였다.
“여기가 최적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서판교?”
“네, 맞습니다, 분당구 백현동 일대입니다. 싹닷컴의 뉴월드 전 회장이 사는 곳의 인근이지요.”
“아니, 여기는 나도 현도 판교 백화점 때문에 자주 들려서 아는 곳인데, 여기에 신축으로 나온 집이 있어요? 이미 다 짓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중견 건설사인 종일 건설 회장이 자신이 살라고 먼저 땅만 확보하였다가 1년 반전에 공사에 들어갔었는데, 현재 공정률 70% 상태에서 공사가 멈춘 상태입니다.”
“왜요?”
“종일 건설이 오늘내일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서 매물로 나왔는데, 같이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래요. 가봅시다.”
바로 길을 나서서 서판교로 향하였다.
“오! 좋은데?”
“괜찮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엄청 넓네요?”
“대지 면적이 5,800㎡로 평으로는 1,700평이 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으로 꼽히는 뉴월드 전 회장의 주택이 4,400㎡인데요. 이게 완공되었으면 우리나라 주택 서열이 바뀌었을 겁니다.”
정말 좋았다.
주변에 공원도 많고 터도 네모반듯한 데다가 주변이 다 대형 고급 주택이라 기반 시설이 잘되어 있으면서도 한적하였다.
“공정률이 70%라고요?”
“네, 다시 회장님 취향대로 일부 설계를 좀 바꾸고 시공을 시작하면 내년 2월에는 입주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것도 마음에 드네.
빠르게 입주할 수 있는 것이 말이다.
“얼마에요?”
“원래 땅값만 300억은 하는 땅인데, 집주인이 지금 급하다 보니 250억에 내놓았는데도 물건이 워낙 커서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짓다 만 집은 사실 거의 값을 못 받고요. 그래서 미완공 주택값을 포함하더라도 250억이면 매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300억!”
“네? 300억이라니요?”
“300억 주고 매입하세요.”
“아니 그렇게까지···.”
“나와 우리 가족이 살 집입니다. 남의 어려운 틈을 타서 헐값에 샀다는 소리는 듣기 싫어요.”
“아! 알겠습니다.”
“바로 매입해서 수정하고 공사 들어갑시다.”
“네, 회장님”
즐거운 우리 집인데, 제값을 주고 사고 싶었다.
혹여나 원망이라도 받아 부정 타기는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