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세상이 멈출 것입니다.
일전에 남정원 사장과 술을 마시면서 한담을 나누다가 한 번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정말 항간의 소문처럼 사성 그룹의 정보력이 국정원보다도 낫냐고 말이다.
“하하하! 회장님도 그런 풍문을 들으셨어요?”
“흐흐! 오래전부터 나돌던 이야기잖아요? 대선 결과도 귀신같이 맞추고, 심지어는 옛날 김영사 정부 시절에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시행할 때도 사성만은 재벌 중에서 미리 알았다고 말이지요.”
“그런 말들이 많기는 했지요.”
남정원 사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술을 들이켜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성 그룹의 정보력이 대단한 것은 맞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내에서의 정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요. 정계, 재계, 관계, 그 어디서 일어나는 일도 사성의 눈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호오!”
“특히나 정계와 관계는 창업자 때부터 3대에 걸쳐서 학생 시절부터 장학금을 주면서 씨를 뿌려 왔습니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군사정권이 끝나면서부터인 90년대이고요. 그 이전에도 소위 말하는 사성 장학생들이 곳곳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정권의 위세가 너무 강해서 한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민주화의 과실이 참 엉뚱한 곳에 돌아간 셈이네요?”
“하하하! 맞습니다. 그런 것이지요. 하여간 세상이 민주화가 되면서 권력은 정말 유한하게 되었으니, 금력은 무한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가 진정 사성 장학생의 위력이 발휘되던 시점이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3대에 걸쳐서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학생 시절부터 공을 들이다니.
그리고 그렇게 뿌린 씨앗이 남들보다 한발 앞서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물론, 나 같은 국민의 한 사람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크지만, 어쨌든 기업가로 보면 대단한 것이다.
“이제 회장님의 질문에 대답을 드린다면, 세간의 풍문이 아마도 맞을 겁니다. 특히 이학주 실장님이 기조실장으로 있을 당시에는 정말 대단하였어요. 제가 직접 모시면서 본 것도 그랬습니다. 입사 직후 바로 IMF가 터졌었는데, 우와! 정말 대단했었다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습니다. 사성이 다른 재벌에 비하여 IMF를 극복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든 것도 다 이학주 실장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 대단하던 이학주 실장이 밀려난 후에는 솔직히 예전만 못합니다.”
“아니 그런데, 그렇게 대단하던 이학주 실장이 왜 밀려난 겁니까?”
“간단합니다.”
“응?”
“어느 왕조든지 신임 군주는 전대의 충신을 싫어하지요.”
“아!”
“이건 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정인 회장님도 선대의 가신들을 초기에 그렇게 못살게 굴었다고 하더군요.”
왕조에 비교하여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해하기에는 그만이었다.
“하여간 말이 길어지고 좀 엉뚱한 곳으로 샜는데요, 어쨌거나 사성의 정보력은 대단합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정도로 말입니다.”
이것이 남정원 사장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것을 실감하는 중이었고.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계시는지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충분히 실례가 되는 질문이다.
난처한 질문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개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정룡 부회장이 내게 무슨 악의를 가지고 물어보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대체 그런 것은 왜 물어보십니까?”
“아, 혹시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그럴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요?”
“네, 우리 조금 더 솔직하게 대화할까요? 그러면 나도 설명하기가 좀 더 쉬울 것 같은데요?”
“그러시지요. 부회장님이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나도 왜 그런 일을 벌이는지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좋습니다! 대신에 우리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가지고 뒤끝을 가지거나 불쾌해하기는 없기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먼저 건배부터 하시지요. 위하여!”
“위하여!”
챙!
“캬!”
“캬!”
“하하! 이거 오랜만에 마시는 술인데, 회장님과 마셔서 그런지 술맛이 참 좋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나야 늘 마시는 술맛이지만, 립 서비스 정도는 해주자.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 비서실에서는 말이 많았습니다. 이거 괴짜가 아니냐는 것이지요. 왜 있잖습니까? 우리나라는 별로 없었지만, 미국에는 핵전쟁에 대비하여 전용 방공호를 파거나 화성에 간답시고 날뛰는 미치광이 억만장자 같은 사람들 말이지요.”
“쿨럭!”
갑자기 사레가 들렸다.
거기서 화성은 왜 나오는데?
“왜 그러십니까? 괜찮으세요?”
“괘, 괜찮습니다.”
“아, 예. 하여간 그런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강 회장님이 벌리는 일에 대한 분석은 이견이 없었습니다. 이건 무조건 팬데믹을 대비하는 것이다. 그것도 20세기 초에 전 세계를 휩쓸었던 스페인독감에 버금가는 펜데믹을 말이지요. 스페인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는 추정만 할 뿐이지만, 1,700만 명에서 5,000만 명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스페인독감에 대하여 아십니까?”
“네, 압니다.”
“강 회장님께서 준비하는 마스크와 방역복 등의 방역 물자만 평상시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20년 이상을 사용해도 남을 양이라고 하였습니다.”
“뭐 그 정도 될 겁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라는 겁니다. 강 회장님께서 신내림이라도 받았든가 아니면 어디서 미래를 보는 능력이라도 얻지 않는 이상은 말이 안 된다는 거지요. 무슨 노스트라다무스도 아니고요.”
“...”
미안하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서.
“그래서 결론이 나온 것이 죄송합니다만, 강 회장께서 무슨 종말론에 심취한 괴짜 억만장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더 솔직해져 보시지요. 정말 괴짜라고 했어요?”
“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럴 때 쓰는 말이 따로 있을 텐데요?”
“험험, 사실은 또라이라고···.”
“조금 더!”
“개또라이···.”
“...”
듣기가 좀 거시기하지만, 참으로 합리적인 추론이다.
나 같아도 그렇게 말했을 테니까.
아니, 나 같았으면 그 새끼 미친 거 아니냐고 했겠지.
“기분 나쁘십니까?”
“아닙니다. 참으로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그런데, 왜 저를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그런 개. 또. 라. 이를요?”
“뒤끝이 있으신 거 같은데요?”
“아니라니까요?”
“험험, 하여간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 그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더군요.”
“호오? 그래요?”
“네, 유난히 통찰력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그런 것이 남달라서 평소에도 제가 그 사람이 말을 하면 주의 깊게 듣는 편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니 저도 좀 더 생각하게 되었지요.”
“뭐라고 하였는데요?”
“단편적인 현상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보라고 하더군요. 즉, 여기서는 전체가 강 회장님이 되는 것이지요.”
“나를요?”
“네, 똑같은 행동을 두고서 판단하더라도, 그 행동을 누가 했는가? 를 유심히 봐야 한다는 겁니다.”
“오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런 식으로 따지면 강 회장님이 지난 몇 년간 투자한 행태가 이해가 되냐는 것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투자지.
머리를 모자걸이로 달고 있지 않은 이상에 말이다.
“예를 든 것이 AMD였습니다. 몇 년 전에 AMD가 정크 등급으로 떨어지고 오늘내일하면서 사경을 헤맬 때, 과연 누가 AMD에 투자할 수 있겠냐는 말을 했습니다. 심지어 우리 사성도 그 당시에 AMD를 인수해 볼까 해서 내부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 그래요?”
“네, 검토 결과는 이구동성으로 100% 망한 다였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며칠 전 AMD 주가가 30달러를 상회하고 있었습니다. 강 회장님이 처음 매수한 평균 주가가 1달러인가 그 밑이던가였죠? 거기다가 중간에 사고팔고 해서 그 와중에 더 높은 수익을 올렸고요? 결과적으로 한 100배쯤 되나요? 수익률이?”
“뭐 비슷합니다.”
“바로 그것이지요. 어쩌다 운이 좋아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 회장님은 이후에도 사고팔고 해서 더 수익을 올렸고, 다른 종목에서도 AMD까지는 아니라도 예외 없이 경이적인, 아니 솔직히 미래에서 타임머신 같은 것을 타고 온 사람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할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수익률을 올리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리액션이 참 좋으십니다?”
“험험···.”
이 사람이 한창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세상의 상식이나 합리적인 추론 따위는 일단 제쳐두고, 그 사람이 이룩한 결과만을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그 친구의 주장이었습니다. 운이 계속되면 그건 운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요.”
누군지 모르지만 대단한 사람 같았다.
남정원 사장에게 말해서 알아보라고 해야겠다.
“그 친구의 주장으로 회의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강 회장님 같은 사람이 이유 없이 이런 일을 벌일 리는 없다는 것으로 말입니다. 분명히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알기 때문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요.”
“그래서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원래도 꼭 한 번은 뵙고 싶었습니다. 지금 카르마에서 대주주로 있는 종목들이 대체로 우리 사성과는 연관이 깊으니까요. 게다가 그 믿을 수 없는 투자 성공률? 정말 보고를 받으면서도 몇 차례나 이거 서류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기가 막히더군요. 그래서 겸사겸사 뵙자고 한 것입니다.”
“그렇군요.”
“또 만약 강 회장님이 대비하시는 것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우리 사성도 대비해야 하거든요. 잘 아시겠지만, 우리 사성의 미래 먹거리 중의 하나가 제약 아니겠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싸바···.”
“앞에 글자에 악센트는 주지 마셨으면 합니다. 가능하면 사성 바이오로직스라고 길게 말씀해 주시면 더 좋고요. 우리 회사에서 싸바싸바 했다가는 저한테 크게 혼이 납니다.”
“...”
미안하지만, 난 당신 직원이 아닌데?
그래도 본인이 원하니 길게 불러주자.
괜히 이런 것으로 기분 나쁘게 할 필요는 없지.
어쨌든 이정룡 부회장이 비교적 솔직하게 말한 것 같으니, 나도 어느 정도는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이 도리다.
게다가, 싸바, 즉 사성 바이오로직스는 환란이 터지면 백신의 대량 생산을 위해서라도 협조를 받아야 하는 회사고.
현재 송도에 있는 1에서 3공장만 해도 생산 용량 기준으로 세계 1위의 회사인데, 이걸 9공장까지 확장한다고 하는 회사다.
협력은 필수 불가결이다.
내 말을 믿을지 안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부회장님이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으니,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단! 근거를 대라고 하지는 마세요.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도 없고, 굳이 이해시키고 싶지도 않습니다. 전적으로 내 생각이고 판단이니까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앞에 말씀드렸듯이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사성에서 분석한 것이 맞습니다. 저는 팬데믹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아! 대체 어느 정도길래요?”
“세상이 멈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예? 세상이 멈춰요?”
이정룡 부회장의 눈이 부릅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