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부럽습니다.
“김홍일 장군이 어떤 분이냐면 말이지요···.”
하는 수 없이 나는 조철봉에게 일제하에서는 독립투사로, 한국전쟁에서는 전쟁영웅으로, 그리고 전역 후에는 반독재 투쟁에 나섰던 영원한 캡틴 코리아의 일생에 대하여 내가 아는 대로 간단히 알려주었다.
“...이런 분입니다. 알겠어요? 조 팀장?”
“아니 그렇게 위대한 영웅을 어째서 제가 모르는 겁니까?”
“...”
그걸 나에게 물으면 어떻게 하나, 이 사람아?
내가 어이없어함에도 조 팀장은 황당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황당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 대단한 분을 어째서 제가 모르는 거지요? 저, 나름 좋은 대학교를 나왔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최소한 우리 연배의 평균은 했다는 말이지요. 그런 제가 모른다면 일반적으로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제가 무슨 꼴통이 아니라고요.”
“조 팀장, 너무 억울해하지 말아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보통이니까. 그래서 내가 그분의 기념관을 세워서 널리 알리려는 것이고요.”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겁니까?”
“흐음,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그냥 흘러들어요.”
“네, 회장님”
“독립운동을 하신 분 중에서 해방 후에 정치적으로 반독재 투쟁까지 하셨던 분들이 대체로 홀대받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홍일 장군도 5.16 주축 세력인 육사 8기생들로부터 엄청난 존경을 받았지만, 그들이 민정 이양의 약속을 어기자 바로 대척점에 서셨었고, 심산 김창숙 선생 같은 분도 반독재 투쟁을 하였던 분이지요.”
“김창숙 선생이요?”
“...”
누굴 탓하랴?
아마 일반 국민에게 김창숙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40대 이하는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고, 그 이상이라면 탤런트 김창숙을 떠 올릴 것이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연예인 김창숙 아줌마 아니에요.”
“네···.”
“하여간 그런 분들의 특징이 대체로 그랬던 것 같아요. 해방 이후에 연달아 들어선 정권 중의 하나에 좋게 보이지 않은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는 말이지요. 당연히 해당 정권에서는 굳이 띄워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군요. 이거 제가 오늘 단단히 혼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하하! 그래요.”
“그럼 하여간 송현동의 땅은 굳이 전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지요?”
“네, 그래요. 그저 절반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응? 어떻게?”
“서울시와 사성과 같이 사업을 하는 겁니다.”
“음? 서울시하고 사성하고요?”
무슨 뜻이지?
서울시와 사성과 같이한다니?
“서울시도 애초에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엄청난 부지 매입비가 부담스러워서 계속 코리안을 압박만 하는 중이었고요.”
“흐음, 그럼 사성은?”
“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전에 그 땅을 매입한 이유가 미술관을 짓기 위해서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랬지요?”
“그 이유가 지금은 더 필요해졌습니다. 미술관을 만들려던 이유가 현재 자리에 누워계신 회장님의 컬렉션을 위해서였으니까요.”
“사성 이 회장의 컬렉션이 그렇게나 많아요?”
“사성의 문화재와 미술품 사랑은 유명합니다. 회장님 컬렉션이 들리는 말로는 2만 점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와? 2만 점이요?”
엄청나구나.
“네, 그래서 미술관이 필요하였던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 필요성이 더 절실한 상황입니다.”
“어째서요?”
“사성에서는 그 문화재와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재 좋지 않은 여론을 타고 넘어가려는 것이지요.”
“아···.”
“어차피 부회장님은 필요 없는 것들입니다. 회장님은 회생할 가능성이 전무하고요.”
“그렇구나···.”
“그래서 서울시와 사성과 같이 송현동 부지를 사용하자는 겁니다. 서울시야 독립투사들의 기념관과 회장님 컬렉션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들어오면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생각하던 문화공원이 완벽하게 완성되는 셈이니까요.”
“호오?”
“그리고 사성도 미술관이 들어설 최적의 부지를 얻게 되는 셈이니 사성으로서도 충분히 좋은 거래지요. 사성의 돈으로만 세우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갈 것이니까요.”
“옳거니!”
“우리도 그렇습니다. 부지 매입비만 최소 5,000억은 생각하셔야 합니다. 거기다가 전체를 우리가 개발한다면 필요 이상의 돈이 투입될 겁니다. 이래저래 땅값과 시공비를 합치면 1조는 들어갈 터인데, 아무리 회장님의 자금력이 막강하더라도 그건 합리적인 것이 아니지요.”
조철봉 팀장, 이 친구 정말 대단한데?
유능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 봐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하나? 당연히 조 팀장 말대로 해야지요?”
“하하! 감사합니다.”
“내가 고맙지요. 그럼 어떻게 할까? 이 부회장에게 내가 직접 연락할까요?”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종 결정자들이 직접 상대하면 일이 훨씬 쉽게 진행이 됩니다. 게다가 친하지는 않지만, 이 부회장님이 주양태와는 아는 사이니까 송현동 부지 매입도 수월할 것이고요.”
“오케이! 내가 연락하지요.”
자주 보자고는 하였는데, 내가 먼저 이렇게 빨리 보자고 할 줄은 몰랐네.
그 자리에서 바로 이정룡 부회장에게 연락하였더니 반가워하면서 바로 회사로 오라고 하였다.
“이사장님, 그럼 결과는 나오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허허! 이거 고맙네”
“에이, 제가 고맙지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부담가지지 마시고 바로 말씀해 주세요.”
“알겠네. 그런데 말이야···.”
“또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저 친구 말이야···.”
“누구요? 조철봉 팀장이요?”
“그래, 이름이 좀 거시기 하지만 상당히 유능한데?”
“하하하! 그렇지요?”
“그래서 말인데, 저 친구 우리도 좀 빌려 쓰면 안 될까?”
“흐음···.”
아무래도 장영동 이사장의 눈에 조철봉이 들었나 보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저 친구 전문 분야가 원래 자산 운용입니다. 사다리 센터 건립 등으로 부동산 등이 필요할 때 말씀하세요. 적극적으로 도와드리라고 하겠습니다.”
“하하하! 고맙네”
“별말씀을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러게”
이사장님 방을 나와서 곧장 서초동으로 향하면서 조철봉 팀장과 이정룡 부회장과 협의할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의하였다.
“하하하! 이렇게 빨리 다시 볼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요, 무슨 일로?”
“그게 말입니다. 코리안 항공이 가지고 있는 송현동 부지 건으로 상의하러 왔습니다.”
“예? 송현동 부지요?”
“이게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면 말입니다···.”
나는 이정룡 부회장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허어!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니, 이제는 독립운동가들까지 신경을 쓰시는 겁니까?”
“아니 열 받잖아요?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 그런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말입니다? 잘못된 것을 알았고, 내게는 그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은 정말 아니지요.”
“그래도 엄청난 자금이 들어갈 텐데요?”
“그래봤자 미국에 있는 우리 자금 운용팀이 잠시 고생하면 되는 돈입니다. 내게는 엄청난 자금이 아니에요.”
“부, 부럽습니다. 그런 엄청난 자금력이라니요···.”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세상에 사성의 오너에게서 돈 많다고 부러움을 살 줄이야.
“하여간 어떻게 생각하세요?”
“매우 흥미 있는 제안인데요? 그럼 강 회장님이 얼마나 사용하시는 겁니까?”
“거의 12,000평 정도가 된다고 하니까, 그중의 절반이면 될 거 같은데 건축면적으로는 5,000평 정도지요.”
“그럼 우리도 건축면적 기준으로 2,500평 정도 되겠네요?”
“그렇지요. 실제로는 모든 것이 공용으로 효율성 있게 계산되니까, 용적률이나 공동으로 조성하면 되는 주차장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5,000평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어차피 1종 일반거주지역이기에 용적률은 200% 이하로 잡아야 하는데, 공익성을 참작하면 어느 정도 완화도 가능할 것이다.
용적률을 결정하는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도 끼워 넣을 것이니까.
그렇다면 보통 바닥면적으로 생각하는 건축면적으로 2,500평이나 5,000평은 굉장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실질적으로 따로 잡아서 단독으로 사업을 벌이는 경우의 2배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거란 말이지.
“그럼 비용은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부지 매입비용은 50%를 우리가 대겠습니다. 나머지는 사성과 서울시가 거기서 반반씩 부담하면 될 것이고, 공사비는 각자 부담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요? 물론 공용 부분도 비율대로 부담하고 말이지요.”
“호오? 그거 괜찮은데요?”
“아마 단독으로 사업을 벌이는 것보다는 비용이 절반으로 줄을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독립투사분들의 기념관, 사성은 미술관이고 서울시는 공원입니다. 그 시너지 효과가 엄청날 거예요.”
“그렇지요! 주변에 경복궁과 국립현대미술관도 있고 말이지요!”
“제 말이 그겁니다! 하하하!”
“하하하! 좋습니다! 우리로서는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네요. 같이 하시지요.”
“좋은 결정입니다! 하하하!”
이런 제안을 거절하는 멍청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프로젝트니까.
“그럼 서울시는 우리가 맡아서 협의할 터이니, 이 부회장님은 코리안을 맡아 주시겠어요?”
“예? 제가요?”
“왜요? 코리안의 주양태 사장? 아니 이제 회장인가? 하여간 그쪽하고는 안면이 있으신 것으로 아는데요?”
“그건 그런데···. 하아, 알았습니다, 그쪽은 제가 맡지요.”
음? 어째 별로 내켜 하지 않는 것 같네?
“주양태 회장과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양태하고 알기는 압니다만,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닙니다. 가깝게 지내고 싶은 생각도 없구요.”
“네?”
“흐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쪽 바닥이 좀 그렇습니다. 2세들끼리는 웬만하면 전부 친분이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린 시절부터 자주 볼 일이 많으니까요.”
“그렇겠지요.”
“그런데, 재계에서도 어울리는 그룹이 조금씩 다릅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그룹 순위에 영향을 많이 받지요.”
“아, 그럼 예컨대 5대 재벌은 5대 재벌끼리?”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보통 5대에서 핵심으로 거르고, 10대까지는 같이 어울리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게 됩니다.”
“그럼 코리안도 아슬하지만 어울릴 레벨이 되지 않나요?”
“이게 순위가 된다고 되는 것이 또 아니에요. 집안 분위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도 자동차 그룹의 장우성 부회장과는 굉장히 친한 사이에요. 그룹 레벨도 맞고 집안 분위기도 그렇고 말입니다. 은성 그룹과도 비슷하고요. 은성의 구정모와는 나이 차가 제법 나지만, 친하게 지냅니다.”
“아하!”
이거 은근히 재밌네?
재벌가의 뒷이야기가 말이다.
“그리고 화약으로 유명한 화나 그룹의 장남하고도 절친합니다. 갠 말썽도 부리지 않고 제대로 된 애거든요. 반면에 로체 같은 경우는 거의 안 어울립니다. 분위기가 거긴 완전 일본 분위기라서요.”
“오···.”
“한 마디로 꼭 순위에 따라서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말이지요. 개인적으로는 30대가 넘어가는 집안 애들하고도 친하게 지내니까요. 그런데, 코리안은 좀 그래요.”
“뭐가요?”
“사람들이 좀 그렇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말이지요?”
“...”
이런 재밌는 일은 집요하게 묻자.
“험험, 솔직히 2세들이 좀 버릇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그 집안은 좀 심하지요. 좀 상스럽다고나 할까요?”
“아하!”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웬만하면 피하는 편입니다. 대체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사고도 많이 치니, 괜히 옆에 있다가 같이 덤터기 쓸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하!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은 다 비슷한 것 같았다.
재벌이든 서민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