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살다 보면 좋은 여자가 나타나겠지.
하여간 이정룡 부회장과 협약을 맺고, 우리는 서울시와 이야기하기로 하였다.
조철봉이 사성에 있던 시절부터 알던 공무원에게 우리의 뜻을 전하고, 나중에는 남정원 사장이 직접 서울 시장과 만나서 결판을 지었다.
결국에는 재단 소관이 되겠지만, 적어도 완공할 때까지는 카르마 홀딩스에서 추진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남 사장이 나선 것이다.
정화재단이 맡기에는 좀 버거운 일이었으니까.
제약이 있어서 금싸라기 땅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서울 한복판에 있는 넓은 땅을 매입하여 민족의 영웅들을 기리는 일이다.
이런 일에 반대할 정치인은 없을 것이었다.
“서울 시장이 전폭적으로 지지하여 주기로 하였습니다.”
“하하! 잘하셨습니다.”
“뭐 말 꺼내기 무섭게 두 손 들고 찬성해 주던데요. 수고한 것도 없습니다.”
“서울시에서도 비용의 4분의 1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알리셨지요?”
“이를 말입니까? 그래도 서울시 입장으로 보면 한참 남는 장사지요. 자신들이 직접 매입하여 문화공원으로 조성했으면 그 몇 배가 들어갔을 테니까요.”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 욕심이란 것이 모르는 것이니까요.”
“하하,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음?”
전화가 울려서 보니, 마침 이정룡 부회장이다.
코리안의 주양태를 만난다고 했는데, 이야기가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네, 부회장님”
- 저 이정룡입니다.
“하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주양태와 이야기는 잘 되셨습니까?”
- 방금 결판을 짓고 나오면서 전화드리는 겁니다. 5,100억 원에 인수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5,000억이면 5,000억이고, 6,000억이면 6,000억이지 5,100억은 또 뭐야?
“아, 그러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어떻게 순순히 내놓던가요?”
- 아유! 말도 마세요. 그 자식이 6,000억은 받아야 한다고 어찌나 징징대던지 혼났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많이 깎으셨네요?”
- 자꾸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길래 공갈 좀 쳤지요.
“공갈이요? 대체 뭐라고 하셨길래?”
- 뭐 제가 공갈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자꾸 그러면 사성 그룹이 코리안에 맡기는 항공 화물 전부 빼버린다고 했지요.
“음?”
- 하하하! 코리안 항공은 항공 화물 분야 매출이 상당히 큰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업이익도 크고요. 그리고 우리 사성이 큰 손입니다.
“아하, 그렇구나. 이거 제가 크게 한 번 쏴야겠습니다?”
- 하하하! 그 말씀 꼭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하여간 저나 강 회장님이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으니, 실무자들에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 앗! 잠시만요! 회장님!
“네? 말씀하세요, 부회장님”
- 저기 시공사는 우리 물산의 건설 부문에 맡겨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 미술관을 지으면서 같이 하면은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요?
“사성 물산 건설 부문이요?”
- 네, 맡겨 주시면 사명감을 가지고 짓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이 양반도 참, 이 와중에 영업이냐?
하긴 우리가 대략적으로 책정한 시공비가 5,000억이다.
이 정도면 국내에서는 대단히 큰 공사다.
게다가 돈을 떼일 염려도 없고 말이다.
사성 물산의 연 매출이 10조 정도 된다고 하니, 이 부회장이 가벼운 마음으로 영업할만한 거지.
그래, 이 정도야 뭐.
“하하하! 알겠습니다. 대신 정말 잘 지어주셔야 합니다?”
- 아이고, 감사합니다! 고객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
이 양반 의외로 유쾌하네?
하여간 대양 건설이 어쩌다 보니 우리 재단의 전속 건설사처럼 되었는데, 송현동 사업은 대양에서 먹기에는 지나치게 크다.
어차피 시공사를 알아보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잘 된 거지 뭐.
대양의 박상환 회장이 징징대면 연결해서 일부 하청이나 주던가.
이틀 후, 신문과 방송에서는 우리 카르마 홀딩스와 사성, 그리고 서울시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송현동 부지를 인수하였고, 지분은 카르마가 50%, 사성 25%, 서울시가 25%를 가지기로 하였다고 대서특필하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는데, 단순히 땅만 매입한다고 발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선 이정룡 부회장은 그동안 사성가에서 소장하고 있던 문화재와 미술품 23,000여 점을 국가에 기증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지어서 국민과 공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언제 다시 차디찬 곳으로 끌려갈지 모르는 이정룡 회장은 나름 승부수를 띄운 것이었기에, 그룹의 홍보 부서를 총동원한 듯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워낙 큰 건이기도 하였고.
한마디로 이렇게까지 하고 있으니, 잘 봐달라는 시그널을 정부 측에 보낸 것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거기다 더하여 우리 카르마 홀딩스와 정화재단이 부지를 가장 크게 이용하여 이회영 선생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김홍일 장군의 기념관을 대대적으로 지어서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신 분들의 높은 뜻을 기리겠다고 하였다.
이어서 서울 시장도 나와서 카르마 홀딩스와 사성 그룹과 함께 역사와 문화를 함께 기억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공원을 만들겠다고 선언하였다.
뭘 선언 씩이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에 한동안은 떠들썩할 것이다.
방송에서는 우리와 사전에 협의한 이회영 선생과 김홍일 장군의 유족들과 인터뷰를 하였는데, 이들이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답시고 강철식 회장님께 감사한다고 하여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내 이름이 공식적으로 거론된 최초의 일이 아닐까 싶었다.
번거롭게 말이다.
“보스, 테슬라 지분매입이 끝났습니다. 휴우, 이젠 정말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수고하였어요, 존”
9월이 끝나갈 무렵에 존이 내게 와서 테슬라 지분매입 종료를 보고하였다.
봄부터 여름 내내 주력으로 매달렸던 큰일을 결국 해치운 것이다.
“하하! 좀 홀가분하네요. 하여간 이제 적어도 당분간은 테슬라 주식을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아주 신물이 나네요.”
“하하하! 당분간은 좀 쉬도록 해요.”
“저는 테슬라 주식을 보지만 않아도 그게 휴식입니다만?”
“푸하하하!”
어지간히 집중하였나 보다.
하긴, 존이 이렇게 한 종목에 매달리는 것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으니까.
“그래요, 하여간 일단 최종적으로 우리 지분은?”
“28% 넘게 확보하였습니다.”
“호오? 생각보다 많이 확보하였네요?”
“애초에 25% 정도를 한계로 본 것은 일론 자식이 방해할 것을 염두에 두고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하하! 그랬군요.”
“그런데, 보스와 일론이 친구가 되면서 도와주면 도와주었지 전혀 방해를 받지 않아서, 테슬라의 지분 구조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최대한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뭐, 우리 의결권을 일론 녀석이 다 가지고 가는 한, 우리 지분이 일론의 지분이나 마찬가지니 그럴 수밖에요.”
역시 의결권을 포기하고 일론 머스크에게 넘긴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경영권에 집착하는 일론에게는 대주주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경영에만 몰두할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
“그럼 이제부터는 슬슬 보스의 지시대로 전자상거래 관련 주들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자고요. ‘그 일’이 닥치면 전자상거래 관련주들이 아무래도 많이 오를 것이니까요.”
내가 말하는 ‘그 일’ 이란 신종 바이러스로 세상이 바뀌는 것을 말하는 거였다.
존은 내가 무슨 일에 대비하고 있는지 아는 미국 내의 단 세 사람 중의 하나니까.
그 세 사람은 당연히 존과 조지, 그리고 제프리 형이고.
나를 잘 알아서 그런지, 아니면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고 여겨서인지 내가 한국에서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는 않았다.
존의 경우는 내 말이라면 무조건 맹종하다 보니 그 일이 생길 것이라 믿어주었고, 그에 맞추어서 환란에 뜨는 종목에 다시 신경을 쓰는 중이었다.
팬데믹이 일어나 세상이 닫히면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누가 뭐래도 전자상거래다.
“보스 말씀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쇼피파이는 봄부터 매집을 시작하여 이미 10% 넘게 보유하였고 추가로 좀 더 매수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핑두오두오는 15%로 매집을 끝냈고요.”
“잘하셨어요.”
“웨이페어(Wayfair Inc)는 현재는 주가가 너무 높아서 일단은 관망 중입니다만, 상황을 보다가 내년 초부터나 매수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지 않았어요?”
“네, 엣시(ETSY) 역시 좀 높아서 한두 달은 있다가 뛰어들 예정입니다.”
“그래요, 그렇게 하면은 좋은 것 같습니다.”
“휴우! 그럼 저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벌써? 나랑 술이나 한잔 하지?”
“보스”
“응? 왜요?”
“혹시 아십니까?”
“뭘요?”
“우리 집사람이 은근히 보스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에? 아니 왜요?”
“자꾸 퇴근하는 절 붙잡고 술을 마시니까요.”
“...”
이런 제기랄!
진작 말을 하든가?
이거 눈치 없이 내가 회식이나 남발하는 꼰대 상사가 된 거잖아?
“험험, 미안하다고 전해줘요.”
“앞으로는 일주일에 하루만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보스”
“또 왜요?”
“진짜 여자 안 사귀실 겁니까? 타국에서 혼자 있으니까 자꾸 술만 느시잖아요? 혹시···.”
“혹시 뭐요?”
“혹시 남자를?”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퇴근이나 하셔! 내가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크크큭! 알겠습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가요.”
제기랄, 누가 여자를 사귀기 싫어서 안 사귀는 줄 아나?
못 사귀는 것이지?
부자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이제는 아무리 좋은 여자가 접근하더라도 여자 쪽에서 먼저 호감을 보이면, 인간 강철식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돈을 좋아하는 것으로 여겨지니까.
특히나 톰 형의 파티에서 앰버 뭐시기에게 수술 당할뻔한 이후로는 더욱 그렇게 되어버렸다.
젠장, 살다 보면 좋은 여자가 나타나겠지.
암, 나타날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톰 형은 파티 안 하나?
적당히 여자를 소개시켜준다고 해놓고 왜 파티를 안 하는 거냐고?
제리에게 연락해 볼까?
하아, 그냥 자자.
다시 한국에 들어가지는 않아도, 하루에 한 번씩은 통화하여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남정원 사장에게는 별도로 20억 달러를 보내주어 우선 적당한 곳에 투자를 시작하라고 하였고.
그렇게 바쁘게 지내는 사이에 11월이 되었다.
11월이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보유한 빅3 종목 중에서 엔비디아, AMD가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말이다.
하여간 이 두 종목을 대체로 같이 논단 말이지.
AMD가 11월 19일에 드디어 40달러를 돌파하였다.
엔비디아 역시 11월 들어서 50달러가 넘더니 완만하게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이 확연히 보였고.
이제 테슬라만 상승을 시작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고, 우리 회사는 조금씩 열기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11월의 중국에서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모르고서······.
중국 우한의 화난 수산물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독감 증세가 유행하였다.
지옥문이 열리고, 왕관(corona)을 쓴 마왕이 인세에 강림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