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돈의 힘이지요.
2020년 1월 2일에는 싱가포르에서 최초로 유증상자가 발견되어 격리 조치되었었고, 1월 3일에는 홍콩에서 유증상자가 발견되어 격리 조치되었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접니다, 회장님”
노크 소리에 들어오라고 하자, 민명기 부사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아, 민 부사장님. 들어오세요. 무슨 소식이 있습니까?”
“연구소에서 보고가 있었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입수한 검체를 몇 번이고 확인하였는데, 우리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고 합니다.”
“허어···.”
“...”
예상하고서 대응해 왔지만, 그 예상이 사실로 확인되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우리가 준비하던 대로 하면 됩니다. 곧바로 진단키트 개발에 응용하기 시작하였고, 백신 개발도 이미 사전임상 단계인 기존 사스 백신을 응용하여 개발을 시작할 겁니다.”
“예전의 사스와 비슷한 건가요?”
“확인 결과 2003년에 범유행 하였던 사스 바이러스인 SARS-CoV의 변종으로 드러났습니다. 우리 예상대로 그놈들이 돌아온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더 강력하게 무장해서 말입니다.”
“그럼 백신 개발도 쉬워지는 겁니까?”
“당연하지요. 지구상에서 누가 개발해도 우리보다 빨리 개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그럼 진단키트와 백신은 언제쯤 개발이 완료될 것 같습니까?”
“진단키트는 일주일 정도면 개발이 완료될 것 같습니다. 다만, 식약처의 인증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고요.”
“백신은요?”
“백신도 열흘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입니다.”
“이때부터라니요?”
“급행으로 사전임상은 건너뛰어도 1차 임상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건 방법이 없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접종해야 하는데, 퍼지지도 않은 상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시행할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허가도 못 받을 것이고요.”
“...”
아주 그냥 산 넘어 산이로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일단 중국이 현재 우한에서 광범위하게 유행하고 있는 폐렴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전에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대체 그 망할 인간들은 뭐 하는 겁니까?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공산당 일당 독재를 하는 나라입니다. 권위주의 정부 특성상 이런 종류의 팬데믹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빌어먹을!”
중국 정부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대체 뭘 하는 거란 말인가?
아마 중국 정부는 지금쯤이라면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놈들이라고 바이러스를 판별할 연구소가 없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도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는 소리는 어떻게든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진단키트든 백신이든 간에 정부와 긴밀한 협력이 요구됩니다.”
“질병관리본부와는 계속 협의하였잖습니까?”
“지금까지는 비공식적으로 권준호 과장이나 예전 동료들이 호의적으로 대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지금부터는 공식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검체 입수 과정에 대한 양해도 받아야 하고요.”
“이거야 원. 좋은 일 하기도 참 힘드네요.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일단 질병관리본부와 미팅을 하시지요. 그쪽에서도 회장님과의 만남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정 본부장이라는 분을 말씀하는 겁니까?”
“네, 우리와 본격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럼 만나야지요. 저녁 약속이라도 잡으세요. 당장 오늘이라도 말입니다.”
“저···.”
“왜요? 만나자면서요?”
“저녁 약속 같은 것은 그쪽에서 부담스러워할 겁니다. 게다가 그쪽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 따로 저녁에 나오기도 힘들 것이고요. 그냥 가서 일단 사무실에서 만나시지요?”
“...”
하긴 나도 3만 원 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기 싫다.
민 부사장이 미리 전화로 미팅 약속을 잡아서 곧장 질병관리본부로 향하였다.
남정원 사장도 불러서 동행을 시켰고.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회장 강철식입니다.”
“카르마 홀딩스 대표 남정원입니다.”
“오랜만이네, 정 실장. 아니 이젠 본부장이지?”
나와 남 사장이 지극히 일반적인 초면 인사를 한 것에 비하여 민명기 부사장은 오랜만에 만난 후배를 보듯이 인사하였다.
실제로 5년인가 6년인가 선배고, 같이 일도 하여 친분이 있다고 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질병관리본부장 정인영입니다. 민 선배님도 오랜만에 뵈어요.”
50대의 평범한 중년 여성.
그냥 동네 아줌마 스타일인데 침착하게 조곤조곤 말하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권준호 과장도 상당히 낮은 목소리에 침착한 스타일이었는데, 이 둘을 보니 무슨 남매와 같이 보였다.
침착맨과 침착우먼인가?
“카르마에서 여러 가지로 많은 국민 건강을 위하여 많은 일을 선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원래는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인데 부끄럽습니다.”
“아닙니다. 대략 아시겠지만, 성격상 공무원은 나서기 힘든 일이지요. 지금에서나 그나마 선제적이라는 말을 듣지만, 1년 전만 해도 괴짜 부자가 헛짓거리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여하튼 많은 도움이 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제가 회장님을 뵙자고 요청한 것은 현재 중국의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정체불명의 폐렴 유행이 매우 우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건 비공식적으로 드리는 말씀인데,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우리 만남 자체가 정상적으로는 볼 수 없을 겁니다.”
괴짜 억만장자와 대한민국 방역 수장의 만남이다.
생뚱맞아도 이보다 생뚱맞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를 포함한 질병관리본부의 방역 전문가들은 이번 우한의 폐렴 유행을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정황이나 증세로 추정해 보건데, 지난 두 차례의 코로나바이러스 유행과 많은 유사점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장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 사실 많지 않습니다. 정확한 근거 없이 움직일 수 없는 공무원 신분이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많은 자금을 투입하여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하여 이전부터 대비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예상이라도 하신 것처럼 말이지요.”
“나름대로 밝힐 수 없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저희는 회장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귀사와 우리 질병관리본부 역량을 총동원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흐음···.”
나는 고개를 돌려서 민명기 부사장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민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정 본부장은 신뢰할 만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정부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고요. 모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 알겠습니다. 정 본부장님”
“네, 회장님”
“저도 비공식적으로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저희와 상의하기 전에는 다른 곳에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우리는 열흘 전쯤에 우한 지역에서 유행하는 폐렴의 검체를 입수하였습니다.”
“네? 그, 그게 사실입니까?”
돌부처 같아서 웬만해선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정 본부장도 놀랐는지 말을 더듬으면서 반문하였다.
“대체 그걸 어떻게···.”
“돈의 힘이지요. 아시겠습니까? 제가 왜 비공식적이라고 말씀드리는지?”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 검체는 확인해 보셨습니까?”
“네, 여기 오기 전에 민 부사장으로부터 결과를 보고 받았습니다. 민 부사장님!”
“네, 회장님”
“이건 민 부사장님이 설명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정 본부장”
“네, 선배님”
“결과가 나왔네. SARS-CoV의 변종이야”
“세, 세상에···.”
정 본부장은 입을 벌린 채로 더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사실이에요? 확실한 겁니까?”
“몇 번이나 확인했네. 유감이지만 사실이네.”
“이럴 수가···.”
“그래서 자네를 찾은 것이야. 우리는 이미 진단키트와 백신을 거의 개발하였는데, 자네도 알다시피 여기서부터는 정부의 협력이 없으면 진척이 불가능하네”
“잠시만요. 생각 좀 정리하고요.”
정 본부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였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도록 침묵을 지켜주었다.
이윽고.
“선배님, 진단키트는 소거법으로 개발하신 건가요?”
“맞네”
“그럼 백신은 사스와 메르스 검체를 이용한 것이고요?”
“그것도 맞네. 그럼 이제부터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겠지?”
“진단키트야 별문제가 없겠네요. 신속한 식약처의 승인이 필요한 거잖아요?”
“그렇지”
“그건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문제는 백신이네요.”
“그래, 이제는 1상에 들어가야 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면 카르마 측에서 검체를 입수한 경위나 검체가 국내로 통관된 경위가 문제가 되겠군요. 대놓고 돈으ㄹ 해결하였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너무 빨라요, 카르마의 움직임이 말이지요. 자칫하다가는 국제 사회의 의심을 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말이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백신을 내놓는다면?
솔직히 나 같아도 의심하겠다.
“음, 일단은 계속 개발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외부에는 지금처럼 비밀로 해주시고요.”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이미 싱가포르와 홍콩으로까지 넘어갔습니다. 사실상 중국 밖으로 전파되었다는 말이지요. 며칠 이내로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할 겁니다.”
“그래서요?”
“그렇게 되면 중국 이외의 해외에서 검체를 입수하였다고 하여도 이상하게 볼 시기는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 지경이 되면은 중국도 더는 은폐를 하지 못할 것이고요.”
그 정도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더는 이런 것으로 신경 쓰기도 싫다.
제기랄, 세계가 팬데믹으로 신음하는 판국에 알게 뭐냔 말이다.
“진단키트는 개발이 완료되는 즉시 사용 승인을 신청하시면, 최대한 빨리 승인이 나도록 장관께 직접 요청하겠습니다. 다만, 백신이 문제인데 이건 정부에서 지급으로 승인하더라도 임상 대상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이게 문제네요.”
“그건 우리가 어떻게든지 해보겠습니다. 민 부사장님”
“네, 회장님”
“1상에서 몇 명이 필요합니까?”
“적어도 수십 명 이상이 필요합니다. 2상에서는 수백 명이고, 3상에서는 수천 명이 넘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1차 임상에 응해주는 사람들에게 5,000만 원씩 준다고 하면 지원자가 생길까요?”
“5,000만 원이요? 그렇게나 많이 말입니까?”
“지원자가 나오겠어요?”
“당연하지요! 백신 임상에서 사람이 상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고, 혹시라도 잘못되면 사망자는 10억을 주고 후유증이 있는 지원자도 우리가 전부 책임진다고 하세요. 그럼 되겠지요?”
“충분합니다! 충분하고 말고요!”
지금 돈이 문제냐?
1상에서 5,000만 원씩을 100명에게 주어도 50억이다.
그 정도 돈은 넘치고도 남는다.
“2상이면 더 안전하겠지요?”
“맞습니다. 사실상 위험성이 거의 없어집니다.”
“그럼 2상에서는 1,000만 원씩 준다고 하세요. 부작용 조건은 동일하게 내거시고요. 그리고 3상은 500만 원씩 하지요. 됐습니까?”
“충분합니다!”
“자! 그럼,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정 본부장님?”
“...”
정인영 본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