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그들보고 사가라고 하세요.
정인영 본부장하고는 앞으로도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하기로 한 후에 질병관리본부를 나왔다.
중요한 사항들은 거의 협의가 되었으니, 이제는 정 본부장의 말처럼 진단 장비와 백신의 개발은 개발대로 진행하면서 중국 측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인 1월 4일 홍콩은 비상조치를 선언하였고, 드디어 공중파인 KBS에서 단신으로나마 보도가 되었다.
이어서 1월 5일에는 대만에서도 유증상자 14명이 발견되었다.
1월 8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증상자가 발견되어 난리가 벌어졌다.
지난달인 12월에 중국 우한을 방문하였던 중국인 여성이었는데, 신고가 되자마자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은밀하게 그 여성의 검체를 우리에게 가져와 검사를 의뢰하였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즉시 검체를 PCR(유전자 검사) 검사를 하였는데, 다행히도 코로나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십 년 감수하였네···.”
“누가 아니랍니까?”
남 사장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지금 한국 내에 코로나가 번지면 대책이 없었다.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지기를 희망하였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웬 전화인가 봤더니 정인영 본부장이다.
무슨 일일까?
“네, 본부장님”
- 회장님, 몇 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괜찮으시지요?
“연락하시라고 드린 명함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 카르마 측에서 선제적으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장관님께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VIP께도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 네, 회장님. 우선 카르마에서 검체를 입수하기 위하여 벌였던 일은 불문에 부치기로 하였습니다. 그 부분에 대하여는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그리고 우리 질병관리본부는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발병하였음을 인정하는 즉시 비상체제로 돌입할 겁니다. 국무총리님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될 거예요.
생각보다 강력한 조치였다.
이제 언론에서도 단신으로 보도하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어쨌든 몇 년 전에 메르스로 데였던 것은 방역 담당자들뿐만 아니라 당시 정권도 대차게 까였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았다.
“잘하시는 겁니다.”
-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회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할 생각입니다. 지원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월 9일.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병하였음을 드디어 확인하였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움직여도 눈치 볼 것이 없어진 것이다.
정부에서는 즉각적으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였다.
감염병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격상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을 선포하였다.
솔직히 위기경보 수준을 ‘심각’으로 한 것은 이게 얼마나 높은 수준인 것을 아는 나도 놀랐고, 민명기 부사장도 놀랐다.
“정부가 진심인 모양입니다. 바로 심각(Red)으로 위기경보 수준을 올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많이 작정하였네요.”
우리나라 위기경보는 총 4단계로 되어있다.
관심(Blue), 주의(Yellow), 경계(Orange), 그리고 마지막으로 심각(Red).
심각은 원칙적으로 감염병이 국내에 유입돼 확산하는 단계에서 발령되는 것으로, 사실 지금 단계에서는 관심이나 주의 정도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앞의 단계를 깡그리 무시하고 바로 심각을 때려 버린 것이다.
심각에서는 범정부적인 총력 대응을 하게 되어있다.
정부에서 이번 일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반증하는 일이리라.
그리고, 여기에는 내가 크게 한몫을 하였을 것이고.
게다가 사연을 알아보니 과거 메르스에 크게 상처받았던 방역 공무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일어났다고 하였다.
무조건 심각으로 격상시키라고 하였으며, 몇몇은 자리를 걸고 나섰단다.
이러니 정부도 강하게 나갈 수밖에.
감염병 위기경보가 심각으로 격상되자 역시 또 여론이 뒤집어졌다.
뭐 웬 호들갑이고 일부러 국민을 겁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지.
시끄럽든가 말든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런 소란은 가라앉을 것이기에 신경을 껐는데, 마침 진단키트가 완성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았다.
“회장님, 진단키트가 완성되었습니다.”
“오오!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그래 코로나바이러스를 얼마나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겁니까?”
“신속 항원검사 진단키트는 국내 허가기준인 민감도 80%, 특이도 97% 이내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
“회장님?”
“저, 문과입니다. 게다가 고졸이고요.”
“네···.”
“좀 쉽게 말씀해 주세요.”
“한마디로 양성 예측도가 90% 이상이란 말입니다. 물론 PCR보다는 정확도가 떨어지고 채취하는 방법의 숙련도에 따라서 정확도가 달라지지만, 현재로서는 이보다 더 빨리 양성을 가려낼 방법은 없습니다.”
진작 이렇게 말할 것이지.
“그럼 바로 신속 승인요청을 하세요. 정 본부장에게도 알려서 가능한 한 빨리 통과되도록 해달라고 힘을 써달라고 해주시고요.”
“그렇게 진행하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진단키트는 생각보다도 더 빨리 승인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일단은 식약처에서 우리가 제출한 데이터를 100% 인정하는 것으로 하고, 양산 승인을 한 다음에 검증은 그다음에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에 따라서 식약처는 우리가 제출한 승인요청 데이터를 꼼꼼히 살펴본 후에, 우리 연구소를 방문하여 실제로 진단키트를 개발할 역량이 있는지만 실사한 후에 바로 승인을 내린 것이다.
우리가 승인요청을 한 지 3일 만의 일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1월 11일.
중국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첫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는 발표를 하여 전 세계적으로 슬슬 위기감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4교대고 5교대고 간에 24시간 공장을 돌리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들불처럼 세계로 번져나갔다.
태국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일본과 영국에서도 나오기 시작하였다.
1월 18일.
토요일 주말이지만 우선 양산된 진단키트 100만 개를 질병관리본부에 기부하였다.
이후로는 정당한 가격을 받고 판매하기로 하고.
질병관리본부로 납품된 진단키트는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그리고 인천항과 부산항 등의 전국 공항과 항만에 배포되었고, 입국하는 내국인과 외국인은 출발지와 경유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검사를 해야만 입국할 수 있도록 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 조치는 바로 위력을 발휘하였다.
1월 19일.
중국 우한시에 거주하는 35세의 중국 국적 여인이 인천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받다가 진단키트를 통하여 양성 반응을 보였다.
이에 당사자는 물론이고 해당 항공편에 탑승하였던 승무원과 승객 전체가 격리되었다.
그리고, 7시간 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대한민국에서 첫 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입국하려다가 격리되었다고 발표하였다.
대한민국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하루 전에 배포한 진단키트로 공항에서 틀어막는 것에 성공하였지만.
이것으로 방역 당국에 국민을 겁주고 공갈을 친다는 여론은 쏙 들어갔고, 어제까지 정부를 까고 심지어는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회사까지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까대던 기레기들이 일제히 정부와 우리 회사를 찬양하기 시작하였다.
빌어먹을 기레기 새끼들.
하여간 이제 한시름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백신도 이미 며칠 전부터 비밀리에 승인을 받고 1차 임상시험에 돌입하였다.
통상적으로 30개월은 걸리는 시험 기간도 5개월로 단축하기로 하였고.
우리가 이렇게 철저하게 틀어막는 사이에 이 악마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월 22일.
미국 CDC(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는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발생하였다고 발표하며,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하였다.
1월 2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일파만파로 번지는 가운데, 회사로 정부 당국자가 방문하였다.
“외교부 김성종 국장입니다.”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강철식입니다.”
“하하! 이거 젊으신 분이 참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정부에서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보자마자 젊으신 어쩌고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악의는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다.
“사실은 이번에 우리 정부에서는 한중 우호 차원에서 중국에 마스크와 방호복, 그리고 진단 키트를 구매하여 원조하고자 합니다. 중국 측에서는 특별히 진단키트에 대하여 도움을 요청하였고요. 그래서 회장님께 부탁을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
“...”
나와 남정원 사장, 그리고 민명기 부사장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뭐야? 고작 이런 일로 나를 보자고 한 것이었어?
국장 나부랭이가 감히 나를 콕 찝어서?
남정원 사장과 민명기 부사장도 바로 불쾌한 표정으로 돌변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참자.
예로부터 정수불범하수(井水不犯河水)라 하여 무림인과 관부는 서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 아닌가?
비유가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관부, 아니 정부와 척을 지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물론 이 자식이 정부는 아니지만.
특히 발작하려는 남정원 사장을 눈짓으로 말리고 입을 열었다.
“한중 우호요? 중국과 우리나라는 최근에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사드로 난리가 나고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쫓겨났다.
특히나 사드 포대 부지를 정부의 요청으로 제공한 로체 그룹은 중국 시장에서 아주 작살이 났고.
게다가 한한령은 여전한 상황인데, 웬 우호?
“험험, 회장님의 심정은 저도 이해하겠습니다. 최근에 중국이 심하기는 하였지요.”
이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김 국장이 정색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래도 중국은 우리나라에 정치와 경제적으로 무척이나 중요한 나라입니다. 이럴 때는 사이가 좀 좋지 않더라도 서로 지원을 하는 것이 나중을 위하여도 좋습니다.”
“하아,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회장님께서 평소에도 그러하였듯이 통 크게 지원을 해주시면···.”
뭐여?
사간다는 것도 아니고, 기부해 달라는 말이야?
중국이 이젠 거지들도 아닌데?
아무래도 이참에 원칙을 정해야 할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팬데믹이 벌어지면 미리 막대한 방역 물자를 준비해 놓았고, 심지어는 백신도 가장 빨리 개발할 우리에게 전 세계가 달려들 것이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우선순위를 정하고 대처 매뉴얼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 같다.
하여간 그건 그거고, 일단은 김 국장부터 처리하자.
“저기, 혹시 국장님께서 여기 온 것은 누구 뜻입니까? 외교부 장관님 뜻인가요?”
“아, 아닙니다. 제가 담당자로 우선 일을 성사시키고···.”
이제야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앞에 이놈은 이참에 공적이라도 쌓을 요량으로 직급과 직함을 내세워 우리 회사를 찾아온 것이다.
어쨌든 답은 해주자.
“지원은 불가합니다!”
“네? 아니 저···.”
“중국으로 가는 물자는 무조건 제값을 주고 파는 것이 회사의 방침입니다. 국장님이 사주시던가, 그들보고 사가라고 하세요. 팔아주는 것도 굉장히 고마운 일일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
외교부 김 국장의 얼굴이 노랗게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