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만약에 말입니다.
“자넨 정말 나와 생각이 잘 맞는구먼?”
“...”
싫다, 정말 싫다.
트럼프와 동류로 묶이는 것이 말이다.
“하여간, 그래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원자력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바로 그겁니다! 지금 중국을 보세요. 이지스급에 준하는 대형 전투함을 그야말로 찍어 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항공모함도 벌써 3번 함을 건조 중이지요. 발전된 산업역량과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뭡니까? 연속으로 삽질만 거듭하고 있잖아요? 그 쓸모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는 연안 전투함(LCS. Littoral Combat Ship)은 대체 왜 만든 거예요? 돈만 잡아먹으면서 벌써 퇴역 이야기나 나오고?”
“아, 몰라! 전임자 병신들이 만든 것을 왜 내게 따지냐고!”
“하아! 어쩌다가 위대한 미국이 이렇게 된 겁니까? 2차대전 당시에 항공모함을 찍어 내던 그 기상은 대체 어디로 간 거냐고요?”
“빌어먹을! 누가 아니래? 우리 위대한 미국이 말이야!”
“중국은 발달한 조선업을 기반으로 함정을 찍어 내고 있어요. 그런데, 미국 조선소들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하고 군함 건조에 목매달고 있잖아요? 그것도 비싸게 만들면서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고? 그래서 태평양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대만을 지킬 수 있어요? 동맹인 우리 한국과 우방인 일본을 지킬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뻑큐! 우리 위대한 아메리카가 이럴 수는 없어! 제기랄!”
흥분한 트럼프가 길길이 날뛰었다.
내 말은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더 아플 거였다.
트럼프가 취임한 이후로 선언한 것이 강력한 미 해군의 건설이었다.
미국 해군은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이후로 손을 대는 모든 건함 사업을 족족 말아먹는 중이었으니까.
줌월트급 구축함이 천문학적인 개발비만 집어삼키고 꼴랑 3척을 건조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LCS 연안 전투함 사업?
이건 정말 뻘짓 중의 뻘짓이요, 삽질 중의 삽질로 판명이 난 채,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고.
“이봐요, 도널드. 진정하고 제 말을 마저 들어요. 팩트는 이겁니다. 미국은 비약적으로 성장 중인 중국 해군을 지금이라면 몰라도 가까운 미래에는 막을 수가 없어요. 이게 현실입니다.”
“나도 알고 있네. 그래서 고민이 많아”
“하지만 미국에는 중국에는 없는 것이 있잖아요?”
“그게 뭐지?”
“동맹! 강력한 동맹이 미국에는 있잖아요?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
“엉? 너희 나라가?”
“이거 왜 이러세요? 우리 해군도 옛날의 큐트 네이비(Cute Navy)가 아니라고요? 이지스함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다고요.”
“그렇군”
“왜 미국 혼자서 짐을 지려고 하는 겁니까? 동맹이 있잖아요? 우리가 있고 일본도 있잖아요?”
일본을 집어넣는 것은 싫었지만,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다.
자꾸 우리만 강조하면 이상하게 볼 것이고.
“게다가 호주도 있습니다. 동태평양의 강력한 동맹! 이것을 왜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안 하시는 거냐고요?”
“그렇군! 동맹이 있었어!”
“그 동맹 중에서도 대중국 전선의 최전선을 담당하고 있고, 앞으로 그 역할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한국이라고요! 동맹도 그냥 동맹입니까? 혈맹이잖아요, 혈맹! 한국전쟁은 물론이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동맹 중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렸던 우리 대한민국이 말입니다!”
“오오···.”
“그런데! 전장에 나가는 군인에게 총을 안 줘요? 명백히 좋은 총이 있는데, 왜 후진 총을 들고 나가서 싸우라는 겁니까? 이게 혈맹으로서 할 짓입니까?”
“설득력이 있군! 설득력이 있어!”
“그 좋은 총이 우리 한국에는 바로 원자력추진 잠수함이에요. 그것도 잠수함을 팔아달라는 말도 아니잖아요? 자체적으로 건조할 터이니, 그저 승인만 해주시면 되는 거예요. 아, 물론 핵연료는 파셔야 하고요.”
“흐음···.”
내 열변이 통하였는지, 트럼프는 깊은 생각에 잠기었고 나는 열변으로 마른 목을 위하여 물을 마셨다.
이윽고, 생각을 마친 트럼프가 입을 열었다.
“알렉스”
“네, 도널드”
“네 말이 일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오오!”
나는 기대에 차서 트럼프의 입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 늙은이의 입에서 ‘오케이!’ 만 떨어지면 우리 한국은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보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미안하지만 그래 안 돼”
아이, 이 망할 영감탱이가?
“왜요! 대체 이유가 뭡니까? 우리가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건조하여 미국이라도 겨냥한답니까?”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너무 걸리는 것이 많아. 일단 국무부와 국방부 놈들도 설득해야 하고, 거기다가 아베 그놈도 걸리고”
“도널드! 도널드는 대통령이에요. 위대한 미국 대통령이 부하들의 눈치를 살피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어허! 누가 눈치를 본다고 그래? 그저 피곤해지니까 그렇지?”
“원래 역사적인 일은 피곤한 법이라고요. 이래서 피곤하고, 저래서 피곤하고, 대체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어요?”
“그것도 그렇지만 일본도 너무 걸리고. 알렉스, 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동태평양의 최고의 우리 동맹은 누가 뭐래도 일본이야. 그게 현실이지”
“...”
이건 나도 할 말이 없다.
우리가 일본 뒤를 많이 쫓아가기는 하였지만, 적어도 아직은 일본에게 확실히 밀리니까.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민하던 트럼프의 태도로 봐서는, 여기서 조금만 더 부채질을 하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정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원자력에 관한 모든 군사적 이용은 올스톱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트럼프에게 승인을 받고, 다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일을 벌여 놓아야 한다.
“그럼 일본은 제가 해결하면요?”
“뭐? 일본을 네가 해결해? 그게 말이 되나?”
“됩니다.”
“어떻게 말인가?”
“살고 싶으면 용인해야 할 겁니다.”
“뭐? 살고 싶으면 용인을 하다니? 그게 무슨···. 아! 너 설마?”
“우리에게는 백신이 있지요, 백신이 말입니다.”
“허어···.”
이렇게까지 나오기는 싫은데, 일본이 옆에서 끝까지 태클을 걸면 백신을 들먹이는 수밖에 없다.
정말 웬만하면 백신 가지고 딜 하기는 싫지만 말이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다시 고민에 빠지는 트럼프.
여기서 좀 더 쐐기를 박아 줄 지원 화력이 필요하였다.
“도널드”
“왜?”
“제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는데요···.”
“뭘 말이야?”
“도널드 캠프에 원래 2,000만 달러를 지원하려고 했거든요?”
“2,000만 달러씩이나?”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기분이 좋아지면 5,000만 달러로 금액이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선거 자금으로 대놓고 딜을 걸면 뇌물이 될 수도 있기에, 나는 분명하게 내 기분이 좋아지는 조건으로 말하였다.
“5, 5,000만 달러!”
트럼프의 고개가 내게로 확 돌아졌다.
“어디까지나 제 기분이 좋아지면 말입니다.”
“그, 그래도 이건 좀···.”
하아, 정말 쉽지 않은 인간이다.
결국, 내 밑천을 다 거덜 내야 할 것 같았다.
진짜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것도 통하지 않으면 나도 모른다.
“그리고 도널드”
“응? 또 왜?”
“보잉이 요즘 많이 어렵지요?”
“그래, 바보 같은 놈들이 민항기는 737이 결함으로 완전히 박살 났고, 군수 사업은 록히드 마틴에 밀려서 고사 직전이지. 그래서 미 공군 훈련기 사업도 보잉에 밀어준 것인데, 그것도 어째 영 신통치가 않아”
“그것도 그렇지만, F-15E 생산라인이 조만간 주문이 없으면 공장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면서요?”
“맞아. 그거 때문에 공군이 싫어하는 데도 억지로 발주를 내주려고 하는데 반발이 만만치 않네”
“이야! 이거 어쩌나? 가만 있어 보자. F-15 공장이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지요?”
“어? 어···.”
“미주리주 선거인단 수가 몇 명이더라?”
“10명! 10명이라고!”
“어이 구야! 의외로 많네요? 선거인단 수로 따지면 캘리포니아나 텍사스 같은 대형주 몇 개를 빼면 상위권인데요?”
“...”
슬쩍 트럼프를 쳐다보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저건 탐욕의 눈빛이다.
“알렉스”
“네, 도널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냥 바로 말하지?”
“하하하! 아이, 왜 이러세요? 그냥 저는 세인트루이스 공장이 폐쇄되면 민심이 나빠질 것 같아서 그런 건데요?”
“그만 돌리고 제대로 말하지?”
“트럼프가 애를 써서 공장의 폐쇄를 막는다면? 그래서 양질의 일자리가 계속 유지된다면?”
“어떻게 말인가! 어떻게!”
“우리나라 공군이 아직도 구닥다리인 F-4E 팬텀 2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만약에 말입니다. 아주 만약에 말이지요···.”
“아! 얼른 말해! 나 숨넘어간다고.!”
“만약에 제가 돈을 대서 신형 F-15 EX 전투기를 발주한다면?”
“몇 대나?”
“한 40대? 그러면 세인트루이스 공장이 유지되겠지요? 당연히 미주리주 주민들은 도널드를 찬양할 것이고?”
벌떡!
트럼프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축하하네! 알렉스! 대중국 동맹이라는 대의를 위하여 내가 수고를 좀 하지! 이제 자네의 대한민국은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가지게 될 것이네! 으하하하!”
“하하하···.”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드디어 항복하였다.
우리 대한민국은 숙원인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런데, 가만?
이거 내가 이렇게 트럼프를 지원하다가 설마 재선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래도 민주당 후보에게는 열 배 이상을 지원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원자력추진 잠수함이 좋다고는 하지만, 이 재앙 덩어리가 재선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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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어서 결국 트럼프가 우리나라 원자력추진 잠수함 보유를 승인하기로 하였습니다.”
“으허허허! 그게 정말인가?”
“네, 정말입니다.”
“으허허허!”
회사로 돌아와서 곧장 화상을 연결하여 이상철 대표에게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이 완전히 폐기되고, 원자력추진 잠수함 보유가 승인되었음을 알렸다.
아이고, 우리 전단장님 좋아서 죽네, 죽어.
“그렇다면 얼른 국방부에 알려야겠네”
“네, 여러 가지로 후속으로 미국과 협의해야 할 일이 많아요. F-15 EX 전폭기도 발주해야 하고요.”
“이거 공군 녀석들은 우리 강 중사 덕분에 손가락 하나 안 대고 신형 전투기들이 생기는구먼?”
“하하하! 다 같은 국군 아닙니까?”
“으허허! 그야 그렇지. 그런데, 이거 너무 돈을 많이 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상관없어요. 그만큼 버니까요. 아, 전단장님”
“말하게”
“원자력추진 잠수함은 당분간은 철저하게 비밀로 하기로 하였으니까,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쓰셔야 합니다. 잘 아시지요?”
“물론이지!”
“자세한 사항은 제가 며칠 내로 한국으로 갈 것이니까, 그때 가서 말씀하기로 하지요.”
“고생했네, 강 중사. 그리고 고맙네, 정말 고마워!”
“에이, 별말씀을? 그럼 며칠 후에 뵙기로 해요.”
“알았네.”
며칠 후, 나는 한국으로 가는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원래도 갈 계획이었지만, VIP가 날 보자고 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