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대체 왜 그러셨어요?
“아베 총리님,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합시다. 총리께서는 한국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 상황이 수치스럽고 싫지요? 특히 한국 정부와는 마주 앉기도 싫으실 것이고? 그래서 나를 중간에 끼워 넣은 것 아닙니까?”
“네, 솔직히 그렇습니다.”
“참, 어이없네요. 내가 듣기로는 총리께서는 십수년 전만 하여도 한일 관계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던 것으로 아는데, 대체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베를 만나기 전에 나름 이 인간에 대하여 조사해 봤는데, 처음부터 우리나라를 싫어하던 놈은 아니었다.
심지어는 2006년에 한국은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적인 인권과 법의 지배라고 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하면서 한일 관계의 미래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서술한 책도 썼더라.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혐한으로 만들었을까?
하여간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고.
“그건 말입니다...”
“아, 됐습니다. 원인은 내가 알 바가 아니지요. 현재의 팩트는 총리께서 우리나라를 싫어하듯이, 우리도 총리를 아주 싫어합니다. 아니, 싫어하다 못해서 혐오하지요.”
“...”
“그리고 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미국 영주권자지만,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며 여전히 해군 예비역 신분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총리를 마주하는 이 자리가 몹시 불쾌합니다. 우리 정부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이런 일 따위는 맡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 아주 심플하게 본론만 이야기합시다. 동의하십니까?”
“네, 동의합니다.”
“그럼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고 이야기 끝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자,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먼저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시면 가능한 것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2018년 초계기 사건 이전으로 한일 관계를 되돌리는 것을 원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정도야 아베도 당연히 생각하고 있던 것일 거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받는 것’이 아니지.
당연히 원래 그랬어야 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그럼 반도체 산업관련 재료의 수출 제재는 없는 것으로 하는 겁니다. 뭐 효과도 없었지만”
“...”
이건 어떤부분에서는 아베가 고맙더라.
편하게 수입해서 쓸 생각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준 셈이니까.
“또한 백색 리스트 제외도 다시 원상복구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총리께서 시비를 걸기 시작한 문제, 강제 징용과 관련한 일은 전적으로 우리 사법부의 판단에 따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 아니 그건 불가합니다.”
“뭐가 불가해요? 우리나라가 콩가루 나란지 아세요? 입법, 행정, 사법의 독립성이 헌법으로 보장된 나라입니다. 우리 사법부가 판단하는 것을 행정부가 어쩌란 말이에요? 행정부가 사법부 판단에 불법으로 개입하란 말입니까?”
사실 이건 내 판단으로 말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2018년 12월 이전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얼마 못 가서 또 문제가 될 거다.
아예 이참에 미온적인 수준이라도 해결하는 것이 낫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 됩니다! 한일 기본조약에 따라서···.”
“기본조약 같은 소리는 하지 마시지요?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 배상을 못 받았는데, 무슨 소리예요? 개인의 청구권을 국가가 협약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겁니까? 일본은 그래요? 다른 나라가 일본 국민을 개 패듯이 패놓고 일본 정부와 야합하여 없던 일로 해버리면 그만이라는 말입니까?”
“끄으응!”
“그렇다고 일본 정부에서 우리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느니, 아니면 인정한다느니 같은 것까지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총리께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닥치고 있으란 말입니다. 왜 남의 나라 사법부 판단을 가지고 난리세요?”
생각 같아서는 과거사 문제까지 깊게 건드리고 싶지만, 거기까지는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아니다.
그저, 이 정도로 끝낼 터이니, 너희도 조용히 있으라는 정도가 한계인 것이지.
“하아, 조용히만 있으면 되는 겁니까?”
“네, 제대로 처리하면 그것도 모자라지만, 백신 가지고 치사하게 군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그 정도로 하겠습니다.”
“...”
“동의하십니까?”
“네, 동의합니다.”
제기랄, 아쉽지만 이 정도면 한동안은 조용할 것이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할 때는 우리와 협의하는 것으로 합니다. 그거 일본에서도 많은 국민이 반대하던데, 왜 자꾸 무단으로 방류하려고 그럽니까?”
“그건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저장고가 넘칠 지경이란 말입니다. 하루에도 수천 톤의 처리수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염수!”
‘처리수’라고 하는 것을 ‘오염수’라고 정정해주었다.
대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가지고 왜 이렇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지 대체 이해를 못 하겠다.
처리수라고 하면 뭐가 좀 나아지나?
“네, 오염수···.”
“그러니까, 최선을 다하다가 정 안 되면 우리를 비롯한 주변국에 솔직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양해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 보자고요. 우리가 그렇게 무단 방류했으면 일본 정부에서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와는 협의하세요. 그렇게 알겠습니다.”
“네···.”
아베의 어깨가 점점 처지고 있었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소녀상도 그래요, 자꾸 철거하려고 하는데, 그만하시지요?”
“알겠습니다. 이제 되었습니까?”
소녀상 문제는 일본에는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지.
이것도 그냥 닥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
아마 우리가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도 하였을 것이고.
“두 개 남았습니다.”
“또 뭡니까?”
“대잠 초계기 사건, 진상을 밝히고 사과하세요.”
“...”
“이건 정말 우리 정부를 떠나서 제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해군을 거짓말쟁이로 몬 것이니까요. 스기야마 대사로부터 보고 받았겠지만, 나는 해군 출신입니다. 심한 모욕감을 받았습니다.”
“그, 그건 한국의 함정이 우리 초계기에 화력 통제 레이더를···.”
“어허! 이거 왜 이러시나? 그 함정은 내가 잘 알아요! 20년이 되어서 대규모 개수를 받기 직전의 노후화된 함정이란 말입니다! 도발할 배가 없어서 그런 배로 일본의 최신 초계기인 P-1을 도발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
“...”
“정치적인 의도가 있던 것 맞잖아요? 안 그래요? 이미 한일 국방 당국자들이 실무급 화상회의를 가지고 해결하려고 했는데, 바로 다음 날 우리 뒤통수를 때렸다면서요? 그건 총리의 지시라고 다 밝혀졌고요?”
“...”
왜 말이 없냐고?
“대체 왜 그러셨어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곤란한 짓을 왜 하셨어요?”
“...”
“아니, 이대로 뭉개고 그냥 지나가실 생각입니까? 일본 사람들을 전부 우리가 먼저 적대 행위를 한 것으로 알던데요?”
“휴우! 대체 저에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인제 와서 초계기 사건은 일부로 일을 키운 것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되긴?
바로 정치 생명이 끝나겠지.
“비공식적으로 한국 정부에 해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정말 곤란합니다. 아시잖습니까? 그리고, 강 회장님께서 모욕감을 느끼셨다니 그 부분에 대하여도 제가 이렇게 사과드리겠습니다.”
“...”
“제발 부탁입니다. 이 정도로 넘어가 주시지요.”
“그럼 나중이라도 꼭 진상을 밝히세요.”
“언젠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이!”
못마땅하지만,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아무리 백신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자살하면서까지 사과할 인간은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지.
“그럼 다음으로···.”
“마지막이군요.”
“이건 극비 사항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외부로 노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아, 긴장하지 마세요. 사실 이건 굳이 일본에 말해주지 않아도 되는 문제인데, 그래도 우방국이자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
내가 갑자기 친한 척하자, 아베는 더 긴장하는 것 같았다.
“흠, 우리가 비밀리에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네? 뭐라고요?”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려고 준비 중이다고요.”
“마, 말도 안 돼! 그럴 순 없습니다! 이건 용납할 수 없어요!”
이게 미쳤나?
일본이 뭔데 용납을 하고 안 하고 하냐?
예상보다 훨씬 격앙된 아베의 반응에 황당하였다.
“용납? 용납이라니요? 일본이 무슨 자격으로 용납을 하니 마니 합니까?”
“그, 그건···.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요! 바다가 오염될 겁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지금 사고 나라고 기원하는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뭐가 아니에요? 사고? 그럼 지금도 동해를 누비고 있는 미국 잠수함은 뭡니까? 그리고, 그렇게 바다가 걱정되는 사람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오염수를 바닷속에 방류해요?”
“이, 이익!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대체 미국이 알면 어쩌려고 한국은 이런 일을 벌이는 겁니까!”
“아베 총리님···.”
“왜 부르세요!”
“설마 우리가 미국 몰래 원자력추진 잠수함 사업을 벌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예? 예?”
“우리 정부가 전부 머리에 총이라도 맞았답니까? 미국 몰래 이 정도의 일을 벌이게? 그리고, 미국이 우리가 몰래 한다고 해서 모를 나라에요?”
“그, 그 말은···.”
“도널드가 승인한 일입니다.”
“도널드라니요?”
“이분이 진짜 왜 이래? 내가 설마 지금 도널드 덕을 말하겠어요? 당연히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말하는 것이지?”
“이, 이럴 수가!”
아베는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뭐, 어느 정도는 예상하였지만, 생각보다 좀 심한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여기 있다니까요?”
“미국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니 진짜 왜 이래요? 이게 농담으로 할 말입니까? 도널드에게 물어보시던가?”
“...”
“아마 친절하게 대답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베 총리가 전화할 것이라고 짜증을 냈었거든요.”
“...”
아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리고 한 5분이 지났을까?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뭘 어떻게 합니까? 잘 설득하였지요?”
“강 회장님께서 직접 하신 겁니까?”
“네, 제가 직접 설득하였습니다.”
“아니 민간인인 강 회장님이 대체 어째서! 어째서!”
“소리 지르지 마시지요? 저 그냥 갈까요?”
“...”
“한 번만 더 소리 지르면 그냥 갈 겁니다.”
“죄, 죄송합니다.”
“사실은 좀 우발적이었어요. 그냥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뭐 숨길 일도 아니고”
“그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아봤자 어디에다가 말도 못 할 것이다.
미국을 건드리는 일이니까.
“지금 이루어지는 미국에 대한 방역 물자와 백신 공급, 아무리 한미가 혈맹관계라고 하여도 좀 지나쳐 보이지 않았습니까?”
“약간은 그래 보였지만, 우린 그저 한국전쟁에 대한 보은이라는 말을 믿었습니다.”
“아무리 혈맹이라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죠. 우리나라와 완전히 동일하게 지원되었으니까요. 이제 감이 잡히십니까?”
“그럼 백신과 방역 물자를 가지고?”
“지금 미국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례적인 방역 물자와 백신의 공급으로 미국은 한시름 덜었고, 도널드의 지지율은 바닥을 치던 것에서 많이 올라갔습니다.”
“아···.”
아베는 이제야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은 것 같았다.
“원래도 미국이 최우선 지원대상이었지만,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지원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말이 나올 정도로요. 그 부분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가 있었습니다.”
“그 고마움의 표시가 하필 원자력 잠수함입니까?”
“뭔가를 말하긴 해야 하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찾아도 말할 것이 없었어요. 나는 순전히 내 천재적인 감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입니다.”
염주님에게는 좀 미안하다.
“그러니, 미국 정부가 나에게 해줄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하다가 나라 좋은 일이라도 하자! 해서 말을 꺼냈는데, 다행히 도널드가 들어준 겁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민간인이 원자력 잠수함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한국 정부와 상의한 겁니까?”
“우리 정부와 사전 상의는 일절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거 참, 저 해군 중사거든요? 중사 출신이라 45살까지는 전쟁이라도 나면 참전해야 하는 사람이라고요?”
진짜 무슨 예비군이 이렇게 긴 거냐고?
“대한민국은 해군 중사에게 원자력 잠수함을 가져야 한다고 주입 교육이라도 시킨답니까?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하아, 나 원. 저 밀덕입니다.”
“밀덕이라니요?”
“밀리터리 오덕후라고요! 아니 일본말로는 오타쿠! 거 되게 집요하시네?”
“...”
아베 신조 총리가 벙찐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냐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