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어째 말려드는 기분인데?
- 안녕하십니까? 강 회장님. 저 대통령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 먼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이고, 이거 제가 인사드렸어야 하는 건데. 대통령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뜬금없는 전화에 당황하다 보니 결례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대체 왜 건 거야?
- 하하! 아닙니다. 지금 통화 괜찮으시지요?
“네, 물론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 다름이 아니라, 내일이나 모레 정도 저녁에 시간이 되시면 저녁이나 같이하였으면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마침 연초에는 한국에 계신다는 말도 들어서요.
“아, 전 상관없습니다. 언제쯤 찾아뵈면 괜찮으시겠습니까?”
- 그럼 내일 저녁 8시가 어떻습니까? 저녁을 먹자고 하기에는 좀 늦은 시간인데, 제가 그때 업무가 끝날 것 같아서요.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 아이, 별일은 아닙니다. 그저 여러 가지로 고마운 일이 많아서 편하게 식사 대접이나 할까 해서 보자고 한 것입니다. 약간 상의할 것도 있고요.
“네···.”
그럼 그렇지.
결국은 뭐건 아쉬운 소릴 할 것이 있다는 말이네.
역시 정치권과 엮여서 좋을 것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직접 말하는데, 안 갈 도리가 없다.
“그럼 내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네, 자세한 절차는 따로 우리 비서관이 회장님 비서에게 연락드릴 겁니다. 그럼 내일 보지요.
“네, 알겠습니다.”
어째 내 인생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다.
만났다 하면 대통령 아니면 총리니···.
***
다음 날, 청와대에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던 직원이 조용히 나를 안내했다.
안내된 곳은 대통령과 가족이 평소에 식사하는 듯한 장소인 듯, 크지 않고 평범한 원탁 하나만 놓여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강 회장님.”
“네, 반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하하! 저는 자주 보고 싶은데, 미국에 계시니까 그럴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무서운 소리 하지 마시길.
“자, 앉으시지요. 오늘은 편하게 식사하고 싶어서 일부러 우리 식구들 먹는 곳에서 모셨습니다. 괜찮으시지요?”
“아유, 그럼요.”
“하하! 양해하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반주는 어떻게 할까요?”
“예? 아, 저는 소주가 괜찮은데, 대통령님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저도 소주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통령과 단둘만의 저녁 식사.
아무래도 반주가 들어가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대통령은 계속 나에 대해 칭찬만 하는데, 아무리 뒤에 무슨 수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지만 대통령이 칭찬하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없지.
사다리 센터부터 시작해서 내 벌이가 좋아짐에 따라 확대일로에 있는 복지 사업에 대해선 과찬을 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인류적인 재앙인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구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을 세계 속의 한국으로 우뚝 서게 해주어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고, 국방에도 괸심을 주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연신 나를 추켜세웠다.
“하하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직 젊으신 분이 단기간에 천문학적인 부를 쌓은 것도 대단하지만, 나는 회장님이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고루 살피고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시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아이,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자! 건배!”
“건배!”
그렇게 한참 분위기가 좋았을 때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회장님.”
“네, 말씀하시지요.”
“저기, 제가 많이 민망합니다만 부탁을 좀 드리려고···.”
“네···.”
역시나 본론은 이제 시작이구나.
계속 나를 추켜세우기만 하려고 부를 리는 없지.
“하하, 부끄럽습니다.”
“아닙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면 다름이 아니라, 국내에도 투자를 좀···.”
“네? 투자요?”
“네, 사실 회장님의 국내 투자는 미국에 비하면 좀 약하지 않습니까?”
“······.”
약한 정도가 아니라, 새 발의 피도 되지 않는다.
100분의 1이나 될까?
“네, 아무래도 시작을 미국에서 해서요.”
“하하, 그건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국내 투자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이라도 가지고 계시는지요?”
“그런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제 투자의 대부분이 주식 투자인데, 국내는 아무래도 증시 규모가 작다 보니 관심이 적었을 뿐이지요.”
이건 사실이지.
한국 증시는 내가 움직이기에는 사이즈가 너무 작다.
게다가, 미국 증시처럼 100배씩 상승하는 스펙터클한 맛도 없었고.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직접 기업을 소유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십니까? 의류와 제약 쪽으로 말고는 카르마 홀딩스에서 직접 소유하고 경영하는 회사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부터는 한국에 대한 투자 금액을 늘릴 생각도 있었고요.”
“오오!”
뭐가 오오냐?
이거 불안해지는데?
“하하하! 제가 때를 잘 맞췄나 봅니다. 마침 좋은 물건들이 나왔지요!”
“예? 예?”
아니 이 양반이 갑자기 장사꾼 모드로 왜 변신하냐고?
“좋은 물건이라니요?”
“혹시 아시안 항공을 아십니까?”
“우리나라 사람이 아시안 항공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알지요.”
“하하하! 역시! 임자는 따로 있었군요!”
“······.”
아시안 항공 이름을 알아서 임자면, 전 국민이 임자다.
“그런데 아시안은 왜 그러십니까?”
“이게 원래 회사가 부실해져서 현도 산업개발에서 인수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네, 그런데 코로나로 무산되었지요.”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코로나 사태로 각국의 문이 닫히면서 무산되었지요. 그런데 지금 코리안 항공에서 인수하기로 다시 정해졌습니다.”
“예에? 그 망할 땅콩···. 아, 죄송합니다. 아니 그렇게 되면 다시 우리나라의 독점 항공사가 되는 거잖습니까? 저가 항공들을 빼면 말이지요.”
아니 무슨 일 처리를 이렇게 하냐?
그렇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 항공 독점 선물을 주다니?
이게 말이 돼?
“강 회장님.”
“네, 대통령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장님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물론이지요.”
“아주 실망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어떤 빡대가리 머리통에서···.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부끄러우니까요.”
“아니 그런데, 그걸 왜 보고 계십니까? 대통령이시잖습니까?”
“대통령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정도 좀 있고요.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가뜩이나 부실했던 아시안의 상태가 날이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이러다가 항공사 자체가 없어질 판국이었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코리안에 넘겨서 생존을 시켜주자는 논리를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요.”
“그렇지요? 이건 경우가 아니지요?”
“······.”
어째 말려드는 기분인데?
“그래서 지금에 와서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미 코리안에 넘기기로 하셨다면서요?”
“이게 그렇게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코리안과 아시안이 합쳐지면 국제 여객노선과 화물 노선의 점유율이 70%가 넘게 됩니다. 시장 지배자 사업자로 간주하는 점유율 50%를 훌쩍 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공정거래위원회의 기합결합 승인은 물론이고, 세계 10여 개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도 받아야 합니다.”
“흐음, 그렇군요. 그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무산시키면 되잖습니까?”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무산시키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합니까? 아시안은 이미 자생 능력이 없는데 말입니다. 일이 지금 이렇게 되는 것은 오직 파산하여 회사가 없어지는 것보다는 낫다! 라는 이유 하나 때문입니다. 공정위에선 그 논리를 무조건 받아들일 겁니다.”
“허어···.”
“그래서 제가 회장님께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혹시 괜찮은 항공사 하나 경영해볼 생각이 없으십니까?”
“끄으응!”
결국, 이거였군.
“회장님의 자금력이라면, 틀림없이 코로나 시기를 버티고 경영 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하아···.”
솔직히 관심은 갔다.
일단 땅콩이 우리나라 항공을 독점하는 꼴을 보기 싫은 것이 첫 번째고, 개인적으로도 비행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우리 카르마 홀딩스의 경영진들과 상의를 해보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어디까지나 상의에요, 상의! 그렇게 감사하시면 안 됩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 상태를 파악해 봐야겠지만,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계산하여 시장가치로 따져서 가격을 산정할 겁니다. 즉, 채권단이 원금을 모두 회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그것도 걱정하지 마시지요. 카르마에서 얼마를 요구하든 코리안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아니 코리안에서 얼마를 주고 가져가는 겁니까?”
“사실상 공짜입니다.”
“예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공짜라니요?”
“자세한 내용은 자료를 드릴 겁니다만, 채권자인 산업은행이 주동하여 코리안 항공의 모회사인 한정콜에 8,000억 원을 투자하고, 한정콜은 그 돈으로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합니다.”
“그리고요?”
“코리안은 유상증자 후, 아시안의 신주와 영구채를 인수하여 60% 대주주로 올라서서 주인이 된다는 구조지요.”
“······.”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
“자세한 내용은 따로 드리는 자료를 간부들에게 보여주시면 아실 겁니다.”
“아니 왜 그렇게 하는 겁니까?”
“아시안 항공을 유지하려면, 정부로서는 다른 나라의 항공지원책처럼 정책 자금을 계속 투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코리안에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조건으로 인수시키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
욕이 나오려 했지만 참고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입을 열면 시발이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 똥 같은 거래는 안 된다.
땅콩 놈들 집안에 좋은 일을 시켜주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직접 개입하기로 결심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주가 놈들 손에 아시안이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오오! 감사합니다!”
오오오 하지 마세요.
지금 솔직히 짜증 나니까.
“휴우, 그럼 되었습니까?”
“저기···.”
“아니 왜 저기라고 하세요? 사람 불안해지게?”
“이건 우리의 꿈을 위해서라도 꼭 좀···.”
“우리의 꿈이라니요?”
여기서 우리가 왜 나오는데?
“원자력추진 잠수함 프로젝트 말입니다.”
“원자력추진 잠수함이요? 그게 어째서요?”
그렇다면 우리가 맞다.
“밀덕이라니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잠수함 건조 능력이 있는 회사는 딱 두 군데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대유조선이 원조고, 나중에 현도 중공업이 왕회장의 유지니 뭐니 해서 끼어들어 개판을 쳐놨지요.”
현도가 끼어들어 214 손원일급을 만들면서 결함투성이가 되어버렸다.
결국 최근의 잠수함 프로젝트는 거의 대유조선이 독점적으로 개발하고, 건조 시에만 물량을 현도에 나누어 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았고.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저 미국에서 살아서 한국 기업 상황은 잘 모릅니다. 그저 대유조선이 과거에 대유그룹이 망하고 나서 아직 주인을 못 찾고 있다는 정도만 알지요.”
“그 대유조선이 원자력추진 잠수함 개발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현도 중공업의 지주회사인 대한조선해양의 자회사로 들어가는 기업결합 심사가 진행 중입니다.”
“하아···.”
내가 못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