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결국 대통령이 내게 선물한 짐 덩어리 모두를 인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발상을 전환하니 의외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KAI만큼은 남정원 사장이 살짝 주저했으나, 내가 그냥 인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염주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니까.
혹시 알아?
갑자기 FA-50 전투기가 미친 듯이 팔릴지?
내가 생각해도 좀 가망이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대통령이 파일을 내밀면서 그저 검토나 해달라고 했던 대유건설도 같이 인수하라고 지시했는데, 이건 남정원 사장도 좋다고 했다.
원래 우리 정도의 그룹사가 되면 건설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나?
사실, 기존의 회사들과 이번에 인수하는 회사들을 합치면 그 회사들에서 나오는 물량만 해도 상당했다.
게다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사다리 센터 등의 복지 관련 시설들까지 합치면 제법 될 것이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대유건설에는 내 친구가 있었다.
바로 정훈이가.
이 자식이 알면 엄청나게 놀라겠지?
흐흐흐!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 하하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실 절반이나 건지면 성공이라고 생각하였거든요?
대통령에게 모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좋아서 죽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기야, 대유 계열사는 무려 20년이나 묵은 똥이니까 그럴 수밖에.
그래도 호구가 될 수는 없지?
“완전히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산업은행이나 채권단에서 욕심을 부리면 인수할 수 없으니까요.”
- 아이고, 왜 이러세요? 제가 관여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좋은 가격으로 맞춰드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산업은행 총재도 한꺼번에 이십 년에 걸친 짐을 덜어내는 것이라 잘해드릴 것이고요.
“······.”
조금만 더 통화하면 ‘고갱님, 얼마까지 알아보셨어요?’ 멘트도 나올 것 같네.
하여간 최대한 빨리 처리하기로 합의하고 바로 우리 측에서 인수단을 구성하여 산업은행과 협의하기로 했다.
우리가 인수하는 것은 다른 그룹에서 인수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다른 그룹은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그룹사 내에서 계열사별로 갹출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따로 돈줄을 물어오든지 해야 한다.
또한, 독과점이나 아니면 인수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부채비율 같은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하지만 우린 그런 것이 필요 없다.
그냥 ‘얼마예요?’ 물어봐서, ‘고갱님, 얼마입니다.’ 하면 네고해서 결정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야말로 현질의 정수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렇게 시작된 4개 회사의 인수 협상은 KAI 대주주인 수출입은행이 산업은행에 협상을 위임하여 산업은행과 단독으로 마주하여 시작되었고, 경이적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서 협상을 시작한 지 딱 7일 만에 완료가 되었다.
우리가 인수가격 외에 내세운 조건은 딱 하나였다.
숨겨진 돌발채무와 부실회계나 부정회계에 대하여 산업은행이 책임질 것!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모든 자료를 믿을 테니, 나중에 협상할 때에 없었던 채무가 튀어나오거나 조직적으로 회계 부정이 이루어졌을 때는 그 손실을 판매자가 책임지라는 것이었으니, 당연히 내세울 조건이었다.
하여간 기존 회계 자료를 믿고서 협상한 만큼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중간에 코리안이 격렬하게 반발했으나, 사실상 공짜로 주워가려는 놈들이라 반항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게다가 내 부탁으로 지난번에 이어서 사성 이정룡 회장이 중간에 개입하기도 했고.
“주양태에게는 좋게 이야기했습니다.”
“말을 듣던가요?”
“그놈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생난리를 처대더군요. 그리고 그놈, 회장님에 대해 모르고 있던데요?”
“네? 나에 대해서 모르다니요?”
좀 황당했다.
카르마 홀딩스는 이때쯤에 상당히 알려진 회사가 되었다.
바로 백신을 개발하고 사다리 센터를 운영하는 정화재단의 돈줄이라는 것이 언론을 통하여 널리 알려졌으니까.
미국의 모회사인 카르마 인베스트먼트는 내가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 되도록 노출이 안 되게 했지만, 웬만한 기업에서는 파악할 만큼 파악했다.
내가 주인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런데, 명색이 한국 굴지의 그룹 수장이라는 놈이 나에 대하여 몰라?
“하아, 어찌나 한심하던지요. 그냥 한마디만 했습니다. 테슬라의 1대 주주라고요.”
“······.”
“코리안 따위는 회장님이 마음먹으면 날려버리는 데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 했지요.”
“그랬더니요?”
“뭐 어쩌겠습니까? 그냥 꼬랑지를 내려야지요. 거기다 그놈이 보유하고 있는 코리안 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정콜 지분은 6%도 되지 않습니다. 경영권 분쟁이 있는 땅콩 누나하고는 차이도 거의 없어요. 한마디로 정부 측인 산업은행에서 흔들기만 해도 백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뭘 믿고 그렇게 개긴 거예요?”
“그야 저도 모르죠.”
“허어···.”
“하여간 얌전히 물러서기로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부탁을 들어주셔서요.”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당분간 연락을 못 드릴 것 같습니다.”
“네? 어디 가세요?”
“하하! 어디 가기는 갑니다.”
“아니 어딜 가시기에?”
“제가 아무래도 콩밥을 좀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콩밥이라니요?”
웬 콩밥?
“부끄럽습니다만, 지난 정부 시절에 관련된 건이 뇌물로서 최종적으로 인정될 것 같습니다.”
“아···. 이거 유감입니다.”
이정룡 부회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내가 봐도 사성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깜빵에 갔을 것이다.
그래도 최근에 나와는 안면도 있고 제법 친하게 지내는지라 차마 잘됐다거나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고, 그저 유감이라고 말한 것이고.
“하하! 그렇게 위로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처신을 잘못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아마 2년 반 정도 나올 것 같습니다.”
“호오? 그런 것도 예측할 수 있어요?”
“저 사성의 총수입니다.”
“그렇군요.”
“네.”
사성의 총수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역시, 적어도 한국에서 사성은 대단하구나.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참,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 왜 조금 더 가지려 욕심을 부린 것인지.
안타까웠다.
***
2021년 1월 15일.
협상이 마무리되어 남정원 사장과 산업은행 회장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한국이 그냥 뒤집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4개 회사의 매출 규모는 총 26조 정도.
대유건설이 8조 대, 아시안이 2019년 코로나 이전 매출이 거의 7조에 육박했고, 대유조선이 7조, 그리고 KAI가 3조가 좀 안 되었다.
이런 대규모 기업집단이 새로 생기는 것이었으니, 뒤집힐 수밖에.
물론 이미 카르마에서 하던 제약과 의류 사업은 제외인데, 이쪽은 작년부터 막 매출이 급상승한 분야지만 그 성장세가 무시무시했다.
아무튼 아시안이고 대유조선이고 건설이고 KAI고 간에 해당 회사 임직원들은 일제히 환호하면서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부실기업이 다른 경쟁회사에 인수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다르지만, 임직원에게는 대단히 가혹한 시절이 온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나 간부들은 거의 날아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다행히 자리를 보존하더라도 몇 년 가지 못하고 팽을 당할 것이다.
과장이나 차장 이상의 간부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진을 포기해야 할 것이고.
그런데, 우리 카르마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우나 고우나 기존 임직원들을 끌고 가야 한다는 소리지.
잘해야 전문 경영인인 사장과 그들이 취임하면서 데리고 온 인력 정도가 나가는 정도일 거다.
이러니 환영할 수밖에.
게다가, 어설픈 회사가 새우가 고래를 먹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김호그룹이 건설로서는 쨉도 안되는 대유건설을 먹었다가 도로 토해낸 사례가 있었는데, 이건 대유건설 직원들에게도 악몽이었다.
회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던 서울역 앞의 사옥을 김호에서 인수하자마자 모건 스탠리에 팔아먹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아니지.
돈이라면 사성도 쩌리 취급한다는 카르마다.
심지어 남정원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부채 없는 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고.
“존.”
“네, 보스.”
난 마곡의 내 집무실에서 존과 화상으로 통화를 하는 중이다.
“오늘 인수 협상이 마무리되어서 발표했어요.”
“하하하! 축하드립니다.”
“뭐,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고, 당분간은 서울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회사 좀 부탁해요.”
“이거, 자꾸 보스를 한국에 뺏기는 것 같아서 섭섭한데요? 하하!”
“에이, 왜 그래요? 이번만 처리하고 가면 당분간은 미국에만 있을게요.”
“약속하시는 겁니다?”
“하하! 알았어요.”
예전 정도는 아니어도, 이상할 정도로 내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존이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까, 내가 없으면 약간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
젠장, 누가 보면 사귀는 줄 알겠네.
가뜩이나 장가 못 간다고 집에서 난리를 쳐서 스트레스 받는구먼.
“테슬라 주식은요?”
“지시하신 대로 조금씩 팔고 있습니다.”
“그래요, 지금에서 당분간은 계속 떨어질 거예요. 봄까지는 5%~7% 정도 정리했다가, 다시 매입하는 것으로 하자고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아! 혹시 일론에게서 전화 안 갔습니까?”
“응? 그저께인가 전화 왔었는데 손님 만나는 중이라 안 받았는데?”
“당분간 전화 받지 마시지요. 저에게도 또 시작이냐고 한바탕 난리를 쳤었습니다.”
“아이, 그 인간. 몇 퍼센트 파는 것 가지고 유난 떨기는? 어차피 떨어질 주식, 남이 먹는 것보다 내가 먹는 것이 낫잖아요?”
“그럼요! 흐흐흐!”
테슬라 주가는 당분간 조정을 받을 거다.
그러니, 우리도 고점에서 슬그머니 내가 파는 것이고.
물론 대세에 지장 없게 말이다.
그런데, 머스크 놈은 그게 꼬운 것이다.
자신은 돈이 보여도 함부로 내다 팔 수 없는 위치에 있으니까.
나야 또 엄청난 돈을 벌 것이고.
이런 짓은 리사와 젠슨에게는 익숙해서인지, 그 사람들은 우리가 일부 주식을 사고팔아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역시 사람은 단련하기 마련이라니까?
존과 통화를 마치고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이제 명실상부한 그룹 체제로 가는 것이니, 제대로 정비하고 가야 할 필요가 있어서다.
“모두 수고들 많았습니다. 특히 남정원 사장님은 고생 많았어요.”
“아닙니다. 이런 인수는 정말 쉬운 편이지요.”
“그래요?”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중소기업 하나 인수하는 것에도 장난이 아닌 것이 보통입니다. 뭐 전 사주가 법인 골프장 회원권은 사용하게 해달라, 쓰던 차는 자기가 가져가겠는 것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온갖 놈들이 다 끼어들어서 숟가락 얹으려고 혈안이 되지요.”
“호오?”
“이번 같은 경우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워낙 오랫동안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쉬운 겁니다. 하자에 대하여도 정부에서 책임을 지기로 했고요.”
“하하하! 알았습니다.”
남정원 사장의 말이 맞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막대한 현질을 하기 때문에 쉽게 가는 편일 것이다.
“어쨌든 간에, 이제 본격적으로 대기업 집단이 되었는데 우리도 계속 이런 식으로 갈 수는 없잖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 사업을 총괄할 분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아···.”
“오···.”
“흐음···.”
다들 반응이 제각각인데, 남 사장의 표정을 보니 그리 섭섭해하지는 않은 것 같다.
포커페이스인가?
그런데, 재하 형이 입을 열었다.
“저기, 회장님.”
“네, 이 대표님.”
“외부에서 새로 영입하는 겁니까?”
“왜요? 이 대표님이 맡아보시게?”
“에이, 그런 것이 아니라···.”
솔직히 재하 형이니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지, 다른 사람이 했으면 경우 없는 인간이라고 개욕을 먹었을 거다.
하여간, 재하 형은 남정원 사장 보기가 좀 민망해서 그러는 것 같았는데, 더는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본인도 이런 말을 꺼낸 것 자체가 나와의 특수한 관계 때문인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여기까지가 선이란 것도 아니까.
“외부 아니에요.”
“예?”
“지금까지 열심히, 그리고 잘해 오신 남정원 사장을 카르마 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합니다!”
“오오!”
“에이, 이럴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으허허허!”
남정원 사장도 얼굴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하! 더 열심히 하셔야죠.”
다 부려먹으려고 이렇게 하는 거랍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