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대우는 제대로 해드릴 것이니까.
지글! 지글! 지글!
돼지갈비가 맛있게 익고 있었다.
“너 그렇게 돈이 많았냐?”
“뭐, 있을 만큼은 있지.”
“와! 진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보고 대기업 다닌다고 술값은 몽땅 나보고 내게 했던 놈이?”
나는 제일 친한 친구, 정훈이와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카르마 홀딩스에서 대우건설을 인수하였다는 소식에 연락이 온 것이다.
술 먹자고.
“흐흐흐! 이래서 사람 앞날은 모르는 거란다.”
“지랄하세요. 그래서 고작 돼지갈비를 사는 거야?”
“돼지갈비가 어때서?”
“그건 그렇지만···.”
난 돼지갈비를 사랑한다.
돈이 없을 때 돼지갈비조차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던 시절에는, 정말 지나가다 풍기는 냄새에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너희 회사 분위기는 어때?”
“당연히 쌍수를 들어서 환영하지!”
“그러냐? 그럼 다행이고.”
“선배들이 그러는데, 예전에 김호에서 인수하였을 때 트라우마가 엄청나게 컸나 보더라고. 우리 회사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 김호건설 사람들이 와서 점령군 행세를 많이 했던 것 같더라.”
“그래? 우리야 뭐, 점령군 행세할 사람들이 없으니···.”
“그러니까. 게다가 너희 회사 이미지가 우리나라에선 끝판왕급이잖아. 자금력도 빵빵하다고 소문이 났고.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지.”
“흐흐흐!”
카르마 홀딩스의 이미지는 정말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이미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작을 복지 사업부터 하였으니까.
그리고, 정화재단에서 시행하는 복지 사업은 이젠 규모가 어마어마해졌다.
사다리 센터는 이제 전국을 다 커버했다.
인천을 제외한 서울과 경기에만 다섯 군데를 열었고, 인천과 광주, 대구, 대전, 부산에도 만들어서 총 10개의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장영동 이사장님은 현재 공사 중인 곳을 포함하여 15개까지 만들면 대략 전국을 커버하는 것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영유아부터 19세까지 아이들을 수용하여 보호하는 보육원도 새로 만들거나 기존 보육원을 인수하여 총 18개를 직접 운영하고 있었고, 그밖에도 우리와 협약을 맺어 지원을 받는 보육원이 30여 개가 넘었다.
여기서 크는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아서 그렇지 최상의 환경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을 미리 개발하고 방역 물자를 사전에 준비하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로나 청정 국가로 만들었으니, 이미지가 좋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직원들이 기대도 많이 하고 있어.”
“무슨 기대? 너희 급여 수준은 건설업계에서도 좋은 편이라면서? 야, 우리가 인수했다고 급여를 막 올려 주고 그런 건 없다?”
“이 자식아! 누가 그런 걸 말하냐? 사실 주인이 없는 회사라서 겪는 설움이 좀 많았거든.”
“그래?”
“응, 은행이 소유주였는데, 그런 게 없을 리가 없지. 게다가 정권만 바뀌면 잘했든 못했든 경영진들이 싹 갈려 나가고 말이지.”
“하긴.”
“그거뿐이냐? 산업은행에서는 어떻게든 우리 회사를 팔아치우려고 혈안이 되어서, 뻑하면 시장에 내놓고는 했는데, 너도 알다시피 인수할 능력이 되는 재벌사들은 죄다 건설사를 가지고 있잖아?”
“그렇지.”
“그러니 허구한 날 대상에 오른 회사들을 보면 정말 참 기가 막혀서···.”
“대유건설 입장에서 보면 한참 아래의 건설사들일 거잖아?”
“내 말이, 그럴 때마다 직원들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는지 아냐? 이도 손에 안 잡히고 말이야. 그런데, 이젠 만세다. 흐흐흐!”
“자식아! 형님이 출세해서 너희 회사를 구원했잖냐? 찬양하거라.”
“믿습니다!”
“에이맨!”
“푸흐흐흐!”
“흐흐흐!”
사실, 대유건설은 굳이 인수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정훈이와 자주 만나면서 하도 회사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남의 회사 같지가 않았었다.
그래서 겸사겸사하여 인수한 거지.
이 정도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되었고.
“그런데, 철식아.”
“왜?”
“경영진은 전부 바꿀 거냐? 사장 말이야.”
“그건 아직 몰라. 잘하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내려온 인사라고 자를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일단은 이번에 인수한 회사 경영진에 대하여 검토가 들어갈 거야. 솔직히 살아남기는 어렵지 않을까? 왜? 너희 사장 괜찮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일개 과장 나부랭이가?”
“그래도 내부적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있을 거 아니냐?”
“임마! 아무리 너하고 나하고 친한 친구 사이라도 그걸 어떻게 말하냐? 네가 우리 회사를 인수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내가 너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데.”
“새끼가 빡빡하긴? 오너가 묻는데?”
“놀고 있네.”
“어허! 유 과장!”
“네, 회장님. 저리 꺼지세요.”
“크크큭!”
“푸흐흐흐! 술이나 쳐드세요.”
“넹···.”
건배를 하고 술잔을 비우자, 정훈이가 지나가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냥 단편적인 것만 말할 테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해.”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솔직히 너희 회사는 우리 남정원 부회장이 전적으로 알아서 할 거야. 워낙 칼같이 일하는 사람이니까, 알아서 하겠지.”
“그럼 좀 더 편하게 말하지. 직원들끼리는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 많아. 일단 현도부터 시작해서 사성과 포스코까지 거친 이 바닥의 베테랑이니까.”
“그래? 나쁘지 않네?”
“게다가 실적도 좋잖아? 영업이익도 많이 냈고. 다만, 산재가 좀 많은 것이 흠인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그 양반의 책임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면이 있지.”
“그렇군.”
“뭐 네가 알아서 할 문제지만, 친구로서 해줄 말은 딱 하나 있다.”
“뭔데?”
“회사가 오랫동안 사실상 주인이 없었다가 보니, 솔직히 말하면 방만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야.”
“그러냐? 뭐, 어차피 남 부회장이 한 번씩 손은 볼 거야. 그란데 사이즈 대유는 네가 있으니 딱이네?”
“뭐가 딱인데?”
“네가 밀정 노릇을 해주면 되잖아?”
“이 새끼가 농담이라도? 꺼져라!”
“푸하하하!”
내가 이래서 정훈이를 좋아하는 거다.
출세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놈들을 무척이나 경멸하는 성격이고, 할 말은 죽어도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불편하게 여기는 상사가 좀 있었다고 들었고.
“정훈아.”
“왜?”
“내가 편의 좀 봐줄까? 친구 좋다는 게 뭐냐? 게다가 넌데?”
“미친놈! 됐다, 자식아!”
“새끼가 앙탈은?”
이놈 반응이 이럴 줄은 알고 있었다.
정훈이는 우리 집이 폭삭 망하여 내가 동가식서가숙하고 있을 때부터 이리저리 나를 많이 도와주었고, 내가 대학에 가지 않으면서 다른 동창들과 멀어질 한결같이 나를 대한 친구다.
이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친구 좋은 것이 뭔데?
***
며칠 후, 나는 남정원 부회장과 인수된 회사들을 라운딩하였다.
첫 번째로 간 곳이 바로 대유건설.
을지로 사옥에 도착하니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입구에 나와서 도열해 있었다.
다른 건설사에서 인수하였으면 어차피 잘린다고 생각하여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겠지만, 우리 카르마가 인수하여 희망이 생긴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김수형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현재 김수형 대표와 함께 각자 대표를 맡고 있는 정호선입니다.”
“네, 저는 잘 아실 것이고, 이분은 우리 카르마 홀딩스의 모회사인 미국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회장님이신 강철식 회장님이십니다!”
“아!”
“소문의 그분?”
남정원 부회장이 나를 소개하자, 대표와 임원들이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하! 네, 맞습니다. 제가 소문의 그 사람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방문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후 올라가서 환담을 했는데, 솔직히 남 부회장이 다 나서서 진행했고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내가 이쪽으로 아는 것도 없었고.
“회장님,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저요?”
간단하게 업무 이야기를 마친 남 부회장이 나보고 한마디 하라고 했다.
“네, 강철식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 계신 남 부회장님이 다 하셨으니, 제가 특별히 덧붙일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몇 가지 원칙만 명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네, 회장님.”
“대유건설은 건설사 특성상 산재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지요?”
“그, 그게···. 네, 맞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산재, 정말 없어야 합니다. 공사가 느려지고 손해를 봐도 좋습니다. 산재는 무조건 없어야 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전히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있어서는 안 될 산재가 발생하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네! 회장님!”
“그리고, 불법적인 거래도 안 됩니다. 건설이 이상하게 불법 하도급이나, 아니면 부정한 금전 거래나 뇌물 수수 등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우리 카르마가 회사의 주인이 된 이상, 어떠한 불법적인 행위도 금지합니다.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마세요. 수주? 그거 못 받아도 좋습니다. 깡패 같은 놈들에게 돈도 주지 마세요. 정치인도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일단은 이런 원칙들만 잘 지켜주시면,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에 어기면! 내가 회사를 폐업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겁니다. 저를 다른 재벌들과 같은 사람으로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저, 이 정도 회사는 없어져도 그냥 재수가 좀 없는 것으로 치부하면 그만입니다.”
“······.”
“······.”
연 매출 8조 내외의 대형 건설사다.
지금은 5위에서 6위로 밀렸지만, 한때는 1위의 건설사였고.
그런 회사를 마치 날려도 좋은 회사처럼 말하자, 장내에는 침묵이 흘렀다.
경고를 했으니, 이젠 당근도 제시해야지?
“하지만, 잘하시면 잘한 만큼 대우를 확실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남 부회장님!”
“네, 회장님.”
“우리 대유건설의 임직원 대우가 어떤 편입니까?”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업계에서는 상위권입니다.”
“나쁘지 않은 정도로 되겠습니까? 최고로 대우하세요.”
“알겠습니다.”
“우와와아와!”
짝! 짝! 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여간 잘하시라고요.
대우는 제대로 해드릴 것이니까.
“그럼, 회사 구경이나 좀 했으면 싶은데요?”
“아!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아니 대표님이 직접 하실 것까지야···.”
“아닙니다. 제가 하게 해주시지요.”
“그러시다면야···.”
대표가 앞장을 서서 사무실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뭐, 사무실이 사무실이지.
여기에 무슨 중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혹시나 하는데, 역시나였다.
복도 맞은편에서 한 무리의 직원들이 오고 있었는데, 그중의 한 명이 정훈이였다.
멀리서 나를 보고 흠칫하는 정훈이.
하지만, 옆에 부장급 정도 되는 사람과 있어선지 도망도 가지 못하였다.
이윽고, 서로 엇갈려 지나가는데 당연히 상대방들이 고개를 숙이면서 벽 쪽으로 붙었다.
정훈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내가 이렇게 그냥 지나갈 줄 아나 보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오! 정훈아!”
이름을 부르는데 정훈이가 인상을 쓰면서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려는 것 같았다.
아쭈?
“야! 유정훈! 어딜 도망가?”
정훈이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