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크게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느닷없는 나의 기름 타령에, 존은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우리 카르마는 기본적으로 잘 투자하지 않는 시장이었으니까.
중단기 자금 운용팀에서 석유나 가스 회사 등에 일부 투자하여 짭짤하게 재미를 보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전체 투자 규모의 정말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천연가스와 기름값이 폭등할 것 같다고 하면서 난리를 쳐대니 존이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보스?”
“말 그대로예요. 전적으로 나의 예상이기는 하지만, 국제적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할 것 같단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IT 등의 첨단주 위주로 투자를 했다지만, 폭등할 것이 예상되는데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존은 너무나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충분히 이해한다.
“존, 내가 언제 허튼소리 하는 것 봤어요?”
“당연히 그런 적은 없으십니다. 보스는 언제나 옳았지요.”
“그럼 이번에도 내 말을 믿고 따라주세요. 우리에게는 테슬라 못지않은 큰 기회가 될 겁니다.”
“확실한 겁니까? 원유나 천연가스의 가격은 지금도 많이 오른 상태입니다. 특히 천연가스는 지난겨울의 한파로 유럽이 엄청나게 고생해서 혈안이 되어 천연가스를 확보하는 중이고, 거기에 중국까지 가세하여 많이 올랐거든요.”
“확실합니다. 지금 많이 올랐다고요? 그런 것에 의미를 두지 말아요. 지금 가격에서 엄청나게 더 오를 겁니다.”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다.
거기에 우크라이나는 예상을 깨고 선전하여 전쟁은 장기화할 것이고.
이 말은 국제 천연가스 시장이 아수라장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오른 가스 가격?
이건 헐값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어젯밤 꿈에서 깨어 인터넷으로 알아본 유럽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2020년 기준 유로스타트 자료에 의하면, EU 27개국의 평균적인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무려 40.8%란다.
특히 유럽 최강의 경제 대국 독일의 의존도 경악할 수준이었는데, 무려 60%가 넘었다.
아니 메르켈 아줌마 미친 것 아니야?
어떻게 한 나라의 에너지를 제대로 민주화되지도 않은 러시아 같은 나라에 전적이라고 표현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의존할 수가 있냐고?
이쯤이면 동유럽 출신의 메르켈 총리가 러시아의 간첩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독일은, 그리고 유럽은 적어도 2014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침공하여 꿀꺽했을 때는 러시아를 경계하여야 했다.
그 이전에야 냉전이 끝나고 워낙 훈풍이 불었으니 넘어간다고 쳐도 말이다.
게다가, 크림반도 침공으로 경제 제재는 제재대로 하면서 제재 대상국으로부터 가스를 의존하다니?
이건 정말 미쳤다고 표현할 일이지.
미국이 그렇게나 경고하고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여간 염주께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이번에는 제대로 침공한다고 했다.
염주의 말씀은 언제나 옳다.
게다가 전쟁이 누구나 생각하는 결론으로 끝나지 않고 우크라이나가 선전하여 장기화한다고 했다.
러시아다, 러시아.
한때 전 세계를 미국과 양분하여 대립했던 나라.
냉전 시절의 소련보다는 많이 약해졌지만, 지금도 세계 2위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나라.
그런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가 선전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밤새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알아보니, 우크라이나가 선전할 것이라는 염주의 예언은 의외로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의 전직 대통령의 노력이 있었는데, 이 전직 대통령의 상황이 골때렸다.
로센이라는 세계적인 초콜릿 브랜드를 소유한 사업가 출신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무력하게 내주고 러시아의 사주를 받은 분리주의자들이 일으킨 내전 돈바스 전쟁을 제압하지 못하고 우크라이나를 내내 시달리게 만든 이유가 따로 있었다.
포로셴코의 전임 대통령인 친러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재임하면서, 가뜩이나 열악했던 우크라이나군을 아주 거덜 내버렸다.
마치 우크라이나 전체를 러시아에 가져다 바치려는 듯이.
결국, 야누코비치가 탄핵당하여 파면되고 난 후 대통령에 당선된 포로셴코는 정말 열정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재건했다.
러시아식의 전술과 교리를 모두 버리고 나토와 협력하여 서방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무기도 엄청나게 수입했더라고.
이렇게 국방에 헌신적인 포로셴코.
웃기는 것은 이러면서도 해 먹을 것은 다 해 먹었다는 거다.
대통령으로서 일은 제대로 하면서도 자기 몫은 알뜰히 챙겼으니,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지금은 국외로 도망자로 사는 신세지만.
어쨌든 이렇게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지나가는 놈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답은 뻔하잖아?
유럽 제국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은 끊어질 것이다.
당연히 에너지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고.
남의 나라 비극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는 것은 좀 미안하지만, 어차피 내가 가져가지 않으면 다른 놈이 먹을 거다.
내가 왜 그 꼴을 보냐고.
그리고, 염주가 단순히 돈을 벌라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다고 알려주지는 않았을 터.
돈을 벌어서 무엇인가를 하라는 뜻이겠지.
전쟁 자체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막대한 돈을 벌면 그것으로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보스.”
“말해요, 존.”
“에너지 가격이 지금보다도 더 훨씬 폭등할 것이라는 정보는 어떻게 얻으신 겁니까? 어제까지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잖습니까?”
“저번에도 말했지만, 말할 수 없는 곳에서 따로 연락이 있었어요. 내 예감이기도 하고요.”
“뭐라고 말입니까?”
뭐라고는 뭐가 뭐라고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한판 붙으니까, 돈 벌 준비를 하라는 염주의 계시지.
이걸 그대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비슷하게라도 말해주어야지.
“이건 정말 대외비입니다. 존 혼자서만 알고 있어요.”
“네, 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계획이라는 정보가 있었어요.”
“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요?”
“네, 맞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설마 그럴 리가요? 냉전이 끝이 난지 한참 지났는데요?”
“내가 항상 말하잖아요? 설마가 사람을 잡는 법이라고.”
“······.”
늘 말하지만,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그리고 그 설마가 실현되었을 때가 투자의 적기고.
“전쟁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흐음, 이거 참. 지금도 사실 실제로는 전쟁 중인 상태는 맞는데, 보스의 말씀은 러시아가 작심하고 제대로 침공한다는 말씀이잖습니까?”
“네, 아주 제대로 침공할 겁니다.”
“일단 보스의 말씀이 맞는다고 가정해 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아마도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 텐데요? 그렇게 되면 에너지 가격이 잠시 출렁하더라도 폭등까지는 가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러시아는 지금도 경제 제재를 받는 중이니까요.”
“우크라이나는 강합니다.”
“네? 우크라이나가 강하다니요?”
“크림반도를 러시아에게 빼앗긴 이후에, 굉장히 절치부심했어요.”
“아니 그래도···.”
이게 상식이지.
하지만 상식은 깨지라고 있는 거다.
“존!”
“네, 보스.”
“내 말을 믿어주세요. 지금까지 내가 실망하게 한 적은 없잖아요?”
“흐음, 알겠습니다! 제가 좀 주제넘었던 것 같습니다. 큰 줄기는 보스가! 그리고 디테일은 제가 책임져서 이렇게 큰 성공을 이뤘는데 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전적으로 보스를 믿겠습니다! 하하하!”
이래서 존이 좋았다.
내가 말하는 것이라면 검은 것을 희다고 하여도 믿을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 설득하지도 못할 것이고, 설득한다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하하하! 고마워요, 존.”
“무슨 말씀을. 자! 이제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전쟁은 분명히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난 후에 벌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푸틴 놈이 습근평이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함일 것이고.
중국을 종신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습근평이의 치적이 필요한 시기가 내년이다.
그의 3연임이 결정되니까.
그렇다면 푸틴으로서도 습근평이의 치적 중의 하나가 될 베이징 동계 올림픽 기간 동안에 전쟁을 저지르는 짓은 못 한다.
시기는 명백하다.
2020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난 후일 것이다.
“내 정보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내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난 직후일 확률이 높다고 했어요.”
“호오, 그럴듯한데요? 아직 징후가 보인다는 뉴스는 없으니, 올해는 이미 늦었고, 하면 내년일 텐데 1월과 2월 너무 춥고 올림픽 기간과도 겹치니까요.”
“그러니까요. 하여간 올해부터 계속 오르다가 올해 말 정도부터는 전운이 감돌 겁니다. 대규모 전쟁 준비가 미국의 눈을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위성으로 무조건 걸릴 테니까요. 그러면 2월 말이나 3월 초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여 계획을 잡으면 되겠군요. 투자 규모는 어느 정도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지금 가용 가능한 자금이 얼마나 되지요?”
“으음, 단기 운용자금하고 중단기 투자금에서 어정쩡한 포지션을 모두 정리한다면 700억 달러 정도는 나올 겁니다.”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면요?”
“다시 대출도 받으시게요?”
“이왕 먹는 거, 크게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번에 제대로 먹는 거다.
항상 꼬왔던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재산 따위는 쩌리로 보일 정도로 말이다.
빈 살만, 기다려라.
네놈 재산 따위는 푼돈으로 만들어 주마.
“하하하! 맞습니다! 이왕 지르는 거 크게 질러야지요. 그게 우리의 방식이었고요.”
“흐흐흐! 이참에 우리 전 세계 돈이란 돈은 전부 쓸어 담아 보자고요.”
“그러시다면, 대출은 대략 3,000억 달러 정도는 받아 낼 수 있을 겁니다. 모든 루트를 동원한다면 말이지요. 그 정도면 현재 우리 총자산의 절반 정도를 투자하는 겁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대출 3,000억 달러에 우리 보유 자금 700억 달러, 합치면 3,700억 달러란 말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냥 4,000억 달러로 생각하시지요. 보기 좋고 듣기 좋게 말입니다.”
“네, 그러면 일단 4,000억 달러를 투자하는 것으로 하지요. 그런데 투자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이쪽은 내가 문외한이라서요.”
“하하하! 문외한이시다면서 4,000억 달러를 막 투자하시는 겁니까?”
“에이, 놀리지 말고요.”
“에너지 투자는 정말 복잡하고 여러 가지 투자 방법이 있습니다. 에너지 기업에 직접 투자 하는 방법도 있고 선물 시장도 엄청나게 발달했으니까요. 며칠간 시간을 주시면 제대로 계획을 잡아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아, 사람은요?”
“이쪽으로 전문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알던 사람들인데, 이런 큰판이라면 무조건 달려올 겁니다. 새로 팀을 짜는 것도 같이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지요.”
“네, 보스.”
존이 대답하고 나가려는 것을 내가 다시 불러 세웠다.
“존.”
“네, 보스.”
“고마워요. 항상 나를 믿고 따라주어서요.”
“제가 더 고맙지요. 항상 저를 믿고 모든 것을 솔직히 말씀해 주시니까요.”
“하하하!”
“하하하!”
모든 것을 다 말해 준 것은 아니다.
염주에 관해서는 절대로 말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말해주었다.
그만큼 나는 존을 믿으니까.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