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회장님이라 불러.
이걸 펍(PUB)이라고 해야 하나 바(BAR)라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미국이니까 바가 맞겠지.
하여간 술집인데, 이든이 말한 것처럼 보통 대학생 애들이 가는 곳보다는 약간 분위기도 밝고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이든의 말처럼 어린 애들보다는 확실히 그 위 연배의 젊은 남녀들이 득실거렸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꽤 보였는데, 대부분 차림새가 세련되었다.
나름 잘나가는 고소득 화이트칼라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말이다.
이런 거 저런 거 떠나서, 미녀들이 많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톰 형과 제리의 파티에 초대받으면서 숱한 미녀들을 봤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할리우드의 여자들이다.
화려하지만 욕망을 가진.
몇 번 만나봤지만 오래 만나고 싶은 여자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는 전부 일반인들이다.
아무래도 미모로 따지면 확실히 처지지만, 그래도 할리우드 미녀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한 생기가 느껴졌다.
파티에서 몇 번 만나서 친분이 생긴 맷 데이먼이 왜 그 많은 할리우드의 미녀들을 외면하고 촬영장 인근의 바에서 만난 애까지 딸린 이혼녀와 결혼하였는지 알 것 같았다.
이든과 바에 자리를 잡고 간단하게 위스키 스트레이트를 주문하였다.
“어때요? 알렉스?”
“좋아! 아주 좋아!”
“하하하! 그럼 천천히 즐기세요. 지금 알렉스는 너무 긴장한 것이 티가 납니다.”
“그래?”
“네, 그래서는 이야기가 안 될 거에요. 일단 마시지요.”
“그래, 마시자고!”
알콜이 들어가면 긴장이 좀 풀릴 터였다.
“캬오!”
“크···.”
그렇게 연달아 위스키 석 잔을 들이켜자, 확실히 몸이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이든이 말을 걸었다.
“알렉스, 저기 어때요?”
“응? 어디?”
“저기 바 끝쪽에 두 명이요.”
“오오오!”
이든이 가리킨 곳에는 갈색과 금발 머리의 미녀 두 명이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톰 형이나 제리의 파티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의 미녀들인데, 특히나 금발 미녀는 정말 이뻤다.
“좋아!”
“흐흐흐! 그러면 제가 가서 한번 작업해 보겠습니다.”
“그래그래, 꼭 성공해야 해.”
“당연하지요? 제가 이런 쪽으로는 선수 아닙니까?”
“흐흐흐! 믿어! 믿습니다!”
“그런데,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십니까?”
“난 금발!”
“역시! 보시는 눈이 있으시군요?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든은 경호원보다는 헌팅쪽이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이든은 씩씩하게 일어나 언니들 쪽으로 가더니 뭐라 뭐라 하였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기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뭐가 웃긴지 셋이서 한참을 웃었다.
뭐지?
설마 내 뒷담화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돌연 이든 혼자서만 자리로 돌아왔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유감입니다만, 남자 친구가 있다고 하네요.”
“이런 제길!”
“진정하세요, 알렉스. 시간은 많고 여자들도 많습니다. 원래 이런 곳에서는 몇 번 계속 찔러 보는 겁니다.”
“아,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이든은 사냥감을 노리는 늑대처럼 여기저기 계속 찔러댔다.
“뭐야? 이번에는?”
“그냥 싫다는데요?”
“쟤들은?”
“레즈랍니다.”
“······.”
시간이 흘러갔다.
웃기는 것은 레즈라고 했던 애들도 다른 놈팡이들이 오니까 잘만 떠들고 놀다가 짝을 지어서 나가는 거였다.
무슨 레즈가 저래?
어느새 시간은 밤 11시가 넘었고, 바 내부도 슬슬 한산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언니들도 거의 다 빠지고 수컷들 몇몇만 남은 상태.
“이든아.”
“네, 알렉스.”
“회장님이라 불러.”
“네, 회장님.”
“너 마지막으로 여자 꼬셔본 적이 언제냐?”
“조금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조금이 언제냐고.”
“2년 전···.”
“······.”
이런 제기랄!
이 자식은 선수가 아니라 그냥 허우대만 멀쩡한 놈이잖아?
“이든.”
“네.”
“너 어디 가서 한 번만 더 선수라고 하면, 내가 사람 사서 저격해 버릴 거다.”
“······.”
“가자.”
“네.”
이든을 데리고 가끔 제프리와 해장하러 가는 코리아타운의 순대국밥 집으로 갔다.
소주를 글라스에 따라 마시면서 이든에게 물었다.
“너 여자들 만나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냐?”
“그냥, 군대 이야기도 해주고···.”
“이런 미친···.”
아예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해주지 그러냐?
내가 이런 놈을 믿고서 뭘 해보려 했다니.
내가 미친놈이었다.
“마셔라.”
“네···.”
결국, 그렇게 순대국밥집에서 소주 여섯 병을 까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 팔자에 여자는 무슨.
잠이나 자자.
***
“푸하하하!”
“웃지 마시라니깐?”
“크하하하!”
“에이, 진짜···.”
다음 날, 제프리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더니 아주 그냥 뒤로 쓰러졌다.
“야! 알렉스!”
“아, 왜요?”
“임마! 여자 만나는 것을 왜 애들을 시키냐? 넌 거기서부터 잘못되었어.”
“아니 아무래도 내가 여기 문화를 잘 모르니까···. 거기다가 내가 영어가 익숙하다지만 젊은 애들 쓰는 말은 잘 모르잖아요?”
내가 자신감이 떨어지는 이유 중의 가장 큰 것이 언어 문제다.
벌써 미국에 6년이나 있다 보니 일상적이거나 비즈니스 영어는 자신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젊은 애들하고 말하려면 그들이 쓰는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지랄한다. 임마, 의사소통만 되면 되는 것이지, 그게 뭐가 중요해?”
“그럼 안 중요해요?”
“잘하면 좋겠지만, 너같이 서른 넘어서 미국에 오면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어. 여기 교포들이 항상 하는 말인데, 영어로 꿈을 꾸기까지 보통 20년은 넘게 걸린다고. 그래도 어색하다고 하고 말이야.”
“젠장, 그럼 어쩌라고?”
“너 정도 영어면 훌륭한 거야. 의사소통하는 것에 전혀 지장 없잖아? 내가 장담하는데, 그냥 네가 직접 부딪혔으면 훨씬 좋은 결과가 있었을 거다. 모르냐? 용감한 자만이 미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소리를 듣다니.
“다음에 시간이 나면 혼자서라도 가끔씩 거기 들러서 분위기도 익히고, 거기 젊은 애들하고 대화도 하고 그래. 그 경호원이 하나는 맞았어. 거기 나도 아는 곳인데, 꽤나 핫한 집이야.”
“그래요?”
“응,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분전환도 할 겸, 혹시 쓸만한 직원이 없을까 해서 가끔씩 나도 갔던 집이야. 굴드 법학 전문대학원 애들이 많이 오거든.”
“거기가 그 정도로 명문이에요?”
“남 캘리포니아에서는 UCLA 로스쿨과 양분하는 학교야. 그런데, UCLA는 아무래도 공공법 쪽으로 강하고, 굴드는 경제 관련법에 강하기 때문에 우리 같은 로펌에서는 굴드 출신을 선호하지.”
“아···.”
“하여간 거기 괜찮은 애들이 많이 와. 사립이다 보니 집안이 좋은 애들도 많고 말이야. 로이 말처럼 넌 좀 젊은 애들하고도 어울릴 필요가 있어. 만날 나 같은 꼰대나 거대 기업체 수장들하고만 만나니, 젊은 여자를 대체 어떻게 만나겠냐?”
“그러네···.”
“넌 상황이 그러다 보니 말투 자체가 완전히 비즈니스 영어 반에 상류층 영어가 반이야. 그러다가 너 미국에서는 여자 만나기 힘들걸?”
“······.”
세상에 쉬운 것은 없었다.
에이, 모르겠다.
제프리 말처럼 가끔 바에 가서 편하게 어울리다가 되면 되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거지.
미국 여자와 인연이 없으면 한국 여자를 만나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그런데, 다음 날.
속 편하게 여자 생각이나 하던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미얀마 태권 소녀라는 부제와 함께 웹사이트에 뜬 기사 하나.
미얀마의 19세 소녀가 시위에 나섰다가 머리에 총에 맞아 죽었단다.
그 소녀는 ‘다 잘 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 한국을 좋아하여 태권도를 배우고 있었다면서 태권도복을 입은 사진도 같이 올라왔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아이, 내가 본 아이다.
꿈을 꾸던 날 꿈속에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꼭 염주의 지시가 아니래도 행동해야 할 것 같았기에.
- 여보세요?
“아버지, 저예요.”
- 어, 철식아. 웬일이냐?
“다른 것이 아니라, 혹시 미얀마 관련한 뉴스 보셨어요?”
- 응? 미얀마? 관심이 있어서 보고는 있는데···. 너 혹시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야? 여자애가 총을 맞아 죽었다고 하던데?
“예, 나도 우연히 봤는데, 그냥 가만히 있기가 그러네요.”
- 녀석, 그래 나도 속에서 천불이 나더라. 예전에 우리나라 생각이 나서 더 그랬고.
아버지는 80년대에 이십 대를 온전히 보낸 분이다.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화한 것이고.
“우리가 좀 움직였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나셔주셨으면 좋겠고.”
- 글쎄다, 워낙 큰일이라서···. 하여간 알았다. 내가 그쪽을 잘 아는 사람을 알아보고 전화를 하든지 화상을 연결하든지 할게.
“네, 부탁 좀 드려요.”
아버지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움직이신 것 같았다.
통화하고 난 지 여섯 시간이 채 안 되어서 화상 연결이 되었는데, 화상에는 아버지 말고도 처음 보는 중년인이 같이하고 있었다.
“나다.”
“네, 아버지. 생각보다 빨리 연락하셨네요?”
“응, 이런 일이야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옆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
“우리나라에서는 미얀마에 대하여 잘 알고, 직접 움직이는 분이다.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장봉호 공동대표님이야. 인사해라.”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미얀만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장봉호라고 합니다.”
“네, 이야기 들으셨겠지만 저는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강철식입니다.”
“오면서 말씀 들었습니다. 정화 복지 재단을 운영하는 카르마 홀딩스의 모회사 회장님이라고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
장봉호 대표는 이렇게 물으면서도 얼굴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어느 정도 말한 모양이지.
“오늘 미얀마의 치알 신이라는 소녀의 기사를 봤습니다.”
“아! 그걸 보셨군요?”
“네, 봤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 그래서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어서 옆에 계신 정화재단 사무총장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 대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카르마 인베스트먼트가 한국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화재단을 운영하고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미리 만들어 환란에 대비한 카르마 홀딩스의 미국 모회사가 있다는 정도는 웬만한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회사의 회장이 도와준다고 하는 것이다.
아마 속으로는 만세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장 대표님, 미얀마를 잘 아시는 분으로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미얀마 현재 시위가 가망이 있는 겁니까? 그러니까 시위로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냐는 말이지요.”
“흐음,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네?”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 국민 전부가 시위에 참여하더라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요?”
“네, 그놈들은 일종의 지배 민족이라고 보셔야 합니다. 국민의 저항으로 민주주의를 찾은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들하고는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미얀마 군부는 자자손손 일반 국민을 핍박하면서 잘 먹고 잘살 겁니다.”
“그럼 장 대표님은 왜 미얀마를 돕는 것이지요? 가망이 없다면서요?”
“제 말은 평화적인 시위로는 가망이 없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미얀마 국민 10만이나 100만을 죽여서라도 권력을 붙잡고 있을 놈들이니까요.”
“평화적인 시위로 가망이 없다는 말씀은···.”
다음 말을 꺼내기가 무섭다.
“네, 방법은 오직 하나! 시민들이 무장하여 그놈들을 내쫓는 것뿐입니다!”
“······.”
결국은 무서운 말이 장 대표의 입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