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또 뭡니까?
“저가 수주 물량이 대체 언제 빠지는 겁니까?”
“올해 2분기까지는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쯧!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어떻게 제 살을 깎아 먹을 생각을 했는지….”
“송구합니다.”
“이건 최 사장님이 송구해야 할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제가 대표이사인 이상 송구한 겁니다.”
“…….”
4월 6일.
나는 지금 거제의 대유조선에 와서 얼마 전에 새로 대표이사로 취임한 최진만 사장으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있었다.
“저가 수주의 문제는 빅3 삼사가 공통적으로 겪었던 문제입니다만, LNG선의 선복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우리나라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어 조만간 이익을 낼 수 있을 겁니다.”
“LNG선은 제값을 받습니까?”
“네, 가스 자체의 수요가 급증하는 것이 큰 요인입니다. 친환경 규제로 각국의 가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무엇보다 2018년을 기점으로 중국과 일본의 수요가 글자 그대로 폭발하였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가스 수요가 늘어났고, 중국 역시 이제는 먹고살 만해지니까 환경에 눈을 돌리는 이유가 큽니다. 게다가, 작년에 유럽 등지의 혹한으로 가스 수요 자체가 늘기도 하였고요.”
“그럼 LNG선의 가격도 많이 올랐겠네요?”
“네, 현재 최신 선형인 174K급 기준으로 척당 1억 9,000만 달러 정도 하는데, 신조가가 가파르게 상승하여 몇 달 이내로는 2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아마도 내년이면 난리가 날 것이다.
앞으로 러시아에서 가스를 사들이지는 못할 것이니까.
“중국 조선소로 물량이 갈 확률이 있지 않을까요?”
“하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시지요. 적어도 LNG선에 한해서는 중국이 우릴 따라오려면 멀었습니다. 특히나 2018년에 글래드스턴 호 사건 이후로는, 중국 조선소는 중국에서 발주하는 물량 이외에는 거의 신규 발주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래드스턴 호 사건? 그게 뭡니까?”
“아! 해외에 계시니 잘 모르시겠군요. 중국의 후둥중화조선에서 건조한 LNG선인데, 건조한 지 2년도 되지 않아서 호주 인근 해역에서 서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 일은 저도 들었습니다. 도저히 고칠 수 없어서 아예 폐선했다지요?”
“하하하! 그렇군요!”
“으하하하!”
남정원 부회장의 말에 우리는 국뽕에 흠뻑 취해서 마음껏 웃어 주었다.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부회장님.”
“엥? 사실이 아니라니요?”
“뱃값이 얼마짜린데 고장이 났다고 막 폐선하겠습니까? 폐선했다는 것은 일부 국뽕주의자들이 퍼트린 루머고요, 지금은 고쳐서 운항하고 있습니다.”
“…….”
“…….”
에이, 이 양반이 뭘 그리 예리하게 지적질이냐?
말한 사람 민망하게 말이다.
“그, 그렇군요. 내가 잘 몰랐습니다.”
“국뽕도 적당히 해야지, 지나친 국뽕은 몹시 해롭습니다.”
“거 알았다니까 그러시네요?”
“…….”
결국은 남정원 부회장이 신경질적으로 말한 다음에야 최진만 사장은 입을 다물었다.
적당히 합시다, 적당히.
강직한 것도 좋지만, 이런 것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좋잖아.
“어흠, 하여간 글래드스턴인가 뭔가가 서버린 이후로는 중국의 조선소가 신뢰를 잃었다는 말씀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후로는 좀 비싸도 우리 한국의 조선소에 발주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거 좋은 일이네요.”
“네, 맞습니다.”
“그럼 우리 대유조선은 시장 점유율이 어느 정도입니까?”
“현도가 100이라면, 우리와 사성이 각각 60에서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흐음, 현도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까?”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중단기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워낙 기술력도 좋고, 수직 계열화가 잘 되어있어서요.”
“만약에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부터 LNG선 발주가 지금보다 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면 감당이 됩니까?”
“선박은 한꺼번에 물량이 밀리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도크 문제도 있고, 인력 문제도 있으니까요.”
“음….”
이래서는 좀 곤란한데?
내년이 되면 LNG선의 발주가 폭주할 텐데 말이다.
“미리 발주한다면 어때요?”
“네? 미리요?”
“네, 표준 LNG선으로 미리 준비해 놓고 만들기 시작하면 어떠냐는 말입니다.”
“어, 그런 일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만들어 놓고 팔리지 않으면 그걸 대체 누가 책임을 집니까?”
물론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렇게 하세요.”
“예에? 대체 이게 무슨 말씀이신지?”
최진만 사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남정원 부회장을 쳐다보았다.
마치 구해달라는 표정으로.
그리고, 그런 최 사장의 시선을 외면한 남 부회장은 오히려 나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최 사장님.”
“네, 부회장님.”
“우리 카르마 홀딩스에서 발주하는 것으로 하면 되잖습니까?”
“그렇다면야 저희야 좋지만….”
카르마 홀딩스에서 발주하면 손실이 나도 카르마 홀딩스의 손실이 되지, 대유조선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대체 얼마나 발주하시려는 겁니까?”
“50척!”
“으억!”
“…….”
최 사장은 비명을 질렀고, 남 부회장마저도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왜들 그래요?”
“회장님, 그건 제가 생각해도 좀 과하신 것 같은데요.”
이제는 남 부회장까지도 조심스럽게 나를 만류했다.
“전혀 과하지 않습니다. 나도 생각이 있고, 따로 정보가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내 말대로 해주세요.”
“저기 부회장님….”
“에휴! 또 시작이신 건가?”
“예?”
“아닙니다. 최 사장님, 회장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행하세요. 바로 카르마 홀딩스에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아니 어쩌시려고요?”
“최진만 사장님!”
“네, 부회장님.”
“대유조선에는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을 겁니다. 설사, 그 배들이 전부 안 팔려서 동해 바다 위에 띄워 놓는 한이 있어도 말입니다. 지시대로 하세요!”
이건 나보고 하는 소리 같았는데, 아마도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50척은 우리 대유조선이 소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주 장기적으로 기한을 주시면 모를까요.”
“시간은 그리 많이 드릴 수 없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하아! 그건 정말 불가능합니다, 회장님. 이런 종류의 첨단 대형 선박은 보통 최적의 상황에 건조 의향을 넘어도 인도하기까지 3년은 걸립니다.”
“무슨 방법이 없습니까?”
“도크와 사람을 무제한으로 갈아 넣으면 됩니다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습니까?”
“불가능할 것은 또 뭡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세요. 지원은 무제한으로 해드리겠습니다.”
돈질이다, 돈질.
돈질 앞에서는 불가능이란 것은 없다.
“그럼 선가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모회사가 발주하는 것이라 좀 애매한데요?”
“그런 것은 생각하지 마세요. 앞으로 대유조선은 제값을 받지 못하면 일하지 마세요. 지금 표준적으로 1억 9,000만 달러라고 했지요?”
“네, 그렇습니다. 올해 안으로 척당 2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요.”
“그럼 2억 달러로 계산하여 50척이면, 100억 달러면 되겠네요?”
“그, 그렇습니다.”
100억 달러?
이젠 내게는 푼돈이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남 부회장님.”
“네, 회장님.”
“바로 사람들 불러서 계약하고 돈 주세요.”
“알겠습니다.”
“크허헉! 100! 100억 달러!”
“100억 달러라고 해봤자, 내가 미국에서 며칠이면 버는 돈입니다.”
“…….”
“…….”
최진만 사장은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해드리면 가능하겠습니까?”
“선금은 얼마나 주시겠습니까?”
“50% 먼저 드리면 됩니까?”
“최고지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렇다면…. 잠시만요.”
최진만 사장은 스톱을 요청한 다음에 무엇인가를 맹렬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말 잘해야 할 거다.
이렇게까지 밀어주는데 소화를 못 한다고 하면 내가 실망할 것이니까.
한 5분 정도 흘렀을까?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해내겠습니다!”
“방법을 말해 보세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하셨지요?”
“불법만 아니면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가능합니다. 일부 물량은 현도와 사성에도 하청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전혀 상관없어요.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찍어만 주세요.”
“좋습니다! 그리고, 도크를 추가로 확보하겠습니다.”
“응? 어떻게요?”
내가 조선을 잘 모르지만, 도크란 것이 어느 날 뚝딱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놀고 있는 조선소가 몇 개 있습니다.”
“놀고 있다니요?”
“대표적으로 현도의 군산 조선소가 있지요. 조선업 불황으로 2017년 7월에 가동을 중지하고 5,000명의 인력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아….”
“현도에게 물량 배분을 미끼로 해서 그 군산 조선소를 인수하겠습니다.”
그래서 선금 이야기를 꺼낸 것이구나.
망한 조선소라 많이는 아니더라도 인수할 자금이 필요하니까.
“좋습니다!”
“그밖에도 길고 험난하였던 조선업 불황 시기에 폐업을 하였거나, 폐업 위기에 있는 중견 조선소 몇 곳이 있습니다. 그곳도 모두 인수하겠습니다.”
“호오!”
“잠깐! 다 좋은데, 우리가 만드는 선박이 LNG선이라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니지요? LNG선이라는 것이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아는데요?”
남정원 부회장의 복수가 시작된 것 같았다.
듣고 보니 나도 의문이고.
“인수한 조선소에서는 우리가 기존에 받은 컨테이너선 등의 일반 선박 일감을 돌려주면 됩니다. 대신에 우리 대유조선은 LNG에만 전념하고요.”
“오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네, 그렇게 하거나 아예 불럭 단위만 만들게 하고 최종 건조는 우리가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중국에서 블록을 만들어 수입하는 조선소도 있었는데요?”
“좋습니다!”
“…….”
남정의 부회장의 회심의 일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다만 중국에는 블록이라도 절대로 물량을 주면 안 됩니다?”
“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럼 그렇게만 해주세요. 정확한 인도 시기는 산출하여 나중에 보고하시고요. 제대로 된 품질의 LNG선이 계획대로 나온다면 보너스도 따로 지급하겠습니다.”
“오오오! 훌륭하십니다!”
돈이 훌륭하다는 말 같았다.
물론 돈은 훌륭하다.
그렇게 회의를 마무리 지으려다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생각이 났다.
“잠깐만요, 최 사장님.”
“네, 회장님.”
“혹시 러시아가 발주한 물량이 많습니까?”
“네, 제법 됩니다.”
“얼마나 됩니까?”
“빅3 삼사 전체로 보면 약 80억 달러 정도 됩니다.”
“그렇게나 많아요?”
“러시아가 10여 년 전부터 북극항로 개척 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습니다. 대부분 북극해라는 특수한 환경에 맞추어 주문되었고요.”
“우리는 얼마나 됩니까?”
“약 25억 달러 정도입니다. 사성이 50억 달러로 제일 많습니다. 현도는 미미하여 5억 달러 정도고요.”
“그거 최대한 빨리 정리하세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좀 손해를 보더라도 잔금을 회수할 방법을 강구하라는 말입니다. 인도할 배는 최대한 우선순위로 서둘러서 먼저 만들어 끝내 버리고요.”
“이유를….”
“이유는 말씀 못 드립니다. 하여간 내년 초 이후로는 돈을 못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만 알고 계세요. 물론 이건 사장님만 알고 계시고요.”
“…….”
“정 안되면 내가 미국에서 사람을 붙여 줄 테니까, 건조 대금을 채권화해서 팔아도 좋습니다.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말입니다.”
“휴우! 정말 모르겠군요. 하여간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네, 나가 보세요.”
“알겠습니다.”
최진만 사장이 나가자, 역시나 남정원 부회장이 눈에 불을 켜고 내게 달려들었다.
“또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