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밥이나 먹읍시다.
정말 사람이 모자란다.
내가 군 복무를 하던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비록 베이비 붐 세대가 끝났던 시절이지만, 징집 인원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 출산율이 거의 경이적이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꼬라박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지금이야 그나마 어떻게든 꾸려나간다지만, 가까운 미래는 캄캄할 정도인 것이다.
2020년 기준 현역처분율이 82%로라고 한다.
심지어 2013년에는 91%까지 치솟은 적이 있었고.
이게 엽기적인 것이 여기다가 공익 등의 보충역을 합치면 그냥 90%대로 뚫고 올라간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사지 붙어 있고, 눈코입이 정상이면 죄다 현역이라는 말이다.
이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냐면, 이렇게 되면 결국 현역에 부적합한 자원들에까지 총을 쥐여주는 것이다.
이러니 군대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
문제는 장군들이나 정책 담당자들이 죄다 베이비 부머들이라는 것이다.
80년대부터 90년 초반까지 병력 자원이 넘쳐나서 현역 판정률이 50% 초반대였던 시절을 보고 성장한 사람들이라, 도무지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에 대하여 실감을 못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사람이 부족한 것을 떠나서도 그렇다.
예전에야 당장 북의 위협에 직면해서 장병들의 환경이고 뭐고 간에 일단은 화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시절이었으니 그렇다고 치자.
아니, 21세기에 장병들을 사우도 온도에 맞먹는 환경에 집어넣고 싸우라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게다가 기갑 장비의 냉방장치는 전장에서의 생존과도 직결이 된다.
전차나 자주포, 장갑차 등에 공조 장치를 설치하여 양압을 유지하게 하면은 화생방 상황에서 집단 방호가 되니까.
이렇게 하지 않으니까 그 좁은 내부에서 방독면을 쓰는 등의 난리를 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화가 난 내가 자금을 줄 테니까 당장 설치하라고 하기는 했는데, 이게 그렇게 빨리 되는 것이 아니다.
기갑 장비의 개량은 창정비 시기에 맞추어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부 설치를 하려면 아마도 10년을 걸릴 터였다.
10년 동안 계속 찜통 속에서 고생할 장병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안에 전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인가?
“창정비 시기까지 기다리지 말고, 돈을 더 추가로 들이더라도 신속하게 설치하세요.”
“알겠습니다.”
“인구 절벽의 시대입니다. 사람이 없다는 말이에요. 기갑 장비 승무원을 부사관으로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장비에 탑승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면 누가 부사관에 지원하려고 하겠습니까? 차관님 군대 시절처럼 무슨 테니스 병이니 골프 병이니 하는 식으로 병력이 널려 있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
“에이! 대체 애들은 왜 안 낳는 거야?”
“…….”
무심코 성질을 낸 소리에, 남정원 부회장이 나를 새초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요? 왜 그렇게 보세요?”
“다 옳은 말씀인데요….”
“그런데요?”
“애들을 왜 안 낳냐고 회장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아서요.”
“…….”
이 양반이 왜 날 걸고 넘어가고 그래?
“저도 결혼하면 최소한 셋은 낳을 겁니다.”
“그 말 꼭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어험! 사담은 나중에 하지요. 하여간 그렇게 좀 부탁을 드립니다.”
“네, 회장님.”
그래도 내 호통에 싸해졌던 분위기가 남정원 부회장의 태클에 조금 부드러워졌다.
“다음은 뭐더라? 어디까지 했죠?”
“K9 자주포까지 하였습니다.”
“아! K9! 200대 발주합니다. 통신 장비 꼭 제외하시고요. 해외로 나갈 것이라 통신 장비는 그쪽에서 자기들 것으로 탑재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비용은 역시 현도 로뎀처럼 나오는 겁니까?”
“역시 우리 카르마 홀딩스와 상의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천무 있지요?”
“네, K-239 천무 다연장로켓 말씀이시지요?”
“네, 그것도 한 100개 시스템 정도 발주합니다. 단! 차량은 빼고 입니다?”
“네? 차량은 뺍니까?”
“솔직히 UAE같이 공업기반이 거의 없는 회사가 아닌 이상, 천무 같은 시스템은 수입국에서 자기들 차량에 얹으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 사람들이 욕심은.
“발사대 시스템하고 탄약만 발주합니다. 사실 이런 MLRS 시스템은 발사대보다 탄약이 70% 이상을 차지하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탄약은 다음에 적당한 수량을 알려드릴 테니까, 무유도로켓 말고 유도 로켓 위주로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화나는 일단 됐고….”
다음이 어디더라?
“다음이….”
“우리 LYG 넥스트입니다!”
LYG 넥스트 사장이 반색을 하면서 손을 들었다.
손은 든 건 좋은데, LYG 넥스트는 왜 왔지?
생각해보니 저긴 미리 발주할 것이 별로 없는데?
그냥 내가 오너인 KAI를 제외한 방산 빅3를 아무 생각 없이 부르라고 했더니 이렇게 된 것 같았다.
LYG는 해궁, 신궁, 현궁 등의 미사일 종류와 어뢰, 그리고 레이더 등의 탐색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라 오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이거 참 난처하네.
“…….”
“저기 회장님?”
“어흠!”
“회장님….”
“LYG는 생각 좀 해보고요. 오늘 반가웠습니다.”
“예?”
“좀 생각하고 나서 나중에 말씀드린다고요.”
“예….”
미안하다.
“회장님, 우리는 없습니까?”
“아! KAI!”
내 정신 봐라.
우리 회사를 빼놓고 있었네.
“FA-50 계열 생산이 어떻게 되고 있지요?”
“솔직히 지금 공군에서 추가로 주문해준 TA-50 전술 입문기 20대 생산이 끝나면 잠시 어렵습니다. 중기적으로는 말레이시아 수출 건이 유력하고, 콜롬비아나 슬로바키아 수출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의 추가 주문도 전망이 밝고요. 문제는 이게 전부 전망이라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몇 년 내로 수출이 성사될 전망은 높지만, 당장은 우리 공군용 전술 입문기 20대 양산이 끝나면 라인이 선다는 말씀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흐음….”
염주의 반응은 분명히 KAI 전망이 밝게 나왔었다.
그렇다면 좀 발주해 두어도 나쁘지는 않겠지.
안되면 그냥 우리 공군에게 줘버리고.
그놈의 똥 파이프 꼴 좀 안 보게.
“현재 FA-50 사양이 어떻습니까?”
“블록10(Block 10)이라 하여 스나이퍼 타게팅 포드를 탑재하여 대 지상 정밀 유도 능력을 올리는 버전이 최신입니다.”
“레이더를 AESA 레이더를 탑재하여 암람 대공 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버전은요?”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서 요구는 있지만, 개발비 부담 때문에 좀 어렵습니다. 가칭 블록 20이라고 부르고 있고요. 물론 항전 장비와 에비오닉스 개량도 포함합니다.”
“우리 공군은요?”
“그게…. KFX 수량에 영향을 끼칠까 봐 블록 20 개량에는 관심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차관님!”
“네, 회장님.”
“맞습니까?”
“네, 공군에서는 전체 공군 전술기 숫자를 경전투기로 채울까 봐 주저하고 있습니다.”
“어휴! 알겠습니다. 안 사장님.”
“네, 회장님.”
“일단 50대 발주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KAI 안 사장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대신에 블록 20 사양으로 합니다.”
“네? 그럼 개발비가….”
“그거 드릴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으하하! 알겠습니다!”
“AESA 레이더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레이시언에서 팬텀 스트라이크라는 소형 AESA 레이더를 개발하여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흐음, 우리 국산은요?”
“아무래도 적어도 해외 수출용은 미국 레이시언 제품을 탑재해야 합니다. 수입국에서는 분명히 암람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통합을 요구할 것인데, 빠르게 인티하려면 그게 최선입니다.”
“그럼 우리 국산 레이더는 탑재하지 않는 겁니까?”
“우리 공군용으로는 국산을 탑재해야 할 겁니다. 현재 LYG에서 자사의 레이더를 적극적으로 밀고 있습니다.”
“아….”
잠시 쪽팔렸던 LYG를 쳐다보자 안색이 확 밝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습니다! 우리 LYG에서 개발하고 있습니다!”
“호오? 그래요?”
“잠시만요!”
그때 화나에서 제동을 걸고 나왔다.
“회장님! AESA 레이더는 이미 우리 화나에서 KFX 탑재용으로 개발한 상태입니다. 모듈을 이용하여 개발하였기 때문에 T/R(Transmit/Receive) 숫자만 줄여 크기를 작게 하면 바로 FA-50에도 탑재할 수 있습니다!”
“이봐! 손 사장!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회장님이 우리에게 물으시잖아!”
“이거 왜 이러시나? 무기 장사 하루 이틀 하나? KFX용으로 우리 화나가 선정된 이상, FA-50에도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운용상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모르나?”
“그 KFX 레이더도 원래 우리 꺼였잖아! 우리가 시험 개발한 거였다고!”
“시끄럽네! 바보같이 중간에 뺏긴 주제에?”
“야!”
“뭐? 야?”
“…….”
아이고 머리야.
두 업체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치고박고 쌈질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만들 하세요!”
“…….”
“…….”
“이게 뭐 하는 짓들입니까?”
“죄송합니다. 저 자식이 열 받게 해서요.”
“뭐 이 자식아?”
“쓰읍!”
“…….”
“KFX는 KFX고, FA-50은 FA-50입니다. 물론 화나의 말처럼 공군의 입장에서는 운용 편의상 같은 계열 레이더인 것이 유리합니다만….”
“하하하! 맞습니다!”
“하지만! 너무 한 업체에 몰아주는 것은 독점이 우려됩니다. 따라서, 공정한 경쟁을 할 것이나 만약에 가격이나 성능에 차이가 없다면 독점을 방지하기 위하여 LYG 손을 들어 주겠습니다!”
“으하하! 감사합니다!”
이제야 얼굴이 펴지는 LYG 사장이었다.
“안 사장님, 그렇게 추진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국방부 차관님, 방위사업청장님, 이의 없으십니까?”
“회장님 측에서 비용을 댄다고 하는데, 우리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감사할 뿐이지요.”
“그럼 안 사장님.”
“네, 회장님.”
“라인 끊어질 것이 문제가 아니라, 빠른 양산이 중요합니다. 차질없이 블록 20으로 개발하도록 하세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화나의 김종건 사장이 나를 보자고 하였다.
“저, 회장님.”
“음? 김 사장님.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하하! 다른 것이 아니라, 시간도 마치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급하신 일이 없다면 식사라도 같이하고 싶어서요.”
“식사요?”
“네, 오래전부터 정룡이 형님 말씀을 듣고 꼭 한번 모시고 싶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흐음….”
잠시 고민하였다.
솔직히 이정룡 부회장이 이 사람은 괜찮다고 하였지만, 이쪽 집안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종건 사장은 현재 하나 그룹의 명실상부한 후계자이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격이 맞지 않았다.
그룹 회장이 와도 뺀찌를 놓을 것인데, 아들내미가?
한국 모든 내로라하는 그룹들 총수가 내 얼굴을 한번 보려고 얼마나 안달이 나 있는데?
잠깐 생각하다가 내가 뭘 이렇게 재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룡 부회장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고, 나는 오늘 마침 특별한 약속도 없었고 배도 고팠다.
그럼 밥이나 먹는 거지.
“그래요, 밥이나 먹읍시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