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이자, 미얀마 민족 민주연맹 NLD 한국 지부장 얀나잉툰 씨입니다.”
“영어로 말해야 하나요?”
“한국말로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 한국말을 잘하시네요?”
마곡 사옥의 내 사무실에서 장봉호 대표와 미얀마 민족 민주연맹의 한국 지부장이라는 사람을 만나는 중이다.
그런데, 이 양반 한국말을 무척이나 잘한다.
“네, 한국에 온 지가 벌써 30년이 되었습니다.”
“예? 그렇게 오래되었어요?”
“제가 미얀마를 떠난 것이 1988년입니다. 88혁명 당시에 대학생으로 항쟁에 참여했다가 군부를 피하여 한국으로 왔지요. 95년에는 난민 인정도 받았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참 대단하다.
30년을 넘게 해외에서 투쟁하고 있었다니.
“하여간 대단하십니다. 고생이 많으셨군요.”
“아닙니다. 고국에 있는 동포들만 하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도 회장님께 전폭적으로 후원하여 주셔서,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들은 물론이고 본국의 민족통합정부(NUG)에서도 힘을 내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저 제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나누어 드렸을 뿐입니다.”
“그게 말이 쉽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그 누구도, 그리고 어떤 정부도 말로만 유감이다, 안타깝다고 하지, 실제로 도움을 주는 기관이나 정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대부분 나라 정부들이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지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들 중국이 부담스러우니까요.”
“아무도 동남아시아에 있는 나라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사실 존재감이 없기도 하고요. UN이요? 솔직히 그런 국제 조직은 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동감입니다.”
UN이라는 조직.
정말 천하에 쓰잘데기 없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체 할 수 있는 것이 뭐냐고?
2차대전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2차대전 승전국들이 상임이사국 자리를 꿰차고서 그놈들이 비토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 와중에 정말 회장님께서만 자신의 일처럼 나서 주시고 계시는 겁니다.”
“에이, 왜 그러세요.”
“회장님께서는 정말 대단하신 일을 하시고 있는 겁니다.”
“하하….”
이거 참 쑥스럽게.
“그래요, 부족한 것은 없으세요?”
“정화재단에서 많은 것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흐음,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힘이 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국에 있는 우리 직원으로부터 보고가 있었습니다. 새로 조직되는 연방군 담당자를 소개받았다고 하더군요.”
“네, 장 대표에게서 연락을 받고 국민 통합정부에 연락을 했더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무기를 공급해 준다고 하니까 정말 놀랐다고 하더군요.”
“워낙 민감한 문제라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미국의 묵인을 받았으니 무기를 공급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일단 1차로 AR 계열 소총 2만 정하고 81mm 박격포 150문, 그리고 60mm 박격포 200문과 탄약들이 공급될 겁니다.”
“그, 그렇게나 많이요?”
“어디까지나 1차입니다. 상대는 50만 병력을 자랑하는 미얀마 정규군이에요. 그 정도 무기라고 해봤자,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없어질 겁니다.”
전쟁은 물자를 잡아먹는 귀신이다.
1차 지원 물량이 많아 보이지만,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대체 그 많은 무기를 민간인이신 회장님께서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그건 비밀입니다. 알려지면 여러 나라가 불편해집니다. 대표께서도 모르고 있는 것이 좋을 겁니다.”
“태국으로 반입이 쉽지 않을 겁니다.”
“그것도 해결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또 어떻게 하신 겁니까? 태국은 우리나라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데요?”
태국 놈들은 자기들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놈들이라 미얀마 시국에 대하여 나 몰라라 하는 중이고, 국경 지역으로 몰려오는 난민들에게도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보니라 대놓고는 아니지만, 은근 핍박을 하는 모양이었다.
미얀마하고는 역사적으로도 한일 관계와 비슷한 관계인 영향도 있다고 하고.
“태국 애들 상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쉽습니다.”
“네?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요?”
“부정부패가 일상화된 나라처럼 쉬운 나라는 없지요. 우리 측에서 돈으로 전부 해결했습니다.”
“아….”
돈으로 되는 나라고 있고, 안 되는 나라가 있는 법인데, 태국은 돈이면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는 나라다.
이번 무기 공급 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헨리가 직접 나섰는데, 군부와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왕실에까지 돈을 살포했다고 했다.
여기에 들어간 돈이 5,000만 달러가 넘었다니 일이 안 될 리가 없는 거였다.
“추가적으로 무기와 장비 등이 계속 공급될 겁니다. 그리고, 5월 초에는 교관단도 파견될 것이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측에 싸울 줄 아는 사람이 드물어서 곤란했었습니다.”
“그럴 줄 알고서 준비했습니다. 마침, 내 직원이 그런 쪽으로는 전문가이기도 했고요.”
“이거 혹시 회장님께 누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미국 정부가 싫어할 것인데요.”
“그런 것도 걱정하지 마세요. 미리 양해를 구했으니까요.”
“그런 것도 가능한 겁니까?”
“네, 가능합니다. 친구가 좀 높이 있어서요.”
“대체 얼마나 높은 친구분이시길래….”
“하하하! 좀 많이 높지요.”
무려 미국의 대통령이니까.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우리 미얀마의 은인이십니다. 미얀마가 군부를 쫓아내고 바로 서는 날, 회장님은 영원한 우리나라의 은인으로 선포되실 겁니다.”
“그건 나중의 일이고, 일단은 모두 합심하여 군부 놈들을 몰아냅시다. Stay with Myanmar!”
그런데 며칠 후, 좀 엉뚱한 일이 생겼다.
“네에? 국회요? 갑자기 웬 국회?”
“그게 좀 거시기합니다. 회장님께서 미얀마를 지원하는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모양입니다.”
뜬금없이 남정원 부회장이 국회를 거론했다.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아니, 정화재단에서 인도적으로 지원한다는데, 그놈들이 무슨 상관이래요?”
“지금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은 정화재단의 지원 건이 아닙니다.”
“그럼요?”
“어디선가 회장님께서 미얀마에 무기를 공급하려는 것이 샌 것 같습니다.”
“아니 대체 그게 어디서요?”
“아무래도 정부 측에서 샌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국정원 등에 통보는 하지 않았습니까?”
“하아….”
외국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다.
몰래 하려면 몰래 할 수도 있었지만, 나중이라도 알려지면 크게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 정부의 라인을 통하여 조심스럽게 알려주고 양해를 구한 것인데, 이게 국회의원 놈들의 귀에 들어간 것 같았다.
“그래서요?”
“국회 정보위원회와 외교통일위원회, 그리고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 몇 명이 알고서 자기들끼리 난리를 치는 모양입니다. 어떻게 민간인인 대한민국 기업인이 외국의 반군 단체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있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뭐어? 반군? 아니 이 자식들이 그냥!”
“회장님, 그렇게 흥분하실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고정하시지요.”
“하아! 진짜!”
정말 심하게 짜증이 났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을 깨려고 해?
“어디까지 알려진 겁니까?”
“다행히 십여 명이 의원들만 공유하고 있나 봅니다. 기자들에게까지는 알리지 않은 것 같고요.”
“정부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굉장히 난처한 모양입니다. 사실 정부에서는 회장님께서 지금 국방에 관련한 문제들 여럿을 풀어주고 있는 상황이라 회장님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위험한 일임에도 묵인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정리가 된 일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내서 저 난리를 쳐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기랄! 그래서 현재 상황은요?”
“이거는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칫하다가는 행정부가 박살이 날 사안일 수도 있어서요.”
“그렇겠지요.”
“그리고 국회에서는 몇 명이 주동하여 회장님을 청문회로 끌어내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합니다.”
“응? 청문회? 아니 이것들이 정말 해보자는 거야, 뭐야!”
진짜 돈의 힘을 보여줘?
내 돈질 앞에 당할 장사가 있을 것 같냐?
아주 시궁창으로 처박아줄까?
“다행히도 그건 일부의 움직임이고, 대다수는 회장님을 만나서 사정 청취를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사정 청취? 놀고들 있네. 어째 뭔가를 바라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진작에 회장님을 길들이겠다는 속셈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겁니까? 나보고 오라는 거예요?”
“아닙니다. 직접 몇 명이 우리 사옥으로 오겠다고 합니다. 조용히 말입니다.”
“흐음….”
기자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뜯어내려고 온다는 말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라고 하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니 우리가 가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야 그렇지요.”
“대신 조용히 오라고 하세요. 어디 찌라시에라도 단 한 줄이라도 기사가 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하고요.”
“대놓고 그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고요, 적당히 뉘앙스는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요.”
이틀 후, 국회의원 아홉 명이 우리 회사 희의실로 들어왔다.
나는 남 부회장, 그리고 박홍렬 변호사와 같이 있었고.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강철식 회장입니다. 바쁘신 분들께서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신지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전혀 곱지 않았다.
곱게 나갈 이유가 있나?
그랬더니 역시 오는 말도 곱지 않았다.
“이거 젊은 사람이 왜 이리 뻣뻣해? 돈 좀 많으면 다인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거 국민을 대표하는 우리 의원들을 우습게 본다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거 아닙니까?”
“더 볼 것도 없어요! 이거 나름대로 배려한다고 기자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조용히 왔더니만? 비로 청문회로 넘어갑시다!”
“청문회도 청문회지만, 알짜 기업들이 카르마에 넘어간 것도 그래요. 분명히 무슨 흑막이 있을 겁니다! 청문회 받고 국정조사! 콜!”
“국정조사! 콜!”
“…….”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완전히 미친놈들이 아닌가?
대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리고 그 와중에 아주 휘발유를 뿌리는 놈이 있었다.
“이봐!”
“이봐?”
“말씀 조심하십시오! 젊으시지만 세계적인 투자가시고, 우리 카르마 홀딩스 모회사 회장님이십니다!”
보다 못한 남정원 부회장이 열 받아서 고함을 쳤다.
“얼씨구? 이것들 보게나? 이봐! 내가 대한민국 3성 장군 출신인데, 일개 중사 출신 젊은이에게 편하게 말도 못 하나?”
“이거, 이러니 무기 거래나 하는 겁니다. 들어보고 조용히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이거 안 되겠구먼?”
“더 들을 것도 없어요! 국민의 대표인 우리 의원들을 무시하는 겁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대체 이놈들은 나에 대하여 정확히나 알고 온 것일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