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알라 후 아크바르!
워낙 고령이다 보니 깜빡깜빡하고 치매기가 살짝 의심이 되기는 하지만, 이 영감님을 우습게 봤다가는 큰코다칠 것이다.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될 수 있는 최소연령인 나이 서른에 최연소 상원의원을 시작하여 7선을 했고,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을 8년이나 한 괴물이 조 바이든이다.
한마디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할배라는 말이다.
조심해야 한다.
“으허허! 왜 당황하냐?”
“당황은 누가 당황한다고 그래요? 갑작스러우니까 그렇지?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사실, 이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 카르마 인베스트먼트가 에너지 쪽에 투자를 시작한 것은 투자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 정도라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사실이고, 실제로 IT산업을 주력으로 투자하던 우리가 느닷없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동원하여 에너지에 몰빵을 때리기 시작한 것은 미국 투자계에서도 꽤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존의 말로는 쟤들 갑자기 왜 저러냐? 정도의 반응이라고.
그러니, 내가 후원하여 당선된 미국 대통령이 모를 수는 없는 거였다.
다만, 직접 뭔 상관이냐고 물을 수는 없으니 돌려서 말한 것이다.
“경제 쪽에서 큰 이슈인데, 내가 모를 수가 있나? 우리가 남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내가 조의 아들이라도 되는 줄 알겠습니다.”
“하하하! 그만큼 가깝게 생각한다는 말이지.”
“…….”
조의 자식들은 막내라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데요? 불법적이거나 부정한 일을 벌인 적은 없는데?”
“야, 알렉스. 섭섭하게 왜 그렇게 방어적이야?”
그거야 당신이 미국 대통령이니까 그렇지.
“뭐, 방어적이라기보다는 하도 뜬금없어서 그렇지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이거 내가 나만 생각한 것 같은데, 미안하다. 하지만 정말이네.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니까, 네가 편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것만 말해주면 될 거야.”
“뭐가 그렇게 궁금하신데요? 투자가가 투자하는 것인데.”
“네가 보통 투자가냐? 그리고 에너지 투자에 동원한 돈이 한두 푼이고? 지금까지 들어간 돈만 2,000억 달러가 넘었다고 하던데. 게다가 추가로 자금을 조달한다는 것을 보니, 여기에서 그칠 생각도 없는 것 같고 말이다.”
“별거 없어요. 그저 에너지 쪽이 향후 오를 것 같으니까 미리 투자하는 거라고요.”
“얼마나 오를 것 같은데?”
이거였나?
내게서 알고 싶은 것이?
“조, 우리 진짜 솔직하게 말하자고요. 알고 싶은 것이 에너지 동향이에요?”
“흐흐흐, 그래.”
“그건 미국 대통령이 나보다 더 잘 아실 건데?”
미국 정부 산하의 그 수많은 연구 단체와 정보부서는 어디다 써먹으시려고?
“그야 그렇지만, 나는 네 의견을 듣고 싶은 거야. 알렉스, 네가 누구냐? 6년 만에 순수한 투자로 1조 달러에 육박하는 부를 일군 사람이잖아? 그런 네가 에너지에 투자한다? 넌 최소한 몇 배가 남지 않으면 투자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벌 만큼 벌었으니, 나도 이제는 안정을 찾으려고요.”
“예끼! 이 친구야! 투자도 일종의 도박이고 마약이지. 그런데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도박꾼이 건전하게 기준금리 정도만 벌겠다는 소리하고 똑같은데?”
“에이 비교를 해도 어떻게 도박이나 마약에 비교를 해요?”
“그러지 말고 조언이라도 좀 해주지 그러냐? 네가 투자할 만큼 에너지 가격에 변동이 생긴다면, 가뜩이나 코로나로 위축된 경제에도 큰 타격이 될 거다. 우리 미국 경제에 말이지.”
“결국은 그거였어요?”
“그래 그거다.”
진작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바이든은 내가 에너지 쪽에 투자하는 것을 보고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내가 투자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것을 예상하고 투자하는 것을 말이다.
지금까지의 내 투자 실적을 보면, 실현되지 않았던 일이 없었으니까.
실제로도 우리가 에너지 쪽 투자하는 것을 보고 다른 투자사에서도 에너지에 관심을 많이 두는 상황이라고 하니까.
에너지 가격이 오른다면?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미국 경제에 위협이 될 것이고, 내년 말에 있을 중간 선거에서 재미가 없을 거다.
“그걸 맨입으로 알려달라고요? 남의 투자 기밀을?”
“야! 알렉스! 너 정말 이러기야?”
“왜 이러세요? 전 조에게 할 만큼 했다고요?”
“끄응, 원하는 것이 뭔데?”
“전에 소개해 준 그 무기 중개인 말입니다.”
“응? 미얀마로 간 무기 말이냐?”
“네, 미얀마로 간 무기요.”
“그게 왜? 제대로 배달까지 된 것으로 아는데?”
“그게 말이지요, 그 무기 중개인이 의외로 유능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입니까? 더 내놓을 것이 많은 것 같은데 내놓지를 않더라는 말이죠.”
헨리의 말로는 AR 계열의 돌격소총, 그리고 60mm와 81mm 박격포가 전부고, 그 이상으로 팔려고 하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로는 부족하지.
무려 미얀마 정규군하고 싸우는 것인데.
“야, 알렉스. 내가 알기로는 줄 것은 다 준거로 아는데?”
“말은 바로 하자고요. 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매한 겁니다.”
“에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왜 중요하지 않아요? 미국 국민이 세금이 한 푼도 안 들어갔다는 말인데?”
“끄응, 그래서?”
“좀 더 팔라고 하시지요? 어중간하게 총을 쥐여줘서 사람들 다 죽게 할 생각입니까?”
“어디까지 달라는, 아니 팔라는 거야?”
“그래도 105mm까지는 파시지요? 그리고 중구경 기관총도 좀 파시고? 아! 통신 장비나 다른 장비들도요.”
“그 이상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데….”
“조, 내가 무슨 어디 마적 떼나 테러단체라도 지원하자는 겁니까? 미국인 지향하는 가치와도 맞는 일이잖아요? 그걸 미국이나 다른 서방 제국들이 중국 눈치를 보느라 못 하는 것을 내가 내 돈으로 대신하는 것이고요.”
“…….”
진짜 내돈내산이다.
게다가, 중국과 밀착한 미얀마 군부를 괴롭히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도 철저히 부합하는 것이고.
정말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거잖아?
“혹시 압니까? 미얀만 국민 통합정부가 예상보다 잘 싸워서 정말로 미얀만 군부를 뒤집어 버릴지?”
“그러기는 쉽지 않을 거다. 전력의 차가 워낙 커!”
“조, 잊으셨어요? 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혁명의 시작이 얼마나 초라했는지 말입니다. 카스트로가 그란마 호 상륙작전에 실패하여 정글로 도주했을 때 몇 명이었습니까? 10여 명 아니었나요?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지요?”
“야! 하필 예를 들어도 꼭….”
이건 좀 미안하다.
하필 예를 들어도 미국의 아픈 상처를 건드린 것이니까.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뭐 좀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그 초라했던 쿠바 혁명도 그렇게 시작한 거라고요. 결국, 바티스타 정권을 뒤집는 것에 성공했잖습니까?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말이지요. 또, 중국의 공산당은 어땠어요? 장제스 국민군에 무기 등이 장비가 상대나 되었나요?”
“다른 사례 없냐?”
“에이, 취지만 알아들으세요. 그만큼 국민 대다수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시민군을 무시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
“하여간 미얀마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중국 남방정책에 커다란 실패가 되는 것이고, 우리로서는 중국 남쪽에 강력한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 될 겁니다.”
“흐음….”
“거기다가 돈이나 들어요? 내가 대잖아요, 내가. 아니 막말로 나 같으면 업고라도 다니겠다.”
“허허! 너도 참….”
바이든이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날 바라보더니,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간 너에게는 못 당하겠구나. 알았다, 그건 내가 따로 이야기를 하지.”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하자고요. 미국이 노출될 일은 없게 할 테니까.”
“알았다니까 그러네? 정말 민감한 무기 말고는 지원하라고 하지.”
“지원?”
“판매!”
“에이, 좋다가 말았잖아요? 싸게 좀 부탁할게요.”
“내가 지금 장사하는 거냐?”
“민감하시기는….”
“됐고, 이제 이야기 좀 풀어보지?”
어디까지 말해줄까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기 전에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시죠.”
“뭔데?”
“이건 어디까지나 혼자만 알고 계시다가 정책 판단을 할 때나 참고하시는 겁니다?”
“알았다.”
“그리고, 내 투자에 방해가 되어서도 안 되고요? 아셨죠?”
“알았다니까 그러네!”
“지금 저에게 화내시는 거예요?”
“화내는 것 아닌데?”
“화낸 것 같은데?”
“내가 진짜로 화내는 게 보고 싶냐?”
그만 긁어대자.
진짜로 화나면 곤란하지.
“에너지 가격은 확실하게 지금보다 오를 겁니다.”
“지금도 많이 오른 상태인데, 지금보다 더?”
“네, 지금보다 더요.”
“얼마나?”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저 많이 오를 것으로 생각하세요. 그러니 에너지 증산에 신경을 쓰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제기랄, 환장하겠군.”
이 양반 은근히 입이 험하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물가가 어떻게 될까요?”
“많이 오르겠지.”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인플레이션!”
“빙고!”
“하아….”
“결국, 연방준비위원회가 움직이겠죠. 빅 스텝을 밟을 것이고요.”
“지지율이 박살이 나겠구먼….”
“잘 대처하셔야 할 겁니다.”
“그런데, 알렉스.”
“왜요?”
“내가 에너지에 대한 대책을 세워서 급등하지 못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냐?”
“아오! 다 말해 달라면서요?”
“그거야 고맙지만….”
“그게 조가 아무리 대처를 잘해도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될 것이니까요. 그리고, 지금부터 서둘러 대처한다고 해도 미국이 에너지 증산을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저유가 시절이 그만큼 길었으니까요.”
“그렇구나. 하여간 고맙다.”
고맙기는 개뿔.
“하여간 내년에는 많은 일이 있을 겁니다. 마음 단단히 잡으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에너지 가격 급등 말고도 또 있어?”
“그냥 느낌이 그래요.”
“네 느낌 좀 안 맞았으면 좋겠다.”
“글쎄요?”
“젠장!”
“그러면 전 갑니다. LA 방문 잘하시고 가시고요.”
“알았다. 아무튼, 고맙고.”
“별말씀을….”
그렇게 일어나서 나가려다가 문득 하나를 빼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말해도 되려나?
꿈에서 짧게 나온 장면인데….
“조!”
“응? 왜 그러냐?”
“아프가니스탄 말이에요.”
“아프가니스탄은 왜?”
“지금 미군이 철수 중이지요?”
“그렇지. 그건 전 행정부 시절인 작년 초에 이미 탈레반 놈들과 합의한 것이니까.”
“흐음….”
“에이, 불안하게 왜 그러는데?”
“살짝 조언을 드려도 될까요?”
“네 조언이라면 얼마든지. 편하게 말해 봐.”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천천히 하라니? 철수를 말이냐?”
“네, 천천히 철수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왜 그래야 하지?”
“그냥 내 느낌인데요.”
“아! 그 느낌 이야기 좀 그만하고!”
“너무 빨리 철수하면 비극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지금 가니 정권, 너무 믿지 마세요.”
“제길, 인제 와서 그러기가 좀 어려운데….”
“선택은 조가 하는 겁니다만, 하여간 그래요. 잘 판단하시길….”
“후유, 알았다. 생각 좀 해보지.”
“그럼 갑니다.”
“응, 신경 써주어서 고맙다.”
“별말씀을….”
미얀마나 우크라이나처럼 자세히는 아니지만, 꿈에서는 분명히 아프가니스탄이 패망했었다.
수많은 사람이 미군 비행기에 오르려다가 공중에서 추락했고.
조가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넌지시 충고하는 것이 전부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알라 후 아크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