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오늘 술값은 형이 내.
바이든에게 경고한 것이 이런 식으로 반응이 올지는 몰랐다.
너무 짧은 기간 내에 번복한 것이 바이든의 건강 상태와 맞물려서 오해를 불러온 것이다.
“어쨌든 조가 번복을 했지만,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던데요? 그리고 솔직히 그게 맞지 않아요? 너무 급격한 철수는 분명히 파탄을 드러냈을 테니까요.”
“맞아. 군부에서도 그렇고 다른 참모들도 모두 환영하고 있지. 사실 대선 공약이라고 발표한 것이라서 조가 너무 집착했거든.”
“그런데도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겁니까?”
“알잖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지난 달이야. 그런데, 한 달 만에 그런 중대한 사안을 번복해? 물론 늦어도 잘한 일이지만, 조가 워낙 고령이다 보니까….”
“에이, 그래도 그렇죠. 늦어도 옳은 결정을 하신 겁니다. 그런데 그게 왜요?”
“모르겠어?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요?”
짐작은 하지만,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는 싫었다.
“모르는 척하는 거지?”
“아닌데요? 사람들이 자꾸 잊는 것 같은데, 나는 한국인이라고요. 외국인이 미국 정치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이럴 때는 외국인 신분인 것이 참 좋다.
“아이, 참? 알렉스도 가만 보면 의뭉스럽단 말이야. 미국 정치에 대하여 모르기는 뭘 몰라?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늦어진 것도 조가 알렉스를 만나고 나서 일어난 것인데?”
“응? 내가 조를 만난 것은 어떻게 알았어요?”
“다 아는 수가 있지.”
“…….”
이 아줌마, 아무래도 바이든 주변에 빨대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극비로 만난 것을 병풍이나 마찬가지인 부통령이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카멀라.”
“말해, 알렉스.”
“좀 위험한 행동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정치판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조가 알면 싫어할 텐데요?”
“행동하는 것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지.”
“휴우, 그래서요? 제게 이런 말씀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솔직하게 말할까?”
“그러시지요. 나는 솔직하지 않은 사람을 믿지 않는 편이라서요.”
“호호호! 역시 알렉스는 정치와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치판에는 얼씬도 하지 말자는 것이 내 철칙이다.
한국에서야 이런저런 일을 추진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부대끼게 된 것이고.
그런데 남의 나라인 미국에서마저도 자꾸 얽히는 것 같아서 영 껄끄럽다.
“그럼 솔직하게 말하지. 애초에 나는 보통의 부통령이 아닌 것은 알고 있지? 아, 혹시라도 또 모르는 체하기는 없기다? 내가 솔직하게 말하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 이럴 때마저 알렉스가 의뭉을 떨면 화가 날 테니까.”
“압니다. 조가 워낙 고령이다 보니 미국 대통령 승계 1순위인 카멀라의 위상이 이전의 부통령과는 많이 다르지요.”
“그래, 맞아. 누구도 조가 재선에 나선다는 것을 생각하지는 않아.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럴 겁니다.”
“그런 데다가 조가 자꾸 깜빡하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대통령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들이 나오는 거지.”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결론은 이거야. 조는 당장 내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여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카멀라가 승계하여 미국 대통령이 되겠지요.”
어떻게 대통령이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이 되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 그렇게 되면 내가 대통령이 되는 거야. 미국의 대통령 말이지.”
“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도 하늘의 뜻이겠지요. 그래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하는 이유는?”
“짐작할 텐데? 나는 알렉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해. 무슨 뜻인지 알지?”
“현실적으로 조가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는 일을 바라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 선거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간다는 말인데, 그때 지지를 말씀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지난번 대통령 선거, 사실상 알렉스가 대통령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잖아?”
“…….”
미국에서 선거에 들이는 비용은 날로 폭증하고 있다.
지난번 대선에서 들어간 비용은 무려 140억 달러로 추정한다고 하니까.
특히 광고에 들이는 비용은 천문학적인데, 이게 유튜브 같은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면서 오히려 더 돈의 전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안 쓰면?
아주 압도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은 이상에는 무조건 진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카멀라는 내게 자금을 부탁하는 것이다.
조의 옆에서 봤으니, 어디 가도 나만 한 스폰서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어떻게 생각해, 알렉스?”
“…….”
“이봐 알렉스, 나는 지금 손을 내밀고 있는 거야. 내 손을 부끄럽게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는데?”
“잠시 생각 좀 해보고요. 왜 이렇게 재촉해요?”
카멀라가 재촉을 하면서 살짝 공갈을 치는 뉘앙스가 보이자, 나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불쾌하다.
뭐야?
나에게 돈이라도 맡겨 놓은 거야?
뭐가 이렇게 당당해?
“호호호! 불쾌했다면 미안해. 하지만 잘 생각해 봐.”
“휴우! 카멀라.”
“응? 왜?”
“저와 친구가 되고 싶으신 겁니까?”
“그래 친구. 친구라면 친구겠지. 서로 주고받는 것이 명확한 친구 말이지.”
“…….”
아니, 이 여자 말을 왜 이렇게 재수 없게 하는 거야?
“내가 뭘 주고받았는데요?”
“이거 왜 이래? 난 미국의 부통령이야. 알렉스가 트럼프와 한국의 원자력 잠수함 보유 양해를 받아 낸 것도, 그리고 후임인 조에게서도 그것에 대한 양해를 받은 것도 알고 있다고.”
“또요?”
“…….”
“또 뭐가 있어요?”
“…….”
미얀마 무기 지원?
그건 사실상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해리스 부통령님!”
“아, 알렉스….”
나는 자세로 바로 하면서 똑바로 카멀라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나는 미국이 전직 대통령이나 현임 대통령과 거래를 한 적이 없습니다. 원자력 잠수함이요? 그거 트럼프가 반쯤 공갈을 치기에 돈을 줬더니 원하는 것을 준다고 하길래, 생각하다 하다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어서 그저 내 모군(母軍)의 숙원 사업이 생각나서 말한 것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완전히 합법적으로 순수한 투자로 부를 이룬 내가 정치권에 아쉬울 것이 뭐가 있습니까?”
“알렉스, 내 말이 불쾌한 것 같은데….”
“네, 불쾌합니다. 몹시 불쾌하네요. 나는 선의로 카멀라를 만난 것인데, 카멀라는 나를 돈으로 대통령과 거래나 하는 사람 취급을 했어요. 내가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겁니까?”
“…….”
“왜요? 내가 거절하면 나중에 대통령이 되어서 보복이라도 하시게?”
“그런 말이 아니라….”
“하세요! 얼마든지! 나는 나대로 돈의 힘으로 그것의 몇 배를 보복할 테니까!”
“알렉스….”
내 언성이 높아져서 방안을 쩌렁쩌렁 울리자, 카멀라가 금세 풀이 죽어버렸다.
음? 이렇게 쉽게 고개 숙일 사람이 아닌데?
“카멀라는 방법이 잘못되었어요.”
“방법?”
“그래요, 방법! 내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금을 쾌척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트럼프 같은 개차반이 미국의 대통령에 재선하는 것은 막아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어서였어요. 그런 망종이 다시 재선한다는 것은 미국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불행이기도 했으니까요.”
“…….”
“원자력 잠수함? 그거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민간인인 내가 상관할 바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내게 그것을 들먹이세요? 한번 해볼까요?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
막말로 미국 정부와 척을 져도 내가 무슨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미국의 이익을 해치는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처럼 반독점법으로 엮일까 봐서 정치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는 투자가다.
여차하면 돈을 빼면 그만인 것이다.
따라서 그만큼 나를 엿 먹이려면 힘들다.
엿 먹일 수단이 많지 않으니까.
“카멀라가 나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면, 솔직하게 말하고 친구가 되는 방법을 택하셔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 트럼프가 다시 기어 나올 것 같은 공화당의 꼬라지를 봐서라도 나는 기꺼이 카멀라를 지원했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카멀라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조와 이제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나는 친구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 아니고요.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매몰차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카멀라가 나를 불렀다.
“알렉스!”
“왜요?”
“미안해. 오늘은 내가 성급했던 것 같아.”
“조에게 말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고마워. 그리고 알렉스.”
“말씀하세요.”
“내가 오늘의 일을 만회할 기회가 있을까?”
“다음번에는 진정으로 대해주세요. 그럼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 내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네, 그럼 가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도 마음이 좋지 않아서 제프리 형을 불러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호오? 그래? 그 카멀라가 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고?”
“아니 그렇잖아요? 왜 돈을 달라면서 공갈질이냐고?”
“그건 그런데, 그거 참 이상하다. 그 여자가 그리 쉽게 미안하다고 하다니?”
“내 돈이 그만큼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글쎄다? 내가 아는 카멀라는 그런 여자가 아닌데? 자존심이 굉장한 수준이라서 말이야”
“그 정도는 아니던데요? 내가 막 화를 내니까 그냥 꼬랑지를 내렸다고요.”
“흐음….”
제프리 형이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뭐에요? 그 눈초리는?”
“너 모르지?”
“뭘요?”
“언제부터인가 네가 말하면 뭐랄까? 묘한 카리스마가 있다고나 할까?”
“응? 웬 칼이쑤마?”
“작년 중간 정도부터인가? 아무튼, 네가 말하면 이상하게 네 말이 옳고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특히나 정색하고 말하면 말이야.”
“그거야 내가 옳은 말만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지랄하세요.”
“…….”
“하여간 그래. 이전에는 확신을 못 했는데, 자존심으로 뭉친 그 카멀라가 네게 사과를 하고 꼬랑지를 내렸다는 말을 들이니 이젠 확신이 선다. 너, 좌중을 압도하는 힘? 언령? 뭐 하여간 그런 분위기가 생긴 것 같아.”
“에이, 설마?”
“이런 소리를 내가 처음 하는 거니?”
“…….”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소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소미의 직장 동료들을 봤을 때, 왠지 내게 좌중을 압도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고 했지?
이거 뭐지?
염주의 능력이 진화한 것인가?
“아무튼 너, 오늘 큰일 낼 뻔한 거야. 카멀라 같은 거물에게 성질을 내다니? 네게 요즘 생긴 너의 분위기 때문에 잘 넘어간 것 같은데, 잘못했으면 네 미국 생활에 마가 낄 뻔한 거라고.”
“뭐 그렇게까지야….”
“내가 카멀라와 엮인 것은 몇 번인데 그러냐? 그 여자 장난이 아니야. 나쁘게 끝나지 않았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말이다.”
“진짜 좀 화가 났을 뿐이에요.”
“조심해, 너.”
“알았어요.”
제프리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로 오늘 내가 대형 사고를 칠 뻔한 것이다.
앞으로는 말도 좀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일까?
내게 정말 언령(言霊)같은 힘이 생긴 것일까?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제프리 형!”
나는 정색하고 제프리 형을 불렀다.
“아이, 깜짝이야! 왜 임마?”
“오늘 술값은 형이 내!”
“이게 미쳤나? 지가 불러내 놓고서 누구보고 술값을 내라는 거야?”
“…….”
아닌 것 같다.
술이나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