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이놈들 만취입니다.
며칠 후 저녁.
나는 마곡 사옥에서 업무를 마치고, 서초동 사성 타운으로 향했다.
어쩌다 보니 한국에 오면 소미와 밖에서 거하게 술 한잔하는 것이 정례화되어 버린 것이다.
“뭐 먹냐? 오늘은?”
“오빠, 우리 갈비 먹으러 가자.”
“갈비?”
“응! 조기 가면은 평양식 냉면집인데, 돼지갈비도 맛있거든?”
“…….”
우리 소미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입맛이 올드할까?
게다가 술도 말술이고?
경호원 항상 붙여 놓아서 그렇지, 안 그랬다면 속 좀 썩을뻔했다.
하여간 나야 좋지 뭐.
다른 요즘 젊은 여자애들처럼 무슨 오마카세가 어쩌고 해대면 머리 아플 뻔했으니까.
내가 미국에서 있게 되면서 가끔 한국에 올 때 놀란 것이 오마카세 열풍이었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오마카세.
하도 궁금하여 물어보았더니, 일본 말로 ‘맡긴다.’라는 뜻으로 원래는 1990년대 일본에서 전통적인 스시집이 줄어들고, 회사원들이 술을 먹다가 마지막에 스시를 먹을 때 생선 이름을 모르는 손님들을 위하여 그냥 주방장에게 맡긴다고 하여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2010년대 후반부터 뜬금없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한번 먹는 데 1인당 수십만 원인 거금을 내고 먹는 일종의 고급 코스요리가 되어버린 거지.
일설에 의하면 인스타 같은 것이 발전하면서 고급스러운 라이프를 보여주는 인플루언서들이 ‘나 이렇게 고급스러운 것을 먹고 다닌다!’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퍼졌다는데, 참으로 개뿔이다.
이게 퍼지면서 한우 오마카세, 스테이크 오마카세, 분식 오마카세, 커피 오마카세…. 등등, 별 거지 같은 오마카세까지 등장했단다.
그런데 대체 분식 오마카세는 뭐여?
순대를 썰어줄 때, 아줌마가 제멋대로 내장이고 간이고 뭐고 막 섞어서 주면 그게 분식 오마카세인가?
“오빠! 무슨 생각해?”
“으, 응? 아니야, 가자!”
“칫! 얼버무리기는?”
“…….”
소미야, 네가 아무리 내 친동생이라지만, 어떻게 순대 오마카세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니?
슬슬 걸어서 간 돼지갈빗집은 역시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아니면 퇴근 시간이 겹쳐서 그런지는 몰라도 손님이 가득했다.
“저, 손님. 죄송합니다만 룸은 예약이 다 차 있어서 홀밖에 자리가 없는데….”
“네? 그럼 홀에서 먹지요.”
“그러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왜요? 홀은 자리가 좋지 않나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 왠지 홀에서 드실 분들이 아닌 것 같아서요.”
“…….”
홀에서 먹는 사람은 따로 있나?
그리고 우리가 어디 이상하게 차려 있었나?
황당하여 나와 소미의 차림새를 봤는데, 나는 그저 평범한 정장 수트 차림이고, 소미 역시 오피스룩이다.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데?
물론 내 허우대가 좀 잘났다는 것하고 소미가 웬만한 걸그룹이나 여배우 싸다기 후려갈길 정도로 이쁘다는 것은 있었지만.
“우리가 어디 이상하냐? 아무리 봐도 평범한 직장인 차림인데?”
“에이, 오빠도 참? 오빠 때문이지 뭐.”
“왜 나 때문인 거냐?”
“전에도 말했잖아? 오빠 카리스마 장난이 아니라고.”
“에이, 갈비 먹으러 와서 카리스마는 무슨….”
“얼레? 그게 아니라니까?”
“그냥 수트가 좀 고급이라서 그런가?”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마셔. 저 일하시는 분을 낮춰 보는 것은 아니지만, 오빠 수트가 몇천만 원짜리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 오빠, 저기 화장실 가는 것 같은 남자 보이지? 딱 오빠 또래 같은데?”
“응, 저 사람은 왜?”
“저 남자에게는 좀 미안한데, 저 남자에게 오빠 옷을 입힌다고 뭔가 있어 보일 것 같아?”
“흐음….”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니었다.
그런데 저 남자는 대체 무슨 죄냐?
“그거 보라고, 하여간 오빠 요즘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가끔은 무슨 후광이라도 비추는 것 같아.”
“후광은 개뿔! 그런 놈이 사귀는 여자도 없냐?”
“…….”
내 말이 맞잖아?
“아! 몰라! 하여간 오빠는 수트빨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뭔가 있는 사람같이 보여. 다른 사람들은 그런 소리 안 해?”
“뭐, 비슷한 일일 있기는 했는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의 만남이 생각났다.
그리고 제프리 형의 말도.
이거 아무래도 염주의 공능이 성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일단 배가 고프니 밥이나 먹자.
“오오! 이 집 갈비 괜츈한데?”
“그지? 그지?”
“응, 맛있다. 자, 그러면 건배!”
짠!
“크으!”
“캬!”
갈비는 정말 맛있었다.
이게 무슨 벽제식 갈비라고 하는데, 과하게 달지 않게 양념이 되어있으면서 감질나는 것이 여간 맛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빠.”
“응.”
“오빠 진짜 장가 안 갈 거야?”
“쿨록! 쿨록!”
“에이, 더럽게! 다 튀었잖아?”
“임마! 누가 안 가고 싶어서 이러고 있냐? 못 가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말고. 오빠가 돈이 없어, 아니면 인물이 못났어? 왜 여자가 없어?”
“…….”
누가 아니라니.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네가 왜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고 난리야?”
“어머머? 내가 신경 안 쓰면?”
“어흠! 하여간 넌 신경 쓰지 마. 오빠가 알아서 할 거니까.”
“내 친구라도 소개시켜 줘?”
“미쳤냐? 너랑 나랑 나이가 몇 개가 차이 나는데?”
띠동갑을 넘어서 한 살이 더 많다.
내가 무슨 애를 키울 일도 없고 말이다.
“오빠 정도면 더 차이 나도 괜찮은 거 아니야?”
“시끄러워! 가뜩이나 엄마도 스트레스 줘서 한국 들어오기 싫구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엄마가 오빠 중매 자리 알아보는 거 알어?”
“뭐? 진짜야?”
“응, 얼마 전부터 계속 알아보시던데?”
“에이, 진짜! 나하고 약속해 놓고선!”
“올해 안에 못 가면 엄마가 나선다는 약속?”
“엄마가 그것도 너에게 말했냐?”
“그럼! 우리 모녀는 서로 숨기는 것 없단 말이지.”
“…….”
아흑, 환장합니다요.
진짜 왜들 이러는 거야?
가뜩이나 얼마 전에 옹녀에게 물린 내상이 아직도 낫지 않았거늘.
“대체 내가 누구라고 하고서는 중매쟁이에게 알리는 건데?”
“뭐라고 알리기는? 미국에서 사업을 한다고 하는 거지.”
“설마, 카르마 이름을 대고 하시는 것은 아니지?”
“에이, 대체 엄마를 어떻게 보는 거야?”
“하아, 그나마 다행이다.”
“적당히 몇백억 정도 부자라고 하는 모양이더라고. 그런데 사진이 막 쏟아지는 것 있지?”
“응? 난 고졸인데?”
“그게 좀 흠이라고 하는 곳도 있는 것 같던데, 엄마가 그러면 불같이 화를 내거든….”
“…….”
그러실 만하지.
엄마와 아빠의 아킬레스건이니까.
아마도 평생을 가지고 가실 상처다.
그걸 쑤셨으니, 당연히 화를 내셨겠지.
“하여간 넌 신경 쓰지 마. 엄마에게도 내게 따로 말할 테니까.”
“안 궁금해?”
“또 뭐가?”
“선 들어온 여자들이 말이야.”
“네가 봤어?”
“그럼? 우리 오빠 선인데?”
“하아,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내가 전부 퇴짜 놓아 버렸지.”
“응? 네가? 네가 왜?”
“에이, 전부 성형 괴물이든가 아니면 사진에 뽀샵질로 떡칠을 해놓았더라고.”
“그, 그래서?”
“오빠.”
“응, 소미야.”
“나는 말이야, 우리 오빠 장가갈 여자가 나보다 못생긴 것들은 싫어. 내가 그렇게 못 하게 할 거야.”
“하아….”
소미야, 너보다 이쁜 여자를 찾으라면 나보고 그냥 혼자 늙어 죽으라는 소리잖아.
내가 너무 이쁜 여동생 때문에 미친다, 미쳐.
그렇게 소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3차까지 거나하게 먹고 마셨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12시를 향하고 있어서 자리를 정리했다.
“소미야, 가자. 엄마 전화 와서 자꾸 뭐라고 하신다.”
“웅, 오빠.”
서둘러 밖에 나왔더니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벤츠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 리무진으로 일명 김정은 차라고 알려진 바로 그 차다.
정은이 그 자식은 돈도 별로 없는 자식이 하필 나와 같은 차를 타서 찜찜하게 만드는 거야?
그게 짜증이 나서 다른 차를 타고 싶지만, 사실 최상위 리무진 시장에서는 벤츠가 거의 독점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방탄 사양으로 별도로 주문하기에 더욱 그랬고.
그냥 타자.
누가 나보고 김정은이라고 손가락질할 것도 아닌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길은 원활하게 뚫려 있었고, 소미와 나는 편하게 거의 드러눕다시피 하여가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우우우웅! 왜에에엥!
갑자기 뒤쪽에서 고급 스포츠가 특유의 굉음이 들려와서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서도 차 두 대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것들 뭐냐?”
그게 내 마지막 말이었다.
레이싱이라도 하듯이 무섭게 달려오던 납작한 스포츠카 두 대.
그 빌어먹을 놈들이 칼치기를 요리조리 하다가 결국 둘이 부딪혔고, 그중 한 대가 균형을 잃고 우리 차를 들이박고 튕기면서 우리 선두 차까지 추돌했다.
“엇! 저 미친놈들이!”
“어어어!”
쿠웅!
“어멋!”
나는 기겁을 하는 소미를 내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안았고, 우리 차는 스포츠카와의 충돌로 균형을 잃고 빙글 돌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박고 멈춰 섰다.
쿠쿵!
“소미야! 소미야! 괜찮아?”
“웅, 오빠. 나는 이상 없어.”
“정 비서는요?”
“괘, 괜찮습니다. 회장님은 어떠십니까?”
“나도 이상 없어요.”
다행히도 차가 워낙 육중하다 보니 크게 다친 사람 없이 이 정도로 끝이 난 것 같았다.
후미의 차에서 경호원들이 달려왔다.
“회장님!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괜찮아. 그보다 우리 선두 차는?”
“잠시 이대로 계십시오.”
경호원 둘이 우리에게 붙었고, 나머지 둘이 선두차로 갔다.
그런데, 선두 차가 재수가 없었는지 전복이 되었다.
“뭐야? 전복되었잖아?”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비켜 봐요! 우리 사람이 다쳤잖아!”
나는 경호원의 만류에도 차에서 내려서 우리 선두차로 향했고, 상황을 물었다.
“어때요! 다들 괜찮아요?”
“안전벨트를 하고 있어서 다치기는 했지만, 일단 괜찮은 것 같습니다. 무리하게 우리가 꺼내려다가 2차 부상이 염려되니, 일단 119 구조대를 기다리겠습니다.”
“아이 씨!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성질이 나서 역시 가드레일을 처박고 있는 스포츠카로 갔다.
거기에도 우리 경호원이 먼저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뭐예요? 이 자식들?”
“요즘 부잣집 자식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공도 레이싱 같습니다.”
“미친 것 아니야? 무슨 공도에서 레이싱을 하고 지랄이냐고?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 운전자 상태는요?”
“차가 심하게 파손된 것 치고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놈들 만취입니다.”
“예? 만취라니?”
“술 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운전자가 인사불성이고요.”
“아니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어? 술 처먹고 공도에서 레이싱을 했단 말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
“…….”
기가 막혀서 어이가 없었다.
음주운전이야?
그것도 그 상태에서 레이싱을 하고?
아니 죽으려면 어디 가서 뛰어내리든가 하지, 왜 남까지 죽이려고 하냐고?
우리 차가 육중했으니 망정이지, 아까 그 충격 정도면 웬만한 차들은 치명적인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살인 행위나 마찬가지잖아?
“상황 정리되는 대로, 이 새끼들에 대해 보고하세요.”
“네, 회장님.”
나 완전 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