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내가 좀 신기가 있거든?
“연락해서 다시 합의하자고 하세요.”
“합의를 해주실 겁니까?”
“당연히 해야지요. 피해자인데요.”
“어….”
서진수 변호사는 의외라는 듯이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서 박홍렬 변호사가 한마디 하였다.
“자네 처음이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우리 강 회장님은 한다면 하시는 분이라네”
“예?”
“방향이 좀 엉뚱해서 그렇지….”
“풉!”
“푸하하하!”
“하하하!”
서 변호사 혼자만 어리둥절하고 남 부회장과 박 변호사, 양 팀장과 장 비서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하여간 자네는 다시 약속을 잡아. 그쪽에서는 얼씨구나 할 것이야.”
“네, 알겠습니다.”
“대신에 조건을 거세요.”
“뭐라고 말입니까?”
“그놈들 퇴원했나요?”
“전응식은 애초에 입원하지도 않았고, 조형기는 이틀 후에 한다고 합니다.”
“그럼 사흘 후에 보자고 하세요. 그놈들하고 그놈들 아비들도 같이 말입니다.”
“전진동 사장하고 조만원 의원까지 말입니까?”
“네, 못 나오겠다고 하면 합의는 없을 것이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하세요. 인터넷에다가도 사고 영상과 지금까지 있었던 일 모두 쫘악 뿌린다고 하면 나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아! 대동일보는 회장 놈이 나오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흐음, 손자 사랑이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한번 밀어붙여 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려요.”
사흘 후, 나는 서진수 변호사, 그리고 장 비서와 함께 시내에 있는 대동일보 사옥으로 향하였다.
남정원 부회장과 박홍렬 변호사가 악착같이 쫓아 온다고 하는 것을 간신히 떼어 놓고 말이다.
남 부회장은 얼굴이 꽤 팔려서 당연히 알아볼 터인데, 김새잖아?
박홍렬 변호사도 카르마 홀딩스 법무 담당 사장과 정화재단 고문인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어서 안 된다.
일 층 인포 데스크에서 온 용건을 말하자, 곧장 직접 안내를 해주었다.
그렇게 어느 회의실 같은 곳으로 들어가니, 딱 봐도 얼굴에 변호사라고 쓰인 40대 초반 정도 되는 놈이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약속한 시간을 맞추었기에 시각은 딱 약속 시각이었는데 말이다.
“김 변호사님? 다른 분들은?”
서진수 변호사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아, 서 변호사님. 여기서 잠시 기다리세요. 다른 곳에서 말씀 중인데, 곧 오실 겁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우리 회장님을 모시고 왔는데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 젊은 사람이 회장이에요?”
“…….”
이건 명백한 개무시다.
이것들이 장난을 치나?
급기야 장 비서가 폭발하였다.
“말조심하세요! 이분이 누군 줄 알고서 함부로 말하는 겁니까?”
“에이, 왜들 그러세요? 그쪽에서 억지를 부리는 것을 어렵게 말씀드려서 다들 모셨는데? 그리고, 무슨 회장인 줄은 모르겠지만, 까놓고 말해서 회장이라고 다 같은 회장은 아니잖아요?”
“뭐요!”
“그만 하세요.”
나는 장 비서 뚜껑이 열리려는 것을 만류하고 나섰다.
“맞는 말이네, 회장이라고 다 같은 회장은 아니지요.”
“하하하! 그래도 젊은 사람이 경우가 있네.”
“내가 경우가 좀 많지.”
“그래…. 응? 말이 좀….”
“왜? 내 혓바닥이 좀 짧나?”
“아니 이 사람이?”
“야!”
“야?”
“어디 거지발싸개 같은 찌라시나 발행하는 영감탱이 뒤 닦고 다니는 머슴 놈이 나서지?”
나이도 나보다 몇 살 많아 보이지도 않는 놈이 말이다.
대충 보아하니 어중간한 변호사 정도를 시켜서 우리 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사람 잘못 본거지.
“이, 이….”
“머슴은 닥치고, 장 비서님.”
“네, 회장님.”
“지금부터 시간 재세요. 딱 2분 이내에 안 나오면 돌아가서 다 터트립니다. 유튜브에 영상 풀 인원들 대기 중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간 재겠습니다.”
“당신들 지금 무슨 짓을….”
“10초 지났습니다. 남은 시간 110초!”
“아니….”
“115초!”
“…….”
딱 3초 정도 나를 노려보던 머슴은 이내 문을 열고 나갔다.
“이거 송구합니다. 제가 미리 단단하게 단속을 해야 했던 것인데….”
“에이, 서 변호사님도? 어차피 놈들이 곱게 나오지는 않을 것을 알았는데 뭘 그러세요?”
“그럼 2분 지나면 진짜 가실 겁니까?”
“당연하지요. 이놈들 얼굴이 죽상 되는 꼴을 못 봐서 아쉽기는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내렸습니다. 나는 대동을 가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어요.”
“휴우! 이제야 박 판사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하하하! 제가 좀 뒤끝이 있습니다. 장 비서?”
“35초 남았습니다.”
“1초라도 늦으면 그냥 일어섭시다.”
“네, 회장님. 21초! 15! 10! 5!”
덜컥!
정확히 5초가 남았을 때 문이 열리면서 여러 명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페라리 조와 애스턴 마틴 전, 그리고 이 자식들 애비들인 조만원과 전진동.
마지막으로 변호사들과 70대 노인이 들어왔다.
대동일보 회장 전일만이다.
진짜 손자 놈을 아끼기는 아끼는 모양이다.
이런 거물이 다 터트린다고 하니까는 친히 자리를 빛내 주시는 것을 보니.
“…….”
“…….”
모두 자리에 앉았는데도 침묵만 흘렀다.
특히나 전일만은 몹시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김 변호사라는 놈의 선배쯤으로 보이는 50대 후반의 아재가 입을 열었다.
“그쪽 요구대로 모두 모였습니다. 피차 좋은 일로 보는 것도 아닌데, 간단히 합의하시고 끝내는 것으로 합시다.”
이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하자는 자세인가?
그래 좋은 자세다.
내가 원하는 바이니까.
“누구세요? 변호사세요?”
“끙, 나 임진태 변호사요. 서울 중앙지검 제1차장검사로 있었소. 거기 서 변호사는 나를 알 텐데?”
“네, 압니다. 7년 전인가 여러 혐의로 내사를 받다가 옷을 벗으신 것으로 말입니다. 우리 검찰이 이게 참 문제지요. 제 식구 감싸기가 종종 도를 넘으니까요. 그렇게 조직을 더럽히고 나가서 어디 계신가 했는데, 여기 계셨군요?”
“뭐, 뭐? 아니 이….”
호오?
우리 서 변호사도 제법 하는데?
하긴, 카르마를 백그라운드로 두고서 이렇게 못하면 나와 같이 일할 자격이 없지.
어쨌거나 저런 머슴 나부랭이와 드잡이할 이유는 없었다.
서진수 변호사 말을 들어보니 현직에 있을 때도 꽤나 더럽게 산 모양인데 말이다.
“전직 차장검사님, 지금 그게 가해자 측의 태도로 맞는다고 생각해요?”
“이봐요. 젊은 사람이 어디서 코인 같은 것으로 횡재라도 한 것 같은데, 여기 계신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알고 이렇게 건방을 떨어요? 긴말할 것 없이 그쪽 조건대로 회장님까지 이런 불편한 자리에 모셨으니까, 적당히 합의 조건 말하고 없었던 일로 합시다. 젊은 사람이 앞날도 생각해야지?”
“호오? 내 앞날을 걱정해주시니 감사한데, 싫다면요?”
“쯧! 대한민국에서 대동의 눈 밖에 나서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시나?”
“푸하하하!”
놀고들 있구나.
“아니 이 사람이 정말?”
“아, 미안합니다. 너무나 따뜻한 충고에 감동이 해일처럼 밀려와서 말이지요. 알았습니다, 조건을 말씀드리지요.”
“끙! 어서 말해요.”
“첫 번째로 저놈들은 법대로 처벌할 것을 요구합니다. 뒤에서 온갖 약을 치고 다니는 것 같던데, 개수작하지 말고 말입니다.”
“뭐, 뭐? 아니….”
“시끄럽고 내 말 마저 들어요. 그리고 조만원 의원은 의원직 사퇴하세요.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새끼 감싼다고 더럽게 압력이나 넣고 다녀? 당신은 국회의원 자격 없으니까, 바로 사퇴하세요!”
“…….”
“…….”
조만원은 물론이고 대동 회장과 사장까지도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든가 말든가.
“마지막으로 대동! 언론? 놀고들 있네. 딱 하나만 요구하지. 당신들 신문 1면에 사과 기사를 써서 올려! 전면으로 말이야! 쓰레기 손자, 아들놈을 보호하겠다고 아주 그냥 경찰이고 검찰이고 할 것 없이 겁나게 약을 쳤더구먼? 자칭 민족정론지에서 그래도 되는 겁니까?”
“…….”
“…….”
왜들 말이 없어?
단체로 실어증에 걸렸나? 다행히도 실어증은 금방 치료가 된 것인지, 가운데에 앉아 있던 대동 회장 전일만이 입이 열렸다.
“자네 미쳤나?”
“그래 보입니까?”
“그래 보이네. 그것도 심하게 미친 것 같군.”
“진짜로 내가 미치는 것 한번 보실래요?”
“허허! 이 친구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르나?”
“잘 모르겠는데요? 알려주시겠습니까?”
“이봐, 젊은 친구. 무엇을 믿고 이리도 방자하게 구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앞으로 자네에게 닥칠 불행에 대하여 알려 주지.”
“저런! 예언에도 일가견이 있으신가 봅니다?”
“하하하! 그래, 내가 관상도 좀 보고 예언도 좀 하지. 자네가 무슨 사업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조만간 자네 회사에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칠 것이네. 그리고 뒤를 이어서 경찰과 검찰에서도 자네는 물론이고 자네 가족들에게도 방문하여 자네도 몰랐던 죄를 물을 것이야.”
“아니 무섭잖아요?”
이 개 같은 늙은이가 내 가족까지 들먹여?
네가 선을 넘는구나.
“그게 끝이 아니라네. 우리 대동일보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사 기자들이 자네와 자네 일가에 대하여 대서특필할 것이야. 물론 상당히 좋지 않은 쪽으로 말이지.”
“호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네. 그런다고 기자가 처벌받는 경우는 없거든? 우리는 공익을 위하여 기사를 썼다고 하면 그만이고, 정정 보도를 하더라도 그때는 보는 사람도 없거니와 이미 최악의 범죄자로 낙인찍혀 있을 터이니.”
“정말 불행한 일이군요.”
“그래, 불행한 일이지. 물론 이제라도 사죄하고 내 손주 놈과 있었던 일에 대하여 조용히 하겠다고 약속하고 이 방을 나가면 그 불행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야. 어떤가? 내 예언이?”
“하하하!”
나는 웃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쌍놈의 늙은이는 이런 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였을까?
아마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것도 염주의 뜻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쓰레기를 치워서 우리 세상을 좀 더 깨끗하게 해달라는 뜻이 아닐까?
이것도 선업인 것이다.
“이봐, 영감!”
“뭐, 뭐 영감?”
“감히 누구에게!”
“미친놈이구나….”
알고 보니 참으로 따뜻한 사람들이 아닌가?
저렇게 내 인생을 걱정해주니 말이다.
“그래, 영감. 세상을 참으로 좆같이 산 모양인데, 나도 예언 하나 해볼까? 꽤나 적중률이 높기로 소문이 났는데?”
“이, 이놈이 정말….”
“이제 앞으로 영감과 영감 일가와 사업체에 닥칠 불행에 대해서 예언해 주지!”
“어디 마지막으로 마음껏 주절거려 보아라.”
“고맙네? 첫 번째 당신네 대동일보 경영이 엄청 어려워질 거야. 왠지 모르게 대형 광고주들이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정말 미친놈이군….”
“아, 아직 안 끝났어. 그리고 뒤를 이어서 어떤 의인들이 당신네 일가가 횡령하고 회계를 조작한 사실을 증거와 함께 인터넷에 마구 올릴 것 같은 느낌도 들어. 물론 당신 둘째 아들내미가 경영하는 건설사와 유통회사를 포함해서 말이지? 그리고 그 밖에 당신 일가들이 저지른 다른 부정도 같이.”
“허어….”
“마지막으로, 이건 예언이 아니라 팩트인데, 저 쓰레기 새끼들이 한 짓은 역시 인터넷에 뜰 거야. 게다가 당신이 줄을 댄 그 윗선에서 수사도 개시할 것이고.”
“말 다 했나?”
“응, 다했어.”
“그러면 이만 나가주겠나?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미친놈을 상대하려니 좀 힘들군.”
“10분만 더 시간을 주면 안 될까? 그 정도 시간이면 내 예언이 적중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만약에 그 안에도 내 예언이 적중하지 않으면 대신에 당신 손자놈과는 합의한 것으로 해주지.”
“10분? 알았네. 10분 정도야 기다려 주지. 약속은 꼭 지키게.”
“물론이지! 흐흐흐!”
나는 말을 마치면서 장 비서에게 눈짓하였는데, 장 비서는 바로 핸드폰의 문자 발신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놈들이 나를 노려보는 가운데,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이에 약속한 10분이 다 되어 가는데 내가 예상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거 초조해지게 왜 이래?
빨리빨리들 안 움직이나?
드디어 스톱워치의 시간이 9분 30초를 가리킬 때였다.
“안타깝군. 10분이 거의 다 되었네. 그럼 이만….”
쾅!
갑자기 회의실 문짝이 뿌셔져라 열리면서 중년의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이게 무슨 짓이냐? 손님들도 있는데!”
“회,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어허! 무슨 일인데….”
“사성 그룹에서 우리 대동일보를 비롯한 모든 계열사의 광고를 끊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뭐,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사성이 왜 우리 광고를 끊어!”
“사성뿐만이 아닙니다! 현도 그룹에서도 연락이 왔고, 은성 그룹에서도 광고를 끊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뛰어 올라올 때 계속 다른 그룹들에서도….”
“이, 이럴 수가!”
나는 싱그럽게 웃어 주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좀 신기가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