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이것도 엄연한 선업이다.
언론사는 국영과 공영이 아닌 이상 광고를 먹고 사는 존재다.
특히나, 일간지는 세상이 디지털화되면서 가판대와 구독으로 판매되는 종이신문은 극단적으로 감소했다.
얼마 전 한국에 있을 때 기사를 보니, 1996년 종이신문 열독률은 85.2%로 국민들 열 중의 거의 아홉 명이 종이신문을 보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명만이 종이신문을 읽는다고 한다.
구독률로 따지면 1996년 69.3%에서 2019년에는 6.4%까지 떨어졌다.
즉,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사의 주 수입원이 광고이기는 하지만, 광고가 끊어졌을 때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종이신문 판매도 이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과거 독재 시절에 정권의 탄압으로 광고를 받지 못했을 당시 구명줄이었던 유료 구독과 가판대 판매가 말이다.
그렇게 언론사 명줄을 쥐고 있는 광고가, 그것도 사실상 광고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 대기업의 광고가 줄줄이 끊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신줄을 놓을 수밖에.
그러는 와중에도 대동 직원들은 계속하여 비보를 전달했다.
“화나 그룹에서도 광고를 중단하겠답니다!”
“TK 텔레콤을 비롯한 TK 그룹 전체도 광고 중단!”
“로체 그룹 광고 중단!”
“뉴월드 그룹 중단!”
5대 그룹에 이어서 10대 그룹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아아악! 진한금융그룹 광고 중단! 유리금융그룹 광고 중단! 두나금융그룹 중단…!”
“급보입니다! 우리 주거래 은행들에서 더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이것은 대동건설 등의 우리 대동 계열사에도 전부 적용하겠답니다!”
“…….”
광고계의 큰손인 금융그룹들이 줄줄이 광고 중단을 선언했다.
금융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오히려 더 쉬웠다.
현재 정화재단의 자본금이 무려 30조 원이 넘는다.
그런 엄청난 자금을 한곳에 몰아넣을 수는 없기에 적절하게 여러 금융사에 배분하여 운용하고 있다.
그리고 카르마 홀딩스.
최소한의 이윤만 챙기겠다고 한 코로나 백신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돈을 갈고리로 긁고 담는 상태고, 남정원 부회장을 영입하면서 투자하기 시작한 회사들도 적지 않았다.
아예 100% 인수한 아시안 항공, 대유건설, 대유조선, KAI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한 2년 사이에 한국 투자가 늘면서 투자금과 별도로 굴리는 현금 자산만 어느새 수십 조에 이른다.
이러니 금융사 들이 우리 눈치를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규모가 좀 되는 대기업치고서 카르마 눈치를 보지 않는 회사는 없었다.
관계가 전혀 없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미국에서 일부 자금만 돌려도 초토화시켜버릴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카르마는, 그리고 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을 음으로 양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괴물이.
한바탕의 폭풍이 몰아치고 난 후, 잠시 침묵이 흐르다 대동 회장 전일만이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입을 열었다.
“너, 대체 누구냐? 정체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아직도 모르겠나?”
“대체 누구냐고!”
“누군 누구겠나? 한국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 많나 보지?”
“그게 무슨 소리지?”
그때, 여태껏 찌그러져 있던 조원만이 무슨 눈치를 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외쳤다.
“서, 설마!”
“호오? 이게 알겠나? 조 의원?”
“당신! 설마…. 카르마? 설마 그 강철식이 이 강철식?”
“…….”
이 자식은 말을 해도 그 강철식이 이 강철식이 뭐냐?
무슨 간장 공장 공장장이 된장 공장 공장장도 아니고.
“카, 카르마라니? 여기서 카르마가 왜 나오나? 조 의원!”
“전 회장님!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저자! 아니 저분이 카르마 홀딩스와 미국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주인인 알렉스 강이란 말입니다!”
“무, 무슨 소리야, 그게? 강철식이라면서? 게다가 알렉스 강은 거의 미국에서 지내지 않나?”
“그 강철식이 바로 알렉스 강이라고요! 저도 미국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아서 강철식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도 설마 한 것이고 말입니다!”
“마, 말도 안 돼….”
대동의 전일만 회장은 이제야 자신이 물고 빨던 손주가 몰고 온 불행한 사태를 깨달았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그런 전 회장을 내버려 두고, 조만원이 정중하게 내게 다시 물었다.
마치 확인 사살이라도 하는 것처럼.
“당신이 알렉스 강 회장님 맞습니까?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주인?”
“네, 내가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주인, 알렉스 강입니다.”
“…….”
“…….”
장내는 다시 한번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나는 그 침묵을 한껏 즐겼다.
그래, 바로 이거야.
신분을 숨기고 있다가 알릴 때의 이 쾌감!
이게 사실은 양판소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 아닌가?
‘힘을 숨긴’ 어쩌고 하는 것들 말이다.
힘을 숨긴 유부남이 어쩌고, 힘을 숨긴 아줌마가 어쩌고, 힘을 숨긴 도우미가 어쩌고 등등.
이거 자꾸 이런 것에 맛을 들이면 안 되는데….
앞으로는 좀 자제하자.
이것도 어쩌다가 한두 번이지.
“대체 왜 신분을 숨기고 계셨던 겁니까? 우리가 알았다면….”
“알았다면? 내게 달려와서 머리라도 조아리시려고? 그냥 어디 조그만 회사를 하는 강철식이면 깔아뭉개고,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주인 알렉스 강이면 굽신거리는 것이 당신들 정의입니까?”
“…….”
“처음에는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조용히 처리하라 지시하여 우리 경호팀장이 내 신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는 짓을 보니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더군요?”
“그, 그게 아니라….”
“저 두 놈이 오밤중의 공도에서 레이싱을 벌였어요. 그것도 만취 상태로! 우리 차가 유난히 튼튼한 차였으니 망정이지, 누구 하나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대형 사고를 쳤다는 말입니다! 특가법상의 중범죄예요. 그런데, 그걸 당신들 힘으로 덮으려 해요?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
할 말도 없을 것이고, 할 말이 있더라도 내 신분을 알게 된 이상 입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늙은 생강이 어떻게든 해보려는지 입을 열었다.
“강 회장님, 이 늙은이가 죽을 때가 되었나 보오. 손자 사랑에 눈이 멀어서 결례를 했습니다. 이렇게 사죄를 드릴 터이니 용서해 주시오. 이놈들은 법에 따라서 제대로 처벌을 받게 하리다.”
“하, 할아버지….”
“넌 닥치고 있어! 네놈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게 생겼잖으냐!”
“…….”
허어!
지랄을 하고 계시네.
이젠 와서 용서를 빌어?
그럼 내가 아, 네 그러세요, 알 줄 아나?
“늦었습니다. 이젠 내 방식대로 모두 처리하겠습니다.”
“강 회장님! 우리 대동이 회장님의 힘이 되어 드리리다!”
“그딴 힘 필요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장 비서!”
“네, 회장님!”
“갑시다!”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데, 전일만이 다시 물었다.
“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가 이번 기회에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니까, 평생을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면서 참으로 더럽게들 살았더구먼?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했으니, 이젠 본인들 눈에서 피눈물을 흘릴 차례 아닙니까?”
“…….”
“각오들 하세요.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아! 노파심에서 말하는데, 혹시라도 이번 상황을 모면하겠다고 개수작을 부리면 아주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릴 테니까 그리들 아세요. 뭐 자신 있으면 엉겨 보든가.”
솔직히 엉겼으면 좋겠다.
진짜로 죽고 싶게 만들어 줄 생각이니까.
***
“대동은 이제 끝이 난 것 같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거의 모든 회사에서 대동일보와 대동 TV 등 그룹 내 언론사의 광고를 끊고 있습니다. 이게 일시적이면 어떻게든 버텨보겠지만, 회장님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다음 날, 마곡 사옥의 내 집무실에서 남정원 회장이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하여 보고했다.
“우리가 손을 쓰지 않은 회사에서도요?”
“네, 회장님. 재계 전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고 합니다. 이번에 카르마에서 대동을 작심하고 제거하려고 한다고요. 그래서 우리의 협조 요청을 받지 않은 일반 회사들까지 전부 광고를 끊고 있다고 하네요?”
“허어! 참! 이거 뭐 고맙다고 해야 하나?”
“세상이 그런 거지요. 힘이 있을 때는 절절매지만, 약점을 보이자마자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겁니다. 그만큼 우리 카르마가 우리 생각보다도 알게 모르게 한국 재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소리기도 하고요.”
어쨌든 의외의 소득이었다.
현재 우리의 위상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교만해서도 안 되겠지.
우리가 욕하고 싫어하던 놈들하고 똑같은 괴물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카르마가 명분도 없이 갑질을 하거나, 우월한 지위를 악용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물론입니다, 회장님. 꾸준히 직원들을 교육하고, 저부터도 자주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진심입니다. 구글이 탐욕스러워지지 말자는 슬로건을 내걸고서,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점점 탐욕스러워지잖아요? 우리 정말 그렇게 되지 말자고요.”
“하하하! 저도 회장님의 그런 마인드가 너무 좋습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그래요, 하여간 지금 상황은요?”
“어제부터 유튜브와 트위터, 그리고 각종 포털에 사고 영상이 도배되고 놈들이 약을 치던 것을 모두 풀었습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난 상황입니다. 여론이 무섭게 들끓고 있고 방송과 다른 언론에서도 뒤늦게 대서특필하고 있으니까요.”
“정말 불난 집이겠네요.”
“네, 회장님.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놈들과 접촉한 경찰과 검찰, 그리고 판사들까지 전부 내사에 들어갔고요.”
“진짜 어이가 없는 것이, 경찰과 검찰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사도 제대로 안 했는데 판사까지 구워삶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대체 어떻게 사건 배정까지 손을 쓰는지 모르겠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도 사법부는 그나마 좀 나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기소가 되었어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을 거라는 말이다.
어떻게 썩어도 이렇게 썩었을 줄이야.
“관련된 놈들 자료는 모두 정부에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으로 넘겼으니, 조만간 그놈들에게 매수된 공무원들은 사법 처리 될 겁니다. 비공식적으로 받은 당국자도 그렇게 약속했고요.”
“우리에게 불똥이 튀는 일은 없겠죠?”
“하하하! 그럴 만한 자료는 넘기지도 않았습니다.”
비공식적으로 넘겼다는 말은, 우리가 도청이나 해킹으로 획득한 증거들을 말하는 것이다.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정부에서 놈들이 불법을 저지른 증거를 찾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니까.
“놈들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양쪽 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온갖 연줄을 전부 동원하고 있습니다만, 이미 침몰하고 있는 배에 누가 타려고 할까요? 괜한 헛수고지요.”
“그놈들 참, 내가 그렇게 경고했는데….”
“어차피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판사판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줘야겠네요.”
“하하! 그렇게 해야지요.”
평생을, 아니 선대부터 자자손손 남들의 위에 서서 온갖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사법체계마저 매수하거나 권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야말로 법 위에 살던 놈들이다.
이번 기회에 건강 급식도 챙겨 먹으면서 참회라도 좀 하려무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운이 좋게 나에게 걸리지 않은 다른 놈들도 이번 일을 보고 조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세상은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겠지.
이것도 엄연한 선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