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네가 그걸 왜 배워?
“오랜만이다, 알렉스.”
“그러게 말이다. 바쁘냐, 일론?”
“나야 늘 바쁘지. 너 같이 투자로 쉽게 돈을 버는 놈하고는 다르다고. 나는 진짜 경영자니까.”
“너나 잘하세요. 제발 헛소리나 하고 다니지 말고! 내가 네가 입만 열면 불안해 죽겠다. 트윗질 좀 적당히 하고!”
7월 초.
미국으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머스크 놈하고 술을 먹는 중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예전 같지는 않아서, 은근히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머스크와는 만나면 항상 폭음을 하게 되는데, 이게 언제부터인가는 경쟁이 되어서 누가 먼저 나가떨어지는가를 내기라도 하는 것 같은 유치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놈하고 약속이 잡히면 나가기 전에 박명 707 같은 드링크제까지 미리 마시고 나간다.
이상하게 지기 싫은 놈이라서.
“트윗질이라니? 어디까지나 미국 시민으로서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것뿐이라고?”
“네가 좋아하는 경영이나 잘하세요. 쓸데없이 여기저기 쑤시지 말고.”
“허어! 너는 미국 시민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데, 여긴 미국이야! 미국! 미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적당히 좀 하라고! 중국 똥구멍을 빠는 것도 좀 적당히 빨아대고 말이야.”
“알렉스, 너 테슬라의 대주주로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내가 중국을 빨고 싶어서 빠냐? 우리 테슬라 차 중국 매출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그래?”
“그걸 누가 모르냐? 적당히 하라는 거잖아! 적당히!”
테슬라의 중국 매출 비중은 상당하다.
1위야 당연히 4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이지만, 중국 매출도 30% 내외를 차지하면서 거의 3분의 1의 포지션에 육박했고, 게다가 생산기지도 중국에 있다.
이러니 머스크 놈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찬양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중국에 가서 춤추고 염병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고.
원래 관종인 자식이니까.
하지만 이 미친놈은 너무 나갔다.
며칠 전인 7월 1일, 이 자식은 중국 공산당 100주년을 축하한다면서 노골적으로 중국을 찬양하여 미국 내에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현재 중국은 습근평이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주변국을 위협한 탓에 사실상 미국의 제1의 적으로 부상한 나라다.
트럼프는 물론이고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로 바뀌어도 중국을 두들겨 패야 한다는 기조는 더 강해지고 있는 상태였다.
한마디로 사실상 적국을 찬양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이봐, 알렉스. 아무리 너라도 그런 식의 말을 나에게 하면 안 돼!”
일론이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었다.
하아, 이 병신을 어찌할꼬.
“야, 일론.”
“왜?”
“너 도대체 국제 정세 같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거냐? 지금 미국은 물론이고 서방 세계의 중국에 대한 분위기가 어떤지 몰라? 너무 커서 함부로 못 할 뿐이지 사실상 적국이나 다름없는 것을 모르냐고.”
“나도 알아. 하지만 나는 순수한 민간 기업인이라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왜 상관없어? 미국이 계속 중국 제재를 하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야? 너 그러다가 눈 밖에 나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리고 중국 시장이 언제까지 테슬라에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중국이 슬슬 테슬라를 견제하는 것을 외면하지 마. 게다가 중국 전기 자동차 업체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하는 것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간섭하지 마라.”
“하아….”
아무래도 테슬라와 이놈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전기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여 성장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언젠가는 무섭게 추격을 하는 중인 기존 내연 기관 자동차를 만들던 자동차 업계에 따라 잡힐 것이다.
아무리 자율주행 시스템 등의 기술이 현재는 앞서고 있다지만, 다른 업체라고 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자동차의 양산 품질 노하우가 기존 업체보다 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테슬라의 장점인 혁신?
그 혁신의 효과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데, 계속하여 혁신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염주의 권능으로 살펴보면 테슬라의 정점은 올겨울 정도.
계속 유지하기로 한 10%를 제외하면 모두 털어버려야겠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지.”
“무슨 말을 하려고?”
“미국 시민? 네가 미국 시민이라고? 네가 대체 언제부터 미국 시민인데? 너 남아공 출신 아니야? 네가 아무리 백인이라고 하지만, 미국이 그리 호락호락한 나라냐?”
“…….”
“잊지 마라. 너는 이민자 출신 시민권자라는 점을 말이야.”
“불쾌하군. 오늘은 이만하지.”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머스크는 심하게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렸다.
오늘 이후로 놈과 술을 마실 일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이야! 좋구나!”
“죽이지?”
“흐흐흐! 죽이네?”
오늘은 새집으로 이사하는 날이다.
제프리 형이 소개하여 석 달 전에 1억 5,000만 달러에 구매했는데, 추가적으로 보안 공사를 하고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시설 등을 제거하고 고치는 공사를 하고 오늘 입주하는 것이다.
기존의 우리 집이 있던 란초 팔로스버디스 북쪽의 해안가에 위치한 새집은 면적이 무려 2만 평이 넘었다.
30m짜리 수영장이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곳에 있었고, 침실만 20개가 넘는 대저택이다.
여기다 보안 시설을 얼마나 발랐는지, 헨리 말로는 원래는 판매가 허용되지 않는 장비까지 설치하여 백악관 못지않은 보안을 자랑한다고 했다.
여기에 그동안 협소하여 머물지 못했던 내 경호팀도 증원하여, 30명이 10명을 1개 조로하여 3조 1교대로 상주하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헨리가 강경하게 우겨서 이렇게 되었다.
“회장님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점점 비즈니스 이외의 영역에도 관여를 하시고 있고,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도 그런 행보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아닙니까?”
“뭐, 어쩌다 보니….”
“그럼 제 말대로 하세요. 좀 과하여 나쁠 것은 없습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여 바른 보안장비와 설치 비용만 무려 3,000만 달러가 넘었단다.
이거야 원.
하여간 입주를 기념하여 지인들을 불러다 파티를 열었다.
존의 식구는 물론이고, 회사의 간부들과 그동안 친하게 지낸 사람들 모두 말이다.
당연히 톰 형과 제리 등의 영화계 인사들도 왔는데, 역시나 1개 중대는 족히 될 것 같은 미녀들을 떼로 몰고 와서 나는 물론이고 이지스와 카르마의 총각들을 기쁘게 했다.
“알렉스 오빠!”
얘가 미쳤나?
뜬금없이 무슨 오빠?
“하아, 제인아. 내가 왜 네 오빠냐? 삼촌이잖아? 그리고 오빠(Oppa)란 말은 대체 누가 알려 준 거야?”
존의 딸 제인.
지금은 어느새 대학생인데, 원래도 자기 엄마를 닮아서 겁나게 이뻤는데 이제는 눈이 부실 지경으로 만개했다.
그런 초절정의 미녀가 비키녀 차림으로 내 팔짱을 껴대니 환장할 노릇이다.
얘는 내 조카나 다름없는 아인데 말이다.
“에에, 오빠도 참? 요즘 미국에서도 젊은 애들은 오빠 모르는 사람이 없어.”
“그, 그러냐?”
한류의 부작용인지, 긍정적인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그럼? 나 한국만 많이 알아. 먹방(mukbang), 대박(daebak), 언니(unni)….”
“어디서 이상한 말만 배워가지고. 한국말 배우려면 제대로 배우든가.”
“응,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나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어.”
“한국말을? 네가 그걸 왜 배워?”
“오빠는? 그래야 오빠랑 소미 언니랑, 오빠 부모님하고도 한국말로 말할 것 아니야?”
“뭐? 네가 우리 부모님하고 왜 말해야 하는데?”
소미야 우리 집에 몇 번 머물면서 친해졌으니 그렇다 치자.
제인이 대체 우리 부모님을 왜 만나냐고?
“아잉, 오빠도 참?”
“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
“오빠는 내가 싫은 거야?”
“야! 싫고 좋고 떠나서 넌 내 조카나 다름없잖아! 그리고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얘가 헛소릴 하고 있어? 너희 엄마가 알면 나 죽으니까, 저리 가라. 조오기 잘생긴 총각들 많으니까, 거기 가서 놀으렴.”
“알렉스 오빠….”
제인이 위험한 상상을 하는 것 같아서 호통을 쳤더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거린다.
아, 내가 미쳐.
얼른 장가를 가든지 해야지.
하여간 독하게 나가서 아예 딴생각을 할 여지를 없애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울어도 소용없으니까, 저리 가.”
“오빠 미워!”
“하아….”
미워(Miwo)는 또 어디서 배운 거야?
제인이 울면서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톰 형이 다가왔다.
“뭐야? 왜 저런 미녀를 울리는 거냐?”
“아, 톰 형. 미녀는 무슨, 쟤 존의 딸이야. 내 조카 같은 아이라고.”
“그래? 조카 같은 아이지, 조카는 아니잖아?”
“아이 정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랑 몇 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몇 살 차인데?”
“무려 십…. 끙, 쟤가 몇 살이더라? 15년인가? 16년인가? 하여간 그쯤 차이 난다고.”
“그럼 성인이잖아?”
“응?”
제인이 벌써 성인인가?
확실히 만으로 20살은 넘었다.
“그, 그렇기는 하지.”
“그럼 뭐가 문제야? 설마 너희 한국에서는 열다섯 살 차이나면 사귀지 못하는 법이라도 있는 거냐?”
“그럴 리가 있나?”
“너 엄청나게 웃긴다? 진짜로 그럼 뭐가 문제인데? 저 정도 미녀는 할리우드에서도 쉽게 못 보는데? 왜? 애가 못되거나 멍청하냐?”
“절대로! 그럴 리가 없잖아? 존의 딸인데?”
외모는 엄마를 닮고 머리는 아빠인 존을 닮았다.
그야말로 우성 유전자의 결정체로 지금 스탠퍼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수재다.
그리고 얼마나 착한 아인데?
“그럼 뭐야? 너 설마 백인이라고 인종차별 하는 거야?”
“에이, 무슨 말을?”
“야, 알렉스. 너 자꾸 밖에서 여자를 찾는데, 의외로 인연은 가까이 있는 법이야. 조카 같은 아이라고 자꾸 밀지 말고, 잘 생각하는 것이 어때? 나이가 16년 차이가 난다고?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형이야 영화판에 있으니까 그렇지.”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임마, 일반적인 기준으로도 누가 트집 잡을 사람 없어. 거기다가 네 조건이라면? 야, 20년이 차이 나도 되겠다. 내가 며칠 전으로 딱 60년을 살아봐서 하는 소리야.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거다.”
“…….”
진짜 이 양반까지 왜 이러는 거야?
괜히 싱숭생숭해지게?
그리고 더 웃기는 것은 톰 형의 말이 은근히 솔깃한 거다.
지금까지는 제인은 순전히 내 조카라고만 생각해서 그런 쪽으로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신 차리자, 강철식.
그런데, 밤이 늦어서 파티가 파할 때쯤에 존이 잠시 보자고 했다.
존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이상하게 뒤가 켕겼는데, 그렇다고 존의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지.
저택 내의 바에서 간단히 위스키를 들고 마주 앉았다.
“무슨 일이 있어요? 존?”
“하하! 무슨 일은요? 그냥 간단히 위스키나 한잔하자고 하는 거지요.”
“그래요? 그럼 마셔야지요.”
그렇게 잠시 위스키만 마셔대는데, 존이 은근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저, 보스.”
“말해요, 존.”
“다른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사실 제인 때문에 잠시 뵙자고 한 겁니다.”
“쿨록!”
나는 입안에 있던 위스키를 뿜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오늘 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