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애국노라고 할까요?
“오, 오빠가 어떻게 내게….”
뭐가 어떻게야.
여동생은 여동생이고, 마누라는 마누라인 거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거랑 마찬가지인 거다.
뜻밖에 더 배신감에 치를 떠는 소미를 앉혀 놓고서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세상에! 그럼 제인 너, 우리 오빠를 7년씩이나 혼자서 쳐다보고 있었던 거야? 연애도 한 번도 안 해 보고?”
“응, 소미 언니. 나는 오빠를 처음 본 이후로 다른 남자는 쳐다본 적도 없어.”
“우와아! 너 정말 대단하구나? 아니 우리 오빠가 잘나기는 잘났지만, 어떻게? 대체 뭘 믿고서? 그러다 다른 여자랑 결혼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냥 뭐랄까? 믿음이라고 할까? 마음을 졸이기는 했는데, 하여간 결국 내가 오빠랑 결혼할 거라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
이거야 원, 내가 잘나기는 한 모양이다.
하여간 소미도 처음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 제인을 인정하는 눈치였다.
소미가 미국에 올 때마다 제인이 같이 놀아주어서 둘이 잘 알기도 했고 말이다.
가만?
어째 소미가 미국에 올 때마다 제인이 유난히 잘 챙겨주었는데, 이것도 다 제인의 큰 그림에 포함된 거란 말인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제인이 살짝 무서워졌다.
하여간 여우 같은 우리 소미도 결국 제인에게 넘어갔다.
게다가 서로 이쁜 것은 알아서 언니 너무 이뻐요, 제인 네가 더 이뻐하면서 둘이서 쑈를 하고 있었다.
이쁘긴 이쁘다.
둘 다.
제인이 서양을 대표하여 엘프 같다고 하면, 우리 소미는 선녀 같다고나 할까?
내가 이러니 눈만 높아졌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 엄마하고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아들! 왔구나!”
“철식이 왔냐? 오랜…. 엉? 누, 누구?”
“어머! 이 아가씨 누구야? 세상에나! 우리 소미보다 더 이쁜 여자애는 처음 보네?”
“엄마! 내가 어때서?”
“시끄러워, 기집애야! 어디 엄마에게 소릴 지르고 있어?”
“…….”
역시나 소미의 천적은 우리 엄마다.
“그런데 누구냐? 네 비서야? 비서를 저렇게 이쁜 여자를 써도 되냐? 사고 나는데?”
“…….”
아버지는 사고? 날 걱정부터 하셨다.
“어흠! 비서가 아니고요, 나랑 결혼할 여자예요.”
“뭐, 뭐? 결혼?”
“결혼? 누구랑? 너랑?”
“에이, 그럼 누구랑 해요? 제인, 인사드려. 우리 엄마하고 아버지.”
“안뇽하세요? 제인 스미스예요. 오파랑 결혼할 거예요.”
“에구머니나….”
“대박이다….”
엄마와 아버지는 처음에는 황당해하다가, 내가 미국에서 가장 신임하는 사람의 딸이고, 미국에서 한 가족처럼 지내는 집의 딸이라고 하자 그제야 놀란 표정을 풀었다.
“어쩜! 저리 이쁠 수가 있니? 영화에서 나오는 미국 여자들보다 훨씬 이쁘잖아?”
“그러게? 완전 엘프네, 엘프! 그런데 몇 살이냐?”
“그게…. 스물둘이요….”
“뭐? 스물둘? 너무 어린 것 아니야? 너랑 몇 살이나 차이 나는 거야?”
“뭐, 열다섯 살이지….”
“이야? 이 자식 능력 있네?”
역시 우리 아버지다웠다.
“이 양반은 나이가 어린 것이 뭐가 어때서 그래요? 요즘 우리나라 애들이 늦는 거지?”
“그, 그런가?”
“그건 되었고, 그럼 지금 뭐 하는 아이니?”
“학교 다녀요, 대학교 3학년.”
“어디 다니는데?”
“스탠퍼드요.”
“오오오! 그 명문 스탠퍼드?”
“이야야? 스탠퍼드라면 미국에서도 열 손가락에 뽑히는 학교잖아?”
“아마 5등인가 6등인가 할걸요?”
“하하하! 난 찬성이다! 이쁘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거기다 머리도 좋잖아?”
“아니 이 양반은 아까부터 왜 이상한 말씀만 하셔? 요즘 세상에 왜 얼굴만 따지시나?”
“이봐, 한 여사! 요즘 세상이 아니라, 항상 그랬는데 뭘 그래? 당신도 내가 이뻐서 쫓아다닌 것이고.”
“아이, 아이들 있는데….”
“…….”
환장합니다.
이러다가 늦둥이라도 낳을 기세다.
어쨌든 부모님께서는 제인을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셨다.
원래부터 편견 같은 것도 없었던 분들이라 외국인이라고 꺼리는 것은 전혀 없었고, 그저 미천한 우리 아들에게 시집온다는 것 하나만으로 바로 대환영이었다.
“으하하하!”
“호호호!”
너무나 즐거워하셔서, 내가 왜 빨리 여자를 데리고 오지 않았나 후회가 될 지경이다.
제인도 긴장이 풀려서 평소대로 활짝 웃으면서 부모님을 즐겁게 해주었다.
“호호호! 그럼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제인이 내년 5월 말 정도에 졸업해요. 졸업하면 바로 6월에 하려고요.”
“그래 잘했다. 네 나이도 있는데, 빨리하는 것이 좋지.”
“네, 그러려고요.”
“어? 그럼 결혼식은 어디서 하려고?”
“당연히 한국에서 해야죠. 제인네 식구들하고 미국 지인들은 전용기나 전세기를 동원하여 데리고 오면 되고요.”
번잡한 것이 싫어서 미국, 특히 하와이 정도에서 하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다.
미국식으로 결혼식을 하면 더 길고 번잡한 것도 있었고.
“그럼 신혼집은?”
“한국에 내가 있는 날이 많지도 않은데, 따로 집을 살 필요가 있겠어요? 그냥 내가 쓰던 방을 사용하면 되지?”
“하하하! 그건 그래.”
제인이 불편할 것 같아서 집을 따로 사들일까도 생각했는데, 판교 집이 워낙 커서 독립성도 충분히 보장되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엄마는 너무 좋구나. 이렇게 이쁜 며느리를 맞이할 줄은 몰랐거든.”
“에이, 그래서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호호호! 그래, 그래.”
“으허허허!”
“하하하!”
이제 세 식구에서 네 식구로 늘어난 우리 집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
“하하하! 어서 오세요, 강 회장님.”
“네, 오랜만입니다. 대통령님.”
나는 지금 청와대에 들어왔다.
그것도 내 요청에 의하여.
많이 망설였지만, 결국은 약간의 충고는 하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전쟁에 대하여 말이다.
일부러 대통령의 일과가 끝난 시각에 만나기를 요청하여 밤 9시에 갔더니, 역시나 소주와 조촐한 안주가 차려져 있었다.
“여전히 소주파시지요?”
“네,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만, 그래도 소주만 한 술이 없더군요.”
“허허허! 사람 입맛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세상에 소주보다 좋은 술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기가 먹던 것을 선호하게 되더군요.”
“네, 맞습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소주가 한류를 타고서 세계적으로도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는 하는데, 빈말이라도 좋은 술은 아니다.
그저 위스키처럼 완전 독하지도 않고 맥주처럼 약하지도 않아서 입이 심심하지 않게 계속 마시면서 취할 수 있는 술일 뿐이지.
그래도 나는 소주를 사랑한다.
내 입맛이 소주에 길들여졌으니까.
“그럼 한잔하시지요.”
“네, 드시지요.”
“캬아!”
“크으!”
역시 쌉싸름하면서 달콤한 소주의 맛이 최고다.
그렇게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시다 보니 어느새 각 1병씩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강 회장님 평소 성향으로 봐서는 제게 먼저 연락할 일은 없을 거라고 봤는데요?”
“다름이 아니라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하하하! 이거 긴장되는데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회장님의 말씀이라면 제가 경청하겠습니다.”
“러시아의 행동에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예? 러시아요? 아니 무슨 정보라도 있습니까?”
“가까운 시일 내로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저, 전쟁? 러시아가 말입니까?”
전쟁, 그것도 북쪽의 괴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대통령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어졌다.
“네, 러시아가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정확한 겁니까?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다니요? 대체 누구와 말입니까?”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아니 2014년에 크림을 뺏어갔는데, 또 침공한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허어! 이거야 원! 그저 단순한 위협이 아닐까요? 러시아는 올해 4월에도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집결시킨 적이 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위협이 아닐 겁니다. 조만간 러시아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요.”
“실례지만 어디서 나온 정보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국정에 도움이 되라고 말씀드리는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대통령님의 마음입니다.”
“끄으응! 솔직히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회장님의 말씀이니 이거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
많이 혼란스러울 거다.
뜬금없이 러시아가 전쟁을 벌인다면서 정보 출처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하는 말이다.
투자의 신이라고 불리면서, 이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코로나바이러스를 미리 대비했던 사람이 하는 말이다.
출처와 근거가 없어도 흘려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제가 조금 빨리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아마 조만간 미국으로부터는 경고가 있을 겁니다. 뭐, 믿는 국가는 별로 없겠지만요.”
“미국은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굉장히 우려하고 있는데, 10월에 로마에서 열리는 G20에서는 바이든이 무슨 말이든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군요.”
“네, 그렇습니다.”
“하아! 이거 진짜 미치겠네요. 가뜩이나 LNG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어서 걱정인데 말입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 바이든 대통령과 잠시 전화로 통화했는데, 미국은 러시아의 행동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나 푸틴이 지난 달인 7월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단일성에 대하여’란 칼럼을 발표하면서 대놓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바이든은 내게 내가 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을 거론하면서 내 의견을 물었는데, 자세한 것은 내가 한국에 다녀온 후에 말하자고 뒤로 미룬 상태였다.
그리고 대통령이 걱정하는 LNG 가격은 동북아 지역 LNG 가격지표인 JMK 가격 기준으로 현재 봄 대비 3배가 넘게 뛰어서 17달러를 돌파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얼마 못 가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괴뢰국이 되겠군요. 아니면 아예 병합을 당하거나 말입니다.”
“글쎄요….”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러시아가 작심하고 침공한다는 말이 아니었습니까? 우크라이나는 며칠을 버티지 못할 텐데요?”
“음….”
이게 상식이다.
주변에 물어봐도 대부분 3일 컷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그 상식은 무너질 것이다.
나는 아직도 선하다.
꿈에서 나타나 단호하게 외치던 현재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목소리를.
“회장님, 러시아예요,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게 상식이기는 하지요. 다만, 상식은 종종 잘 파괴되는 법이라서요.”
“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우크라이나도 2014년에 크림반도를 뺏긴 이후로 이를 갈았습니다.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을 아시지요?”
“네, 알지요. 그 사람, 지금은 부패 혐의로 현재는 폴란드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잖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 캐릭터가 좀 웃기더군요. 저도 조사하면서 알게 된 겁니다만”
“캐릭터가 웃기다니요?”
“이 양반이 부패했지만, 국방에는 진심이었다는 겁니다. 특히 러시아에는 이를 갈았지요.”
“응?”
“개인적으로 해먹을 건 다 해 먹으면서, 국방에는 엄청나게 투자를 했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군대 체질도 완전히 서구식으로 개혁을 하였고요.”
“예?”
“한마디로 매국노는 아니고, 애국노라고 할까요?”
“애, 애국노요?”
애국노(愛國奴).
우크라이나 전임 대통령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 중에서 이보다 더 좋은 단어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