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나도 진짜 답답하네.
사우디는 역시 돈이 많았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테슬라의 종가는 1,163달러로 내려앉았고, 다음 날인 11월 9일 화요일에는 무려 12% 가까이 폭락하여 1,023.5달러로 주저앉아서 그들로서는 몹시도 기분이 나쁜 상황이 되었지만 약속한 수요일에 두말하지 않고 매각 대금을 입금했다.
무려 4,000억 달러!
“깔끔하네요!”
“하하하! 깔끔하지요! 아람코로만 1년에 1,000억 달러는 버는 놈들입니다. 살짝 기분이 상하겠지만, 일시적인 등락으로 일희일비하는 애들은 아닙니다.”
“하하하!”
일시적인 등락이라, 과연 그럴까?
염주의 이능으로 봐도 그렇고,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것처럼, 나름대로 감각이 생긴 순수한 내 생각으로도 테슬라는 여기가 꼭지다.
어떤 투자사 회장이란 놈이 테슬라 주가를 주당 2,000달러에서 2,500달러까지 본다고 하였는데, 내가 볼 때는 천만의 말씀이다.
테슬라는 애플이 아니다.
애플은 그 자체로 일종의 상징이 되었지만, 테슬라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거다.
당장 전통적인 자동차 그룹들이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고 있는데, 테슬라가 아무리 자율주행과 순수한 전기 자동차 주행 성능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지만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미국 외의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나 비야디(BYD)의 추격이 무서울 지경이다.
원래 배터리 기업으로 출발한 비야디는 엄청난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해서 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로 시장을 넓혀가는 중인데, 테슬라가 중국 시장에서 계속 선전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개소리다.
중국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이 와중에 오너 리스크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론 머스크의 행동 말이다.
아무리 미래를 내다보는 것에 탁월한 경영자지만, 쓰잘데기없는 짓을 너무 많이 한다.
엉뚱하게 코인질을 하질 않나, 뻑하면 트위터에 개소릴 늘어놓지 않나.
머스크란 이름 자체가 혁신의 상징이기도 하였지만, 관종짓이 너무 지나치다.
하여간 테슬라의 성장은 그래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스.”
“네, 존.”
“일단 들어온 자금으로 대출부터 갚겠습니다. 정확히 우리가 빌린 4,000억 달러에 딱 떨어지는데요?”
“하하하! 그렇게 하세요. 돈이야 엔비디아와 AMD 주식을 정리하면 또 들어오니까요.”
“그래서 말인데요, 엔비디아와 AMD는 어디까지 정리하실 생각입니까?”
“흐음, 엔비디아는 5%만 남기고 전부 정리하시고, AMD는….”
엔비디아야 큰 미련이 없어서 조금만 남기고 정리하는 것이지만, AMD는 살짝 미련이 남는다.
아니, 미련이라기보다는 애착이라고 할까?
누가 뭐래도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이어서 그렇다.
냉철하게 생각하면 엔비디아나 AMD나 이번 11월 말부터 12월까지가 정점이기에 사실 몽땅 정리하는 것이 맞지만 말이다.
우리 리사 누님과 끈 정도는 남겨 놓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막말로 일부 남겨 놓고 폭락하더라도 이제는 내게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이고.
“AMD는 10%, 10%는 남기세요. 그래도 AMD인데….”
“하하하! 닥터 수 눈치를 보는 겁니까?”
“흐흐흐! 아무래도 황가 놈보다는 리사 누님이 눈에 밟혀서요. 그리고 아시지요? 시장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거?”
“이를 말입니까? 알아서 적당한 임자를 찾아주겠습니다. 사실 이미 대부분 이야기되는 곳들도 있고요.”
“하하하! 믿습니다.”
하여간 올해 내로 그동안 정들었던 빅3 핵심 투자 종목들은 이젠 안녕이다.
엔비디아와 AMD를 정리하면 막대한 자금이 들어오는데, 대부분 에너지에 추가로 투자할 생각이다.
가스 가격은 JMK가격 기준으로 35달러를 찍고 횡보 중인데, 여전히 염주의 불빛은 지금이 정점에서 한참 멀었다고 알리고 있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
“반갑습니다, 회장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고요.”
“하하하! 제가 뭐라고 감사까지 하세요? 편하게 봅시다.”
테슬라의 주식을 매도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되었을 때, 현도의 장우성 회장이 미국에 출장을 왔다고 하면서 잠시 시간을 낼 수 있냐고 하여 흔쾌히 만나게 되었다.
“큰 거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아, 들으셨어요? 네, 보유하고 있던 테슬라 주식을 전량 매도하였습니다.”
“허어! 정말 대단하십니다. 알려진 매각 대금이 천문학적이던데요.”
“에이, 얼마 안 돼요. 우리 돈으로 500조?”
“…….”
너무 쎄게 나갔나?
장우성 회장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험험! 하여간 일단 드시지요. 이 집 음식이 괜찮습니다.”
“네, 회장님.”
배도 고팠고 해서 한참을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지.
“그래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셨어요?”
“다름이 아니라 답답해서 조언을 좀 구하려고 뵙자고 한 겁니다.”
“어떤 것이 그렇게 답답하셨어요?”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말입니다. 그게 점점 현실화하여 가더군요. 기사로도 나오던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고….”
“네, 저도 들었습니다. 러시아가 BCT 대대전술단 100개 정도를 준비시키고 있다고 하더군요.”
“휴우! 이거 정말 전쟁이 나는 겁니까? 지금도 대부분 전문가는 위협용이라고 추정하던데….”
“그게 믿고 싶지요? 순전히 러시아의 뻥카라고?”
“솔직히 그렇습니다. 아니 냉전이 끝난 지 언젠데 러시아가 전쟁을 벌입니까? 솔직히 회장님 말씀만 아니라면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겁니다.”
“…….”
나도 이젠 말조심해야겠다.
맨날 머스크 놈 욕을 할 것이 아니라, 이젠 나를 알 만한 사람들은 내가 검은 것을 희다고 하여도 믿을 태세니까.
아무 생각 없이 지껄였다가는 일파만파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점점 푸틴 그 미친 영감이 전쟁을 벌이려는 것 같으니, 정말 환장하겠습니다. 러시아가 우리나라에 중요한 시장이고, 우리 현도 자동차 그룹에는 특별한 시장으로 떠오른 것도 있지만, 전쟁의 여파가 무엇보다 걱정이 됩니다. 그러니 믿고 싶을 리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말이 있지요. 하지만 장 회장님 같은 분은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도 자동차 그룹 같은 거대 기업군의 수장이시니까요.”
“휴우….”
“각설하고 결론만 말씀드리지요. 전쟁은 일어납니다. 반드시 말입니다.”
“미치겠네….”
미칠 만도 할 것이다.
현도와 기하 자동차가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수위를 다투고 있고, 대규모로 투자까지 한 상황에서 말이다.
현도는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연산 20만 대 규모의 공장을 세웠고, 그것도 모자라서 바로 얼마 전인 2010년에는 예전 GM 공장을 인수하여 새로 리모델링까지 하였다.
이렇게 한창 잘나가고 있는 전쟁이라니.
경영자로서는 정말 환장한 노릇인 거다.
“미국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확신하고 있어요.”
“미, 미국도 말입니까?”
“그냥 알고만 계세요. 러시아의 침공을 유럽은 아직 믿지 않고 있지만, 미국은 이미 올해 7월부터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최근에는 확신으로 바뀌었고요.”
“그걸 대체 어떻게 회장님께서….”
“미군 최고 사령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최, 최고 사령관이요? 최고 사령관이라면….”
“누구겠어요?”
“하아….”
누구겠냐?
미군 최고 사령관이?
당연히 조 바이든 대통령이지.
바이든 대통령과는 바로 며칠 전에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그도 이제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토 동맹국에는 조만간 통보할 것이라 하였고.
하여간 역시 미국은 미국이다.
유럽 애들은 아마 전쟁이 터지기 직전에도 반신반의할 텐데 말이다.
특히, 독일.
그동안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으로 러시아 천연가스로 꿀을 빨았지만, 이젠 끝이다.
노르트스트림2가 사실상 완공되어 운영을 준비 중인데, 바이든이 내게 그러더라.
전쟁이 터지면 노르트스트림 1이고 2고 간에 끝장을 내버리겠다고.
- 아니 노르트스트림은 독일이 기획하고 통제하는 프로젝트인데요? 그걸 미국이 맘대로 끝장내도 되는 겁니까?
- 알렉스, 내가 약속하지. 우리 미국은 그렇게 할 수 있어.
- 허어….
어쨌거나 독일은 너무 심하게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였다.
세상에 믿을 놈을 믿어야지, 얼마 전까지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러시아를 믿고서 절반이 넘는 55%를 의존하는 것이 말이 되냐고?
이제 다음 달이면 퇴임하는 메르켈 아줌마.
아줌마 퇴임 후가 참으로 험난할 것이 눈에 보인다.
“저기 회장님, 그럼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다른 소비재나 수출하는 기업하고 우리 현도는 다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수많은 협력사까지 같이 진출한 상태인데, 이거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솔직히 현도의 경우는 제가 생각해도 답답하네요.”
“하아, 그러지 마시고 좀 살려 주십시오. 중국 사업도 접어야 할 판국에 그나마 열심히 개척한 시장이 러시아 시장입니다. 요즘 제가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예요.”
“저런….”
“뭐라도 좋으니 길을 열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술 한잔 드세요.”
“크으!”
“캬….”
“…….”
“험험….”
장 회장은 참으로 쓰게 마시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너무 달게 마셨나 보다.
참 별것이 다 눈치 보이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이건 진심인데요. 안타깝지만 저도 뾰족한 수가 생각이 안 납니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의 승패가 어떻게 되든 간에 상당히 장기간 경제 제재를 받을 겁니다.”
“전쟁은 당연히 러시아가 순식간에 이기지 않겠습니까? 제가 군대 안 갔지만,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그런데 군대 왜 안 가셨어요? 현도 그룹은 군대에 엄격하였던 것으로 아는데?”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뭐라도 좀 말씀해 주시지요. 정말 답답합니다.”
“일단….”
“일단?”
거 참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
나도 진짜 답답하네.
어쩔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말해주는 수밖에.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러시아가 당연히 3일 컷으로 이길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우크라이나 군대는 과거의 군대가 아닙니다. 2014년에 무력하게 크림반도를 뺏기던 그 군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임 대통령인 포로셴코가 엄청나게 이를 갈고 준비하였어요. 뭐, 해 먹을 것은 다 해 먹으면서 말입니다. 게다가 현임 대통령인 젤렌스키를 코미디언 출신이라고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의지가 남다른 사람입니다.”
“그럼 얼마나 길게 갈 것 같습니까?”
“적어도 2023년까지는 갈 것입니다. 즉, 최소한 2년 이상은 한다고 보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진짜 미치겠네!”
“마저 들으세요. 전쟁은 내 예상으로는, 그리고 미국이 생각하는 것도 같은데, 아마 중국의 동계 올림픽이 끝난 직후일 겁니다. 러시아로서도 당연히 서방의 제재가 더 심해질 것을 알 텐데, 유일한 동맹이나 마찬가지인 중국의 잔치를 방해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
“전쟁이 터지면 모든 물자의 러시아 내로의 이동이 중단될 겁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버틸 수 있도록 자재를 미리 보내세요. 최대한 저율로나마 생산하면서 버틸 수 있는 자재를 보내 놓으라는 말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눈치가 보이겠지만, 이미 들어간 자재를 가지고 생산하는 것까지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그럴까요?”
“이거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내가 따로 좋게 말해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다시 말하지만 가능한 버티는 수밖에 없으니, 최대한 미리 자재를 보내 놓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내 말에 장 회장은 이전보다 생기가 좀 도는 것 같았다.
하여간 푸틴 그 미친 노인네가 사람 여럿을 잡는구나.
물론 내게는 엄청난 기회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