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왜 날 보자고 하지?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미국 투자회사라고? 그런데 그놈들이 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놈들이 반군을 무장시키는 것이 확실합니다. 얼마 전에 잡혔던 놈의 진술도 그랬고, 현재 태국을 통하여 반입되고 있는 무기와 장비들도 그놈들이 지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확실한 거야? 아니, 미국의 투자회사가 왜 반군 놈들을 지원하냐고? 미국 정부도 가만히 있는데. 자기들에게 뭐가 이익이 된다고?”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만, 확실합니다. 중국에서도 확인하여 주었습니다.”
“제기랄!”
쾅!
키가 작은 단구의 남자가 보고를 받으면서 분을 못 이기고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 회사 오너가 누구야?”
“알렉스 강이라는 자입니다. 한국인이고 미국 영주권자입니다.”
“한국인이라고?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이 무슨 이유로? 그놈이 우리 미얀마와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거야? 무엇인가 연관이 있으니 저리 나서는 것이 아니겠나?”
“아무리 조사해 봐도 연관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우리나라 근처에도 온 적이 없고, 그의 기업체인 미국 카르마 인베스트먼트나 한국의 카르마 홀딩스도 우리 미얀마와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그럼 뭐야? 대체 투자가라는 놈이 왜 우리에게 적대적이냐고?”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민주 정부를 뒤집고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현재는 미얀마 군사정부의 지도자이며 스스로 총리직에 올랐고, 여전히 미얀마 군인으로서 대원수 계급을 가지고 있는 군 통수권자다.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그가 오늘 심하게 짜증이 났다.
허울뿐인 민주 정부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것은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간단했다.
미얀마의 모든 군사 권력과 심지어는 경찰력까지도 군부가 단 한 순간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민주 정부 시절도 나쁘지는 않았다.
버러지 같은 로힝야족을 청소해도 국제적으로 욕을 먹는 것은 아웅 산 수 치와 그녀가 이끄는 국민 민주연맹이었으니까.
그런데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분수도 모르는 것들이 감히 미얀마 그 자체인 군부의 영향력을 배제하려고 개헌을 요구했다.
군부가 무조건 가져가게 되어 있는 상·하원 의석 25%를 향후 15년에 걸쳐서 내놓으라고 했는데, 한마디로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였지.
민 아웅 흘라잉은 일단 주도권을 잃게 되었을 때 일어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눈치를 보겠지만 몇 년 못 가서 그동안 군부가 누리던 이권과 지위를 모두 잃어버릴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그래서 엎어버렸다.
버러지 같은 시민들과 서방 놈들이 한동안은 시끄럽게 굴 테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듯싶었는데, 엉뚱한 변수가 나타났다.
자칭 국민 통합정부 산하의 미얀마 연방군이라는 반군 놈들의 세력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외부의 지원이 없다면 도저히 보유하거나 유지할 수 없는 화력을 보유한 증거가 곳곳에서 나왔고, 시민군들의 전투 숙련도도 어디서 제대로 배운 티를 보이면서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미얀마군의 피해는 커져만 갔고 말이다.
그런데, 드러난 배후의 정체는 황당하기만 했다.
미국의 투자회사라니?
그것도 한국인이 주인인 회사라니?
아니 한국인이 왜?
민 아웅 흘라잉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배후에 미국 정부가 있는 것 아닌가? CIA라던가. 그놈들 특기 아닌가.”
“미국이 얼마 전부터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맞지만, 배후는 아닙니다. 주동은 역시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이고, 미국 정부는 그저 부화뇌동하여 지원하는 것뿐입니다. 자신들은 힘 안 들이고 우리 군부를 견제할 수 있으니까요.”
“아니 그럼, 말이 안 되잖나? 민간인이 왜 우릴 적대시하냐고? 대체 뭐 하는 회사인데?”
“카르마란 이름을 못 들어보셨습니까?”
“글쎄?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아이바이오로직스는 아시지요?”
“그거야 나도 들어봤지. 그런데 그 아이바이오로직스는 갑자기 왜?”
“그 아이바이오로직스를 소유한 회사가 한국의 카르마 홀딩스고, 카르마 홀딩스의 모회사가 미국의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입니다.”
“뭐어? 그럼 엄청나게 큰 투자회사란 말이잖나?”
“제약 분야는 카르마에서 그 비중이 미미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애초에 돈을 벌려고 투자한 회사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무슨 소리야? 아이바이오로직스라면 지금은 세계 최대의 제약사 중의 하나로 꼽히잖나?”
“테슬라는 아시지요?”
“이 사람이 누굴 바보로 아나? 머스크의 그 테슬라 자동차를 말하는 것이잖아?”
“네, 맞습니다. 그 테슬라의 최대 주주가 바로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였습니다. 얼마 전에 사우디 국부펀드에 전량 지분을 매각했는데 그 금액이….”
“금액이?”
“4,000억 달러라고 합니다.”
“사, 사천억 달러?”
민 아웅 흘라잉은 너무나도 엄청난 액수에 입을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다.
4,000억 달러.
작년인 2020년 미얀마 명목상 총 GDP가 700억 달러 남짓했다.
PPP로 하여도 격차야 줄겠지만 어림도 없다.
그런데 일개 투자회사가 소유 지분 하나를 팔았는데 4,000억 달러라니?
“말도 안 돼….”
“문제는 이 금액마저도 카르마 인베스트먼트가 소유한 자금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럼 대체 돈이 얼마나 많다는 거야?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중국에서 알려준 정보로는 최소 1조 달러 이상이라고 합니다.”
“1조 달러!”
“네, 그것도 카르마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가 외부 투자를 전혀 받지 않는 회사라서 추정만 할 뿐이라는데, 최근에는 급등하는 에너지에도 급등 전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여서 지금은 얼마 정도인지 추정조차 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허어! 이거 정말 환장하겠군…. 아니 그런데 그런 괴물 같은 놈이 대체 왜 우릴 적대하는 거야? 우리에게서 뜯어 먹을 것이 뭐가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었다.
명목 총 GDP 700억 달러짜리 저개발 국가에 뭐가 있단 말인가?
혹시 자신들도 모르는 금광이나 대규모 유전이라도 있는 것인가?
오랫동안 자신들 군부가 나라를 폐쇄적으로 운영하여 제대로 된 매장량 조사조차 해 본 적이 없는 미얀마다.
추정에 따라서는 대규모 유전이 있다고도 하는데, 글자 그대로 그건 추정이다.
막말로 실제로 뚫어봐야 아는 것인데 그걸 노린다고?
곰곰이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었다.
“일단 알렉스 강이 반군을 지원하는 이유에 대하여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첫 번째로는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았을 경우입니다.”
“미국 정부의 요청? 민간 투자자가 미국 정부의 요청을 왜 받나?”
“역시 중국 측의 정보인데,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회장 알렉스 강은 바이든과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나 의심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모종의 관계라니?”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으나, 대선 전부터 막대한 선거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도 있고 대선 이후로도 계속 친분을 나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의 현재 상황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의 문제로 공식적으로 나설 수 있을 수가 없다 보니, 친분이 있는 알렉스 강에게 지원을 요청했을 거라는 것이지요.”
“흐음,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무슨 약점을 잡히지 않는 이상, 개인에게 미국 정부에서 그렇게 요청할 리가 없네. 미국은 고리타분하게 돌아가는 나라야. 투자가의 약점을 쥐고서 그런 식으로 했다가는 나중에 분명히 정치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인데, 집권 초기인 바이든이 그런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없어.”
“중국 측의 분석입니다만,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전혀 근거 없는 일도 아니라고 합니다. 한국은 미국의 말이라면 꼼짝도 못 한다는 거지요.”
“그건 정부가 그렇다는 것이 아닌가? 역시 이유가 될 수 없네.”
민 아웅 흘라잉은 그건 아니라고 봤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도 원인을 모르다 보니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따져 보는 듯합니다.”
“그럼 두 번째는?”
“이건 좀 어처구니없기는 합니다만….”
“그냥 말하게. 생각은 내가 할 테니까.”
“순전히 알렉스 강이 정말 반군을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아웅 산 수 치를 지지해서 지원했을 수도 있습니다.”
“뭐? 그게 무슨 헛소리야? 투자가라면서? 그것도 전대미문의 부자라면서? 그런 인간이 왜?”
“알렉스 강의 행적을 살펴보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복지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주로 고아나 불우한 청소년 등을 지원하는데, 그 재단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가 최소 500억 달러는 넘는다고 하며, 그 외에도 매년 별도로 수십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합니다.”
“허어! 그놈 정말 미친놈이 아닌가? 아니 부자가 왜 그런 짓을 하지?”
“게다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건도 그렇습니다.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를 상대로 백신 장사를 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음에도 최소한의 적정 이윤 외에는 붙이지 않겠다고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습니다.”
“자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민 아웅 흘라잉은 슬슬 짜증이 났다.
정보부장이 하려는 말이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알렉스 강이란 놈은 정말 좋은 놈이고, 그렇기에 자신들 군부를 악으로 보고 응징하기 위하여 지원한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이 무슨 악당이란 소린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사령관님, 그런 뜻이 아니라….”
“시끄럽네! 하여간 그놈이 우릴 적대한다는 것이 사실이란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여러 루트를 통하여 확인했습니다.”
“빌어먹을 한국놈! 돈 좀 벌었다고 감히 우리 군부를 적대하고 반군을 지원해? 쓴맛을 보여줘야겠군!”
“사령관님, 중국에서 경고했습니다.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말입니다.”
“무슨 소리야? 그놈이 우리 일을 방해하면 중국의 일도 방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워낙 거물이라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일이 커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보고 그놈이 반군을 키울 때까지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
“그건 아닙니다. 자신들이 먼저 알렉스 강의 의중을 떠보고, 점잖게 경고해 보겠다고 합니다.”
“제기랄! 중국 놈들도 마음에 안 드는군.”
“사령관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은 중국 말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그걸 모르겠나? 하지만, 중국에 똑바로 전하게. 중국의 말도 그놈이 듣지 않는다면 우리가 나설 것이라고.”
“알겠습니다. 그건 확실하게 전하겠습니다.”
“나가 봐.”
***
11월도 며칠 안 남았을 무렵, 나는 뜬금없는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누구라고?”
“주 미국 중국대사라고 합니다.”
“중국대사? 중국대사가 우리 회사는 왜 왔대요?”
“글쎄요…. 하여간 무조건 회장님을 뵙자고 요청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중국대사가 왜 날 보자고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