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한국하고 정말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
머스크 놈에게 들렀다 오는 길에 미얀마 생각도 났다.
아니 스타링크와 파워월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미얀마에도 유용할 것이 아닌가?
서둘러 헨리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모르셨습니까? 스타링크와 파워월은 이미 여기에도 보급되었는데요?
“엉? 그걸 미얀마에도 가져갔어요? 벌써?”
네, 회장님. 스타링크만 1,000세트 이상을 가져다가 이미 통신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파워월도 같이 가져왔는데, 전력과 통신 수단이 미비한 미얀마 연방군 처지에서는 이만한 통신 수단이 없습니다. 그래서 추가로 더 발주했습니다.
“자, 잘했어요. 추가로 더 넉넉히 지원할 테니까, 유용하게 써요.”
네, 회장님.
아니 제기랄, 나만 몰랐잖아?
하여간 머스크 놈이 난놈은 난놈이다.
솔직히 파워월은 존재 자체도 몰랐고 스타링크에 대하여도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임팩트가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나는 초고속 인터넷이 당연하게 일반화된 인터넷 강국 한국 사람이다.
게다가 정전 따위는 내가 세상을 기억한 이후로는 경험해본 적도 거의 없었고 말이다.
엄마와 아빠 말로는 80년대 초반만 하여도 어쩌다 가끔 정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정말 어쩌다였고 길어도 1시간을 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나야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절이니 당연히 태곳적 이야기로만 생각했고, 이러니 내가 스타링크와 파워월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그런데 그렇게 한국인들에게 당연한 것이 사실은 지구상의 많은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땅덩어리가 워낙 넓다 보니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도 인터넷을 깔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저개발국가에서는 오죽할까?
게다가 전쟁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더 할 것이다.
하여간 그런 수요를 파악하고 귀신같이 시장을 선점해 나가는 머스크 놈이 난놈은 난놈이란 말이다.
약간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렇지.
***
2월 말, 조지 패튼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국경 도시 프쉐미실(Przemysl)로 날아왔다.
우크라이나 난민 구호를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이봐! 빨리빨리! 빨리빨리 몰라?”
“조지! 파리파리가 뭡니까?”
“알베르토! 넌 카르마 밥을 먹은 지가 몇 년이나 되는데 '빨리빨리'를 모르냐? Hurry up! 한국말로 빨리빨리!”
“…….”
조지 패튼 밑에서 팀장으로 있는 알베르토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평생 미국에서만 산 자신이 한국말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아무리 회장이 한국인이어도 그렇지.
하지만 알베르토가 그러거나 말거나 조지는 계속 재촉을 해대었다.
“알베르토! 너 회사 다니기 싫어?”
“누가 싫다고 했습니까? 우리 회사같이 좋은 회사가 어디 있다고?”
“그럼 자식아 빨리빨리 일하라고!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저렇게 밀려오는데 뭐 하는 거야? 빨리빨리!”
“네, 빨리빨리!”
조지가 도작해 보니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폴란드 정부에서는 나름대로 어떻게든 밀려오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통제하고 구호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난민들의 수가 너무나 엄청났다.
하루에만 무려 10만에서 20만 명이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폴란드 정부에서 먼저 예상하고 준비를 했다지만, 이건 그들의 힘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게다가 2월 말의 동유럽 날씨는 너무나 추웠기에,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많은 난민이 추위에 떨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 수상한 사내가 수많은 트럭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알 수 없는 말을 외쳐대면서 한순간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팔리팔리? 빨리빨리?
“저기, 실례지만 누구신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누구신지?”
“저는 폴란드 정부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지원하기 위하여 나온 레흐 레반도프스키라고 합니다만?”
“오! 혹시 책임자입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책임자입니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나는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에서 난민 구호를 위하여 나온 조지 패튼이라고 합니다.”
“예?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요?”
“모르세요? 사전에 폴란드 정부에 연락했는데요?”
“그, 그게, 그럼 미국의 투자회사에서 지원을 나온다는 것이 당신입니까?”
“네, 맞습니다. 우리 카르마 인베스트먼트가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저 트럭 행렬이 모두 카르마에서 나온 것이라고요? 최소한 수백 대는 되어 보이는데?”
“아! 1차로 끌고 온 것뿐입니다.”
“이 많은 트럭이 1차라고요? 아, 아니 대체 얼마나 많은 물품을 준비했길래….”
“말씀드렸잖습니까? 이건 그저 1차라고요. 지금도 수많은 배가 물품을 싣고서 대서양을 건너는 중입니다. 계속 그단스크 항에 하역 중이고요.”
“끄아악….”
레흐 레반도프스키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도 끝이 보이지 않는 대형 트럭 행렬들이 물품을 내리고 있는데, 이게 그저 1차라고?
“레반도프스키 씨!”
“에? 아, 말씀하세요.”
“여기 프쉐미실시 뿐만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국경 도시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크라쿠프시, 자모시치시 등 말이지요. 아! 바르샤바시도 물론 협조가 필요합니다. 책임자들을 불러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필요하다면 두다 대통령도 나오라고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러실 필요까지는….”
조지 패튼이 사양했지만, 그날 오후 기어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현장을 나왔다.
국방부 장관 마리우시 브와시착 장관을 대동하고.
사실은 원래 난민 상황을 살피러 나올 예정이어서 때가 마침맞은 것이었다.
“미스터 패튼이라고 했습니까?”
“아, 대통령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운영 담당 사장 조지 패튼입니다.”
“사장? 사장급이란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서열 3위입니다.”
“오오!”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왠지 군인 냄새가 나는 젊은 사내가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의 서열 3위의 인물이라고 소개하자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카르마 인베스트먼트라면 현재 세계 최고의 투자회사라는 곳이다.
그런데 이 젊은 사람이 그런 회사의 넘버 쓰리라고 한다.
대단한 거물이 폴란드에 온 것이다.
“카르마 인베스트먼트라면 현재 세계 최고의 투자회사 아닙니까? 대단하시네요! 아직 젊으신 분인데요?”
“으하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카르마에서는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을? 그것도 이렇게 대규모로 말입니다.”
“아, 우리 회장님의 뜻입니다.”
“아, 혹시 회장님께서 우크라이나에 무슨 인연이라도?”
“그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근처도 온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나 대규모로 지원을 하는 것입니까?”
“그게…. 저도 잘은 모르지만, 우리 회장님은 큰 놈이 작은 놈을 두들겨 패는 것을 몹시 싫어합니다.”
“네?”
“그러니까, 강대국이 이유도 없이 주변 나라를 괴롭히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는 거지요.”
“…….”
두다 대통령과 브와시착 국방부 장관은 조지의 설명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수익을 올리면서 돈을 쓸어 담는 것으로 알려진 투자회사의 오너가 강대국이 주변국 두들겨 패는 것을 싫어해서 이런 엄청난 지원을 한다니?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어흠! 그래도 좀 부족해 보이신다면, 우리 회장님은 한국인입니다.”
“오! 한국인?”
“그 한국말입니까?”
“네, 한국인입니다.”
“하하하! 그랬군요!”
“하하하! 그거참 반가운 소리입니다.”
“예?”
조지는 두다 대통령과 브와시착 국방부 장관이 카르마 오너가 한국인이라는 말에 의외로 반가워하자 좀 의아했다.
“미스터 패튼은 모르시나 보군요. 한국은 폴란드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입니다. 사성, 은성, 현도, TK 등 한국의 세계적 대기업 중에서 우리 폴란드에 공장이 없는 기업은 드물 정도이지요.”
“아하….”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폴란드와 한국은 앞으로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아, 무슨 대규모 투자라도 잡혀 있나 보지요?”
“하하! 그런 것도 있습니다만, 방위 산업 쪽으로 앞으로 많은 협력이 있을 겁니다. 사실 그동안은 좀 지지부진한 면이 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로서는 더는 재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지요. 조만간 우리 국방부 장관이 한국으로 갈 것입니다.”
“오오! 그거참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카르마 회장님께서는 한국계인 겁니까?”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국인이었고, 앞으로도 한국인일 겁니다. 그저 미국에서는 사업만 하시지요. 영주권자입니다.”
“그렇군요.”
“네, 하여간 우리 회장님이 한국이라서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남의 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어째서지요?”
“한국이란 나라가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서 수많은 외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참 좋은 나라인데, 위치가 영 그래요. 주변에 중국과 일본이 있고, 북으로는 러시아까지 있으니 말입니다.”
조지가 생각해도 정말 한국의 위치는 빌어먹었다.
이건 무슨 나라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강대국 중에서 셋에 둘러싸여 있냔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한국이 최근에 눈부시게 번영했으면 뭐 하나?
주변에 괴물들이 득실거리는데.
전교에서 10등 안에 들어봤자 반에서는 죽었다가 깨도 4등밖에 못하는 것이다.
“아, 그건 나도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폴스카와도 정말 아주 비슷하여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나라가 수난을 당했고, 현대에는 독일과 소련에 의하여 참담한 일을 당했지요.”
“그랬군요. 어쨌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우리 회장님은 유난히 초강대국들이 주변국을 못살게 구는 것에 대하여 민감합니다. 하지만 조국인 한국이 북한과 대치 중이고, 또 장래에도 통일을 대비하려면 러시아와 척을 질 수 없어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못 하고 있지요. 이래서 회장님은 본인이라도 나서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오! 훌륭합니다! 정말 훌륭합니다! 그러면 이번에 지원되는 물자는 전부 구호 용품입니까?”
“아닙니다. 1차로 방탄모 70,000개, NIJ 레벨 III+급 이상의 방탄복 60,000벌, 그밖에 3세대 이상의 야간투시경과 대량의 군화가 이곳으로 수송 중입니다.”
“우와아아! 방탄모가 70,000개에 방탄복이 60,000벌?”
“엄청납니다!”
두다 대통령과 브와시착 국방부 장관은 그저 경악하면서 감탄했다.
독일이 방탄모 5,000개를 지원한다고 하여 개욕을 처먹는 중이었는데, 두 사람은 그게 나름대로 독일로서는 쥐어 짜낸 수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민간인이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 보내는 물량의 10배 이상을 보낸다고 하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지나 1차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계속 수배 중이니, 그만큼의 수량은 몇 달 이내로 더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우워어!”
“그리고 스타링크와 부족한 전력을 대신에 할 파워월 세트도 싹 쓸어서 포장 중입니다.”
“스, 스타링크와 파워월까지요?”
“네, 우리 회장님이 직접 머스크와 만나서 전부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
두다 대통령과 브와시착 국방부 장관은 이제 한 가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한국하고 정말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