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일종의 내돈내산?
내가 아무리 부담스럽더라도 일국의 대통령, 그것도 풍전등화의 나라 한가운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두 손을 들고 직원을 불러서 영상을 연결하라고 지시했다.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이거 정말 보안이 확실한 겁니까?”
포노마렌코 대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영상을 연결하던 보안 담당 직원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민간 수준의 보안이 의심스러웠던 모양이다.
“대사님.”
“네, 말씀하세요.”
“미안한 말이지만 그쪽에서 뚫리는 일은 있어도, 여기서 뚫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여기 장비들은 민간에 판매가 금지되는 미국 정보부에서 사용하는 제품들이고, 시스템 구축하는 데에만 5,000만 달러가 넘게 들었습니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그,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보안장비를 담당하는 직원은 한국 직원이 아니라, 미국의 이지스에서 파견한 직원이다.
책임자는 NSA(National Security Agency. 미국 국가 안보국) 팀장급 직원이었는데, 이 친구와 팀을 데려오는 데에만 엄청난 거금이 들었고, 지금도 이지스 직원 중에서 최고 등급의 연봉을 받는 프로들이다.
우리가 데려오는 것도 트럼프가 대통령에 있으면서 특별히 승인해줘서 가능했던 것이고.
그런 사람의 보안 수준을 의심했으니, 이건 포노마렌코 대사가 실수한 것이 맞다.
“대사님, 우리 보안장비는 ‘웬만한’ 나라들이 보유하는 장비보다 훨씬 진보한 첨단 장비들입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괜찮습니다.”
대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웬만한’ 나라에는 우크라이나도 포함되었다는 말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면 구경도 못 하는 장비들이니까.
하여간 이윽고 영상이 연결되었고, 국방색 티셔츠를 입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사진으로 봤던 반질반질한 피부 대신에 거칠어진 피부가 선명하게 보였다.
열흘 조금 넘는 사이에 십 년을 더 나이가 들어 보일 정도다.
“젤렌스키 대통령님! 저 포노마렌코 대사입니다. 잘 들리십니까?”
“잘 들리고 잘 보입니다. 고생이 많습니다, 대사.”
“아닙니다, 대통령님! 저야 외국에서 편안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알렉스 강 회장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강 회장님! 부탁드립니다.”
“제가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회장인 알렉스 강입니다. 좋은 일로 뵙지 못하고, 이렇게 안 좋은 일로 인사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그래도 저는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강 회장님. 제가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입니다.”
약간 허스키하면서 상당한 저음의 목소리로 그래도 반갑다고 한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저는 러시아가 우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에, 강 회장님께서 우리 우크라이나에 보여준 놀라운 호의에 우선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 블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대표하여 알렉스 강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그리고 우리 우크라이나 국민은 알렉스 강 회장님을 영원토록 우리의 은인이자 친구로서 기억할 것입니다.”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인데,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지금 저뿐만 아니라 우리 각료들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우리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물품들을 그리도 정확하게 보내주시는 겁니까? 이건 마치 준비라도 하신 것 같아서 다들 놀라고 있어요. 게다가 그 많은 물량은 정말, 이게 개인이 보낼 수 있는 양인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작년부터 러시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을 때부터 조금씩 준비하여 그렇습니다.”
“그럼 회장님은 러시아가 우리를 침공할 것을 예상하셨다는 겁니까? 우리조차도 반신반의했는데요?”
“제가 투자가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것도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승률 100%를 자랑하고 있지요.”
“아….”
“사실 냉철하게 생각하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다만, 투자와도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저는 누구보다 냉철하게 판단했을 뿐입니다.”
“휴우, 그게 쉽다면 세상에 투자에 실패하는 투자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원래 남의 머리는 잘 깎으면서 자기 머리는 못 깎는 것이 인간이니까.
“그리고 저만 예상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도 여름부터 러시아의 침공을 예상했고, 심지어는 나토 동맹국들에 경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유럽은 믿지 않았지요.”
“유럽은 지금의 달콤한 상황을 깨기 싫었으니까요. 저렴한 가격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석유를 이용하는 것도 그렇고, 냉전 이후에 줄곧 지켜지던 평화도 깨기 싫었던 겁니다.”
“하여간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짧은 기간에 엄청난 부를 쌓았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말입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도 실력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회장님의 그 천문학적인 부는 운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당연하지.
염주의 도움이 없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
“그런데 말입니다, 회장님의 그 운이 우리 우크라이나에도 간절하게 필요합니다.”
“대통령님과 우크라이나 국민의 항전 의지가 강하니, 하늘도 도와줄 것이 믿습니다.”
“물론 그럴 것이라 저도 믿습니다만, 불행히도 지금 우리의 상황은 좀 더 구체적인 무엇이 필요합니다.”
“미국과 유럽이 도울 것입니다. 저도 최대한 지원할 생각이고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혹시 회장님께서 한국 정부를 설득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우크라이나는 지금 싸우겠다는 국민은 넘쳐나지만, 그들에게 쥐여줄 무기가 정말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말로는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유럽의 국가들은 막상 우리에게 지원해 줄 무기가 별로 없습니다. 그동안 평화가 너무 길었던 것이지요.”
“그래서요?”
“우리를 지지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힌 나라 중에서 재래식 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별다른 훈련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러시아 무기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더군요. 전체 무기 시스템이 나토 규격이라 사실상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역시나 그 이야기였나?
“불가!”
“회장님!”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불곰사업으로 들어온 러시아 무기들은 절대로 공여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 정부 입장이고, 저 역시 우리 정부 입장을 지지합니다. 귀국의 상황에 대하여는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만, 우리나라 미래의 안녕을 담보로 삼아가면서까지 지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아….”
“한국을 조사하셨다면 우리나라가 어떤 현실에 있는 나라인지 잘 아실 겁니다. 남과 북이 휴전 상태에 있는 나라입니다.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 하는데, 주변에는 모두 강대국이고, 대부분 사이가 좋지 않아요. 잠재적인 적국이나 마찬가지인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과도 말이 우방이지 과거사 문제로 그다지 좋은 사이가 아닙니다. 그런 와중에 그나마 냉전 이후로는 나쁘지 않게 지내온 러시아마저 본격적으로 적대국이 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해합니다. 이해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무기가 필요하다.
한껏 항전의 의지를 고취시켜서 싸울 사람들은 있다.
그런데 무기가 없다.
2014년 크림반도 침공 이후로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지만, 강대한 러시아를 상대로 싸우기에는 여전히 모든 것이 부족한 것이다.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지.
러시아 놈들의 눈치를 보아하니 우리나라를 비 우호국으로 지정했지만, 그놈들도 우리와 척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가 역력하다.
로스께 놈들도 아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간에 이후로 서방의 경제 제재에 시달릴 것이 뻔한데, 그나마 서방 국가 중에서는 가까우면서 산업이 발달한 우리나라마저 잃기는 싫은 것이다.
이러니 서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제재 대열에 어영부영하면서 동참하는 것이고, 러시아는 적당히 비 우호국으로 지정하기만 하고 실제로는 제재하는 것이 없었다.
지금도 러시아 입국하는 나라 중에서 비 우호국으로 지정된 나라 국민은 온갖 시비를 걸고 붙잡아 두고 하는 모양인데, 한국인에게는 그런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냥 이렇게 가는 거다.
단지 나야 이번 전쟁으로 얻는 이득이 워낙 큰 데다가 염주의 계시까지 받은 상황에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개입하여 보호 장비와 구호 물품, 그리고 재건 장비 등을 지원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인 것이고.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네, 안타깝지만 안 됩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에 계속 요청하여도 마찬가지일 것이니, 괜한 노력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건 어떤 정부라도, 누가 대통령이라도 답이 뻔한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며칠 전에 제가 우리 대통령을 만나서 직접 확인한 사안입니다. 포기하세요, 한국에서 무기를 얻는다는 것은….”
“아, 알겠습니다. 이거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생떼를 쓴 모양이 되었군요.”
“아닙니다, 대통령님. 저라도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더 했으면 더 했을 겁니다.”
“그래도 회장님께서는 계속 지원해주실 것이지요?”
“물론입니다. 무기만 아니라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낙담하면서도 어떻게든 애써 미소를 짓는 모습이 내 마음을 영 좋지 않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푸틴 그 망할 영감탱이는 왜 전쟁은 일으켜 가지고 이 난리람.
원래 나는 푸틴을 그리 나쁘지 않게 봤었다.
독재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간에 옐친 시절의 그 절망적인 혼란을 수습한 인물이 푸틴이었으니까.
그래서 러시아 국민도 여전히 푸틴을 지지하는 거라고 한다.
특히 90년대의 그 아수라장을 경험했던 중년 이상의 국민에게는 절대적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갔다.
남자들은 할 일이 없어서 싸구려 보드카나 처마시면서 빈둥대고, 여자들은 ‘인터걸’이라는 오명을 쓰고서 해외로 나가 몸을 팔던 시절이란다.
그러니 다시는 그 시절을 경험하고 싶지 않을 거였다.
그래서 혼란을 수습한 푸틴에게 열광하는 것이고.
근데, 푸틴 영감이 나이가 들면서 총기를 잃은 모양이다.
예전에는 그나마 선을 지켰는데 말이다.
어쨌든 상심한 젤렌스키 대통령을 보기가 영 그렇다.
“대통령님.”
“네, 회장님.”
“대신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제가 다른 방법으로 지원해 드릴까 합니다.”
“네? 어떻게 말씀입니까?”
“돈을 드리지요.”
“돈이요?”
“100억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100억 달러요? 100억 달러!”
“네, 그리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아!”
무슨 말이기는.
그 돈으로 알아서 무기를 사들이라는 말이지.
일종의 내돈내산?
쓸 만한 무기가 씨가 마른 상태라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제삼 세계에서 상당한 무기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과 러시아가 뿌린 무기가 얼마나 많은데.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쟁이 길어지면 추가로 드릴 테니까, 일단을 그걸로 어떻게든 해결해 보세요.”
“크흑! 정말 감사합니다!”
참 나도 잘하는 짓이다.
무기 사라고 돈이나 쥐여주고 말이다.
무슨 애들 용돈 주는 것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