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우리 완전히 합칩시다.
슈아아앙! 콰쾅!
“오오오!”
팟!
전등이 커지며 환해지자마자 나는 정신없이 물개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
“어떠냐? 알렉스?”
“최고! 내가 올해 본 영화 중에서 단연 최고!”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톰에게 열렬한 찬사를 퍼부었다.
“크하하하! 그렇지? 이거 대박이지?”
“대박이야, 대박!”
5월 초, 우리 집 지하에 있는 영화관에서 조촐한 시사회가 열렸다.
톰이 주연한 탑건 2, 매버릭 개봉을 앞두고 주연 배우들과 일부 친한 관계자들만 초청하여 시사회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거 정말 대박이다.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진짜로 미국 해군의 지원을 받아서 전투기 훈련 장면과 전투 장면을 찍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너희 집에서는 그냥 상영만 가능해서 실감이 덜한 거다.”
“이게 덜한 거라고?”
“응, 정식으로 개봉하면 모션체어(Motion Chair)와 특수 환경 장비가 설치된 극장에서도 많이 상영할 텐데, 그럼 더 죽일 거다. 물론 IMAX에서도 상영할 예정이고.”
“우와아아!”
톰이 밀덕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는구나.
“알겠지? 내가 진작에 영화를 완성했으면서, 왜 코로나로 다른 영화들이 줄줄이 OTT 서비스로 넘어가도 끝까지 버텼는지?”
“그럼! 이건 극장에서 봐야 해! 암!”
“하하하! 너도 투자했으니까, 이거 개봉되면 대박 나는 거다.”
“하하하하!”
솔직히 이젠 영화로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벌면 얼마나 벌겠어?
막말로 초대박이 터져서 10억 달러 정도 수익을 얻는다고 해도 제작비와 홍보비를 빼고 지분대로 나누면 몇억 달러 수준일 거다.
몇억 달러?
진짜 내가 숨만 쉬어도 버는 돈인데, 그래도 기쁘다.
영화 투자의 오묘한 묘미 같은 것이 있었으니까.
“톰 형.”
“왜?”
“앞으로 형이 찍는 영화는 돈 걱정하지 말고 찍어. 내가 전부 커버쳐 줄 테니까.”
“크하하하! 그거 좋다!”
“크하하하!”
다 날려도 좋다.
톰이 찍는다면 말이다.
“아! 그건 그렇고, 네 결혼식이 6월 4일이라고 했던가?”
“응, 한국 날짜로 6월 4일.”
“흐음, 이거 한국 측과 조정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린데?”
“네 결혼식이면 당연히 내가 참석해야 할 것 아니냐?”
“당연하지?”
톰은 미국에서 정말 친하게 지내는 몇 안 되는 지인 중의 한 명이다.
당연히 내 결혼식에는 참석해야지.
“한국 개봉이 원랜 5월 말이었는데, 한국 측의 사정으로 6월 19일로 연기했거든. 그런데 아무리 내가 너랑 친해도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하기는 좀 그래서. 한창 홍보하러 다닐 시기라서 말이지.”
“에이, 별걸 다 고민하네. 수입하고 배급을 어디서 하는데?”
“로체?”
“아, 로체에서 하는 모양이구나. 걱정하지 마셔. 내가 알아서 내 결혼식쯤으로 맞춰 놓을 테니까.”
“그거 가능하냐?”
“말 안 들으면 전부 사버리지 뭐.”
“헐….”
요즘 가뜩이나 어려움이 많은 로체 그룹이다.
내가 말하는데 거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물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전화 한 통이면 끝나는 일이다.
이게 무슨 문제라고.
즉시 한국에 전화해서 개봉 일을 조정하라고 로체 그룹에 요청하라고 했더니,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원하는 날에 개봉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됐지?”
“이야! 역시 거물은 다르구나?”
“흐흐흐! 내가 좀 크기는 했지!”
“알았다. 제리는 물론이고 제니퍼와 에드 해리스도 참석하고 싶다고 하니까, 그리 알고 있어.”
“제리는 내가 오라고 했는데, 다른 주연 배우들 모두 오려고?”
“가고 싶다는데 어떻게 하냐? 한국까지 데리고 가서 나만 갈 수는 없잖아?”
“그건 그러네. 뭐 자리 몇 개 더 만들라고 하지. 그런데 발은?”
“발은 알다시피 투병 중이라….”
발, 발 킬머.
1편에서 아이스맨으로 나왔던 발은 지금 후두암으로 투병하는 중이다.
톰 형과 같이 몇 번 만났는데, 그렇게 멋있던 사람이 아주 많이 늙고 병들어 있었다.
이제 60대 초반밖에 안 되었는데.
“어쩔 수 없지 뭐. 하여간 그럼 그때 보자고요.”
“그래.”
“아, 톰 형.”
“응? 왜?”
“4D 시설 설치업자 알아?”
“4D 시설업자? 전화 몇 통 하면 나오겠지. 그런데 왜?”
“어, 우리 집에도 설치하려고.”
“진, 진짜?”
“내가 결혼하러 한국에 간 동안에 설치하라고 하면 되겠네.”
“너 진짜 대단하다!”
“에이, 얼마나 한다고….”
집에다 설치하고 두고두고 볼 생각이다.
“그런데 알렉스.”
“응.”
“아까 네가 이 영화가 올해 본 영화 중에 최고라고 했잖아?”
“그랬지.”
“네가 본 다른 영화들은 어땠는데?”
“몰라.”
“모르다니?”
“올해 본 영화가 이거 하나거든….”
“…….”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인 줄 아나?
***
“바이든 말이 맞아. 나도 너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뒷말이 나오는 것 같아서 속으로 걱정하던 참이다.”
“그래요?”
제프리 형에게 바이든 대통령이 한 말을 전달하자, 형도 전적으로 동감했다.
“응, 미국이란 나라가 그래. 이민으로 시작되어 온갖 인종이 융합된 나라로 보이지만, 여전히 앵글로 색슨 백인의 나라거든. 그런데 너 같은 아시아인이, 그것도 시민도 아니고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이 이 나라의 돈을 싹쓸이한다고 생각해 봐라. 오히려 뒷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거야.”
“제기랄….”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이민을 와서 시민권을 따고 미국인이 된 지 벌써 수십 년이 넘었는데도 그래. 실력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이란 것이 존재하거든.”
“형도 그런 게 있어요?”
“임마! 피부색이 어디 가냐? 눈에 확 띄는 것이 우리 동양인 아니냐?”
“헐….”
“영원한 이방인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야. 심지어는 우리 집 애들도 그래요. 걔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완전한 미국인인데도 학교 다니면서 가끔 차별을 받고 집에 울면서 온 적이 꽤 있었어. 그나마 지금이야 커서 그런 일이 있더라도 내색하지 않지만 말이야.”
“아니 다른 곳도 아니고 LA에서?”
“그래, 유색인종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LA에서도 마찬가지야. 특히나 코로나가 중국에서 시작되어서 요즘은 더 심해졌더라. 나조차도 가끔 경호원들 떨어뜨려 놓고 볼일을 보다가 너희 나라로 꺼지라는 소릴 들었으니까.”
“이런 미친….”
캘리포니아주는 백인이 다수가 아닌 주다.
히스패닉이 39%로 가장 많고, 백인이 35% 정도다.
그 뒤를 중국계를 비롯한 아시아인이 18%고 흑인이 6% 정도로 이른바 ‘유색인종’이 많은 주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차별이 있다니?
솔직히 나는 미국에 처음 온 것이 로또에 당첨되어 슈퍼리치로 왔기 때문에 잘 모르고 있었다.
늘 경호원에 둘러싸여 있고 남들의 위에 있어서 차별당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하여간 바이든이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지역이 우리가 꽉 잡고 있지만, 정치의 중심이 워싱턴과 뉴욕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니까, 앞으로는 좀 더 신경을 쓰도록 하마.”
“그렇게 해요. 돈 아끼지 말고 고루고루 뿌려. 대신에 합법적인 틀 안에서 말이지.”
“임마, 날 우습게 보는 거냐? 걱정하지 마. 문제 생기지 않게 깔끔하게 살포할 테니까.”
“믿어요, 형. 흐흐흐!”
“자식이 꼭 이럴 때만 믿는다고 하냐?”
돈을 뿌리는 것도 기술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섬세함을 요구하는 고급 기술이다.
그리고 그것을 유난히 잘하는 사람이 제프리 형이다.
어찌나 적재적소에 딱 필요한 정도만,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불법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며 뿌리는지 옆에서 보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정도면 거의 예술이다, 예술.
“그리고 우리 카르마 이름으로 재단도 하나 만듭시다.”
“바이든 말처럼 카르마를 전면에 내세워 이미지 세탁을 하려고?”
“에이! 내가 무슨 세탁씩이나 할 만한 일을 한 적이나 있나? 어차피 바이든이 말하지 않았더라도 수익 일부는 사회에 환원하려고 했어. 말이 나온 김에 하자는 거지.”
“자식이 예민하게 굴기는?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여간 재단 사업은 어느 방향으로 하려고?”
“역시 장학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그렇지. 그만한 것이 없지. 좋은 일을 하면서도 미래의 우리 편을 만드는 것이니까.”
뭐, 사성 장학생처럼 노골적으로 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우리 돈을 지원받아서 공부한 학생들이 사회로 나가면 결국 우리 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각계각층에서 자리를 잡고 주류 사회로 들어간다면 무슨 일이 생겨도 큰 힘이 될 것이고.
“거기다가 이거저거 끼워 놓읍시다. 미국이 제일 부족한 것이 의료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니까, 의료 지원도 하고 말이야.”
“흐음,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래서 얼마나 재단으로 내놓으려고?”
“일단 1,000억 달러.”
“뭐? 1,000억 달러? 그거 너무 많지 않냐?”
“에이, 찔끔찔끔해서 임팩트가 있겠어요? 한방에 쎄게 가자는 거지.”
“그래도 너무 많은 것 같은데….”
“그냥 그렇게 하자고요. 형도 대충은 알잖아? 이번에 내가 얼마나 버는지?”
“하긴….”
“시작부터 그랬어요.”
“뭐가?”
“내 종잣돈 말이야. 따지고 보면 미국 시민들이 모아준 것이나 다름없잖아? 그것도 대부분 서민이 말이야.”
오늘날의 내 부를 만든 돈은 미국 로또인 파워볼에서 나왔다.
복권이 뭔가?
소시민들이 인생역전을 노리면서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한방에 몰아주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 돈으로 사업을 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번 것도 미국이었다.
어쨌든 내가 사회에 환원한다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것이 미국이다.
미국에서 번 돈이니까, 미국에 가장 많이 환원하자는 거지.
겸사겸사해서 이방인이 미국의 돈을 쓸어간다는 뒷말도 잠재우고 말이다.
“휴우! 알았다. 네 말이 맞네. 그렇게 하자고.”
“내가 결혼식 끝나고 발표하는 것으로 하자고요.”
“직접 나서게?”
“미쳤어요?”
“그럼?”
“형이 나서야지?”
“내가? 왜?”
“그럼 재단 이사장이 발표해야지, 누가 발표해?”
“뭐,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재단 이사장이라니?”
“제프리 형.”
“왜?”
“이제 변호사 노릇은 그만하고, 우리 완전히 합칩시다. 어차피 지금도 거의 우리 카르마 인베스트먼트 업무가 주력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카르마의 부회장 자리를 드릴 테니까 그렇게 해요. 겸직으로 재단 이사장도 형이 맡고. 언제까지 법정에 나가려고 그래요?”
“…….”
진작부터 하려던 말이다.
제프리 형네 사무실이 우리 사옥으로 들어오면서부터는 사실상 한 회사나 마찬가지였고.
“알았다. 그렇게 하지.”
“하하하! 고마워요.”
“잠깐! 내가 완전히 카르마 식구가 되더라도 너에게 회장님이나 보스 같은 소리는 안 할 거다?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당연히 해야겠지만!”
“에이! 나도 지금이 좋다고. 내가 형에게 보스 소리는 들어서 뭐 하려고?”
“좋아!”
“하하하!”
“하하하!”
기분 좋은 날이다.
제프리 형이 완전하게 우리 식구가 된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