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오늘은 나도 이만!
신혼여행을 다녀오니 6월 말, 어느덧 2022년도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테슬라가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이구! 하여간 머스크 그 자식은 자기 일이나 잘할 것이지….”
지난 4월 말에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기 위하여 합의한 금액은 무려 440억 달러.
그 쓰잘데기없는 트위터를 무려 주당 54.2달러에 사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주가가 제대로일 리 없었다.
“1월 초와 비교하면 거의 절반 가까이 주가가 내려갔습니다. 5월 말부터는 거의 600달러대에서 놀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트위터 인수 협상도 어째 잡음이 많습니다.”
“응? 끝난 거 아니었어요?”
“그게 머스크가 시비를 좀 거는 모양입니다.”
“아니 시비 걸 것이 뭐가 있어요? 회계 장부를 속이지 않는 이상에는?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것이고.”
“가짜 계정이나 스팸 계정에 대한 데이터를 정확히 제공하지 않았다고….”
“그놈, 거 여러 가지 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내버려 두세요. 테슬라는 잠시 반등이야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떨어질 겁니다.”
“네, 그래서 그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있습니다.”
“흐음, 아닙니다. 잠시 용돈 정도는 버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염주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는 희미하게나마 다시 주가가 오를 것으로 나온다.
일종의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나 할까?
물론 잠시 그러다가 마는 거지만, 아직 몇 안 되는 초대형 종목에서는 우리가 그나마 용돈? 이라도 벌 기회라는 거다.
“제 생각으로는 7월부터 반등하다가 9월 중순부터 다시 막장으로 갈 겁니다. 생각이 있으면 존이 알아서 적당히 넣었다가 빼세요.”
“흐흐흐! 그렇습니까? 그럼 당연히 용돈이라도 벌어야지요.”
“흐흐흐! 그렇게 하세요.”
존과 나는 마치 악당이라도 된 것처럼 웃어댔다.
당연히 머스크 놈이 싫어하겠지만,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고.
한국까지 와서 내 결혼을 축하해 준 것은 고맙지만 말이다.
어차피 다른 놈이 먹는다면 그냥 내가 먹는 것이 낫지.
“자, 그럼 저는 이만 일찍 퇴근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이제 5시가 좀 넘었는데요? 오랜만인데 한잔하시지 않고요?”
“에이, 장인어른! 손주 보기 싫으세요? 그럼 같이 한잔하시고요.”
“소, 손주? 아! 봐야지요! 얼른 들어가시지요!”
“흐흐흐! 존, 신혼이니까 당분간만 양해해 주세요.”
“흐흐흐! 얼마든지 양해하겠습니다.”
“제인이 그러더라고요, 자라면서 형제가 없어서 매우 쓸쓸했다고 말입니다.”
“제인이 그런 말을 했어요?”
“몰랐어요?”
“에이미와 나는 전혀….”
몰랐었나 보다.
하긴, 제인이 그런 말을 할 성격도 아니고.
아니 한참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 때는 존이 망가져 있어서 할 수도 없었을 거였다.
“저도 신혼여행을 가서 알았어요. 평소에도 유난히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요.”
“허어!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린….”
“하여간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을 많이 낳자고 하더군요. 일차 목표가 무려 다섯입니다.”
“다, 다섯씩이나?”
“그래서 전 이만 일찍 들어갑니다. 열심히 만들어야지요! 하하하!”
“그럼 나도?”
“먼저 퇴근합…. 엥? 나도? 나도라니요?”
“우리 제인이 그렇게 동생들을 원했다면 지금이라도….”
“아,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런데 생각해 보니 존의 말은 전혀 무리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장모님인 에이미는 이제 나이가 고작 40대 중반이다.
워낙 일찍 존과 결혼했었으니까.
그러니 지금도 에이미는 아이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아니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 거지?
“저기 존….”
“좋습니다! 우리 딸이 그렇게 원하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하하하! 그럼 오늘은 나도 이만!”
쿵.
존이 내 방을 서둘러 나가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뭐여? 이러다가 설마 동시에 낳는 것은 아니겠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늦둥이와 손주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거나 오히려 늦둥이 쪽이 늦는 경우가 있었다지만 설마….
뭐, 상관은 없겠지.
존과 에이미가 아이 하나 더 낳는다고 나중에 유산 싸움이 벌어질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제인은 내 유산을 받을 테니까.
***
7월 중순에 다시 한국에 입국했다.
“조만간 대통령이 회장님을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 어디 대통령이요?”
“네? 우리 한국 대통령이지 어디 대통령이겠습니까?”
“…….”
내가 아는 대통령이 어디 한둘인가?
솔직히 보는 횟수로 따지면 우리 한국 대통령보다 미국 대통령을 더 보는구먼.
게다가 폴란드 대통령을 비롯하여 유럽의 대통령이나 총리들도 나를 보자고 아우성치는 상황이고.
“그런데 우리 대통령이 왜요?”
“정부에서 계속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달러가 언제 들어오냐고요.”
“응? 그걸 정부에서 왜 물어요?”
“왜긴 왜겠습니까? 환율 때문이지요.”
“환율? 아….”
지금 환율이 장난이 아니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기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환율은 장기간 달러당 1,100원에서 1,200원 사이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었다.
그런데, 그 상황이 올해 들어서 천지가 개벽하는 수준으로 바뀌고 있었다.
미국이 무서운 속도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으니까.
올해 1월에 미국의 기준금리는 0.25%였다.
그랬던 기준금리를 3월에 0.25%를 올리더니 5월에는 한 방에 0.5%를 올리는 빅 스텝을 단행했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달에는 무려 0.75%를 올려버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연준에서는 올해 하반기까지 기준금리를 4%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떠드는 중이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도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
빠져나가는 돈을 붙잡아야 하니까.
결국, 우리나라 한국은행도 따라간다고는 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보니 환율이 급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7월이 되어서는 1달러당 1,300원을 돌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 정부 당국자들은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계속 문의하고 요청하나 보지요?”
“난리도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상황이 심각하고요.”
“나도 미국에서 계속 보고는 받았지만 어려워 보이기는 하더라고요.”
“그 정도가 아닙니다, 회장님. 코로나로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었는데,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은 여전히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서 전방위적인 락다운 조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 코로나 시기에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가 돈을 왕창 풀었던 것이 버블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여기다가 미·중 간의 무역 분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고, 그 와중에 러시아 놈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바람에 에너지 시장까지 엉망이 되었지요.”
“…….”
이건 좀 속이 뜨끔했다.
에너지 시장이 막장으로 가면서 재미를 본 것은 나였으니까.
하여간 그건 그렇고….
“전 세계가 난리이지만,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좀 더 취약합니다. 아무래도 경제에서 대외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것이 크니까요.”
“참 나, 나라가 조금 더 커야 하는데….”
내수시장 규모가 작다 보니 늘 이 모양이다.
통일이라도 되어 인구 8,000만에서 9,000만 명의 시장만 되어도 좋으련만.
“세상이 수상하게 돌아가니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심리가 커지면서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주식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무역수지 적자 폭이 확대 흐름이 지속하고 있고, 경상수지 흑자 폭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2008년 이후로 최대폭으로 감소 중입니다.”
“이거 상황이 장난이 아니네요.”
“그렇습니다. 이번 달에 1달러당 1,300원을 돌파했지만, 모든 전문가가 이건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반기에는 분명히 1달러당 1,400원대도 돌파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회장님.”
“그래서 정부 당국자들이 똥줄이 타는 거였군요.”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계속 절 붙잡고 하소연을 하는 것이고요.”
“끄응….”
정부 당국자들이 남정원 부회장을 붙잡고 읍소하는 이유가 뭐겠냐?
카르마 홀딩스가 이제는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굴지의 그룹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만 한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의 외환위기를 어찌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붙잡고 사정을 하겠나?
최종 목표는 나라는 소리지 뭐.
“남 부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현재 회장님의 능력이라면 원화를 100원 정도 끌어 올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겁니다.”
“네, 맞아요. 솔직히 전화 한 통이면 끝납니다.”
미국에다가 전화 한 통만 넣으면 게임 끝이다.
카르마 인베스트먼트에서 보유 중인 현금 중에서 1,000억 달러만 한국 카르마 홀딩스로 보내라고 하여도 요동치던 외환 시장은 안정이 될 것이다.
1,000억 달러는 1,000억 달러대로 단박에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떨어지던 환율을 붙잡을 것이고, 무엇보다 시장에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게 된다.
내가 한국의 배후에 있으며, 원화가 똥값이 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하지만 그래서 안 된다고 봅니다.”
“음? 그건 왜 그런 겁니까?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우리나란데?”
“우리 정부가 지난 몇 년간 알게 모르고 회장님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거, 이런 식으로 계속되는 것은 곤란합니다.”
“흐음….”
“막말로 대체 회장님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그리고 부실기업들 인수하여 정부 숨통을 틔워주고, 심지어는 국방 분야까지 회장님 개인 주머니를 털고 있어요. 게다가 복지 분야로 가면 더 그렇습니다. 당연히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회장님 떠맡고 있는 돈이 대체 얼마입니까? 이러다가 보건복지부 예산의 상당 부분을 회장님 돈으로 막는 일이 생길 겁니다. 아니 지금도 솔직히 그렇고요.”
“…….”
남정원 부회장의 말이 맞았다.
지금 우리나라 정부는 내게 너무 의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절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물론 저도 한국 사람입니다. 당연히 끝까지 나 몰라라 하자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와주세요. 그래야 정부로서도 대처 능력이 생기고, 우리에게도 더 고마워할 겁니다. 조금 어렵다고 그때그때 바로 해결해 주면, 나중에는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말이지요.”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는 건가….”
“네?”
“아, 아닙니다.”
“하여간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그럼 언제?”
“우리 측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올해 가을 정도에 피크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1,500원대를 돌파할 거라는 의견도 있지만, 대체로는 적어도 1,400원 중반까지는 간다고 합니다. 그때 사정하면 못 이기는 척하고 도와주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흐음….”
남정원 부회장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우리 대통령은 섭섭해하겠지만.
“그리고 기본적으로 우리는 사업가가 아니겠습니까?”
“응? 그건 무슨 말이에요?”
“아니 가을에 절정 시기에 돈을 들고 오면 1,400원 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지금 1,300원 때 들여오냐고요. 안 그렇습니까?”
“흐흐흐! 그렇지요.”
“그런 겁니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말씀대로 하지요.”
“감사합니다.”
며칠 후, 대통령으로부터 연락이 왔지만 나는 그냥 전화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만남을 거절했다.
대통령은 애가 닳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거지.
나중에 더 똥줄이 탈 때 도와주면 오히려 더 고맙게 생각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