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재밌게들 놀아라.
다음 날 새벽.
나는 평소보다 한참 이른 5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찰톤 호텔 인근의 그 장소에 들렀다.
“제길! 이렇게나 좁은 장소에서….”
현장을 보니 말문이 막혔다.
기껏해야 5평 정도에 불과한 골목.
이런 곳에서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말인지.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는 왜 이런 일을 막지 못하는지….
염주의 성능이 나날이 좋아지는 통에 그 어느 때보다 생생했던 참혹한 꿈이 생각나서 다시 속이 쓰려왔다.
“회장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여기는 왜….”
“아니, 잠깐 살펴볼 것이 있어서. 이제 갑시다.”
“네, 회장님.”
출근하자마자 비서실에 찰톤 호텔과 문제의 그 장소에 대하여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했더니, 오후 5시가 되기 전에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이 동네 길들이 대체로 이렇습니다. 좁고 경사져서 차는 물론이고 사람이 보행하는 것도 인파가 몰리면 어려운 곳입니다.”
“흐음….”
정말 좁은 동네다.
4성급 호텔인 찰톤 호텔이 이 근방에서는 제일 큰 건물이라니 말 다 한 거였다.
그렇게 좁은데 어거지로 왕복 4차선으로 만든 듯한 도로 양쪽으로 조그만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하아, 이거야 원….”
어쨌든 가을이 되면 축제는 벌어진 것이고, 사건은 발생한다.
염주의 메시지가 틀린 적은 없었으니까.
결국은 참사를 막으려면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심플하고 내가 잘하는 방법으로.
“장 비서.”
“네, 회장님.”
“이 동네 할로윈 축제가 그렇게나 유명해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할로윈 성지라고 하더군요.”
“하더군요?”
“저기, 제 나이로도 이런 축제하고는 거리가 좀 멀어서….”
“그래요?”
“네, 회장님. 30대만 되어도 어울리기 어렵습니다.”
“하여간 그래서요?”
“네, 하여간 이 동네가 원래 외국인들과 미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할로윈 분위기를 이끄는 곳이라 보시면 됩니다. 2010년대 들어서서 엄청나게 활성화되었고요. 게다가 코로나로 몇 해 동안 축제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가을에 기대를 거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재한 외국인들도 마찬가지고요.”
“흐음….”
그렇다면 축제 자체를 날려버리기는 어렵다.
여기서 못하게 막는다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이고, 그럼 대처하기도 더 어려워진다.
그럼 당초 생각대로 가는 수밖에.
“찰톤 호텔에 대하여 말해 보세요.”
“1972년도에 지어진 오래된 4성급 호텔입니다. 워낙 오래되었고, 근방에 그만한 건물이 없어서 그 동네에서는 랜드마크지요.”
“허어, 그렇게 오래되었어요?”
“네, 무려 50년입니다. 그래서 2015년에 대대적인 리뉴얼을 했는데, 이게 문제가 많은 모양입니다.”
“낡은 것을 보수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불법적인 증축과 개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낸 이행강제금만 9억이 넘는데, 그런데도 계속 이행강제금을 내면서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야? 그게 가능한가?”
“오너가 거의 토호나 다름없습니다. 70대 중반으로 고령인데, 지역사회에서 이런저런 감투도 많이 맡았고 현금도 많아서 그 동네에서는 힘깨나 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허어….”
“아마, 제대로 뒤지면 유착 관계 같은 것이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건 신경 쓰지 말고.”
“네, 회장님.”
하여간, 그건 그거다.
웬 영감이 동네에서 주름잡고 있든 말든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내 관심사는 오직 하나, 다가올 참사를 막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거 얼마예요?”
“네? 뭐가 말입니까?”
“찰톤 호텔이 얼마냐고요.”
“시세가 1,500억 정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4성급이지만, 부지가 꽤 넓고 대규모 리뉴얼도 거친 상태라서요.”
“그럼 매입하세요. 최대한 빨리.”
“예? 찰톤 호텔을요?”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매입하세요.”
“오너가 제법 돈이 많은 사람이라서 쉽게 내놓지는 않을 겁니다. 오래 소유해서 애착도 있을 것이고요.”
“달라는 대로 주면 되잖아요?”
“그, 그야 그렇습니다만….”
장 비서는 웬만하면 내가 지시하는 것을 군소리 없이 이행하는 스타일인데, 이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나 보다.
하긴 1,500억이면 더 쌔끈한 호텔이 널려 있다.
특히 4성급이라면 코로나 사태로 시장에 급매로 나온 호텔이 엄청나게 많을 테니까.
그것도 신축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
찰톤 호텔의 존재가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거슬렸다.
게다가 사고가 난 골목도 확인해 보니 도로 절반이 찰톤 호텔의 소유라 길을 넓히려 호텔과 드잡이질을 하여야 할 것인데, 그러기도 싫었고.
“그냥 매입하세요. 그쪽에서 달라는 대로 주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보세요.”
나는 스크린에 구글이 제공하는 항공 지도를 띄웠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예? 찰톤 호텔 서쪽 블록 전체 말씀입니까?”
“네, 이거 전체도 매입하세요.”
“이 블록 전체를 말입니까? 전부요?”
“네, 전부!”
“…….”
장 비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생각은 단호했다.
“뭘 그렇게 놀래요? 그래봤자 찰톤 호텔 대지의 두 배도 안 되겠구먼?”
한 블록이라고 해봤자, 구글 지도로 면적을 측정해 보니 대략 1,500평 정도나 나올 것 같았다.
게다가 대부분 낡고 오래된 소형 상가들이라, 건물값과 이전 보상비를 주더라도 부지 포함하여 평당 1억 정도면 충분히 매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더 달라면 주면 되는 것이고.
근데 구글 지도 이거 진짜 물건이다.
블록 귀퉁이 네 군데 점을 찍으니 그냥 면적도 계산해주네?
“그게 아니라, 여기는 조그만 상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전부 매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우리가 블록 전체를 매입하려는 것을 알면, 알박기를 시도하는 주인들도 나올 것이고요.”
“더 달라면 더 주세요. 그리고, 어려운 일이니까 장 비서에게 지시하잖아요? 쉬운 일이면 다른 비서에게 시켰겠지?”
“아….”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충성을 바치는 법이다.
게다가 그 사람이 돈을 많이 주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겠지.
장 비서는 내 말에 바로 얼굴에 굳은 결의가 생겨나는 것 같았다.
“맡겨주십시오! 제가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오오! 역시 장 비서! 믿어도 되겠어요?”
“네, 회장님! 실망하시지 않게 하겠습니다.”
“좋아요! 내가 모든 지원을 할 테니까, 최선을 다해서 임해주세요.”
“네, 회장님! 그런데, 찰톤 호텔과 이쪽 블록은 사들여서 어떻게 할까요?”
“으음, 찰톤 호텔은 그냥 대유건설에 넘겨서 대충 운영하라고 하세요. 아! 불법으로 증축하고 개축한 부분들은 전부 바로잡으라고 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 블록은요?”
“전부 밀어버리세요.”
“네?”
“전부 밀어버리고 광장을 만들어 버리세요.”
“과, 광장이요?”
“네, 광장을 만들 겁니다. 젊은 애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하니까, 아주 제대로 놀게 멍석을 깔아 주자는 겁니다.”
“…….”
하지 못하게 하면 더 하는 것이 사람 습성이다.
특히나 피가 끓는 젊은 애들은 더욱 그럴 것이고.
그렇다면 아예 제대로 놀라고 판을 깔아 주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주 안전하게 놀라고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광장을 만드는 기한은 올해 할로인 데이 전까지입니다. 대유건설에 내 지시라고 하고, 무조건 완성하라고 하세요. 행정적인 것은 박홍렬 변호사님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바로 처리해 주실 겁니다.”
“흐음, 그냥 밀어버리고 광장을 만드는 것이라면 충분합니다.”
“아! 그냥 광장을 만들 것이 아니라….”
“네?”
“지하를 찰톤 호텔 주차장 겸 유료 주차장으로 활용하면 딱 맞겠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참사를 막기 위하여서 하는 일이지만, 찰톤 호텔과 서편 블록을 사들이는 것에만 최소한 3,000억에서 4,000억 이상은 들 것이다.
그럼 찰톤 호텔 가치라도 높여야지.
덤으로 그냥 흩어봐도 주차난이 심할 것 같은 동네 주차장도 확보하고 말이다.
“지하 주차장이요? 저, 저기 그러면 시간이……. 지하를 파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해 봐요. 해 보지도 않고서? 내가 모든 지원을 한다고 했잖아요? 이번 일만 완수하면 장 비서의 인생은 내가 책임집니다!”
“제 인생? 채, 책임?”
장 비서는 내 손이 얼마나 큰지 잘 아는 사람 중의 하나다.
내가 인생을 책임져 주기로 약속한 이상, 장 비서는 성공을 보장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얍! 기필코 완수하겠습니다!”
“하하하! 내가 장 비서를 믿고 있었어요.”
“네, 회장님! 감사합니다.”
“그래요, 나가보세요. 아! 잠깐만!”
“네, 회장님.”
“여기 구청장 평판이 어때요?”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대참사가 벌어진다.
그것도 인도나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나 일어날 법한 참사가 말이다.
그렇다는 말은 정부는 둘째치고서라도 해당 구청이 제대로 일하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다.
이 정도 축제면 관내에서는 대형 행사일 텐데, 일을 어떻게 해서 그런 대참사가 일어나게 한다는 말인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우는 것이 좀 웃기는 일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서라도 평판이 나쁘면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이제 내게는 그까짓 구청장 나부랭이 정도는 날려버릴 힘이 있으니까.
“썩 좋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회장님 지시를 받고 급하게 조사했는데도 제법 많은 먼지가 나왔습니다. 아마, 제대로 털면 장난이 아닐 것 같습니다.”
“흐음, 그럼 그렇지….”
내가 예상한 대답이 나왔다.
일을 제대로 하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벌어질 리가 없는 것이다.
하여간 먼지가 많다고?
그럼 나도 부담이 없지.
“우리 정보 부서를 총동원해서라도 탈탈 털어버리세요.”
“탈탈요?”
“네, 아주 탈탈!”
“네, 회장님. 여기 구청장은 이번 여름이 가기 전에 급식을 먹을 겁니다.”
“그래요, 믿습니다.”
그밖에 자동 심장 충격기도 현황을 파악해 보고, 정부와 협의하여 신촌이나 상수동, 그리고 대학로 같은 곳에 집중적으로 설치하라고 했다.
꿈에서 본 아수라장에서는 자동 제세동기조차 없어서 심지어 시민들까지 달라붙어서 어설픈 심폐소생술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에 대체 자동 제세동기가 없다는 것이 말이나 되냐고?
이런 종류의 사고에서는 자동 제세동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그만큼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을 강제로 생의 길로 올려놓는 장비니까.
전국에 다 깔아 줄 수는 없지만, 인파가 몰리는 곳에라도 넉넉히 깔아 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여간 이 정도면 되었겠지?
***
그날 밤, 나는 다시 꿈을 꾸었는데, 내가 만든 광장에서 젊은 애들이 모여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아이언맨, 드라큘라, 마녀와 악마 분장을 한 젊은이들….
우리나라 애들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온 듯한 각국의 젊은이들이 열기를 발산하면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자는 와중에도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잠꼬대를 했다.
“그래, 재밌게들 놀아라. 이 형은 먹고살기 바빠서 제대로 놀지도 못했는데…. 술은 적당히 마시고….”
그리고 그런 모습을 제인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데, 나는 몰랐다.
아침에 내게 핀잔을 할 때까지.